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202 서바이벌 평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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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전체 랭킹 46위 박찬후.
그는 위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보급 상자를 바라보았다.
“대략 적인 위치를 생각하면 여기서 1.2km 정도 떨어진 장소에 1분 32초 후에 떨어지겠군.”
그는 자신의 등수에 불만이 많았다. 자신이 고작 46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평가를 통해서 잘못된 등수가 달라질 것이다.
“윤서아,이다은,박혜지 그리고 그 밑에 있는 녀석들을 모두 내 손으로 쓰러트릴 거니까.”
수석, 차석같이 순위권이 높은 녀석들에게만 시선이 끌리는 지금의 아카데미는 문제가 있었다.
진정한 실력자인 자신을 몰라보는 게 말이 되겠는가?
“잔챙이들은 꺼지도록 해라.”
“뭐라는 거야 이 자식이?”
“혼자인 거 같은데 여기서 쓰러트리자!”
박찬후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무리를 보고 비웃음을 터트렸다.
약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뭉쳐있는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떨어지기까지 46초 남았으니 충분하겠군.”
만약 자신이 윤서아 처럼 수석이었다면 지금처럼 달려들 수 있었을까?
하다못해 46위라는 사실만 알았어도 아마 도망치는 선택을 했을 거다.
하지만 사람들은 1등이 아니면 관심이 없는 것, 그나마 5등까지 이름을 외워도 그 뒤부터는 얼굴도 잘 모르는 법이었다.
“너희의 무지함을 책망하도록.”
“저 녀석 좀 이상한 거 같은데?”
“표정 좀 봐. 좀 역겹다…”
“…”
약자들을 위해 자비를 베풀려 했던 박찬후는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감히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건방지게 나오는 녀석들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박찬후는 말없이 검을 뽑아 허공에 휘둘렀다.
“역시 반응도 못 하는 군. 너희가 선택한 결과니 묵묵히 받아들이도록.”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박찬후를 포위하던 무리가 그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뭐라는…? 뭐야 보호막이?!”
“자..잠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너희의 인기척이 느껴진 순간부터 이미 주변에 있는 마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방금 동작을 통해서 너희들의 방어막을 공격한 거지. 화려한 공격을 할 필요도 없이 정확하게 방어막만 공격하면 끝이니까.”
박찬후는 방어막이 깨진 생도들을 보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생도들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게 마력을 조작하는 게 그의 특기였다.
“아무리 둔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공격을 받을 때까지 모르다니. 수준이 떨어지는군.”
“여..여기서 탈락할 수는 없어!!!”
“흠.. 뒤쪽까지 공격하는 건 무리였나.”
아직은 미숙한 걸까, 뒤쪽까지 한 번에 공격하는 것은 무리가 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박찬후가 도약하는 순간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졌다.
뒤늦게 몸을 돌려 방어하려 했으나, 박찬후는 하위권 생도에게 당할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 시발!!”
“후회해도 늦었어.”
주제도 모르고 달려드는 녀석들이 많아서 문제다. 자신은 이렇게나 강한데 말이다.
그리고 그 잘못된 인식을 오늘 고칠 예정이었다. 이번 평가에서 자신보다 순위가 높은 생도들을 모두 쓰러트린다면?
박찬후는 자신 앞에 무릎 꿇는 수석과 차석을 떠올리며 보급품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역시 들개들이 많이 있어.”
처음으로 달려가 보급품을 얻으려 했으나, 지형이 험해서 그런지 예상했던 시간보다 살짝 늦게 도착했다.
조금 늦었다고 벌써 보급품을 얻기 위해 서로 싸우고 있는 생도들이 보였다.
박찬후는 눈을 좁게 뜨고 주변에 있는 생도들을 확인했다.
‘강해 보이는 놈은 없는 건가. 숫자도 별로 없군.’
하긴 여기는 설원지대 근처였다. 싸움이 무서워서 숨어 있는 녀석들만 있으니 강한 녀석이 있을 리가.
거기다 다들 몸을 사릴 모양인지 어제 있었던 격렬한 전투 이후로는 큰 전투가 없었다.
박찬후는 주변에 있는 생도들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두 수준이 떨어지는지 그의 공격에 반응하는 녀석이 없었다.
‘흐흐 하찮은 놈들.’
주위에 있는 생도들을 정리하고 보급품을 주우러 가는 순간,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새하얀 패딩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설원 지역에 숨어 있는 버러지 같았다. 실력이 떨어지는 주제에 겁도 없는 걸까.
당당한 걸음걸이로 자신이 주우려 했던 보급품으로 향했다.
“잠깐 저 얼굴은…”
당사자의 얼굴을 확인한 박찬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적의를 들어냈다.
“김시우.”
안그래도 최근 여기저기서 이름이 들려오는 놈이 아니던가.
운이 좋게 김태환의 능력을 얻고, 얼굴이 잘생겨져서 그런지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무슨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새끼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실력도 없는 놈을 왜 그렇게 띄우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너도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해라.’
박찬후는 몸을 숨기고 보급 상자로 접근하는 김시우를 향해 마력을 이용한 참격을 날렸다.
일반적인 생도라면 반응하기 힘든 은밀한 공격, 그러나 김시우는 가볍게 몸을 돌려 공격을 피했다.
‘피했다고? 내 공격을?’
김시우가 있던 자리에 생겨난 참격, 김시우는 바닥을 확인하고는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정확하게 자신이 있는 위치를 보고 웃었다.
‘고작 한번 공격했는데 위치를 파악했다고?’
설마 자신보다 더 실력이 뛰어난 걸까?
‘그럴 리 없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야.’
어차피 이 공격은 기습일 때나 의미가 있는 공격이었다. 은밀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위력이 떨어지니 피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박찬후는 더는 숨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박찬후를 보며 김시우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김시우. 내 공격을 운 좋게 피한건 칭찬해 주마. 하지만 내가 오는 걸 알았으면 도망갔어야지.”
“어?”
황당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김시우, 역시 김시우도 내가 누군지 아는 건가?
하긴 최근에서야 인정받고 있는 김시우와는 다르게, 자신은 이전부터 인정받는 존재가 아닌가.
“그래 이 몸이 바로 랭킹 46위 박찬후다.”
“어… 그래… 그래서 46위라고?”
전혀 처음 본다는 얼굴을 하는 김시우, 설마 자신이 누군지 몰랐던 걸까?
“설마 네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거냐?”
“알았어야 했나?”
“하…”
이런 싸구려 도발을 하다니, 역시 수준이 떨어지는 놈이었다.
박찬후는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아까처럼 마력을 조작했다. 저런 값싼 도발이나 하는 놈하고 싸울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 박찬후의 공격을 피하는 김시우.
“자꾸 말 걸고 공격하네? 비겁하게?”
“누가 비겁하다는 거냐. 여기는 생존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장이다. 실제 헌터가 되어 필드에서 가장 많이 사망하는 요인이 바로 방심이다. 방심한다는 건 능력이…”
“와씨. 말 진짜 많네. 혹시 포인트는 얼마나 쌓았느냐?”
“포인트 말인가? 너처럼 덜떨어지는 녀석과는 다르게 이 몸의 포인트는 340점…”
박찬후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에 꼴사납게 뒤로 몸을 날렸다. 마치 자신이 했던 것 처럼 갑작스럽게 날아든 참격.
“이놈! 비겁하게 말하는데 공격하다니!!”
“이런 캐릭터는 또 처음 보네. 아무튼, 47위? 49위라 했었나?”
“46위다 이 비겁한 놈아!!”
“실력 한번 볼까.”
“네 놈이 뭔데 실력을…!”
박찬후는 말할 틈이 없었다. 장난스러운 기세가 사라진 김시우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으니 말이다.
자신보다 덜떨어지는 상대에게 이런 압박감을 느끼다니.
수치심이 느껴졌으나, 그 다음 공격이 이어진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공격, 별다른 동작이 없이 평범한 휘두르기 공격인데 공격 한방 한방이 잘 벼려진 칼날 처럼 예리했다.
단 한번만 실수해도 목이 떨어질 것 같은 기분에 이를 악물고 방어에만 전념할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아까랑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네?”
“닥쳐라!!”
어떻게든 반격하기 위해 검을 휘둘렀으나 너무나 그 공격이 너무나 쉽게 막혀 버렸다.
이를 악물고 싸우는 자신과는 다르게 저 여유로운 표정은 뭐란 말인가.
박찬후는 검을 감싸는 마력의 양을 더 강화시켰다. 아까보다 선명하게 빛나는 자신의 검과는 다르게 김시우의 검은 똑같았다.
‘마력 양이 적은 모양이지?’
검술 실력이 뛰어난 건 인정하지만, 결국 헌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마력 수치였다.
마력이 적은 모양이니, 그 점을 이용하면 승기를 잡을 수 있을 터였다.
저렇게 희미한 빛을 내는 걸 보면 마력 수치가 형편없겠지.
지금 부터는 자신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왜… 왜 내가 밀리는 거지?”
분명 자신의 검의 마력이 더 밝고 선명했다. 그에 비해 김시우의 검은 희미한 빛만 내고 있는데 왜 자신이 밀리는 걸까.
온힘에 마력을 두르고 신체를 강화시켜도, 전혀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서 보호막의 파손도 만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네임드가 아니면 별거 없나 보네.”
“지금 뭐라고…”
그 순간 김시우의 검이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모든걸 정화 시키는 불꽃이라 알려진 항마의 힘이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아름다움에 한 눈이 팔릴 정도로 깨끗하고 청아한 불꽃이었다.
하지만, 잠깐 시선을 빼앗긴 대가는 컸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김시우의 검이 이미 사선으로 지나간 상황이었으니까.
“박… 뭐더라. 아무튼 수고해.”
“아…”
__지잉!!!
손목의 팔찌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 적색으로 변한 팔찌는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이야. 허망한 표정으로 앞으로 손을 뻗었으나.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그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다.
인공던전에서 추방당하는 그가 마지막으로 본 건 박혜지의 얼굴이었다.
“드디어 찾았네요.”
“너는…”
“박혜지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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