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 파견 임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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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었네요. 아직 대답을 못 들은 것 같은데.”
박혜지는 생각보다 더 집요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따라다닐 줄은 몰랐는데.
“좀 더 고민해 본다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나요? 저는 확실한 대답이 듣고 싶어요. 애초에 왜 고민하는 거죠?”
그야, 네 반응이 너무 좋아서?
사실 그런 이유도 있긴 하지만, 민지나 서아도 사신 길드에서 지목이 들어왔다.
서아는 뭐 당연히 지목이 들어올 거라 생각했지만, 민지까지 지목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
다은이의 경우는 할아버지와 관련이 있는 길드에서, 정수아의 경우는 힐러들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길드에서 지목이 들어왔지.
민지랑 서아랑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진 않아서 고민하고 있었다.
‘뭐 행동을 자유롭게 하진 못하겠지만.. 그건 박혜지 쪽도 똑같고.’
사신길드 쪽 의뢰를 수행하면 눈치를 꽤 살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
그때는 몰랐지만, 이지아 누님도 사신길드에서 꽤나 직책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서아보고 아가씨라고 부르고 있으니, 의뢰 중에 실수라도 하면 뭔가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이봐요. 듣고 있어요?”
“시우..?”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무표정한 얼굴의 서아가 이쪽을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윤서아? 당신이 여긴 무슨 일이죠?”
“시우는.. 여기서 뭐 해?”
박혜지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서아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총총 거리는 가벼운 발걸음과 대비되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서는 내 품에 안겼다.
“왜.. 여기 있어?”
평상시라면 물품 창고 같은 곳에 가서 밀회를 할 시간이었나.
내가 보이지 않아서 서아가 찾으러 온 모양이다. 박혜지만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으흠…?”
“누가 좀 귀찮게 해서 말이야.”
“누구야..?”
“잠깐 그 반응은 뭐죠?”
누군지 모르겠다는 서아의 표정에 박혜지가 충격을 받은 듯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당신이 절 모르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직접 대련도 했는데!”
“누군지.. 모르겠어..”
“무..무슨..”
충격을 강하게 받은 듯한 박혜지의 얼굴, 서아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날 끌고 가기 시작했다.
평소의 박혜지라면 분명 따라올 텐데, 서아의 반응에 데미지가 큰 듯 거기에 가만히 서 있었다.
“왜.. 박혜지랑 같이 있어?”
알면서 모른척한 건가. 하긴 모를 리가 없었나.
자신의 시간이 방해받아서 조금 화난 느낌이 있었다.
이럴때는 대답을 잘해야지.
“이번에 지목 의뢰 때문에 할 이야기가 있어서.”
“지목..의뢰..?”
“최태수님한테 지목 의뢰가 들어 와서 말이야.”
“어떻게.. 할 거야.?”
고양이가 올려다보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는 서아.
“나랑.. 같이 할거지..?”
서아가 이렇게 나올 줄 생각 못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파괴력이 있었다.
적당히 거절하다 최태수의 의뢰를 수락할 생각이었던 나는 괜히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시우야..?”
“그게..”
햄스터가 먹을 걸 잔뜩 넣은 것 처럼 서아의 볼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최태수님이 알려주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사신 길드에서도.. 해줄 수 있어..”
서아와 눈 맞춤을 하려 해도 서아가 고개를 휙 하고 돌려 버렸다.
계속 이어지는 서아와의 눈싸움. 당연히 같이 수행할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숫자가 많아진 만큼, 미리 풀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몰랐다.
적당히 서아가 좋아하는 걸 생각하다 보니, 데이트를 할 때마다 좋아했던 것 같다.
“그게… 미안. 대신에 의뢰 끝나고 데이트할까?”
“데이트..?”
“응. 서아 가고 싶은 곳 있어?”
“있어..”
시선을 피하던 서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표정이 없어서 그렇지 귀여운 외모 때문인지,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웠다.
“그럼 우리 서아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
“응..”
기분이 풀렸는지 아까보다는 분위기가 좋아졌다.
뭐 서아쪽도 어떻게든 해결된 느낌이라서 다행이네.
적당히 자리를 피하려는 순간, 조그마한 손이 내 옷깃을 잡았다.
“서아야?”
“아직.. 쉬는 시간 안 끝났어..”
그렇게 말하고는 날 끌어당겼다. 적극적으로 품에 파고드는 서아.
“서아야?”
“…”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옷깃을 잡아당겼다.
촉촉하게 젖어 있는 서아의 눈동자, 키스라도 해달라는 건가.
__추웁..춥..
처음 어색했던 느낌은 전혀 찾을 수 없이, 익숙해진 서아의 움직임.
서늘하면서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서아의 살결.
그래, 쉬는 시간은 아직 남았으니까.
*
이번 서바이벌 평가의 등수가 결정되었다. 1위부터 3위까지는 모두 인정할만한 이름이었으나.
4위에 이름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한 아카데미의 대표 커뮤니티인 에브리 위크에서도 똑같았다.
[ 김시우가 4위라는데 맞는 거임? ]
서바이벌 평가에서 4위에 이름을 올린 김시우.
[ 이거 뭐 잘못 된거 아님? ]
[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속도임? 최태수님도 이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진 못했을 거 같은데. ]
[ 주작 아님? 김태환 능력 각성했다고 아카데미에서 대놓고 밀어주는 것 같은데. ]
[ 강해진 건 인정하는데 솔직히 저건 선 넘었지. ]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에 반하는 의견들도 한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 내가 50위 안에 드는데, 김시우한테 진짜 손도 못 쓰고 당했음;; 그냥 같은 생도가 아니라 괴물임 ]
ㄴ [ 인증이 없으면 뭐다? ]
ㄴ [ 나도 설원지대 스타트 했는데, 탈락하고 보니까 김시우더라 ㅅㅂ ]
ㄴ [ 너도임? ㅅㅂ ㅋㅋㅋㅋ 나도 설원지대에서 개꿀 빨라다 당함 ]
ㄴ [ 단체로 주작 하냐? ]
직접 당한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들이 올라오면서 김시우에 대한 평가가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 그래서 어쩌란 거임. 솔직히 얼굴 재수 없게 생겨서 싫음. ]
ㄴ [ 시우보다 못생겨서 저러는 듯 ]
ㄴ [ ㅇㅈ ㅋㅋㅋㅋㅋ ]
ㄴ [ 존나 게이 같이 생겼는데 뭐가 잘생겼다는 거? ]
ㄴ [ 솔직히 그건 아닌 듯 ;; ]
아직 4위로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 더는 무시하는 시선은 없어진 게 체감이 된다 해야 할까.
거기다 보상도 받았고 말이다.
[ 시나리오 퀘스트 ]
[ 서바이벌 평가! ]
[ 최종 순위 : 4위 ]
[ 다른 이들은 꿈도 꿀 수 없는 등수입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높은 등수! 하지만 조금만 더 잘했다면… 조금은 아쉬운 등수! ]
[ 보상 : 운명 포인트 + 2000 ]
‘보기만 해도 든든하네.’
마지막에 나도 데스 나이트 좀 쓸어 담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뭐 이걸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여유도 좀 많이 생긴 거 같은데, 뽑기나 좀 할까.
“뭘 그렇게 웃으면서 보고 있는 거죠?”
“아니 그냥 재밌는 게 있어서.”
나는 상태창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장소인지 인적이 드물어 보이는 산길 중간.
“이제부터 올라가야 하니. 잘 따라오도록 하세요. 설마 이정도로 힘들다고 하진 않겠죠?”
고개를 들어 올리자 아득하게 높아 보이는 산의 높이. 그 영감은 무슨 신선도 아니고 이런 장소에서 사는 건지.
중간도 오지 않아서 끊어진 길 너머로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이 보였다.
사람도 오지 않는지, 산길이라 부를만한 길도 없어 보이는 장소.
그러니까 저번에도 늦게 도착했지.
“혼자 무슨 생각 하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무슨 독심술이라도 쓰는 건지,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박혜지를 무시했다.
오늘은 파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박혜지를 따라왔다.
빨리 끝나는 임무면 쉴 수 있을 텐데. 사람마다 임무 내용이 다르다 보니 기간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임무를 끝내면 파견 임무 기간 동안은 휴일이나 다름없었다.
성적에 반영되다 보니 쉬운 임무를 대충 끝내고 쉴 놈들은 없겠지만, 뭐 그런 놈들도 있으려나.
“길 잃어 버리지 말고 잘 따라오세요!”
“누가 어린애인 줄 알아?”
나는 앞장서서 올라가는 박혜지를 따라 산길을 타기 시작했다.
울퉁불퉁한 바닥을 그렇다 쳐도,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는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부분은 일반인들은 시도도 못할 만큼 험난한 길이었다.
“더 속도를 올려도 상관없겠죠? 잘 따라오세요!”
혼자 왜 그렇게 승부욕에 타오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나도 질 생각은 없지.
묘기라도 부리는 듯, 발 디딜 곳 없는 곳을 잘도 밟으며 도약하는 박혜지를 따라 산을 타기 시작했다.
꽤 난도가 있는 길인데, 능숙하게 오르는 걸 보면 괜히 3등은 아닌가.
‘그건 그렇고, 본인은 모르고 있으려나..’
이런 산길을 오르는데 왜 치마를 입고 온 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뛰어다니면 자연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는데.
귀여운 곰돌이가 펄럭거리는 치마 밑에서 자꾸만 인사를 건넸다.
서아도 저런 건 안 입는데, 취향이 참 특이하네.
“후우.. 후우.. 더 빠르게 해도 상관없죠?”
아무리 초인이라 해도, 이런 경사에서 그렇게 뛰어다니면 지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실수하면 떨어질 수 있는 장소들이 많다 보니 집중도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조금 호흡이 거칠어 보이는 박혜지.
나도 힘든 건 아니지만, 살짝 지친 느낌은 있었다.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설마 힘들다거나 그런건 아니죠?”
뭔가 자신이 이겼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는 박혜지.
“하나도 안 힘든데.”
“하. 언제까지 그런 얼굴일지 기대하겠어요!”
그렇게 외치며 튀어 오르는 박혜지.
‘곰돌이야 안녕. 아무래도 우리 계속 얼굴을 보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