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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세이브로 따먹다-222화 (222/235)

〈 222화 〉 파견 임무 (2)

* * *

*

한번은 거절하는 게 국룰이라고 하던가, 그런데 이렇게 반응이 클 줄 몰랐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보는 박혜지, 평소의 모습과 달라서 그런지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 제대로 이해 하신 게 맞나요?"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당신 설마 최태수 할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뭐 대한 아카데미에 다니는데 최태수의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어중간한 인물이면 모를까, 최상위 티어를 헌터 지망생이 모르는 건 이상한 이야기지.

'좀 무식한 영감이긴 하지.'

영감과 직접 대련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새파랗게 어린 후배를 상대로 자신이 좀 밀린다고 실력 발휘한 인간이 아닌가.

힘 조절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애들을 다 기절시킬 정도로 주먹을 휘둘렀지.

뭐 덕분에 좋은 연습을 할 수 있긴 했지만, 이것도 다 추억이지.

'흠, 설마 과거로 시간을 돌리면 프로토도 부활하나?'

[ "시스템에 속해 있으니..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

생각하기도 싫은 일인데, 그럼 그날 이전으로는 로드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겠네.

"이봐요. 지금 제 말 듣고 있어요?"

"아, 아니 그냥 생각 좀 했을 뿐이야. 그래 잘 알지."

"그러면 지금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라는 걸 모르는 건가요? 당신이 아무리 대단해도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직접 듣는 건..."

"대련 수업도 진행해봤는데."

"할아버지와 대련을 진행했다고요?!"

내 말을 들은 박혜지가 놀란 표정으로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언제죠? 언제 그런 거죠?"

"진정 좀 해봐. 그냥 A반에 오셔서 대련 수업 한번 진행한 게다니까."

박혜지에게 있어서 최태수의 존재감이 꽤 커다란 모양이다.

이정도 리엑션이 나올 건 몰랐는데.

뭐 교관들 사이에서는 묵인하기로 했으니, 다른 반인 박혜지가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나.

"저에게 말하지도 않고... 아무튼! 직접 경험했으니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 줄 본인이 잘 알지 않나요?"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는 박혜지.

뭐 평균이라 할 수 있는 크기라 작은 건 아니지만, 주변에 큰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작아 보이는 느낌이다.

"지금 어딜 보는 거죠?"

"흠.. 아무튼, 나는 관심 없어."

"아니! 왜 관심이 없는 건데요!"

"야. 야.. 진정 좀 해봐."

그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면 주변에서 쳐다보잖아.

계속 시끄럽게 할 것 같아서 일단은 사람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잠깐! 어디 가는 거죠?"

"사람 없는 곳에서 대화 좀 해."

"흠... 뭐 진지하게 생각해볼 생각이 있다는 거겠죠. 좋아요 그럼 가요."

순순히 뒤를 따라오는 박혜지, 박혜지와 내가 같이 있는 건 좀 특별한 그림이라 그런지 주변에서 시선이 쏟아졌다.

__저 둘이 왜 같이 있는 거야?

__들었어? 이번에 테스트에서 김시우가 4위라던데.

__그게 말이 되는 거야?

중간에 사진을 찍는 놈들이 좀 걸리긴 했지만, 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나도 이제 옛날 김시우가 아니란 말씀.

최근에는 몸값이 좀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사건이 겹치면서 꽤 인정받는 분위기고 말이다.

'싫어하는 놈들은 계속 싫어 하는 것 같긴 하지만, 뭐 질투하는 거겠지.'

주변에 여신들이 잔뜩 있는데, 뭐 질투할 수도 있지.

그건 그렇고, 처음 봤을 때 박혜지도 서아랑 비슷한 타입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감정이 풍부했다.

최태수의 손녀 딸이라는 점에 강한 자부심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뭐 나로서는 수락하는 게 맞겠지.'

나에게 전혀 마이너스 될 게 없는 의뢰라 할 수 있었다.

영감의 실력이야, 직접 경험해 봤으니 두말하면 잔소리고, 박혜지와 친해질 기회였다.

최근에 인터뷰도 그렇고, 그 영감이 내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의 손녀를 이용하려는 생각처럼 보인다. 같이 하는 걸 강조하는 걸 보면, 날 데려오라고 했겠지.

박혜지가 왜 그렇게 최태수에게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응을 보면 절대 포기하지 않은 것 같단 말이지.

'그럼 최대한 이용해야지.'

바로 수락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질질 끌면서 매달리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

간절해질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법 아니겠어?

"사신 길드에서도 지목이 들어 와서 말이야."

"사신 길드에서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길드 정도면 최태수와 비빌 수 있긴 하지.

사신길드의 마스터가 최태수와 동급으로 취급되니 말이다.

"하..하지만 거기서 마스터와 직접 임무를 수행하진 않잖아요!"

"그건 그렇긴 하지."

사신 길드에서 지목이 들어오긴 했지만, 신비주의가 강하신 길드 마스터가 직접 움직이지는 않겠지.

얼굴도 공개하시지 않은 분이니 말이다.

직접 본 건, 저번에 붉은 설인을 잡을 때 멀리서 지켜본 게 다였다.

안쪽이 보이지 않는 특수한 로브를 착용하고 허공을 날아다니며 거대한 낫을 휘두르는 모습은 꽤 멋지긴 했지.

"혹시 비용이 문제인가요? 저희 길드에서도 심심찮게 준비했어요! 사신 길드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거에요."

"길드?"

박혜지가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나?

"저희 할아버지가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서요. 저희 아버지의 길드 명의를 빌리기로 했어요."

과연, 그런 방식으로 의뢰를 진행하는 건가?

"으흠. 그래서 얼마 정도인데?"

"음.. 이 정도면 될까요?"

박혜지가 제시한 금액은 사신 길드에서 준다고 한 금액보다 훨씬 높았다.

뭐 나름 뛰어난 루키긴 하지만, 그 정도 금액까지 투자할 필요가 있는 건가.

"사신 길드에서도 이 정도는 주지 못할 걸요?"

팔짱을 끼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박혜지, 저 당당해 보이는 표정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열받는 느낌이다.

뭐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자 그러면 하실 거죠?"

"그럼, 생각 좀 해볼께."

"네? 이봐요!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봐요! 김시우! 야!!"

뒤에서 들려오는 박혜지의 외침을 무시하고 반으로 향했다.

*

"흐흥~ 흐흥~"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콧노래를 부르는 여성은 음침해 보이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을 가려주고 있는 거대한 로브는, 그녀의 몸매는 가리지 못했다.

터질것 같은 거대한 가슴을 흔들던 여성은 어두워 보이는 방안에 조용히 앉아 있는 여자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그러고 있어? 이렇게 시간이 지났으면 뻔한 거 아니겠어?"

앉아 있던 여성 옆에 있던 검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가 검을 뽑아들어 여성의 목 밑에 칼을 겨누었다.

"워~ 워~ 네 인형 좀 치워줄래? 나 너무 무서워요~"

"하아. 지금 장난 칠 기분이야?"

몸매가 좋은 여성은 겨누어진 칼날을 피해 의자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왜 이렇게 까칠해."

"그럼 안 그러게 생겼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긴 했어도,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은 아니었지? 그러면 실패했다고 생각해야지."

반대편에 있던 여성이 책상을 내려치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닥쳐!!"

"뭐야~ 평소에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너 계속 그러면 내가 죽여버릴 거야!!!"

계속해서 들려오는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꼭두각시 인형의 손잡이를 들고 있는 여성이 멱살을 잡아 올렸다.

"하아. 언제까지 현실도피 할 거야?"

"..."

"헌터 협회에서는 우리를 못 죽여서 안달이고, 교주란 인간은 매번 무리한 작전으로 얼마나 희생 시킨 지 알아?"

"..."

"거기다 이제는 본인이 뒤져 버렸네?"

"그건... 아직 모르는.. 거잖아."

"본인 입으로 말했잖아. 돌아오지 않으면 죽은 걸로 알고 있으라고."

인형사 여인의 손에서 힘이 점점 풀려가자, 반대편에 있던 여인이 역으로 멱살을 잡아 세웠다.

키차이 때문에 몸이 반쯤 들려버렸으나 인형사는 반항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인간처럼 특별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니야. 하지만 그 인간이 준 힘은 남았잖아."

여인이 손짓하자 불안정해 보이는 균열이 생겨났다.

다른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힘.

"그래서...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뭐라도 해야지. 너 말고는 우리를 이끌어줄 인물이 없어. 그 사납던 놈도 최태수에게 머리가 터져 죽어 버렸고."

"..."

"광신도 영감도 사신한테 죽었잖아. 그리고 또 그 남자는 어떻게 죽었더라.."

"그만 말해!!"

인형사는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뭐라도 좀 해봐. 계속 그렇게 앉아서 궁상만 떨지 말고."

"그 새끼도 죽었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

그 전지전능해 보이던 남자도 결국은 죽지 않았던가.

계획했던 일마다 실패하고, 내몰리고 몰리다 결국은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그 남자에게 비하면 자신들을 보잘것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 남자처럼 대단한 인간이 아니니까. 우리에게 맞는 방식으로 움직여야지."

여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며, 인형사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나는 머리가 무식해서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좀 도와줘."

"결국은..."

"응?"

"나보고 다 하라는 거잖아!!"

"하핫, 들켰나?"

여인은 무언가 눈빛이 달라진 걸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지전능한 능력을 보여주던 교주는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았다.

마치 미래의 단편을 보는 듯한 그 인간은 정상인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그래도 능력만큼은 진짜였으니, 자신은 그저 시키는 대로 살았을 뿐.

'결국은 실패했잖아.'

이제 그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인간에게 받은 힘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인간이 말한 일도 그대로 일어나겠지.'

매번 계획이 실패하긴 했지만, 그 인간이 말했던 일은 대부분 그대로 일어났다.

누군가 계속 간섭하고 있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긴 했지만, 간섭이 없을 때는 그대로 일어났으니.

"그날이 오겠지."

"..."

"그날을 위해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움직이면 되는 거야."

변한 건 없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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