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 178 정수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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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김시우 님. 강민지 님.”
아카데미 일정이 끝나고, 세아의 초대로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입구로 가자 서아의 운전기사와 이지아가 슈트를 입고 대기 하고 있었다.
매번 볼 때마다 저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데, 여름에는 안 더우려나.
감정이 없어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에 이지아, 확실히 암살자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고 해야 할까.
“…?”
어느 순간 갑자기 이지아가 한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시…”
그 말을 끝으로 갑자기 이지아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저번에도 저렇게 사라지는 걸 보긴 했는데, 저 능력으로 등 뒤에서 덮치면 확실히 대응하기 힘들겠지.
“무슨 일이야?”
“모르겠어….”
혹시 서아라면 이지아가 사라진 이유를 알까 물어봤지만, 서아도 모르는 모양이다.
잠깐 시간이 지났을까, 검은색 깃털이 일렁이더니, 암살자 복장을 한 이지아가 갑자기 나타났다.
“무슨…. 일이에요…?”
“죄송합니다. 아가씨. 누군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확인하고 왔습니다만, 제가 착각한 모양입니다.”
“괜찮아요….”
“…”
이지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는 우리가 탈 수 있도록 리무진의 문을 열어주었다.
A랭커라고 들었는데, 사신 길드의 간부 같아 보이는 이지아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본인은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나저나 착각이라…. 설마 또 역천교는 아니겠지?’
본인 말로는 착각이라고 하긴 했지만, 찝찝한 기분이 드는 느낌이 들었다.
A랭커의 감각이 반응한 거면, 뭐가 있어도 있지 않을까?
“김시우, 안 타고 뭐해?”
“아 미안…. 딴생각 좀 한다고….”
“빨리 타기나 해…. 너 때문에 기다리시잖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여기서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약간 미묘한 기분으로 차량에 탑승했다. A랭커가 문을 열어주고 기다리는데, 안 탈 수도 없지.
그나저나 저번에 여수에서 만난 뒤로 한 번도 못 만난 거 같은데. 잘 지내고 있으려나.
‘직접 확인하면 되겠지.’
약간 찝찝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무슨 일 있겠는가.
오랜만에 세아를 본다고 생각하니 반가운 감정이 일어났다.
*
“시발.. 뭔 저런 년이 지키고 있는 거야?”
오랜 도망 생활로 만들어진 생존 감각으로 쥐새끼처럼 몸을 숨겼던 신광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대로 숨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 올 줄이야.
감지 능력이 뛰어났다. 이곳으로 왔을 때 그간 도망 생활로 만들어진 은신 능력이 아니었다면 아마 무조건 들켰을 거다.
검은색 암살자 복장을 하고, 몸매는 잘빠진 여인. 매끈한 라인을 생각하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력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움직임.
몸을 은신하고 있었기에 상대의 능력을 살피진 못했지만, 절대로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걸음걸이 하나부터 손짓 하나하나까지 잘 벼려진 칼날처럼 예리했으며, 걸을 때도 발소리가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은밀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인간들은 백이면 백, 저 여자에게 걸렸을 거다.
얼마나 강할까?
‘A랭크는 넘었겠지?’
솔직히 달려들고 싶은 감정도 있었으나, 어떻게든 자제를 나타낸 신광호였다.
무슨 능력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이동하는 걸 보면 기습에 당해줄 인간은 아니었다.
여기서 싸움이 길어지면 불리한 건 자신이었다. 아카데미 근처에서 싸움이 나면 달려들 헌터들이 몇 명이겠는가.
신광호는 잘빠진 몸매와 도도해 보이는 얼굴을 생각하며 도끼의 날을 핥았다.
“아쉽네…. 이런 곳만 아니었어도 한번 싸워보는 건데 말이야….”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그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상상하니 금방 흥분되는 느낌이었다.
도끼로 찍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강자만 만나면 이렇게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나곤 했다. 아까 만났던 여자처럼 잘빠진 경우라면 더 그러하였고.
그러나 그는 자신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자리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자신에게는 목표물이 있었다.
“전부 여기 출신은 맞는 모양이야.”
암살자 복장을 한 여인과 함께 있던 강민지와 김시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저런 여자가 곁에 있는 이상 지금 노리긴 힘들어 보였다.
“그러면 남은 건 이다은인가?”
3명에게 복수한다는 선택지가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대한민국 최고라고 하더니, 저런 괴물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3명을 전부 처리하긴 힘들어 보이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생도 3명을 처리하는 데 얼마 걸리진 않겠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한 두명이야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수가 늘어난다면 도주하긴 힘들지도 몰랐다.
조금만 시간이 끌려도 협회에서 움직일 테니, 살아남을 확률이 줄어들겠지.
“어떻게 하지?”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때 입구 쪽에 노을빛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터질 것같이 커다란 가슴, 아무것도 모르는 듯 보이는 순진한 얼굴.
“그리고 옆에 빨간 머리 년은 또 누구야?”
자그마한 체구와 작은 가슴, 나름 골반이 넓고 허벅지가 커 보이긴 하지만, 이다은과 비교하면 매력이 부족했다.
“얼굴은 기가 세 보이는 게 나쁘지는 않은데…”
이다은이라도 붙잡을 생각을 했으나, 아까와 마찬가지로 경호원으로 보이는 녀석들이 붙었다.
재벌 집 딸이라도 되는 걸까, 신광호는 껄끄러운 표정으로 둘을 보고 있었다.
같이 나올 정도면 보통 사이보다는 친해 보이는데, 둘 사이에 다툼이 있는지 이다은의 제의를 거부하고 혼자 걸어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흠…”
*
“대호야 여기가 안전한 장소가 맞냐?”
“제가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방치 된 지 오래돼서 사람들 발길이 없는 장소입니다.”
“그래…. 근데 이년은 언제 일어나려나?”
신광호는 의자에 팔다리가 묶여 있는 정수아의 뺨을 쿡쿡 찔렀다.
빨간색 머리에 사나워 보이는 느낌이 드는 정수아는 눈을 감은 체 미동도 하고 있지 않았다.
목에는 붉은색 자국이 남아있었는데, 목이 졸렸던 흔적처럼 보였다.
“보자.. 이다은 그년하고는 친구처럼 보이고…. 강주원? 이 새끼는 또 뭐야.”
신광호는 정신을 잃은 정수아의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비밀번호가 걸려있었으나, 정수아의 엄지를 가져다 누르니 쉽게 풀렸다.
이름은 정수아, 대한 아카데미 1학년 A반, 치유 계열 헌터라는 정보를 쉽게 알아냈다.
겉으로 보이는 사나운 느낌과는 다르게 배경화면에는 귀여운 그림이 가득했다. 혹시나 해서 갤러리를 뒤져봐도 귀여운 고양이 사진 말고는 건질 게 없었다.
“이년은 언제 일어나?”
“깨울까요?”
“그래, 대호야 이년 좀 깨워봐라.”
양대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디선가 떠온 물을 정수아의 머리 위에 뿌렸다.
“으..읍!!?!”
정신을 잃었던 정수아가 눈을 부릅뜨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점점 시야가 돌아왔는지 놀란 표정으로 신광호를 바라봤다.
“안녕?”
“읍!! 읍!! 으읍!!!”
정신을 잃기 전 기억이 떠올랐는지 신광호를 보며 엄청난 분노를 표출하는 정수아였다.
저 작은 몸으로 어찌나 기운이 센 지, 고정해둔 의자가 들썩거리더니 쓰러질 정도였다. 쓰러진 상태에서도 아등바등하며 적의를 보이는 정수아였다.
“킥킥 저년 보기보단 기가 세 보이네. 뭐라 말하는지 궁금하니까 테이프 좀 떼봐.”
“알겠습니다….”
양대호가 정수아의 입을 봉인하고 있던 테이프를 떼자 표정이 구겨진 정수 아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미친 새끼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이 쓰레기 새끼들아!!”
“이야. 목청도 좋네?”
신광호는 그런 정수아를 보며 씩 웃고는 도끼를 집어 들었다. 날 부분에 보이는 핏자국 때문인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쉿.”
“그런다고 내가 겁먹을 것 같아? 하나도 안 무서워 이 쓰레기 새끼들아!!”
“기가 센 건 좋은데…. 좀 시끄럽네?”
__콰직!!
정수아의 눈앞에는 바닥에 박혀 있는 도끼가 눈에 보였다.
돌로 된 바닥에 파편 하나 튀지 않고 깔끔하게 박혀 있는 모습은 상대의 실력을 단편적으로 보여줬다.
“하…. 하나도 안 무섭거든?! 그런다고….”
“팔 하나쯤은 없어도 되려나? 어떻게 생각하냐 대호야?”
“뭐 굳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시끄러우니까 하나 자를까?”
“…”
둘의 대화 하는 모습을 지켜본 정수아가 몸을 움츠러들었다. 그냥 겁을 주기 위해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있는 이들은 일반인과는 사고 자체가 다른 범죄자들이었다.
“응? 왜 갑자기 조용해졌지? 우리 꼬맹이가 겁먹었으려나?”
신광호는 위협하듯 도끼날을 오른쪽 팔 위에 올렸다. 예리한 도끼가 지나가자 가벼운 상처가 생겨났다.
정수아가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찡그렸다. 여전히 눈빛이 살아 있긴 하지만, 아까처럼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옳지. 말만 잘 들으면 무사히 갈 수 있어.”
신광호의 손이 정수아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마치 거미가 온몸을 기어가는 듯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낄낄. 병신 같은 년이 깝죽거리기는.”
신광호는 움찔거리는 정수아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에게 굴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는 건 역시 최고였다.
한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면 체형일까, 신광호의 취향을 완전히 벗어난 체형에 아쉬운 듯 혀를 날름거렸다.
다른 두 명을 생각하면 굳이 안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슴만 크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솔직히 너무 애 같잖아.”
셔츠를 잡아 뜯어 버리자 사방으로 단추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뽀얀 속살과 함께 보라색으로 된 속옷이 드러났다. 레이스가 달려 있지만, 그리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브래지어.
“가슴도 작은 년이 이런 게 필요한가?”
“만지지 마!”
“쉿.”
신광호는 바들바들 떠는 정수아의 얼굴을 보며 정수아의 폰을 들어 올렸다.
__찰칵
__찰칵
“하지 마!”
__짝!!
“조용히 하라니까 이 시발년이!!”
__짝! 짝! 짝!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뺨을 맞은 정수아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같이 서러운 표정에 신광호가 삐뚜름하게 웃었다.
__찰칵!
__찰칵!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안 그러면 알지?”
신광호는 정수아의 모습이 찍혀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며 중얼거렸다.
남들에게는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모습들이 잔뜩 찍혀있었다.
“대답.”
“네…. 네….”
“지금부터 거짓말하면 안 된다?”
“네…”
정수아를 통해 한 명씩 유인할 생각을 하자 벌써 흥분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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