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 174 이다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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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내부 보수로 결석을 하는 일은 방지할 수 있었다.
히든 던전 안에서 생각보다 오래 있으면서 연락이 안 된 탓에 민아와 서아가 걱정을 하긴 했다.
그래도 민아의 경우는 던전에 들어가는 건 알고 있어서 그런대로 넘어가는 분위기였지만, 범죄자 녀석들하고 싸운 것 때문에 많이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혹시 녀석들을 쓸어버린 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는데, 거기 있던 녀석들이 전부 흉악범이라 그런지 오히려 보상을 받았다.
일단은 비밀로 해달라고 하긴 했는데, 생도들은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게 주말부터 시작된 히든 던전은 일단 넘어간 분위기 였고,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흥.”
“미안 그때 게이트 안에 들어갈 일이 있어서.”
“그래도..”
“서아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그때 일이 있었다고 해서.”
“던전에 가는 거면.. 말은 해줄 수 있잖아...”
그때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말을 못하긴 했다.
“급해서 깜박했나봐.”
그래도 같이 가려고 연락을 하긴 했으니, 할말이 없는 건 아니다.
거기다 최대한 빠르게 들어간다고 들어갔음에도 파리 같은 놈들이 꼬였으니, 급하게 들어가는게 맞긴 했다.
그래도 섭섭한건 어쩔 수 없긴 하지.
“그래도 들어간다고…. 말은 해줄 수 있었잖아….”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서아를 품에 안았다.
작은 체구 때문에 품 안에 쏙하고 들어오는 서아. 서아 특유의 체취를 맡으며 서아의 등을 살짝 토닥였다.
“…이번만이야….”
서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내 얼굴을 조그마한 손으로 붙잡았다.
__쪽..
서아 쪽에서 먼저 다가오는 가벼운 입맞춤, 서아의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입술이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귀여운 모습에 미소가 지어지긴 하지만, 뭔가 살짝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수업…. 가야 하니까….”
“그렇긴 하지.”
“수업..”
가볍게 입을 맞추고 멀어지는 서아를 강제로 붙잡았다. 곧 다음 수업이 있긴 하지만, 키스를 할 여유도 없는 건 아니다.
목 뒷덜미를 잡고 다시 서아와 입을 맞췄다.
침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굳게 닫혀 있는 서아의 입술은, 목 뒷덜미를 살짝 자극해 주자 자동문처럼 쉽게 열렸다.
“흐..으읍..”
말랑거리는 혓바닥이 서로 얽히는 진득한 키스.
서아의 맛을 살짝 보고는 입술을 뗐다.
“이제 가자.”
“조금만 더….”
우리는 그날 수업에 결국 지각했다.
*
“이놈은 관절 부위가 약점이라 여길 노리는 게 효율적이다.”
교수 한 명이 앞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은 몬스터의 사진을 보며 레이저 포인터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약점 설명에 다들 빠르게 필기하기 바빴다.
“그래 이 부분은 중요하니 외워두는 게 좋을 거다.”
교수가 그 부분을 강조하듯 말하자 다들 칠판에 있는 정보를 필기하기 바빠 보였다.
평소라면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줘야 정상인 이다은의 상태가 어딘지 모르게 달라 보였다.
오늘따라 달라 보이는 모습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강주원이 말을 걸었다.
“다은아 괜찮아?”
“으..응?”
“오늘 좀 많이 힘들어 보여서 말이야.”
“아.. 괘….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으나, 이다은은 마지 못해서 미소를 지었다.
최근 들어서 둘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난 느낌이 들었다.
이전이라면 자신이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다면, 최근에는 이다은 쪽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단둘이 있던 상황도 그렇게 자주는 아니더라도, 꽤 있었는데.
최근에는 정수아가 없으면 자신과 단둘이 있을 일도 없었다. 이전처럼 자신을 위해서 도시락을 챙겨주지도 않는 모습이고.
‘뭐.. 그건 내가 부탁했으니까 할 말은 없지만….’
뭔가 자꾸만 멀어지는 느낌에 가슴 한구석이 어쩐지 모르게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이딴 걱정을 할 상황은 아니긴 하지….’
지금은 어떻게든 순위를 올려두는 게 중요했다.
2학년부터는 실질적으로 집안에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좋은 조건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순위가 높은 게 유리했다.
2학년이 되면 임시 헌터라고 해도 무방하니 말이다.
이론이나 실습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2학년이 되면 직접 의뢰를 수행한다.
물론 아직 생도에 불가 하므로, 아무 의뢰나 가능한 건 아니고, 아카데미 내부에 등록된 길드의 의뢰를 견학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래도 의뢰는 의뢰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수가 지급된다.
길드에서는 좋은 인재들에게 홍보함과 동시에 실력을 확인할 기회이기도 하고, 생도들에게는 실전을 경험할 좋은 기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순위가 높을수록 대형 길드에 의뢰가 들어올 확률이 높아진다.
최상위권 길드의 의뢰 경우 그 금액이 하위 헌터들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을 아득하게 뛰어넘으니 그 금액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다음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수업에 집중해야 하지만, 이다은이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은아.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줘. 우린 친구잖아.”
“응…. 고마워. 주원아. 그런데 나 정말 괜찮아! 헤헤.”
“…”
저런 반응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찌릿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함께 지냈던 모습이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어린 시절에 정수아와 함께 이곳저곳을 놀려 다녔던 기억. 놀이동산이었을까.
다은이가 넘어진 걸 보고 자신이 부축해준 뒤로부터였을 거다. 그때부터 자신을 챙겨주기 시작했었지.
그때부터 다은이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최근에 집안 사정으로 다은이에게 모질게 대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것 때문에 다은이가 이렇게 변한 게 아닐까.
‘…’
그러고 보면 자신도 다은이에게 마음이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 마음이 있긴 했다. 집안이 기울면서 너무 높은 벽이라 의도적으로 밀어냈다.
귀엽고 순박해 보이는 눈동자, 사랑스러운 미소, 항상 남을 챙겨주는 따뜻함.
그런 다은이 앞에서 자신이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한심한 새끼…’
그래, 조금은 관계가 틀어졌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먼저 다가간다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파트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던 다은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직 늦지 않았다.
강주원은 그렇게 속으로 다짐했다.
*
모든 수업이 끝나고, 언제나처럼 다 같이 훈련을 할 생각이었지만, 서아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버렸다. 최근에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이다.
다은이의 경우는 오늘은 혼자 하겠다고 해서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민지와 나는 오랜만에 다이아 트레이닝 룸이 아닌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오늘 다은이 상태 안 좋아 보이는 거 봤지?”
“응 그렇게 보이긴 하던데….”
오늘따라 유독 기운이 없어 보이긴 했다. 나름 위로해 주려고 해도 거리를 두니 어쩔 수 없었다.
“하아.. 멍청아.”
그런 모습을 보고 민지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오늘 나는 혼자서 훈련할 테니까…. 네가 가서 다은이 좀 챙겨줘.”
“응?”
나랑 단둘이 있는 걸 좋아하는 민지가 먼저 저런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 내가 멍하니 민지를 보고 있자 민지가 뭘 보는 겨냐는 눈빛을 보냈다.
“다..다은이도 책임진다면서…. 이…. 이런 건 네가 하는 게 더 효과가 좋아 보이니까….”
민지도 나름 다은이는 챙겨주는구나, 던전에서 둘이 친해지긴 한 모양이다.
“그놈들 상대한 뒤로부터는 저러니까…. 아마 좀 충격을 받은 거 같으니까…. 네가 가서 좀 챙겨줘….”
하긴 누군가를 죽인 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장모님과 민지를 죽였다는 사실에 정신이 돌아 버려서 뒤도 안 보고 놈들을 썰어 버린 거다.
거기에 반복되는 회귀로 솔직히 거부감은 몇 번 살아난 뒤에는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은이는 다르겠지. 아마 익숙해지기 힘든 기분 일 거다. 그렇긴 해도, 민지도 조금 걱정되긴 한다.
“민지 너는 괜찮아?”
“괘…. 괜찮거든…?!”
민지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니 민지가 얼굴을 붉히면서 뒤로 물러났다.
“나…. 나는 괜찮으니까…. 다은이나 챙겨…. 멍청아.”
“알았어. 그러면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뭐…. 뭐라는 거야!”
“집 가면 연락해야 해!”
“시…. 시끄럽거든 멍청아!”
저렇게 반응해도 문자를 남겨 둘 거다. 민지는 나중에 챙기고 지금은 다은이부터 볼까.
다은이에게 연락하자 당황하는 반응이었다. 역시 혼자 있고 싶다고 했지만, 내가 중요한 일이라고 하니까 일단은 알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다은이가 있는 다이아 트레이닝 룸으로 올라왔다.
이전에는 혼자서 올라오는 것도 불가능했는데, 이제는 순위가 오르면서 올라오는 건 가능해졌다.
아마 이런 시설을 보며 자극을 받으라는 뜻이겠지.
‘아직 시설 이용은 불가지만.’
다은이가 이용하는 트레이닝 룸 앞에 가서 다은이를 호출하자 뭔가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은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게….”
“들어간다.”
“자…. 잠깐만 시우야! 나 땀 흘려서….”
억지로 문을 밀고 들어가니 땀에 흠뻑 젖어있는 다은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마에 달라붙어 있는 머리카락, 거기에 땀에 젖으면서 몸에 찰싹 달라붙은 슈트까지, 꽤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다.
본인은 그게 부끄러워 보이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모습이다.
‘흠…. 평소보다 무리하는 거 같은데.’
아마 그때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몸을 혹사하는 방향을 선택한 모양인데, 그걸 가만히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살짝 땀 냄새가 나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뭐 이 정도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무…. 무슨 일이야?”
“괜찮아?”
“으..응?”
의도적으로 뒤로 피하는 모습이라 순식간에 다가가서 다은이를 벽으로 밀어 버렸다.
“시..시우야 갑자기….”
“힘든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야지.”
그대로 다은이의 입술을 덮쳐버렸다. 타액이 섞이는 진득한 입맞춤.
방금까지 훈련을 해서 그런지 후끈후끈한 열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그대로 무시했다.
처음에는 밀어내며 거부하던 다은이도 점차 마음을 열었는지, 내 몸을 꽉 껴안기 시작했다.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진득한 입맞춤에 다은이도 점차 안정되는 모습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입을 때니, 잔뜩 상기된 다은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괜찮아?”
“…응.”
그렇게 다은이를 품에 안으려는 순간, 밖에서 호출음이 들려왔다.
문밖을 보여주는 카메라에는 의외의 인물의 얼굴이 있었다.
강주원?
“다은아.. 지금 대화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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