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170 히든 던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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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발의 준비를 마친 우리가 문을 열자, 거대한 형상의 무언가가 중앙부에 서 있었다.
4m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크기의 동상, 거기에는 기사들이나 입을 법한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검을 땅에 꽂고 있는 모양의 동상은 멀리서도 그 위엄을 자랑했다.
처음 저 갑옷이 만들어졌던 시기에는 빛을 반사하는 광택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 보이는 갑옷은 녹이 슬어 오래된 느낌이 강해 보였다.
우리의 키를 훌쩍 넘어 보이는 거대한 크기의 검 중간중간에는 이가 빠져 있었고, 손잡이 끝에는 다 해진 붉은색 천이 길게 매달려 있었다.
“그냥 동상이겠지..?”
다은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지금까지 나왔던 몬스터들하고는 시각적으로 달라 보였다.
핑크 슬라임이나, 식인 식물 같은 건 좀 만만한 느낌이 있었는데, 저 녀석은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 보였다.
우리가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 순간, 놈의 안광에 붉은색 빛이 들어오고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크기의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주변은 지진이라도 난 그것처럼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튀기 시작하는 작은 돌 부스러기들.
“저게 설마 여기의 보스야?”
“갑자기 난도가 너무 올라간 느낌인데.”
동상이라 생각했던 기사가 무릎을 펴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크기에서 오는 엄청난 압박감.
“다들 피해!!”
기사는 별다른 동작 없이 우리가 있던 자리를 곧장 검으로 내리쳤다. 분명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는데 우리에게 다가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__콰앙!!!”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흔들림과 함께 강한 충격파가 일어났다. 민지는 다행히 구르기로 옆으로 벗어났고, 다은이는 현재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저렇게 큰 방패를 들고도 능숙하게 움직이는 게 이제는 방패에 적응한 모양이다.
이 정도 속도면 너무 빠른데.
“민지야 괜찮아?!”
“괘. 괜찮아!”
이 속도로 연격을 날린다면 솔직히 피할 자신이 없었다. 거기다 땅이 파질 정도의 충격을 보면 저걸 맞았다가는 한 방에 골로 가는 게 확정이다.
“바…. 바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아.”
순식간에 도약했던 기사는 다시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준비 동작이 있는 건가?”
흔히 몬스터를 상대할 때에는 그 몬스터의 움직이는 방식, 즉 패턴에 대한 정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에게도 특정 행동을 할 때 버릇이 있듯, 몬스터도 특정 행동을 할 때마다 보여주는 움직임이 있었다.
다른 개체라 할지라도, 특정 행동은 모두 동일하게 보여줬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패턴이라고 불렀다.
“다은아 내가 시선을 끌 테니까 공격을 준비해줘!”
민지가 방패를 두들기면서 기사의 어그로를 끌었다. 저 정도 크기의 놈에게 통할까 걱정했으나 놈이 민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시우! 넌 걱정하지 말고 다은이나 보호하고 있어!”
민지를 돕기 위해 달려가려 했으나, 민지의 저지로 할 수 없이 다은이 옆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
마법사 직업을 가진 다은이는 저놈의 공격에 반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까처럼 돌진하는 거 조심해!!!”
“나도 아니까 걱정하지 마!!”
옆에 있던 다은이는 민지의 외침을 듣자마자 거대한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수십 개로 보이는 룬 문자들이 다은이의 앞에 나타난 마법진을 채우기 시작했다.
저게 아까 레벨업 하면서 얻었던 스킬 이었던가, MP소모가 엄청 높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딱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민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민지를 못믿는 건 아니지만 놈의 공격에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노심초사하던 순간.
놈이 갑자기 몸을 숙이더니 아래로 검을 휘둘렀다.
위에서 내려찍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공격, 가로로 배는 공격인 만큼 그 범위도 넓었고, 당연히 굴러서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민지야!!”
__콰아앙!!!
“저 개새끼가!!”
강한 충격음과 함께 흙먼지가 시선을 가렸다. 잠깐 자제력을 잃었더니 나도 모르게 민지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민지가 다쳤으면 어떻게 하지?
다시 로드해야 하나. 저놈을 사냥하는 건 포기할까?
온갖 잡생각이 머리에서 피어오르는 순간, 민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니까 집중해 멍청아!!”
민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 보니, 거대한 타워 실드를 앞장세워 어떻게든 놈의 공격을 받아낸 민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 충격으로 조금 날아가긴 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HP가 40%나 날아간 거만 빼면 말이지.’
놈의 공격 패턴이 하나 더 있는 모양이다. 돌진해서 내려찍기, 그리고 아래로 횡 배기.
“이거나 받아..!”
다은이의 외침과 함께 허공에서 생겨난 거대한 운석 덩어리가 기사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메테오, 허공에 거대한 운석을 만들어 적을 공격하는 기술.
그 충격과 위력을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놈은 당황하지 않고 검을 들어 올려 메테오를 받아쳤다.
__콰아아아아앙!!!!!!
강렬한 충격음, 검으로 운석을 받아치긴 했으나 메테오의 충격을 막아내긴 무리였는지 놈이 휘청거렸다.
‘효과는 있어…. 하지만 이걸로 놈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메테오는 다은이의 MP 절반을 넘게 사용해야 하는 필살기나 다름없는 기술이었다.
회복 포션이 있긴 하지만, 계속 메테오만 쓸 수 있을까?
민지가 휘청거리는 놈의 발목 부분을 검으로 공격하고 있긴 하지만, 갑옷만 조금 찌그러질 뿐 유효타는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메테오도 버텼는데, 우리의 공격이 통할 리가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 쓰러트려야 하나?’
슬라임을 상대할 때에도 보스방 내부에는 특별한 장치가 있었다. 나는 놈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서둘러서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신전같은 분위기의 주변에는 석상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당길 수 있는 레버나, 작동시킬 수 있는 장치는 보이지 않는 상황.
패색이 짙어지는 기분이라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 저기 있는 석상의 눈만 빛나고 있는데….’
호화로운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의 석상, 왕관을 쓰고 있는 게 마치 여왕처럼 보이는 석상의 눈만 저 기사 놈처럼 빨간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민지야 도발 부탁해!!!”
“시우야?”
방금 돌진 공격을 하는 게 아닌 이상 다은이가 위험하진 않을 거다. 저 방패가 있으면 공격을 버틸 수 있으니 그사이에 저 석상을 부숴 버린다면 끝장낼 수 있겠지.
나는 빠른 민첩 수치를 이용해 냅다 여왕 석상을 향해 냅다 달렸다.
민첩 수치에만 투자한 보람이 있었는지 석상을 향해 빠르게 달려갈 수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달리면 석상에게 도착할 수 있다.
“알았어!!”
민지가 내 부탁을 듣고 다시 방패를 두들기며 석상의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다.
이제 저 석상을 부수면 된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생겨났다.
“정답은 맞는 모양이네?”
저 여왕 석상을 부수면 놈이 쓰러지는 모양이다. 여왕 석상이 위험할 때에는 도발 스킬이 통하지 않겠지.
몸집이 커서 그런지 이 정도 거리를 좁히는 건 놈에게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다.
이미 달리고 있어서 등 뒤를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아마 놈은 바로 검을 내려치겠지.
오른쪽으로 피해야 할까 봐 왼쪽으로 피해야 할까.
민지가 방패를 들고도 HP가 절반 가까이 날아갔으니 도적인 나는 저 걸맞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번 죽어야 하나?’
50%의 확률에서 나는 왼쪽을 선택했다. 왼쪽으로 몸을 틀었으나, 검의 그림자도 왼쪽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유도구나..”
“김시우!!!!!!!!!!!!”
미리 움직여서 피하면 안 되는 모양이다. 내려치기 직전까지는 위치를 보고 공격하는 거지.
이래서 패턴이 중요한 모양이다. 또다시 해야 하나.
__콰아아아아앙!!!!”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놈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내 왼쪽을 찍었다.
검을 피하긴 했지만, 방금 공격으로 생긴 충격파 때문에 몸이 휘청거렸다.
이대로면 쓰러질 게 분명한 상황에서 나는 팔지를 들어 올렸다.
‘돌풍의 축복’
내 두 발이 허공을 딛기 시작하면서 흔들거리는 지면을 벗어나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잠깐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니, 다은이가 메테오 공격을 날려 놈의 공격을 빗나가게 한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다은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곧장 여왕 석상을 향해 달려갔다.
달리는 속도에 비례하여 적에게 데미지를 주는 돌진의 일격.
현재 나는 아티펙트 덕분에 속도가 더 빨라진 상황이었다.
뒤늦게 석상이 다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이미 늦었다.
“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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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석상이 박살 나면서 기사도 더 움직이지 않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놈을 쓰러트리고 나니 이제는 내려가는 통로가 보이지 않았다.
“다은아 고마워.”
“다친 곳은 없어?”
“응 멀쩡해.”
“하아.. 너 피 흘리고 있거든 멍청아.”
아까는 아드레날린 때문에 몰랐는데, 돌 파편에 긁혔는지 여기저기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시우야.”
“괜찮은데.”
“조용히 해.”
다은이가 회복 표션을 들고 와 내 몸을 치료하기 시작했고, 나보다 더 심한 공격을 당했던 민지까지 달려들어서 내 몸을 치료해주었다.
“이제는 끝인가 봐.”
“내려가는 통로는 없어 보이네….”
이제 아래로 내려갈 일은 없어 보였다. 그렇단 이야기는 아까 쓰러트렸던 석상이 마지막 보스인 모양이다.
그 말은 여기가 마지막이라는 의미겠지, 우리는 지친 상태로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제 짐승 같은 생활도 막을 내렸다. 던전을 진행하면서 눈만 마주치면 서로 몸을 섞던 짐승 같은 생활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이번 보스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거야?”
민지가 찌그러진 방패를 들고 한숨을 내쉬며 걸어 나왔다. 그 말 그대로 이번에는 어떤 보상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얻은 게 나쁜건 아니지만, 고생한 것에 비해서는 솔직히 보상이 짠 느낌이다.
효과가 얼마나 뛰어난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몇날 며칠을 고생한 것에 비해서는 솔직히 부족하다.
“저..저쪽에 문 같은 게 열렸어.”
“문?”
설마 저 안에 보상이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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