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 시작과 끝, 끝과 시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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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밀려드는 데스 나이트들의 행진.
그들을 향해 날린 검기가 맹렬한 기움을 뿜어내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항마의 힘이 담겨 있는 검기는 특유의 푸른 빛을 내며 앞에 있는 건 모두 찢어버릴 기세였다.
콰과과광!!!!
폭발을 일으키며 가장 최전방에 있던 놈과 충돌했다.
입고 있던 갑옷은 종잇조각 처럼 찢겨 나가며, 불길 해 보이는 마기 역시 항마의 힘에 잡혀먹히기 시작했다.
놈들에게 치명적인지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기사들.
고작 한번 검기를 날렸을 뿐인데, 수십 명의 기사가 쓰러지면서 공간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놈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 뒤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기사가 밀려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보이지는 않았으나 왠지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용서.. 안 할 거야..”
“다 들어와 봐!!”
각자 애들이 소리치며 능력을 발동했다.
서아를 중심으로 생겨난 무수히 많은 얼음 창들이 마치 우박이 떨어지는 것 마냥 쏘아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우박보다 그 크기가 더 큰 만큼 위력도 어마어마 했다.
창이 꽂힐 때마다 머리통이 날아가거나 온몸이 박살 나는 기사들도 있었다.
“시우야 뒤로 와줄 수 있어?”
“아.. 알았어.”
다은이의 뒤로 이동하자, 다은이도 서아처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때처럼 강렬한 보랏빛 번개가 기사들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번 벼락이 떨어질 때마다 굉음과 함께 기사들이 박살 났다.
수석과 차석이 만들어낸 학살의 현장에 다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네요.”
그 옆에 있던 박혜지가 칼을 뽑아 이전처럼 발도 하기 시작했다.
처음 내게 날렸던 기술처럼, 반복적으로 검을 뽑고, 다시 납도 했다.
그때와는 다르게 큐브로 강화된 탓인지 더 무시무시한 기세로 생겨난 해일이 놈들을 향해 날아갔다.
조금만 높아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헤일, 사람 키 높이는 가볍게 넘길 정도로 거대했으니 그 위력을 말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장비가 달라져서인지, 아니면 더 여유로워서인지 내가 막았을 때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 보였다.
“크르르르!!”
“키르!! 르르르!!!”
박혜지의 해일이 놈들을 덮치자 칼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놈들이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많았던 기사들이 서로 뒤엉키며 휩쓸려 가는 모습은 재난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주었다.
시원하리 만큼 무능력하게 끌려가는 기사들.
아무것도 못 하는 모습이 무능해 보일 정도였다.
“흠. 역시 별거 아니네요.”
자신 만만해 보이는 박혜지.
그 위력만큼, 자신의 힘을 모두 쏟아 부었는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 유리한 상황이었으나, 불안한 감정은 사라지질 않았다.
“시우야. 왜 이렇게 불안해해?”
거대한 해일이 자신을 덮치고 있음에도 교주는 침착했다.
‘설마 그때처럼…’
그때 민아가 당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여러 교관과 교수가 달려들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모습.
그때도 교주는 저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예상이 틀리길 빌었으나, 그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검은 구체에서 나온 사슬이 박혜지의 공격을 묶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이상해..”
마치 시간이 멈춘것 처럼 그대로 정지해 버린 모습에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때도 그랬다.
분명히 그때에는 되돌렸던 것 같은데.
“설마..?”
교주가 손을 뻗자, 해일의 방향이 변했다.
“뭐..뭐하는 거야!! 저런 공격을 하면 어떻게 해!!”
“이..이건 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내가.. 막을게..”
당황한 박혜지 앞에 서아가 걸어나갔다.
거리가 있음에도 느껴지는 대량의 마력 흐름.
차가운 공기가 주변을 내려앉고, 우리의 앞에는 거대한 얼음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간이 개미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해일이 서아가 만들어낸 얼음벽과 격돌했다.
콰지직!!! 콰직!!!
물이 조금 튀긴 했으나 어떻게든 방어에 성공한 모습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다들 지쳐 보인다는 점일까.
위력 만큼은 확실했다. 그 많던 기사들이 3분의 1 정도 수준으로 줄어들어 있었으니까.
“…”
하지만, 방금 본 교주의 능력에 다들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나서야 해.’
나는 기사들이 대열을 고치기 전에 교주를 향해 달려갔다.
“시우야!!!”
“김시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교주만을 바라보고 달렸다.
파앙!!!
마력을 폭발시키자 엄청난 속도로 몸이 날아갔다.
파아앙!!!!!
거리가 꽤 있었으나, 좁히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모든 신경을 교주에게 집중했으니까.
[ 엘레넨 비전 검술에 의해 움직임이 보정됩니다. ]
기사들이 앞을 막았으나, 조금의 시간도 벌 수 없었다.
잠깐의 시간도 아까워 몸을 숙이고 앞으로 돌진했다.
아슬아슬 하게 지나가는 검들을 피해 드디어 놈에게 닿았다.
절대로 우리 애들을 건드리게 할 수는 없었다.
놈의 주변으로 가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점점 발이 묶이는 기분이 들었다.
[ 고유 영역 : 활성화 ]
주변에 항마의 힘이 퍼지자 점차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코앞에 있는 교주를 찢어발기기 위해 검으로 내려쳤다.
“죽어!!! 이 개새끼야!!!!”
쾅!!!
콰광!!!
놈의 앞에 생겨난 힘에 항마의 힘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검은 사슬이 몸을 묶으려 했으나, 항마의 불꽃이 사슬과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화르르르륵!!!!!
맹렬하게 타오르는 항마의 불꽃, 나는 사슬을 밀어내며 놈을 죽이기 위해 검으로 계속해서 내려쳤다.
“역시 성가신 힘입니다.”
쾅!!
쾅!!!!
그럴때마다 이상한 투명 벽에 검이 퉁겨져 나왔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무적이라 생각했던 교주의 힘에 저항하는 게 가능했다.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는 투명벽을 확인하며 더 거세게 내려쳤다.
조금만 더 공격하면 이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뭐 목적은 달성했네요.”
“뭐라… 시발!”
[ 위험이 감지 되었습니다. ]
[“지… 시우님!! 당장 거기서…” ]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뒤로 물러났다.
이질적인 노이즈에 들려오지 않는 마키나의 목소리.
“처음부터 제 목적은 당신이었으니까요.”
놈을 중심으로 검은 색 투명한 큐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빠져나가려 몸을 움직였으나, 이미 범위 안쪽에 있었다.
“시우야!!”
거기다 언제 따라온 것인지 다은이 까지.
고개를 들어 보니 다른 애들도 여기로 달려오고 있었으나, 이미 늦은 것 같았다.
[ “제가 안전을…” ]
‘마키나?’
다시 마키나의 목소리가 끊어지고, 시야가 암전되었다.
…
__빠밤!!
1위 정수아
2위 이다은
3위 박혜지
4위 김시우
...
김시우와 이다은이 사라지고, 모두가 침묵한 가운데 순위표만 요란한 소리를 낼 뿐이었다.
*
“빌어먹을 새끼가!!”
__새끼가!! 새끼가…
어두운 공간이라서 그런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동굴 같은 곳인지 말끝이 울려 퍼졌다. 딱히 아픈 곳도 없는 걸 보면 몸은 멀쩡한 모양이다.
“죽은 건 아닌가?”
촉감에 의지하며 주변을 더듬어 보는 순간, 부드럽고 말랑한 게 손끝에 느껴졌다.
뭔가 엄청나게 거대한 덩어리가 손에 쥐어졌다.
‘만져본 적이 있는 거 같은데..’
마약같은 촉감에 한참을 주물럭거리고 있으니 가냘픈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꺄악!!”
“다은이?”
“혹시 시우야?”
설마 다은이 까지 휘말려 온 건가.
다은이 주변으로 밝게 빛나는 구체가 떠오르고 드디어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우구나…”
내 얼굴을 확인한 다은이가 안심한 표정으로 날 껴안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다은이의 체취가 코를 자극했다.
“위험하게 왜 혼자 달려가는 거야!”
많이 걱정했는지 조금 하이톤의 목소리, 할 말은 많았으나 할 수 없었다.
나는 조용히 다은이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다은이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마키나?’
[ “…” ]
이상한 노이즈 소리와 함께 들려오지 않는 대답 소리.
‘조심해야겠어.’
신경이 날카롭게 서는 느낌이 들었다.
“시우야.. 괜찮아?”
내 반응이 다은이를 불안하게 만든 걸까.
나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일단 주변을 살펴볼까?”
“응 알았어!”
평소 어른스러운 모습과는 다르게 좀 더 의존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이해가 갔다.
그런 상황을 겪으면 놀랄 수밖에 없지.
다은이와 함께 동굴로 보이는 장소를 확인했다.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벽을 따라 걷자 사람이 살았던 것 처럼 보이는 장소가 나타났다.
“여긴 어디일까?”
“글쎄…”
마키나가 대답해 준다면 쉽게 알 수 있을 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세이브 로드 능력을 발동시켰으나, 우려했던 상황이 와버렸다.
[ 일시적으로 세이브 로드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게 다행이네.’
다은이와 함께 주변을 탐색해 보았으나, 이 이상한 장소는 입구도 출구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불을 켜는 장치 인가 봐.’
벽에 있는 장치를 작동시키자 어두웠던 내부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주거 시설이나, 샤워 시설, 주방같이 보이는 공간도 있고, 특이한 문양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인 주거 환경처럼 보였다.
단지 어떻게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지만.
“여성분이 살던 곳일까?”
“…”
분명 처음 보는 공간인데,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났다.
너무 익숙한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시우야?”
“잠깐 다른 생각을 한다고… 미안.”
“정말…”
자신에게 신경 써 주지 않아서 토라진 느낌, 최근에 쌓였던 것 때문에 그런 걸까.
나는 다은이를 뒤에서 껴안았다. 손가락이 푹푹 들어갈 정도로 거대하고 부드러운 가슴.
“시..시우야..”
본래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는 이러면 안 되겠지만, 다은이가 너무 불안해 보였다.
‘위험한 상황은 아니니까.’
세이브 로드 능력을 못 쓰긴 하지만, 다른 능력들은 사용할 수 있었다.
식량도 인벤토리 안에 넉넉히 들어 있었고, 부족하면 창조 능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지금도 떨고 있으니까.’
다은이를 안정시킬 필요도 있어 보였다.
“자..잠깐만… 시우야..”
“오늘 기대하라고 했잖아.”
“시..우야..으으읏♡?!”
그대로 다은이를 침대 위로 쓰러뜨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