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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세이브로 따먹다-215화 (215/235)

〈 215화 〉 시작과 끝, 끝과 시작 (6)

* * *

*

교주의 앞에 서 있는 기사는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차원 지원을 가서 만났던 기사와 똑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비슷하지만 다른 힘, 놈은 다른 차원의 존재 같았다.

검은 기사가 다가와 검을 휘둘렀다.

몸을 숙이자, 바람을 일으키며 목 위로 지나가는 거대한 대검.

저런 무거운 검을 저렇게 가볍게 휘두르는 놈의 힘은 지금의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 기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__캉!!

팔이 떨릴 정도로 묵직한 검의 무게가 느껴졌다.

고작 한번 막았을 뿐인데도, 그 충격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본래 이렇게 무거운 검이었나.’

들고 있는 검조차 이전과는 다르게 검이 묵직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느리고, 무거워진 몸 뚱아리.

공격은 꿈에도 꿀 수 없었다. 공격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 시절, 그 무력했던 모습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런 시절이 있었지.’

모두에게 무시당하던 시절, 홀로 각성을 못해 멸시받던 시절처럼 몸에는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

민지가 내 각성을 돕기 위해 같이 들어간 던전에서 스켈레톤 나이트가 나타났을 때, 그날이 기억나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지옥 속에 빠진 것 같은 느낌.

그립다면 그리운 느낌도 들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라 생각했는데.

교주인지 프로토인지 알고 싶지도 않은 놈 때문에 다시 이렇게 될 줄이야.

시스템의 도움 없이는 이렇게 나약한 존재였나.

__콰직!!

분명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피하지 못했는지 왼쪽 팔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남자의 대검을 선명하게 감싸고 있는 저 빛은 아마도 오러겠지.

그나마 너무 깔끔하게 잘려서 단면이 깔끔하다고 해야할까.

이미 시체가 되었으나, 남자의 몸에 남아있는 흉터들이 살아생전 얼마나 많은 전투를 했을지 보여주고 있었다.

깔끔하게 빛나는 저 검과 검술은, 남자의 실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갑작스럽게 무거워진 몸에 적응하지도 못한 나는 저 남자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좆같은 느낌이네.’

오랜만에 느껴보는 무력감에 기분이 더러웠다.

거기에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강렬하게 느껴지는 고통.

그동안 고통 내성의 덕을 얼마나 많이 보고 있었는지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이런걸 역체감이라고 하던가.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기사.

정말로 개 같은 상황인데, 왜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걸까.

그래, 나도 정상은 아닐지 모르겠다.

__카앙!!!

당당하게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힘도 못 쓰고 있었지만, 그때의 나와는 달랐다.

무능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었던 그날보다는 상황이 좋다고 해야할까.

검이 닿는 순간 검날을 비틀자 놈의 검이 살짝 비틀렸다.

빈틈이 생겼다고 생각해 움직였으나, 놈은 노련한 기사였다.

이미 내 움직임을 알고 있다는 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이는 모습.

오히려 내가 속아 버렸다.

__콰직!!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분명 나보다 거대했는데, 갑자기 내 키가 커졌나?

‘그럴 리 없지. 시발…’

다리를 움직이려 했으나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몸이 반으로 갈라졌는데.

너무 고통스러우면 통각이 느껴지지 않는다던데, 그렇기는 개뿔.

시발 단면이 불타는 느낌이다.

놈에게 당당하게 말했는데, 이런 모습이라.

좀 부끄럽긴 하지만,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매번 느껴지는 이 날카로운 통각이 날 자극한다.

내가 죽어가고 있음에도 프로토는 웃고 있지 않았다.

저 새끼도 알고 있겠지.

답도 안 보이는 이 상황에서 내가.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했습니다. ]

“아직도 방해를… 왜 이렇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걸까요?”

[ “…” ]

프로토는 가시감을 느꼈는지 어색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혼란스러운 지 머리를 부여잡는 녀석.

차라리 기억하지 못하면 상관없을 텐데, 단편으로 느껴지는 기억에 머리가 아픈 모양이다.

뭐 내 입장은 달라지는 게 없었다.

저 녀석의 머리가 아프던 말던.

내가 싸워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이틈을 노려 공격해 보려 했으나, 기이한 힘이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몸이 무거워지는 순간.

날 몇 번이고 죽여버린 기사가 나타났다.

사람 키만 한 대검을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숙련된 기사.

분명 죽었음에도, 놈의 눈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하..!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놈은 뒤엉킨 기억을 정리하며 당당하게 외쳤다.

확실히.

저 기사의 실력은 진짜였다.

몸을 날려 뒤로 구르는 순간, 오러가 둘린 묵직한 검이 바닥을 찍었다.

검의 4분의 1정도가 박힐 정도로 강한 힘, 기사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검을 뽑았다.

“반복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거라 생각하십니까? 이참에 꼭두각시가 어떤 기분인지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과연 자신만만할 만 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어서일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모습이 보였다.

“무력하게 계속 발버둥쳐보세요!!!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프로토는 날 비웃으며 손짓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떨고 있어?”

“누..누가 떨고 있다는 겁니까?”

뒤로 구르자 기사의 검이 그 자리에 박혔다.

파편이 튀었는지 뺨에서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불안해하고 있어?”

놈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닥치십시오!! 당장 저놈을 죽이세요!!!”

__쿵.. 쿵..

프로토 역시 정상은 아닐 거다.

‘마지막 힘으로 저 기사를 소환한 거겠지.’

힘이 정상적이었다면 날 묶어 두고, 몇 번이고 죽이면 그만이었다.

그러지 않는 이유가 뭘까?

프로토 역시, 한계라는 의미였다.

자신의 마지막, 모든 걸 걸었으니.

여기서 패배한다면?

‘놈도 끝이겠지.’

그렇기에 저렇게 불안해하는 거겠지.

눈앞의 기사만 죽여버린다면, 놈은 끝이었다.

‘그런 끝인데..’

문제가 있다면, 이 기사가 괴물이라는 점일까.

저 무거운 대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

거기에 본인의 무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지, 절대로 빈틈을 주지 않았다.

압도적인 거리의 이점을 이용할 줄 아는 것과 더불어, 한치의 낭비되는 마력도 없이 유지하고 있는 오러.

괴물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존재였다.

‘그래도.. 최악까지는 아니야.’

시스템에 의해 받은 능력은 사라졌으나,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마력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마력에 의해 강화된 신체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매일 수련을 반복하며 늘렸던 체력도, 매번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전투의 경험도 남아있다.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올리자, 놈의 무자비한 검이 날아들었다.

__끼기기기긱!!!!!

블루스타 블레이드가 놈의 검과 닿는 순간 불길한 소리를 내며 떨기 시작했다.

부러질 것처럼 소리를 내고 있긴 하지만, 그런대로 버티는 모습이었다.

“당신의 무력함을 느껴보십시오!!! 시스템의 힘이 없는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시끄러 겁쟁이 새끼야!!!”

“저는 겁쟁이가 아닙니다!!!”

기사가 무자비하게 대검을 휘둘렀다.

벤다라는 느낌보다는 후려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무기.

__끼기기기긱!!!!!

공격을 살짝 흘렸음에도 남아 있는 충격에 팔이 아려왔다.

시스템의 힘이 사라진 상황에서 스킬에 의한 움직임 보정도, 위험을 알려주는 위험감지도 없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__챙!! 채앵!!! 챙!!!

처음에는 달라진 몸에 적응하지 못했을 뿐, 이제는 점점 몸에 익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에 적응하자 기사의 검술이 지나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검을 어떻게 쥐고 있는 지, 어떤 각도로 휘두르고 그다음 동작이 어떻게 연계 되는지.

무기가 달라지며 조금 다른 점이 보이긴 했으나.

이걸 모르면 사람이 아니지.

‘엘레넨 제국의 검술. 그 쪽 세계의 기사였나?’

어떤 검술인지 알고 상대해서일까. 조금씩 놈의 움직임이 보이는 느낌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이렇게 받아치지도 못했겠지.

‘다음 공격은 왼쪽!’

공격을 예측하고 검날을 비틀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검을 살짝 비틀자, 놈의 공격이 비틀렸다.

아주 잠깐의 빈틈을 노려 검을 찔러 넣었다.

“부족했나.”

회심의 일격에 비해서는 실망스러운 결과.

무방비한 놈에게 흠집은 남았으나, 두꺼운 갑옷을 베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보..보십시오!! 그런 검으로는 아무것도 자를 수 없습니다!!!”

엘레넨 비전 검술.

마나를 사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검술이라 그런지 마력 없이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젠장… 마력만 쓸 수 있었어도.’

아까 공격에 더욱 경계하며 검을 휘두르는 기사, 이제는 빈틈을 만들기 어려워 보였다.

“언제까지고 발버둥쳐 보십시오!!! 당신의 무력함을 깨달으라 이 말입니다!”

마력만 사용할 수 있었다면, 각성하지 못했던 그 시절처럼 마력을 쓸 수 있던 걸 이렇게 갈망하게 될 줄이야.

경험이 풍부한지, 한번 당했던 수는 당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크윽…”

방심한 사이, 역으로 당해 몸이 날아갔다.

어떻게든 방어하긴 했으나, 손목에 충격이 엄청났다.

“하하하하하하!!!!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겁먹어서 기사 뒤에 숨어 있는 새끼가 계속 시끄럽네.

“잠깐…제국의 검..”

단전을 중심으로 사용하는 검술.

눈을 감고 내 몸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여전히 텅 비어버린 마력심장.

서아의 도움으로 통로가 넓은 마력회로, 그리고 아리아의 도움으로 만들었던 단전.

시스템의 힘이 무력화된다면, 다른 세계에서 얻은 힘은 어떻게 될까?

‘마나 심법을 사용한다면…’

눈을 감고 아리아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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