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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세이브로 따먹다-221화 (221/235)

〈 221화 〉 파견 임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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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짙게 드리운 산속, 일정하게 들려오는 물소리에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영기가 가득 차있을 것으로 보이는 산의 꼭대기, 전통스러운 느낌의 한옥채가 있었다.

완전히 전통적인 느낌보다는 조금 현대적인 분위기가 가미되어 있었다.

길게 늘어선 담장 앞에서 한 여인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길쭉 길쭉하고 잘빠진 몸매, 깔끔하게 정돈된 검은 색 머리카락은 빛을 받을 때마다 은은한 하늘빛이 살짝 보였다.

동작 하나하나가 기품이 있어 보이는 여인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몸을 살짝 떨었다.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면, 분명 제가 1등을 했을 거에요.’

동화속에서 나올 법한 여인의 외모는 주변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더해져 더 부각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주변에서 인기척이 들려오자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허허, 벌써 도착했구나 혜지야.”

“할아버지.”

박혜지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최태수를 보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지는 않느냐?”

산 꼭대기에 있는 최태수의 주거지, 이 주변으로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만큼 제대로 된 길도 없었다.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는 길도 곳곳에 널려 있었으니, 평범한 사람은 접근하기도 힘든 공간이었다.

“그다지 힘든 점은 없었어요.”

박혜지 역시 대한 아카데미에서 3위 권 안에 들어가는 헌터 답게, 이 정도 산길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방금 도착했음에도 흐트러지는 모습은 전혀 없이 평탄해 보였으니 말이다.

“그래 서바이벌 평가가 있었다고 했었니?”

최태수는 자신의 손녀를 보며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손에 당했던 이들은 그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골통 분쇄자라는 무시무시한 이명이 붙을 정도로 적에게는 그 어떤 자비도 없는 그였으나.

가족에게는 평범한 할아버지 였다.

“네. 할아버지. 사고가 있어서 제대로 된 시험은 아니었지만요.”

교주의 습격으로 시험이 급하게 마무리되지만 않았다면 자신이 1등을 할 수 있을 텐데.

그것도 하필 3등으로 마무리하지 않았던가.

무슨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매번 이런 식으로 3등을 하게 되다니.

그녀는 너무 억울했다.

“그래. 3등이라고 했었던가?”

“1등.. 1등도 할 수 있었어요! 그때 그렇게 시험이 종료되지 않았다면, 분명히 제가 1등을 했을 거에요!”

그동안 쌓인 게 많아서일까. 그녀는 그동안의 서러움이 많았는지 3등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3등도 아주 높은 등수지 않니. 그정도면 어딜 가도 인정받을 수 있거늘. 허허.”

최태수는 그런 모습이 귀여운지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런 모습을 본 박혜지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밖은 쌀쌀하니.”

주변에는 특별한 기운이 있는지 다른 공간에 비해 유달리 서늘한 느낌이 강했다.

“… 네 할아버지.”

박혜지는 최태수를 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지 않는 경계를 지나간 느낌과 함께 외부에서 볼 때보다 더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구석지에 보이는 장독대와 여러 채의 건물들, 그리고 계속해서 물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물레방아 옆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내부로 들어가자 겉으로 보이는 외형과는 다르게 현대 가전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앉아서 기다리거라. 내 차라도 내올 테니.”

“할아버지 그건 제가 할 테니 앉아 계세요!”

“어허. 너는 가만히 있어라. 손님 대접을 그렇게 했다가는 이 할애비가 욕을 먹는단다.”

“그래도…”

최태수의 단호한 표정에 거실에 앉아 기다리자, 고급스러워 보이는 찻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있는 최태수가 보였다.

“찻잎은 적정한 온도에서 우릴 때가 가장 맛이 좋더구나.”

굵고 흉터가 많은 최태수의 손위에 찻주전자가 올라가는 순간, 마력과 함께 뜨거운 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싱그러운 향을 가진 캐모마일 차. 최태수는 가볍게 먹을 주전부리와 함께 찻잔에 캐모마일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심신에 안정을 주는 캐모마일 차.

최태수는 오랜만에 만난 손녀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최근 근황에 대해서 들었다.

서바이벌 평가에서 있던 일은 이미 보고를 받았으나,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건 또 다르지 않겠는 가.

“그렇게 끝나지만 않았다면, 제가 1등을 했을 거에요. 정수아도 이다은도 이제는 저한테 안될거에요.”

“그거야 해봐야 아는 법이지.”

“할아버지는 누구 편이에요!”

“허허.”

자신감 넘치고 당당해 보이는 박혜지의 목소리에 최태수는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의 손녀 딸, 박혜지에게 꼬리표처럼 붙는 수식어 때문일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분명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 거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그렇다 보니 항상 최고의 자리에 어느 정도 집착을 보이는 듯했다.

자신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게 보이지만, 일부러 더 엄하게 대했던 점도 있었다.

헌터가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지 알기에, 여린 손녀가 포기하길 바랐으나.

오히려 그게 역효과를 낳았다. 거기다. 재능도 뛰어나니 말릴 방법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3등을 하고 있는 게 부끄러운 듯 말하긴 했으나, 대한 아카데미의 3등은 절대로 만만하게 볼 수 있는 등수가 아니었다.

일반인 중에서 각성하는 사람들도 극소수인데, 그중에서도 잠재력이 기준치 이상만 모아 둔 곳이 대한 아카데미였다.

거기다 이번 세대는 압도적으로 뛰어난 인재가 많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그런 아카데미에서 상태에서 3등?

대기업 헌터들도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의미였다.

경험만 부족하지, 오히려 전혀 밀릴 게 없었다.

“참, 시험 중에 김시우를 만났어요.”

“김시우 말이냐?”

김시우의 이름이 나오자 최태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좀 더 자세히 좀 들려주려무나.”

최태수는 자신의 손녀를 통해 김시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당당하고 솔직한 그녀 답게,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강민지와 싸운 뒤 김시우를 만나. 교전했던 이야기.

“벌써 고유 영역을 사용했단 말이냐?”

“그 정도는 저도 할 수 있어요.”

“그건 나도 알고 있단다. 우리 혜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말이다.”

“…제가 온전한 상태였다면 그렇게 밀리지는 않았을 거에요. 검술 실력은 확실히 인정할 수 있지만…”

박혜지의 입에서 인정한다는 말이 나오자 최태수는 속으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고는 생각하긴 했지만, 자신의 손녀가 저렇게 쉽게 인정할 줄이야.

어린 시절부터 주위에 괴물들이 많다 보니 이런 부분에서는 저런 부분에서는 눈이 높은 그녀이지 않은가.

‘그때보다 더 성장한 건가.’

들려 오는 소식통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모양이었다.

그때 그 눈빛을 보고 절대 평범한 놈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일 줄 생각도 하지 못한 그였다.

‘다시 만나보고 싶은데.’

그때 몬스터만 아니었다면 직접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 그였다.

“그래. 그 이상한 놈 때문에 시험이 끝났다는 거구나.”

보고에 의하면 김시우가 제압했다고 했는데, 여전히 그 놈의 정체는 파악할 수 없었다.

죽었다고 하니,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역시 찝찝한 느낌일까.

“이야기해줘서 고맙구나. 하지만 역시나 말하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온 것 같은데?”

최태수의 날카로운 지적에 박혜지는 몸을 살짝 떨었다. 그녀는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 정말이지 할아버지에게는 못 당하겠네요. 네.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다시 말하지만,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은 곤란하단다.”

“그런 게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그렇구나.”

“할아버지도 곧 아카데미에서 파견 임무를 진행하시는 걸 알고 계시나요?”

파견 임무, 아카데미 내부가 아닌 외부로 나가 임무를 수행하는 일종의 체험 학습이라 할 수 있었다.

뛰어난 극소수의 생도의 경우는 대형길드에서 영입을 목적으로 지목 의뢰를 넣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극소수에 해당하고 대부분은 직접 파견지를 선택해 임무를 수행한다.

임무라고는 해도 아직은 생도들이기 때문에 보호자가 필요한 법.

일반 적으로는 파견지의 헌터들과 보조 역할로 동행해서 임무를 수행한다.

비록 보조긴 해도, 길드 단위로 직접 사냥을 해볼 수 있기에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건 물론, 의뢰 형식이기에 실력만 좋다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현역 헌터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좋은 기회였다.

“그래, 벌써 날짜가 그렇게 되었구나.”

“저에게 지목 의뢰를 넣어 주세요.”

의뢰를 넣는 건 길드 단위로 진행한다. 생도들을 보호해야 하다 보니 어중간한 곳은 사고가 터질 확률이 높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길드가 없는 최태수가 의뢰를 넣는 건 명칙상으로는 안되는 일이지만, 방법을 찾는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제자로 받아 줄 수 없다 하니, 다른 방법을 찾는 모양이었다. 임무를 진행하려면 동행 할 수 밖에 없었고, 당연히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겠지.

‘그래도 그럴 수는 없지.’

말이 나올 수도 있고, 손녀에게 더 부담되는 일일 수 도 있었다.

“내 대답은 알겠지?”

“할아버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박혜지의 눈빛에 최태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저 포기하지 않는 성격 덕분에 지금의 박혜지가 나오지 않았는가.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하는 순간, 무언가가 머릿속을 지나갔다.

‘눈 빛을 보니 포기하지 않을 것 같은데 차라리…’

최태수는 박혜지는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나도 조건이 있단다.”

*

“제 말 이해했나요?”

“흠…”

내 앞에는 박혜지가 서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 생각도 못 했는데.

갑자기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자신과 함께 지목 의뢰를 수행하자는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제 할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에요. 당신도 놓치면 후회할 걸요?”

저번에 있었던 뉴스의 임팩트가 강해서 그런지 지목이 들어온 길드의 수가 꽤 되었다.

그중에는 사신 길드도 있었는데, 민지랑 서아도 거기서 한다는 그래서 같이 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최태수?

거기에 박혜지랑 단독으로?

‘어쩌지?’

나는 고민 끝에 대답했다.

“싫어.”

“당연히 수락하는… 잠시만 지금 뭐라고 했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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