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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세이브로 따먹다-213화 (213/235)

〈 213화 〉 시작과 끝, 끝과 시작 (4)

* * *

*

마력이 닿은 곳을 시작으로, 빛이 사방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반짝 거리는 회로들에 정신을 놓은 순간,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게이트를 넘어 갈 때 처럼 공간을 이동하는 것과 비슷했으나 육체는 가만히 있고, 정신만 이동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투명하게 변해 버린 몸에 한눈 팔린 사이, 특이하게 생긴 공간이 나타났다.

마치 모든 걸 내려다보는 듯한 기이한 기분, 방금까지 있었던 아카데미 시험장의 모습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있었던 전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사방에는 전투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그 중심에는 마치 칼로 도려낸 것 처럼 깔끔하게 비어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때 큐브가 감싼 공간인가?’

하루가 지났으니 이미 시험은 끝난 모양이다. 데스 나이트 들도 교주도 보이지 않고 교관들과 교수들이 주변을 조사하고 있었다.

조사원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서아랑, 민지.. 다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네.’

크게 다친 곳은 없는지 둘 다 무사해 보였다.

내가 목적이라 했으니, 교주도 그 뒤로 바로 자리를 피한 모양이다.

어제의 일을 묻는 교수에게 대답하고 있는 둘의 표정은 어둠 그 자체였다.

침울한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있으니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구석지에서 민아의 얼굴도 보였다.

임시로 쳐진 천막 안에서 모여있는 자료들을 보며 중얼 거리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마법을 쓴 것도 아니고 마력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그냥 차원을 뛰어넘은 것도 아니고…”

분해 보이는 얼굴로 책상을 내려치는 민아.

아카데미 보안 마법진을 보수한 게 민아였으니,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번 사건이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어떻게 들어온 거지? 서방님은…흐윽…”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으로 보이는 민아.

무사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내려다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들 무사한 걸 보니 마음은 놓인다.

[ 시스템 이용 권한이 없습니다. ]

갑작스럽게 알림 음이 떠오르고, 어딘가로 퉁겨져 나간 느낌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본래의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여기는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순간의 연속이라서 그런지 머리가 따라오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방금 본 모습은 뭐였던 걸까.

단순히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한 기분이었다.

“시우야 어딨어? 시우야?”

다은이가 깨어난 모양이다. 눈을 떴는데 내가 보이지 않아서 놀랐는지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일어났어?”

“놀랐잖아… 헤헤”

내 얼굴을 확인하고 빙그레 웃는 모습에 나도 가볍게 다은이를 안아주었다.

“배고프지 않아? 내가 아침 만들어 줄까?”

“잠시만…”

나는 다시 회로 앞으로가 마력을 일으켰다.

아까처럼 빛을 내는 회로, 그러나 결과는 아까와 달랐다.

[ 권한이 없습니다. ]

‘안되는 건가…’

“시우야?”

“아무것도 아니야. 어제 힘을 써서 그런가 배고프다.”

“…”

*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하는 다은이.

다행히 욕실이 있어서 깨끗이 씻은 뒤였다.

화장실에서 잠깐 가볍게 몸을 섞긴 했지만, 아침이 먼저라며 단호하게 끊은 탓에 정말로 가볍게 끝났다.

보송보송해진 모습으로 적당히 리듬을 타며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신혼이라도 된 느낌이 들었다.

민지 집에서 자고 나면 보던 모습이긴 하지만, 그 상대가 다은이라서 그런지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는 건가…?’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맞지만, 이렇게 마음을 놓고 있어도 되는 걸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듯, 어두운 힘이 느껴졌다.

“다은아.”

“응…”

요리를 하던 다은이도 불을 끄고 칼을 내려놓았다.

__쿵!!!

“꺄악!!”

“괜찮아?”

“응. 고마워 시우야. 밥 먹을 시간은 없겠네..”

갑작스럽게 뒤흔들리는 공간, 나는 휘청거리는 다은이를 붙잡았다.

정성스럽게 준비하던 음식재료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은이가 해준 요리를 먹는 건 다음으로 미뤄야겠지.

__쿵!! 쿵!! 쿵!!

무언가에 공격받는 듯 공간이 쉴 틈 없이 흔들거렸다.

주변에 있던 가구들이 우리를 위협했으나 보호막 마법으로 몸을 지킬 수 있었다.

유달리 힘이 강하게 느껴지는 장소로 가자, 거기에는 딱 봐도 불길하게 생긴 균열이 있었다.

“다은아 여기 있어. 내가 먼저 확인… 아.”

따끔 거리는 느낌에 고개를 돌려보자 다은이가 평가시험에서 처럼 살벌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시우가 지켜줘야 할 정도로 약하지 않아.”

아카데미의 차석이라는 걸 잊고 있었네.

“…”

“오히려 내가 시우를 지켜줘야지.”

자신만 믿으라는 것 처럼 팔을 들어 올리고 있는 다은이.

당연하게도 알통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__쿵!! 쿵!! 쿵!!

마음 같아서는 계속 여기에 있고 싶었지만, 계속 버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공간이 박살 나기 전 우리는 균열 너머로 동시에 몸을 던졌다.

*

균열로 들어가는 순간, 기이한 공간이 나타났다.

마치 여러 공간이 뒤섞여 있는 듯,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간들이 서로 엉켜있었다.

푸릇한 나무가 자라나는 푸르른 들판과 함께, 삭막해 보이는 돌로 된 신전, 어딘지 모르게 세월의 풍파를 버티지 못한 건축물 들도 보였다.

거기에 가장 이상한 건 마치 중력을 거스른듯, 거꾸로 지어진 건축물.

뒤섞이지 않을 것 같은 공간들 사이로 연결된 회로들까지.

‘아까 본 회로하고 비슷하게 생겼네.’

겉으로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공간에 다은이와 나는 신경을 곤두 세울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상한 공간 같아. 던전들이 뒤 섞여 있는 공간 같아. 조심해 시우야.”

“다은이만 믿으면 되는 거지?”

“여기서는 장난치면 안 돼!”

마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하듯 말하는 다은이, 가볍게 대화를 나눠서 그런지 조금 긴장이 풀린 느낌이었다.

중앙으로 쭉 이어진 회로, 아마도 회로를 따라 걸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기 밖에는 길이 없어 보이지?”

“응.. 그래도 너무 숨김없이 그대로 있어서 불안해..”

불안한 감을 지울 수는 없지만, 계속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빨리 돌아가야 우리 애들이 마음을 놓을 테니.

시험장에서 사용하던 장비를 챙겨오긴 했지만, 이전처럼 강한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인공던전 안에서만 강화되는 무기인지, 기본 지급되는 무기하고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인벤토리를 열어 보자 고히 모셔두었던 블루 스타 블레이드가 보였다.

다은이가 쓸만한 무기도 있으면 좋을 텐데, 검 종류 밖에는 넣어두지 않은 게 패착이었다.

블루 스타 블레이드를 꺼내 들자. 손에 착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한거야..?”

허공에서 무기를 꺼내 들자 다은이가 눈을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팔을 올리고 이공간 팔찌를 보여줬다.

이미 오늘 아침에 꺼내둔 게 다행이었다.

뭐 다은이에게 들켜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시우야.. 시험장에서 걸렸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어.”

“언제 어디서 사건이 터질지 모르잖아.”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는 다은이의 대답을 들으며 앞으로 나아가던 중, 반가운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 저 녀석들이네.”

여기에 끌려오기 전에 상대했던 데스 나이트들.

갑옷 사이로 검은색 연기 같은 기운을 계속해서 뿜어대는 놈들은 시뻘건 안광을 빛내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좁은 길목에 빈틈없이 포진해 있는 놈들이 서서히 속력을 높여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저정도는 가볍게 처리하지.’

블루 스타 블레이드를 빙글빙글 돌리며 놈들을 상대하려는 순간 뒤에서 조막만 한 손이 내 어깨를 잡았다.

“뒤에 있어. 시우야.”

귀여운 손과는 다르게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

어느세 보랏빛 기운을 뿜어내고 있던 다은이가 앞쪽으로 걸어갔다.

“혹시 동전 같은 거 있어? 금속 물질이면 괜찮은데.”

“금속? 잠시만…”

나는 인벤토리에 있던 쓸모없는 고철 하나를 꺼내 다은이에게 넘겨 주었다.

“위험하니까 뒤에 있어.”

진지한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고철 주변으로 다은이의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처럼 주변에 공기를 감전시키며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것 처럼 고철 덩이 주변에 모여드는 보라색 번개들.

__쿵 쿵 쿵 쿵!

죽음의 기사답게 그런 모습을 보고도 놈들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걸어왔다.

다은이는 손을 들어 올려 강렬한 번개 덩어리의 방향을 조절했다.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는 사이에 사출되는 다은이의 공격.

__파과과과과광!!!!!

엄청난 굉음과 함께 눈앞의 적이 사라져 있었다.

무언가에 의해 잡아 뜯긴 것처럼 상반신이 녹아 있는 데스 나이트들.

죽음의 기사가 그저 깡통으로 변해 버린 모습이었다.

‘저건 반응도 못 하겠는데…’

쏘기 전에 방향을 예측하는 게 아닌 이상, 피하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날아가는 게 아예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역시 아직은 어렵네…”

그런 무시무시한 공격을 하고서 해맑게 웃는 모습에 다은이는 다은이였다.

__짝. 짝. 짝. 짝.

갑자기 길의 끝에서 들려오는 무미건조한 박수소리.

나는 마력을 끌어 올려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대단하네요.”

무미건조한 목소리, 고개를 돌려 보니 우리를 여기로 끌어 드린 장본인인 교주가 서 있었다.

“그녀가 끝까지 당신을 보호하려 해서 힘들었습니다. 자신의 아지트에 숨겨두다니.”

그 엄청난 위력을 확인했음에도 교주는 전혀 겁먹지 않은 모습이었다.

“위치가 변하지 않았다면 찾지 못할 뻔했네요. 역시 이런 점은 한결같네요. 하하하.”

“그녀?”

놈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내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마키나라고 하면 알아들으실까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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