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화 〉 파견 임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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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하아..느려서..후우.. 기다린다고 혼났네요.. 하아..”
생각보다 승부욕이 장난이 아니네.
험난한 산길을 꾸역꾸역 올라온 박혜지가 숨을 힘겹게 내쉬면서 미소를 지었다.
적당한 속도로 올라왔으면 이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잘 정돈되어 있던 머리카락들이 땀에 젖어 여기저기 달라붙어 있었다.
“기다린 거 맞긴 해?”
나야 길을 모르니 내가 앞장설 수도 없고, 당연히 박혜지 보다 늦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한번 도약이라도 할까 고민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아서 그냥 참았다.
“후우.. 당연한 것 아닌가요?”
숨이나 다 고르고 말하지. 뭐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곰돌이가 좀 귀여운 느낌은 있어도, 그래도 나름 힘을 숨기고 있다고나 할까.
희고 고운 다리가 쭉 빠진 건 말할 것도 없고, 탄탄한 허벅지나 꽤 볼륨감이 있어 보이는 힙도 볼 수 있어서 나쁘진 않았다.
“이게.. 당신하고 저의 차이에요. 알겠나요?”
“그래. 내가 졌어.”
“뭐죠! 그 기분 나쁜 표정은!”
적당히 박혜지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슨 한옥마을에 온 것처럼 길게 늘어서 있는 담장이 벌써 눈에 들어왔다.
산 꼭대기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는 것도 신기한데, 안개 같은 게 주변을 가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일반적으로 지어진 건물은 아니고, 아카데미의 결계처럼 특수한 힘이 있는 장소겠지.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네가 이겼다니까?”
“지금 그게 인정하는 사람의 태도인가요!”
박혜지에게 적당히 대답해 주고 있자 인기척과 함께 거대한 존재감이 나타났다.
멀리서 부터 선명하게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 그때도 강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한 걸음을 더 나아가서 그런 걸까.
그 전에는 느껴지지 않던 힘이 꽉 차 있는 느낌이었다. 과연 괜히 대한민국에서 최강이라 불리는 게 아닌 걸까.
“급하게 온 모양이구나. 혜지야.”
“하..할아버지.”
최태수의 얼굴을 확인한 박혜지는 서둘러서 옷매무새를 고치기 시작했다. 그런 박혜지를 보며 은근히 눈치를 주는 최태수.
괜히 사람 찔리게 하는 눈빛이었다. 뭐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나름 철판을 깔고 최태수의 눈을 응시했다.
“이 놈! 감히 누구에게 눈을 부라리는 것이냐!”
최태수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 옆에 있던 남자가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다.
“하아.. 또 시작이네.”
박혜지는 그 모습이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으나, 남자는 상관없다는 최태수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쪽은?”
“감히.. 이 몸은 최태수님의 제자! 김정호다!”
최태수의 제자라는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이라도 느끼고 있는 듯한 얼굴이지만, 행동에 비해 그다지 느껴지는 게 없었다.
아니면 힘을 숨기고 있는 고수이려나.
“그래서요?”
최태수가 없었다면 반말로 대답했겠지만, 뭐 최태수의 앞이기도 하고 이쪽이 나이도 많아 보이니 적당히 예의를 차려줬다.
“뭐? 이 건방진 자식이!!”
“정호야. 내가 뭐라고 했지?”
“죄..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최태수님 앞에서.”
“그쯤 해두거라.”
주변을 장악하는 최태수의 목소리에 김정호가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최태수의 반응을 보니 성격이 좋은 녀석은 아닌 모양이다. 제자가 있다고 듣긴 했지만, 제자가 활약한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 듯했다.
한번 들은 인터뷰에서는 그저 취미생활이라고 하는 걸 보면 제대로 된 제자는 아닌 건가.
‘그러면서 나한테 제자가 되라고 한 거지?’
더 하기 싫어지는 느낌인데, 따끔거리는 시선에 고개를 돌려 보니 최태수의 뒤에서 살벌하게 노려보는 김정호가 보였다.
본인이 노려보면 뭐 어떻게 할 건데. 본인 나름대로 기선 제압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인데 전혀 무서운 느낌이 없었다.
정신 나간 녀석들을 얼마나 많이 상대해 봤는데, 저런 놈한테 겁먹을 리가 있나.
“못 본 사이에 또 달라진 거 같구나.”
“영감님도 여전하시네요.”
“다..당신! 할아버님에게 무슨 망발인가요!”
옆에 있던 박혜지까지.
최태수 본인은 괜찮아 보이는데 왜 옆에서 난리인지. 오히려 박혜지를 보고 웃고 있는 게 말릴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냥 내가 적당히 넘어가야지.
“최태수님이 지목 의뢰를 하셨다면서요?”
“그래. 김시우군의 힘이라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해서 말이지.”
“제힘이요?”
내 힘이면, 항마력을 말하는 건가?
항마력이 필요한 일이 뭐가 있지?
“아직 여유가 있으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구나.”
“예.”
안으로 들어가자 드넓은 공간이 펼쳐 졌다.
특수한 결계로 만들어진 공간 같은데, 이런 곳에서 살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일반인에 비하면 이제 좀 풍족해지긴 했지만, 그만큼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좀 질 좋은 소모품 값만 해도 승용차값은 가뿐히 넘어가니. 헌터의 수익이 높은 만큼 유지비도 장난이 없었다.
나야 창조 능력이 있다 보니 소모품에서는 꽤 이득을 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문제가 있다면 포션이다. 내 특제 밀크가 들어가는 탓에 나는 먹기 좀 거북하다 해야 할까.
“혜지야. 배고프지는 않느냐?”
“저는 괜찮아요. 할아버님.”
__꼬르르륵!
대답하기가 무섭게 박혜지의 뱃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배가 많이 고픈가 보구나!”
“아..아니에요! 그리고 당신 뭘 웃는 거죠!!”
무리해서 올라갈 때부터 알아봤다.
헌터의 신체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만큼 움직이면 소모되는 열량이 일반인의 몇 배는 되는 법.
회복할때도 그렇고, 전투 후에도 더 많은 칼로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헌터용 전투 식량의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지.
맛도 맛이지만, 작은 부피로 높은 열량을 동시에 챙기려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서바이벌 시험에서도 애들이 고생을 안 해봐서 못 버틴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소비하는 열량이 높아서 더 힘든 부분도 있었다.
“마침 시간도 그렇게 되었구나. 배고플 만한 시간이지. 허허.”
“그..그만하세요!”
잉어들이 헤엄치는 연못을 지나 사랑방으로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외형과는 다르게 내부는 의외로 현대 가전제품들이 쭉 깔린 게 반전이라면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일까.
일반적인 아파트 거실처럼 보이는 공간에 앉아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최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둘 다 여기서 기다리거라.”
“잠시만요! 저도 도울게요.”
최태수나 김정호 말고는 내부에서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하인 같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 이렇게 넓은 공간을 제자와 단 둘이 지내는 걸까.
“앉아 있으라 하지 않았느냐.”
박혜지는 불편한 얼굴로 자리에 앉고, 김정호가 최태수를 따라 부엌으로 이동했다.
딱히 하인이나 집안일을 할 사람이 없어 보이는데, 요리를 이미 한 상황인지 부엌에서 음식냄새가 풍겨 왔다.
“당신 제가 지켜보겠어요. 한 번 더 무례하게 행동한다면 용서하지 않겠어요.”
“뭐. 영감님이라고 부른 거 말하는 거야?”
“또! 아얏!”
좌식으로 앉아 있다가 급하게 일어나면서 무릎을 테이블에 박은 박혜지가 입술을 깨물었다.
초인의 신체에도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내구성을 가진 테이블에 박아서 그런지 꽤나 아픈 모양이다.
“괜찮냐?”
“하..하나도 안 아파요. 주..주의 하세요!”
서바이벌 평가 중에는 진지한 얼굴에 빈틈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였는데, 의외로 덜렁 되는 성격이네.
눈물이 살짝 고여 있는게 생각보다 귀여워 보였다.
멀리서 볼 때는 부잣집 아가씨에 기품이 넘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알면 알수록 허당같은 느낌이다.
‘그건 그렇고 이건 뭐로 만들어 진 거야?’
테이블을 검지로 두들겨 보자 무언가로 꽉차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최태수 본인이 초인이다 보니, 자신의 몸에 버틸 수 있는 가구로 준비한 건가. 겉보기에는 나무로 만들어 진 것 같은데 안에는 광물로 꽉찬 느낌이다.
살짝 밀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무게가 나가는 게, 웬만한 무기보다 더 튼튼해 보이는 느낌이다.
고통을 참는 박혜지를 구경하고 있자, 김정호가 짜증나 보이는 얼굴로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__탁. 탁.
음식이 담긴 그릇들을 내려놓을 때마다 이쪽을 노려보는데, 뭐 한판 붙고 싶다는 건가.
짙은 갈색 빛을 띠는 장조림부터, 마늘 쫑, 콩나물, 깻잎 조림 같은 한식 위주의 반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집밥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할까. 어머니가 차려주신 집밥은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 하긴 하지만 말이다.
‘뭐 그래도 민지나 다은이가 챙겨 주니까..’
집에 반찬이 없으면 민지가 찾아와서 이것저것 만들어 주기도 하고, 민지 집에서 자면 따끈한 집밥에 민지도 먹고 나쁘진 않지.
민지를 생각하고 있으니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닭볶음탕과 소 불고기, 그리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까지 차려져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건 누가 만들었으려나.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더니 손에 있는 물기를 닦고 있는 최태수가 등장했다.
“그럼 먹자꾸나.”
“…”
“왜 그런 눈으로 보느냐?”
“그냥 누가 만든 것인지 궁금해서요.”
“내가 만들었다만.”
“하..할아버지가요?”
내가 의외라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 최태수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무슨 맨주먹으로 머리통을 부수는 사람이 앞치마를 입고 칼질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려 해도 전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김정뭐시기는 옆에서 뭐하는 거지.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김정호를 바라보자 괜히 헛기침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없어서 말이다. 자연스럽게 늘게 되더구나.”
“주변에 없으면…”
내가 말없이 박혜지를 바라보자 최태수가 껄껄거렸다.
“왜..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죠? 저도 요리 잘해요!”
“정말이냐? 왜 내가 아는 것과 다른 것 같지?”
“할아버지!!”
무식하게 주먹만 휘두르는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런 인간적인 모습도 있구나.
음식의 맛은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반찬에서 좀 익숙한 맛이 나는 것만 빼면 말이다.
“반찬은.. 손이 많이 가서 말이다. 허허..”
반찬은 가게에서 사는 모양이네. 뭐 그게 편하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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