〈 226화 〉 파견 임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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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생겼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더구나. 혹시 네 능력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해서 불렀단다.”
다른 목적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뭐 그것보다는 눈 앞에 있는 게이트의 존재가 더 중요했다. 그날 봤던 장소에서 느껴지던 분위기와 비슷한 느낌.
‘이건 차원 지원을 나갔을 때 느꼈던 기운인데.’
정확하게는 다른 차원의 기운이라고 해야 할까.
불안정하게 넘실거리는 틈새 사이로 다른 세계의 힘이 조금씩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최태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균열로 다가갔다.
[ 항마 : 활성화 ]
손끛에서 타오르는 항마의 불꽃이 게이트에 닿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불안정한 균열을 감싸고 있는 힘을 조금씩 태우기 시작하더니 이내 균열의 크기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틈세처럼 보이던 균열은 하나의 게이트로 변해 버렸다.
생김세는 일반적인 게이트와 똑같지만, 그 너머에서 풍겨오는 힘은 프레이야의 세계에서 느꼈던 힘과 동일했다.
“할아버지 이건…”
옆에 있던 박혜지가 신기한 표정으로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최태수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네 힘에는 반응하는구나… 뒤로 물러나거라.”
반대쪽 너머에서 풍겨오는 이질적인 기운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나 전투 준비를 마친 순간, 너머에서 불길해 보이는 기움을 뿜어내는 무언가가 넘어왔다.
“저건 그때 시험장에서 봤던 녀석!!”
박혜지는 게이트에서 넘어온 존재를 보고 소리쳤다.
그녀의 말대로 질리도록 많이 본 존재였으나, 그들과는 조금 달랐다.
더 사악한 분위기와 함께 육체가 있었던 녀석들과는 다르게 녀석은 텅 비어 있었다.
검은색 기운이 뭉쳐있는 것 같은 느낌의 녀석은 불쾌한 냄새와 함께 검을 들어 올렸다.
“마기와는 다른 느낌이구나.”
최태수는 놈의 앞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했다. 최태수의 말대로 녀석에서 풍겨오는 느낌은 마기와는 전혀 다른 힘이었다.
흔히 네크로멘서라는 녀석들이 살린 녀석이니 힘의 종류가 다를 수는 있지만,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
‘그때 상대했던 녀석들은 이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는데…’
“크르르르르…”
게이트를 넘어온 녀석은 마치 짐승이 우는 듯한 소리를 내며 우리의 앞에 서 있는 최태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할아버지!”
“허허. 진정하거라.”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최태수가 우리를 말렸다.
뒤에서 검이 내려오고 있음에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최태수.
기사가 휘두른 검은 순식간에 최태수를 덮쳤다.
__깡!!!
사람에게서 나는 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태수의 몸 외부에는 마력이 아주 얇은 형태로 맺혀 있었다.
전혀 충격이 없었는지 최태수의 몸에는 그 어떤 상처도 없어 보였다.
단지 그 위력은 무시할 수준이 아닌지, 최태수가 살짝 바닥에 박혀버렸다.
“이거 위력이 상당 하구나.”
“크르르르!!!”
“인간에 대한 적대감도 심한 거 같고.”
기사는 멈추지 않고 최태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최태수는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는지 주먹을 뻗어 놈의 공격에 반격했다.
내게 김정호가 하려던 기술을 보여 주려는 듯, 기사가 검을 휘두르는 순간 찰나의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진각을 밟아 힘을 응집시키고, 정권을 앞으로 내질러 폭발시켰다.
검을 휘두르는 틈을 노려 사용한 최태수의 기술.
아마 김정호도 저런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었을까.
__파아아앙!!!!!!
김정호의 주먹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렬한 파열음이 일어났다.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만큼이나 위력을 확실했다.
마치 삭제되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
검은 기사는 마치 상반신이 삭제 된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상반신이 날아간 상태에서 구물거리며 불쾌감을 유발하는 검은색 덩어리.
“이렇게 해도 죽지 않는 건가.”
상반신이 날아간 상태에서도 움직이는 검은색 덩어리의 크기가 커지려는 기세가 보이자 최태수가 다시 한 번 주먹을 휘둘렀다.
__파아아아앙!!!!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검은 덩어리에 최태수는 손을 가볍게 털었다.
“할아버지.. 방금 저 녀석은 뭐였을까요? 한 번도 본적 없는 녀석인데…”
“처음보는 신규 몬스터구나. 신규 몬스터가 나타나는 게 얼마 만인지…”
일반적으로 검은 기사형 몬스터의 경우는 스켈레톤이나, 흔히 리빙 아머라 불리는 것 처럼 갑옷 자체에 고스트 타입 몬스터에 깃든 거지만, 저런 타입은 지금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거기다. 일반적인 게이트와는 다른 느낌이구나. 이렇게 빨리 넘어올 줄이야.”
최태수는 무언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최근 들어서 이런 경우가 너무 자주 일어나는구나. 그때 시우 군이 상대했던 녀석들도 그렇고… 이거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건지.”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넘어오기 전까지는 어느정도 여유 시간이 있었다.
이런식으로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몬스터가 넘어오면, 인명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게 분명했다.
설마 프로터가 말했던 일과 관련이 있는 걸까.
‘불길한 균열. 저 너머에서 다른 차원의 몬스터가 넘어오는 건 우연이 아니겠지.’
녀석의 말 때문인지, 눈앞에 있는 균열이 더욱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 의뢰는 저 게이트를 처리하는 거란다. 나도 같이 갈 생각이지만, 위험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겠구나. 어떻게 하겠느냐?”
굳이 최태수가 부탁하지 않아도 내 대답은 똑같았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저도 괜찮아요! 할아버지! 저런 녀석은 저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어요!”
“허허. 그래. 아무리 그래도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는 준비가 필요한 법이지.”
최태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게이트 앞을 가로막았다.
“혹시 몬스터가 넘어 올 수도 있으니 나는 여기서 기다리도록 하마. 혜지야 너는 시우를 데리고 가서 장비를 챙겨 오거라.”
“알겠어요. 할아버님.”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하나 집어와도 된다.”
“할아버지!”
“허허. 괜찮단다.”
옆에서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박혜지 때문에 괜히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필요 없는데.
*
박혜지를 따라 다른 건물로 들어가자 다양한 무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는 게 보통 무기는 아닌 것 처럼 보였다.
검이나 창부터 스테프 부터 단검, 대형 창, 활, 석궁 등 없는 무기를 찾는 게 힘들 정도로 종류가 많았다.
“무슨 무기가 이렇게 많아?”
“다 할아버지가 쓰시던 거에요. 지금은 주먹으로 싸우시지만, 옛날에는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셨어요.”
무슨 웨폰 마스터도 아니고, 하긴 S급 헌터 중에서는 유일하게 2차 각성을 못한 헌터니. 본인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서 여러 방향으로 도전하지 않았을까.
무투술을 사용하긴 하지만, 싸우는 모습을 보면 상대방의 무기에 대한 이해도 있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단순히 취미로 했다고 하기에는 검술 실력도 나쁘지는 않았으니까.
“당신 같은 생도는 꿈도 못 꿀 수준의 무기에요. 저는 솔직히 당신이 쓰는 것에 반대하지만… 할아버지 말씀이라면 어쩔 수 없죠.”
“오.”
구석에 있는 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묵직한 이 느낌과 함께 검에는 특별한 힘이 있는지 마력이 계속해서 타올랐다.
불이 인첸트 된 검인가. 확실히 상황에 따라서는 유용해 보이네.
“이봐요 당신 지금 듣고 있어요?”
“그건 이그니스라는 정령을 쓰러트린 뒤에 만든 검이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지속해서 화염이 타오르지.”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돌려 보니 명치를 맞고 쓰러졌던 김정호가 보였다.
“음?”
벌써 일어났나. 뭐 힘 조절을 하긴 했지만, 생각보다는 빠르게 일어났네.
“언제 일어나셨어요?”
“방금 일어났어. 여기에 온 걸 보면 뭔가 일이 생긴 모양이지.”
“정호 아저씨도 가시려고요?”
솔직히 얼마나 위험할지 몰라서 저 녀석은 안 가면 좋겠는데.
평소의 모습을 생각하면 따라오겠다고 떼를 쓸 줄 알았는데, 녀석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이 말씀하지 않은 걸 보면,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니겠지.”
의외로 자기 위치를 잘 알고 있는 건가.
그러면 왜 나랑 싸울 때는 그런 거지?
“흠흠… 좋은 승부였다. 이번에는 비록 패배했지만, 다음번에는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그래.”
“뭐?”
“본래 이긴 쪽이 형 아니야?”
“이 녀석이!”
또 달려들 줄 알았는데, 쉽게 포기하는 모습이었다.
“그래. 스승님의 제자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실력인 걸 알고 있지…”
그렇게 쉽게 수긍해 버리면 괜히 나만 나쁜 사람 된 거 같은데.
이녀석 생각보다 사람을 쓰레기로 만드는 재능이 있는 건가.
“전투에서는 절대로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는 게 좋아. 내가 검을 들었다고 해서 근접 전투를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 처럼 말이야.”
“…”
“조급한 것도 고치는 게 좋을 거야. 강한 공격이라 해도 맞지 않으면 소용없으니까.”
보여준 것에 비해서는 너무 쉽게 고개를 숙이고 수긍하는 모습에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스승님은 널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어하셨지. 확실히 직접 싸워보니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겠다.”
김정호는 투지를 불태우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다음번에도 또 도전할 수 있나?”
“뭐. 그 정도는 해줄게.”
“고맙다….”
첫인상에 비해서는 그렇게 이상한 녀석은 아닌 모양이네.
하긴 이상한 놈이면 굳이 제자로 데리고 다니진 않겠지.
“그리고 실력도 없으면서 너무..”
“아..알고 있다! 이 재수 없는 자식!!”
“푸흡..”
고개를 돌려 보니 박혜지가 입을 막고 웃고 있었다.
“왜 웃어?”
“그냥 둘다 귀여워서요. 자자! 정호 아저씨 탐험용 소모품 좀 챙겨 주실 수 있어요?”
“아..알았다. 혜지야.”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는 김정호를 바라보았다.
“그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왜?”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
“아니에요~ 자 그럼 어서 챙겨서 돌아가요!”
“곰돌이 주제에.”
“…? 잠깐 뭐라고 했어요?”
“빨리 챙겨서 가자.”
“잠깐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