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 182 정수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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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호는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생도복을 입고 있는 남자, 이제 겨우 1학년밖에 되지 않은 병아리 생도.
자신의 수준에서는 한 손가락으로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존재.
그래야 정상일지인데, 저 눈빛을 뭐라 해야 할까. 도저히 생도가 할만한 눈빛이 아니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양대호를 죽이는 움직임, 사람을 죽였음에도 그 어떤 망설임도 죄책감도 없어 보였다.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한 표정, 그렇다고 해서 자신처럼 살인을 즐기는 인간인가?
그것도 아니었다. 단지 쓰레기를 버리듯 당연하다는 듯한 움직임과 태도.
'저게 어떻게 1학년이지?'
신광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긴장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마치 자신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언제 만난 적 있었나?"
혹시 자신이 죽였던 헌터의 자식일까?
"한 두 번 본 게 아니긴 하지."
김시우의 대답에는 그 어떤 거짓도 섞여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기억을 되새겨 봐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존재였다.
'시발…. 머리 아프게 생각할 게 있나? 그냥 죽이면 되는 거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이긴 하나, 그건 그저 겉모습에 불과했다.
실력 없는 놈이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건지 어떻게 알겠어.
'그러기에는 너무 자신만만한 게 걸리는데…. 시발. 내가 핏덩이 앞에서 이러고 있다고?'
고작 1학년밖에 되지 않은 생도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 신광호는 수치심을 느꼈다.
자신 앞에서도 당당한 김시우를 보고 있으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이 새끼가!!"
신광호가 달려가려는 순간, 김시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손에 쥐어져 있는 투척물, 김시우의 목표는 자신의 가슴 쪽이었다.
자신의 능력은 상대방의 생각을 완전히 읽는다기 보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능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어디에 던질지는 읽을 수 있어도 무엇을 던질지를 읽는 건 조건이 필요했다.
상대방이 자신이 던질 것에 대해 의식하고 있어야 했으나, 김시우는 그저 투척 물을 던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게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신광호는 뒤로 물러났다.
__펑!!
폭발음과 사방으로 퍼지는 끈적거리는 액체, 저걸로 자신의 움직임을 방해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이 정도는 피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동시에 자신을 공격하려는 의도와 함께 또 다른 의도가 읽혔다.
또 뭔가를 던지려는 생각. 손에 있는게 뭔지 모르니 반응하기가 힘들었다.
__펑!!
__콰앙!!
마치 자신이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생각인 걸까?
"이 새끼가!!! 감히 날 농락해??"
김시우에게 농락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신광호는 거리를 좁혀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거리를 주지 않는다면, 던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이 거리에서 폭탄을 던지면 피해를 보는 건 김시우도 마찬가지였다.
무기의 특성상,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유리한 건 자신이었다.
갑자기 머리속으로 자신을 비웃는 느낌이 들려왔다.
눈을 가느게 뜨고 확인해 보니 정수아를 보호하듯 서있는 김시우와 그 반대쪽에 있는 자신, 설마 이걸 의도했던 걸까?
"곧 죽을 새끼가 언제까지 그렇게 당당한지 보자고!!"
신광호의 감정에 반응하듯 도끼날에 선명한 검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감히 자신을 농락하다니,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 생각이었다.
전력으로 끌어 올린 마력, 자신의 공격을 버틸 수 있는 생도가 존재할까?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은 A랭커가 아닌가.
김시우의 멱을 따버리고 팔과 다리를 정수아의 눈앞에서 토막 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달려들려는 순간 김시우의 심장을 중심으로 마력이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비약적으로 늘어난 신체능력.
'시발…. 이걸 버틴다고?'
자신의 공격을 계속해서 받아치는 김시우의 움직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떤 생도가 자신 앞에서 저렇게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자신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전투 경험이 있는 듯한 능숙한 움직임에 자신도 모르게 불안한 감정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디서 이런 존재가 튀어 나온 걸까?
이건 너무 불합리했다. 만약 지금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이 싸운다면 3초는 버틸 수 있을까?
이게 재능의 차이일까?
'그러기에는…. 너무 능숙하고 예리하다….'
저건 절대로 재능으로 만들어진 움직임이 아니었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진 움직임이다.
그게 아니고선 저렇게 부드럽게 연결될 수가 없으니까.
순간 김시우가 공격하려는 듯 자세를 취했고, 자신의 몸이 곧장 반응했다.
하지만, 그건 페이크에 불과했다. 반대쪽을 노리고 들어오는 김시우의 검에 어깨에 작은 상처가 생겨났다.
따끔.
처음으로 생겨난 상처에 신광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시발…. 저건 무슨 검술이지?'
분명 공격할 생각이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너무나 날카롭게 들어오는 검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했다.
처음 보는 검술이라 그런지 어디로 어떻게 튈지 눈으로 읽을 수가 없었다.
검사와 싸운 경험이 많았음에도 저런 검술을 쓰는 놈을 본 적이 없었다.
'생각을 읽고 반응하면 그만이지만…. 너무 변칙적이다!'
자신의 능력에 대응하듯 김시우의 검이 변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왼쪽을 노릴 것처럼 하고 오른쪽을 노리거나, 찌를 듯하다가 찌르지 않고, 속임수처럼 보였다가 갑자기 공격하는 방식으로 틀기 시작했다.
저 정체불명의 검술의 완성도가 높아서일까, 그런 변칙적인 움직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탓에 생각을 읽고 반응하기 힘들었다.
생각을 읽으면 이미 검의 경로가 달라졌으니 말이다.
전장을 구르며 쌓은 경험이 풍부한 만큼 아예 대응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따끔.
단지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작은 상처들이 거슬릴 뿐이었다.
따끔.
단지 줄어드는 마력이 거슬릴 뿐이었다. 아니 조급함이 느껴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
상대는 1학년 생도. 그러니까 아직은 벽을 넘지 못했겠지, 신광호는 주변의 마력을 잠식시키기 시작했다.
거기에 대응하듯, 김시우의 항마의 마력이 주변에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시발…. 벌써 벽을 넘었다고?'
저 나이에 그게 가능한 걸까?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아니, 이럴수록 침착해야 한다.
신광호는 빠르게 전투에 집중하고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마력을 동조시켰다.
도끼를 내려찍는 것처럼, 의지를 담아 마력을 움직인다.
__촤악!!
사각을 노려서일까, 공격에 반응하지 못한 김시우의 어깨에서 핏물이 튀었다.
뒤늦게 김시우의 마력이 움직였으나, 너무나 느린 속도에 피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래…. 이게 경지의 차이지.'
신광호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한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억지로 힘을 끌어 올린 것일까. 점점 약해지는 듯한 느낌에 점점 승리가 확실히 되었다.
__촤악!!
이미 A랭크 경지에 올라 능력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자신과는 다르게, 상대는 이제 막 경지에 올랐을 뿐이었다.
__촤악!!
늘어나는 상처를 보고 있으니 자신이 겨우 이런 놈을 상대로 그렇게 고전했던 걸까.
승리를 확신한 순간, 김시우가 아까처럼 마력을 동조시키기 시작했다.
'저건 페이크 동작…. 어떻게 할 생각이지?'
김시우의 검술은 여전히 까다로웠기에, 김시우의 생각을 읽으면서 싸워야 했다.
어떤 움직임을 보여 주려는 걸까. 그러나 페이크 동작치고는 너무 대량의 마력이 모여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주변에 모여있던 대량의 마력이 공간을 찢기 시작했다.
'아….'
가끔, 일상을 보내다 보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경험하고는 한다.
마치 1초가 10초인 것처럼, 시간이 배로 늘어나는 것 같은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게 느리게 느껴지는 극도의 몰입 상태.
그 순간만큼은 흐르는 시간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머리가 돌아가는 경험.
그래, 그렇게 돼버린 것일까.
'그래서 잘못 읽은 건가.'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극도로 몰입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피하기에는 범위가 너무나 넓은 공격. 피할 수 없다면 받아치겠다.
"시발!! 얼마든지!! 받아 쳐주마!!!"
고작 생도의 공격, 얼마든지 받아칠 수 있었다.
도끼날이 깨질 정도의 대량의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어떤 것도 자를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도끼날이 항마의 마력과 닿는 순간이었다.
__파지지짖직!!!!!!
엄청난 스파크와 함께, 서서히 찢겨 나가는 자신의 마력이 눈에 들어왔다.
마력을 밀어낸 날카로운 칼날은 이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도끼날이 너무나 쉽게 잘려나갔다.
청아하게 빛나는 푸른 불꽃을 보고 있던 신광호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시발 더럽게 예쁘네.'
마치 모든 게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자신을 집어삼키기 위해 날아오는 항마의 칼날이 보여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좋은 도끼를 쓸 걸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자신을 알고 있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이길 거라 생각했다.
의도적으로 능력에 의존하도록 유도했던 건 아닐까.
조금만 더 조심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단 한 순간의 실수는 죽음을 의미했다.
‘시발.. 섹스 하고 싶다.’
그 사고를 마지막으로 2등분으로 찢겨 나감과 동시에 곧 굉음이 울려 퍼졌다.
__콰아아아앙!!!!!!!
신광호를 관통하고 날아간 공격이 공장을 박살 냈으니까.
*
"괜찮냐?"
"...응..흐윽…. 으아앙!!"
김시우가 정수아를 내려놓자 곧장 다시 김시우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신광호로 인해 느꼈던 극도의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점점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울어도 된다는 것처럼 부드럽게 자신의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 때문에 눈물샘이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을까, 아까 전투 때문에 피투성이가 된 김시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치…. 치료해 줄게…."
"괜찮은데."
"가만히 있어…."
별로 친하지 않은 자신을 위해 한걸음에 달려와 입은 상처들.
뼈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상을 보고 있으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정수아의 손끝에 부드러운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뼈가 보일 정도였던 김시우의 상처들이 점점 아물기 시작했다.
__움찔.
상황이 끝나서일까, 생존을 위해 잊고 있었던 감각들이 갑작스럽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달콤한 향기가…. 화…. 환자를 보고 뭔 생각을 하는 거야?'
__움찔.. 움찔..
갑작스럽게 울리기 시작하는 자신의 아랫배 부분, 거기에 코를 자극하는 달콤한 향기.
"수아야. 너 괜찮냐?"
"괜찮아.. 하아.. 하아.. 아무.. 문제없어.. 하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도 모르게 김시우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미…. 미쳤어! 갑자기 내 몸이 왜 이러는 거야?!'
순간, 아까 먹었던 분홍색 액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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