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시작과 끝, 끝과 시작 (7)
* * *
*
눈을 감고 내 몸에 집중했다.
텅비어 있다고 생각한 몸 내부 깊숙한 곳, 티끌 같은 마력이 느껴졌다.
그런가.
마나 심법은 기본적으로 외부에 있는 힘을 흡수에 단전에 쌓는 행위였다.
이건 시스템에게 얻은 힘이 아니라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마력 심장부터 사용하던 게 습관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당연하게 없을 거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뭐 그것도 그렇지만, 깊숙이도 있네.’
대부분 심장의 마력을 사용했으니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소량의 마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생각할 시간도 안주는 건가.’
__쉬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거친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거대한 대검이 지나갔다.
무의식 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으면 아마 목이 달아났으리라.
눈을 뜨자 방금 동작에서 연계해서 검을 휘두르는 기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여유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상대방은 기다려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번에는 왼쪽에서 오른쪽.’
__콰가강!!!
몸을 날리자, 땅을 내려친 대검이 무슨 폭탄 터지는 소리를 냈다.
생존 본능인지, 경험에서 나오는 움직임인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여서 다행이었다.
“도망치는 모습이 마치 쥐새끼 같군요!! 언제까지 계속 발버둥칠 생각입니까!!!”
뒤에서 계속해서 정신 공격을 하는 프로토 까지.
아주 대환장 파티 같은 느낌이다.
뭐 다른 인간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버틸만했다.
프로토의 목소리는 무시하면 그만이고,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운 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니까.
초조해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결승점에 도착해 있는 건 내가 될 테니까.
‘이번에는 아니지만.’
…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했습니다. ]
놈의 공격 패턴은 단조롭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모든 움직임이 다음 동작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거기다 내가 조금만 다르게 움직여도,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노련한 검사네. 생긴 건 곰같이 생겼는데 움직임은 더럽게 빠르고 말이야.’
단순히 검을 받아치고 공격한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마력이 부족해.’
아무리 검술 실력이 뛰어나도, 한계를 넘을 수는 없었다.
지금의 마력으로는 그 한계가 명확했다.
큰 거 한 방이 필요했다.
이대로 가다간 그저 무의미한 반복만 지속될 뿐.
“당신은 지치지도 않는 겁니까?”
프로토는 질린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놈을 가볍게 무시했다.
주변에는 마나가 가득했다.
저 마나를 내가 움직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주변의 마나를 움직여본 경험이 있다.
‘고유 영역.’
단지, 지금의 상태로는 꿈도 꾸지 못할 뿐.
아리아가 그랬던가. 끝에 도달한 검사는 주변에 있는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룬다고 했었다.
주변에 있는 마나를 자신 마음대로 사용하기에, 몇날 며칠을 잠도 자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괴물이라고 했지.
자신도 언젠가는 거기에 닿고 싶다고 했었던 것 같다.
‘마나 심법…’
지금의 수준에는 꿈도 못 꿀 경지였지만, 단 한 순간만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지금 상태에서는 시도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__끼기기기긱!!!
몸이 이제 한계인가.
날아오는 검을 보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했습니다. ]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했습니다. ]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했습니다. ]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했습니다. ]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했습니다. ]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했습니다. ]
…
심법을 이용해 외부의 마나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내부에 있는 마력과 충돌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해야 하지만, 지금의 내 몸은 텅 비어 있었다.
불순물이 뒤섞이고, 정돈되지 않은 힘.
이 상태로는 단전에 쌓는 게 불가능했으나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 한 방 날릴 게 필요했을 뿐이니.
‘딱 한방이야.’
자기 마음대로 날뛰는 마나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결국, 내부에 있는 마력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공격은 한번이 끝이라는 의미였다.
외부의 흡수 하며 동시에 외부로 방출했다.
마치 주변에 있는 공간이 조금씩 침식당한 듯, 내 의지에 동조하기 시작한다.
‘고유 영역’
이 상태에서 외부에 있는 마나에게 내 의지를 담는다.
눈 앞에 있는 적을 베는 것.
기존에 했던 것 처럼 마력회로에 마나를 순환시키며 자세를 잡았다.
수 십, 수백 번을 반복한 행위에 망설임은 없었다.
검을 가로로 베는 순간, 주변에 있는 마력이 동조해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다.
“드디어 성공했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
곰같은 기사는 흉흉하게 빛나는 오러 블레이드로 내 공격을 막아 냈다.
“시발.”
…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했습니다. ]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했습니다. ]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했습니다. ]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했습니다. ]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했습니다. ]
…
“이제 포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여기까지 버틴 건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날 절망시키려는 듯 비웃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하는 프로토.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말그대로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으니 말이다.
매번 반복될 때마다 잘려나가는 부위에 느껴지는 고통에 미치지 않은 게 대단하다고 할지 모른다.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갈 때 느껴지는 감각.
매번 목이 달아나고, 상반신과 하반신이 반으로 분리되고 있으니까.
이정도면 충분하다.
이정도면 정말로 애썼다고 할지 모른다.
프로토는 내가 절망할 거라 생각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즐거웠다.
조금만, 더하면 닿을 수 있다.
손 끝에 그 촉감이 남아 있는데, 여기서 포기한다고?
내가 그동안 고유영역을 통해 사용했던 검술은 일종의 모방에 불과했다.
제대로 사용할 재능이 없어서 그저 흉내를 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무리 재능이 없다고 해도 이 정도로 반복하면 무언가 남는 법이다.
‘조금만, 더하면 될 것 같아.’
엘레넨 비전 검술.
나는 할 수 있다.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했습니다. ]
*
“윌리엄님. 뭘 그렇게 보고 계십니까?”
묵직한 저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곰 같은 체구를 가진 남자는 말없이 하늘을 보고 있는 윌리엄에게 다가갔다.
“아 레이널드 인가. 글쎄 오늘따라 달이 아름다워서 보고 있었네.”
“달 말씀이십니까?”
윌리엄은 레이널드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음낮이가 없는 평탄한 대답,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 같이 차가워 보이나.
뒤에서는 자신들의 기사들을 그렇게 챙기는 모습에 미소가 자꾸만 새어 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자네가 내 가문에 들어와 준다면 좋은 텐데 말이야.”
“저는 평민일 뿐입니다.”
레이널드의 실력은 이미 자신의 가문에 있는 기사들을 뛰어넘었다.
그들 역시 레이널드를 인정하고 있었으니, 그가 그의 가문에 들어온다 해도 반발을 없을 거다.
하지만 본인이 싫다는 데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그는 귀족의 직위를 받을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평민으로 남아 있었다.
“레이널드.”
“네 윌리엄님.”
“달이 푸른색이라면 더 좋을 거 같지 않은가?”
“푸른색 말씀이십니까?”
“그래. 우리 제국을 상징하는 깨끗한 푸른색이라면 더 아름다울 텐데. 나는 그게 아쉽다고 생각하네.”
레이널드는 윌리엄의 말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윌리엄은 그런 레이널드의 반응에 뭐가 그리 즐거운지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 이야기 들어본 적 있는가?”
“무슨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과거 제국의 영웅들이 검을 휘두르면 푸른 달이 떠올랐다고 하더군.”
“푸른 달이요?”
“그래. 푸른 달. 청아하게 빛나는 푸른 달이 떠오르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적이 모두 죽었다고 하지.”
“과거에 한번 들어본 이야기 같습니다.”
“유명한 이야기니 자네도 들어본 적 있을 걸세. 지금은 단지 동화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윌리엄은 무언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사실 일거라 믿네.”
이야기에 나온 푸른 달을 직접 볼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윌리엄은 뒷말을 삼키며 달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 검술이 실존한다고 믿고 있네.”
제국의 검술에는 달과 관련된 기술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족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최고의 검술이라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찬란한 역사를 이륙한 것에 비해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런 생각을 말하고 다녔다가는 그의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점점 쇠락해 가는 제국의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
“그렇습니까…”
“그걸 실제로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나?”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 아니겠습니까.”
“하여간 재미없는 인간이야.”
마치 지상으로 달이 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
청아하게 빛나는 달이 너무 아름다워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 하더군.
“만약 그 검을 직접 보게 된다면, 달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하게.”
달을 쳐다본 순간, 이미 베여있을지니.
__ 엘레넨 비전 검술 제 1식.
“그때는 왜 그리 달을 보고 계셨는지 몰랐습니다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__ 청월참 [月?]
레이널드는 하늘에 떠오른 푸른달을 올려다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공간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고 고고하게 빛나고 있는 동그랗고 아름다운 보름달을 말이다.
제국을 대표하는 푸르른 빛에 이미 그는 정신이 팔려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달빛입니다.”
레이널드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대로, 이미 그는 반으로 갈라져 있었으니 말이다.
볼품없이 잘려나간 자신의 몸, 그리고 부러진 대검.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검인데 이렇게 부러질 줄이야.
패배했으나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이제는 쉴 수 있으니.
자신의 앞에 있는 이름 모를 검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보내며.
그는 눈을 감았다.
__쿵.
이지를 잃었던 기사가 쓰러지고.
“하아.. 하아..”
달빛이 사라진 자리 밑에는 푸른 검을 든 검사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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