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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세이브로 따먹다-159화 (159/235)

〈 159화 〉 159 서아랑 세아랑 (7)

* * *

*

홍류석이 쓰러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여인이 있었다.

"저 쓸모없는 놈은 왜 저기서 죽고 난리야!"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을 화가 난 듯 땅바닥을 발로 찍기 시작했다.

일반 생도라 금방 처리할 수 있다고 해서 보내줬더니, 본인이 당해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홍류석을 이용해 큰 피해를 줄 생각이었는데, 여기서 저렇게 되어 버리면 모든 일이 틀어져 버렸다.

작은 폭발과 함께 하이브 형태로 변해가는 걸 보고 있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데…."

교주도 하는 일마다 실패하면서 점점 정신이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가.

안 그래도 점점 주변에서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일이 계속 이렇게 돼버리면 주변에서도 이탈자가 나올지 몰랐다.

온종일 사방을 들쑤시는 협회 놈들을 상대하는 것도 지치는데, 여기서 내부에서 분열까지 생긴다면?

"진짜 홍류석 이 쓸모없는 새끼!!!"

순간 등 뒤에서 섬뜩한 느낌이 들어 몸을 숙였다.

바람 소리와 함께 머리 위를 스쳐 가는 단검, 고개를 돌려보자 검은색 가죽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여인이 서 있었다.

"이지아?!"

"제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자신의 위치는 어떻게 알아낸 걸까.

생각해 보면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한 것도 이상했다.

마치 홍류석이 올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반응 아닌가.

"너! 설마 전부 다 알고 있었던 거야?!"

"알 것 없습니다."

"이..우왓!!"

또 뒤에서 나타나더니 단검을 찔러넣는 이지아였다.

이지아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반응했지, 아니었다면 저 공격에 목이 잘려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목 밑이 따끔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 미친년이 진짜!!!"

슬라임을 조정해 2차 공격이라도 해볼 생각이었는데, 이지아가 달려들면서 계획을 급하게 수정하게 생겼다.

저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지아는 묵묵하게 단검을 휘둘렀다.

동작 하나하나가 치명적으로 보이는 위험한 공격, 단검의 날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모습에 뭐든 한 번에 잘려나갈 것처럼 보였다.

계속되는 연속 공격에 뒷걸음질 치던 여인은 벽까지 내몰렸다.

"어…."

"..."

빠르게 도약한 이지아가 단검을 엑스자로 그어 버렸고, 그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위에 있던 벽도 깔끔하게 잘려나갈 정도였다.

공격을 맞았다면 위험했을 치명상, 그러나 이지아 앞에 서 있는 건 검은색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였다.

"이…. 미친년 너 때문에 고생한 것만 생각하면!!"

"언제 거기로 이동하셨습니까?"

"알 거 없어!! 죽어!!!"

이지아가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검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가 검을 휘둘렀다.

바람이 일어날 정도로 묵직한 일격, 이지아는 그림자 표식을 이용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서로 한 번만 도약하면 닿을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대치 상황, 여인은 급박하게 이동했는지 매번 쓰고 있던 로브가 벗겨져 있었다.

커다란 가슴과 아름다운 외모의 얼굴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과는 달랐다.

노란색 홍채에 동공은 세로로 갈라져 있는 모습이 마치 뱀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씨.. 죽어! 죽어!!!"

여인이 신경질적으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여인 앞에 서 있던 기사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도약할 필요도 없이 빠르게 날아오며 무지막지하게 큰 대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치 인형을 조정하는 것과 같은 모습에 이지아는 표식들을 이용해 그녀의 등 뒤로 빠르게 이동했다.

"흥!! 이미 예상하고 있었어!!"

자신만만한 목소리와 함께, 여인의 위치가 검은 기사와 뒤바뀌었다.

검은 기사는 이미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탓에 표식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기사의 공격이 더 빨랐다.

두 단검을 교차하여 서둘러서 대검을 막아냈다.

힘의 차이 때문일까, 대검이 닿는 순간 이지아가 퉁겨져 날아갔다.

등으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에 이지아가 신음을 흘렸다.

서로의 위치를 뒤바꿀 수 있는 걸까, 모르는 정보를 얻었다.

"으윽.."

"하! 꼴좋다!!!"

다시 기사를 이동시켜 검으로 내려치려 했으나, 정신을 차린 이지아가 빠르게 회피했다.

"왜 이렇게 빠른 거야!!"

"두 번 당하지는 않습니다."

무표정한 이지아의 표정에 분노의 감정이 담기는 순간, 여인의 등 뒤로 검은색 포탈이 생겨났다.

"흥~ 혼자 놀아라. 멍청아!! 이미 실패했는데 굳이 싸울 생각은 없어서 말이야.~~"

이지아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리고 포탈로 유유히 사라지는 여인.

검은 기사는 연기처럼 흩어졌다.

분명 승부는 끝나지 않았는데 왜일까, 이 진 것 같은 기분은 말이다.

"..."

평소의 이지아에게는 보기 힘든 표정으로 여인이 사라진 자리를 계속 쳐다볼 뿐이었다.

"..."

*

"확실히 인사할 상황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구나."

"잠시만요!!"

아까처럼 냅다 주먹을 날릴 것 같은 최태수를 일단을 말리고 봤다.

아까처럼 주먹을 날렸다가 일어나는 일을 확인한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최태수가 기막을 펼쳐서 피해가 없긴 했지만, 솔직히 이 주변 일대가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난장판이 될 게 분명했으니까.

"폭발할 것 같다.. 그렇단 말인가."

"처음에도 폭발을 일으켜서 말입니다…."

"흠…."

고민하는 듯한 최태수 옆으로 슬라임들이 달려들었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주먹으로 쓰러트리는 모습이었다.

"그래.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헌터들에게 있어서 하늘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는 최태수가 내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저번에 나에게 제자 제의를 한 것도 그렇고, 아마 나에게 호의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겠지.

"코어를 정확하게 노려야 할 것 같습니다."

"코어?"

"서아야 그렇지?"

최태수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홍류석을 쳐다보았다. 온통 시꺼먼 색 덩어리에 코어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아서 그렇겠지.

"저쪽에.. 힘이 모여 있어요.."

코어의 위치가 정확하게 보이는 세아가 뒤에서 대답했다.

"흠.. 나는 느껴지는 게 없는데…."

최태수는 서아와 세아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

달려오는 홍류석들 앞에서 최태수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전 회차에서처럼 주변 공기가 내려앉고 최태수의 주변으로 마력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홍류석의 몸에서 나오고 있는 사악한 마기는 알아서 필터링하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한 점으로 모으는 것처럼 보였으나, 꼬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력에는 어느 정도의 규칙이 있었다.

'뭐 이렇게 계속 봐도 흉내도 못 내겠지만..'

본인이 세운 규칙으로 이루어진 구조이기 때문에 내가 저걸 본다고 해서 따라 할 수는 없을 거다.

나는 내 방식을 이미 가지고 있으니, 그쪽으로 걸어가야겠지.

최태수가 주먹을 앞으로 뻗었고, 거대한 파도가 홍류석을 향해 나아갔다.

아까와 똑같은 공격이었으나, 이번에는 그 범위와 위력이 달랐다.

홍류석을 중심으로 침식되어 가는 검은 대지에 일직선으로 길이 생겨났다.

"서아야!"

"응..조심해야해..!"

조금 말리고 싶은 표정의 서아였으나, 최태수가 보고 있으니 큰일이 생기겠는가.

내 신호를 받은 서아가 일직선으로 생겨난 길 위에 얼음 창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빙결의 힘이 담겨있는 얼음 창들이 서리의 기운으로 썰물처럼 밀려드는 홍류석의 점액질을 지연시켰다.

나는 그 틈에 앞으로 달려갔다.

뒤에서 촉수들이 날 방해하기 위해 움직였으나, 서아의 빙결에 힘 때문인지 지나치게 속도가 느렸다.

나는 몸을 숙여 가볍게 피하면서 홍류석을 향해 돌진했다.

한 걸음 앞으로 전진 할 때마다 거대한 슬라임이 점점 앞으로 다가왔다.

적당한 위치에 서서 마나 심법을 발동시켰다.

주변에 있는 마력을 흡수하는 게 아닌, 내 마력을 사방으로 뿌린다.

[ 항마 : 활성화 ]

[ 고유 영역 : 활성화 ]

항마의 기운이 담긴 마나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자 홍류석의 부정한 마기와 충돌을 일으켰다.

숨을 들이마셨다. 모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크라라랄라라!!!!!"

분노하는 홍류석의 촉수가 내려오는 속도도, 코어의 위치를 알려 주기 위해 날아든 서아의 얼음 화살도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모두 느리게 보였다.

이게 몰입한 상태일까.

내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이 자리에 오기 위해서 수천, 수 만 번은 반복했던 기본적인 동작이었다.

스켈레톤 나이트를 상대하기 위해서.

최태수와 대결을 할 때도.

마음속이 심란하거나 어지러울 때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반복했던 동작이었다.

검을 들어 올려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내려치기.

별거 없어 보이는 아주 기본적인 동작.

[ 고유 영역 : 활성화 ]

[ 엘레넨가 비전 검술 : LV.1 ]

아무리 뛰어난 검사라 해도,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검술에 오랜 시간을 바쳤던 엘레넨 가의 정수가 담겨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검에 의지를 담는 법을 연구하였습니다.

­ 고유 영역 안에서 의지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 고유 영역 전개 시 마력 소모량 증가

­ 고유 영역 전개 범위가 커질수록 마력 소모량 증가 ]

검이 천천히 내려온다.

내가 노리는 것은 서아의 화살이 박혀있는 곳, 집중을 위해 서아의 능력은 빌리지 않았다.

서아의 능력을 빌리지 않았으나, 아까 보았던 코어의 위치가 선명하게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화살이 박혀있는 곳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화살 너머 저 두꺼운 점액질 안쪽에 코어가 있겠지.

내가 베고 자 하는 것은 홍류석의 코어였고, 코어를 베기 위해서는 저 점액질을 몰아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까처럼 또 폭발하겠지.

그럼 저 안쪽을 배면 되는 일이 아닌가.

위로 올렸던 검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온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기본적인 동작이었으나, 거기에 담겨있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고작 검을 한번 휘두르는 동작이었으나, 대량의 마력이 내 의지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들이마셨던 숨을 내쉬기도 전, 그 찰나의 시간.

검 끝이 바닥으로 내려왔고, 무언가를 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__쿵!

느리게 흘러갔던 시간이 다시 정상적으로 흐른다.

고개를 올리자 날 향해 날아오던 촉수가 힘없이 꺾여 있었다.

정확하게 코어가 파괴된 홍류석이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성공했다!'

강한 성취감과 함께 대량의 마력이 빨려 나간 탈력감 때문일까? 다리가 휘청거렸다.

녹아내리는 점액질이 날 덮치려 하는데, 몸에 힘이 없었다.

'하 씨.. 또 로드해야 하나?'

갑자기 몸이 하늘로 붕 떠올랐다.

"재밌구나."

정신을 차렸을 때는 최태수가 날 들고 있었다.

*

"아니 세아야 김시우 생도하고 할 이야기가 있다 하지 않았느냐!"

"빨리 오세요. 할아버지!!"

세아가 최태수 할아버지를 데리고 어디론가 급하게 향하는 모습이었다.

"그…. 그러면 다음에 또 봐요!!"

"어..어.."

"그럼 이만."

나는 멀어지는 세아에게 손을 흔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지아 누나도 세아를 따라가는 모양이다.

최태수의 배려인지는 몰라도, 몇 가지 질문만 대답해 주고 다른 조사는 받지 않았다.

"위험했네, 서아는 괜찮아?"

생각도 못 한 전투 때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다. 고개를 돌리자 우물쭈물 하는 서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응? 할 말 있어 서아야?"

"호텔.. 예약했어…."

"..."

다시 힘이 생기는 기분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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