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154 서아랑 세아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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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오빠~”
금색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묶은 세아가 싱긋 웃으면서 캐러멜 마끼야또가 든 컵을 손으로 들어 올렸다.
세아가 등장한 순간부터 서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이는 서아와 세아 사이에서 눈치를 볼 수 밖에는 없었다.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시우 오.빠.?”
“어..”
세아는 분명 동생인데, 어딘지 모르게 위압적인 아우라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발랄해 보이는 여고생처럼 보이는데, 어딘지 모르게 힘이 느껴진다.
‘착각이려나….’
그래서 그런지 편하게 대하기는 조금 어려운 상대였다. 아까부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서아가 세아에게 말을 걸었다.
체형은 둘이 비슷해 보이긴 하는데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서아는 무뚝뚝하고 차분한 느낌이라면, 세아는 조금 밝고 발랄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여기는.. 어떻게 왔어?”
“아~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렸어요~ 서아 언니.”
“그걸 지금….”
“서아 언니. 저번 달부터 쓰는 돈이 많아져서 그런지 엄마가 걱정하던데…. 어디에 쓰고 있어요?”
“…”
세아의 말을 들은 서아가 세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설마 나 때문에 그런 건가 싶어서 괜히 나도 찔리는 기분이었다.
서아가 필요하다고 해서 포션을 가져다주고 있기는 한데, 싸게 넘겨 주려 해도 서아가 화를 내서 제값에 팔고 있다.
원가를 생각하면 양심이 찔리긴 하지만, 성능만 생각하면 솔직히 싼 편이다.
병도 연금술 스킬로 나름 고급스럽게 만들기도 했고, 요즘은 효과가 더 좋아서 저렴한 편이긴 하다.
그래도 찔리는 건 어쩔 수 없긴 한데.
“…”
“필요한 게 있어서…. 사고 있을 뿐이야….”
“정말로요?”
“응….”
서로 눈빛을 주고받던 세아와 서아는 합의를 내린 건지 서아가 조금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시우 오빠~”
“어…. 어.”
“혹시 원한을 살만한 행동을 하신 적 있어요?”
원한을 살만한 행동이라. 조금 걸리는 녀석들이 있기는 하다.
최근에 싸웠던 녀석들도 그렇고, 특히 역천교와 많이 싸우긴 했지. 만약 놈들이 내 정체를 알고 있다면 가장 먼저 달려들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하고 있자 세아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뭔가 적이 많으신가 봐요?”
“그럴지도…. 아니 그건 갑자기 왜 물어봐. 세아야?”
“사실은~ 지아 언니가 오빠를 노리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요~”
“지아..?”
지아, 언제 한번 들어본 이름 같은데.
‘아, 저번 사신 길드 실습 때 그 누나 이름이 이지아였던 것 같은데….’
역시 서아는 사신 길드와 연관이 있는 모양이다. 사신 길드의 간부가 개인적으로 올 정도면 위험한 일은 아닐까.
사신 길드라고 하니까 괜히 뒷조사를 당한 건 아닌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만약 다른 애들과의 관계를 들킨 거라면.
‘상상하기도 싫은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가슴을 졸이던 중, 차갑게 내려앉은 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세아의 말을 들은 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려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냉기가 돌기 시작했다.
“시우를…. 누가 노려?”
“참~ 언니. 그래서 알려주려고 왔잖아요~ 나중에 괜히 오해하지 말아요?”
“그래도…”
나를 노리는 놈이 있더라. 예상이 가는 놈들은 많지만 정확하게 누군지는 모르겠다.
“혹시 누군지 알려 줄 수 있어?”
“홍루석이였나..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
“홍류석? 그 자식이 아직도 살아있어?”
*
“…”
서아는 어딘가 뚱한 표정으로 딴 곳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여기는 저기 있는 쑥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는데~”
그도 그럴게 서아와 내 사이에 들어와 있는 세아 때문이었다. 서아와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세아의 난입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서아가 눈치를 주든 말든, 우리 사이에서 나와 서아를 끌어당기는 세아였다.
크기는 작아 보이는데 생각보다 팔심이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는 세아에게 끌려다니다시피 하며 시내를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계속…. 같이 있을 거야..?”
“응 언니? 무슨 말 했어요?”
“…”
불만이 있어 보이긴 했지만, 서아 쪽에서 한발 뒤로 물러난 느낌이다.
두 자매의 기 싸움, 의외로 동생인 세아쪽이 파워가 더 쌘 모양이다.
이순신 광장 주변으로 주변에 많은 사람이 보였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이순신 동상과 함께 바다 쪽에는 거북선으로 보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그 유명한 곳인가 봐요?”
횡단보도 옆에 붙어 있는 건물들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더운 날씨에도 저렇게 줄이 길게 늘어선 걸 보면, 일종의 랜드 마크 같은 곳이 아닐까.
줄이 긴 만큼, 음식 나오는 속도가 빨라서 그런지 나쁘지 않게 사람들이 빠지고 있었다.
“저기가 유명한 곳이야?”
“그렇데요~ 저기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는데. 오빠는 들어본 적 없어요?”
“그런 건 잘 몰라서.”
못 먹어본 음식들이 넘쳐나는 입장이라, 어디에 뭐가 유명하다고 해도 모르는 게 많았다.
“서아야 너는 들어 봤어?”
“오늘.. 같이 가려고 했는데..”
서아의 목적지 중 한 곳이었던 걸까, 서아는 침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줄도 많이 서 있고, 괜찮아 보인다!”
평소 같으면 서아를 적당히 안아 주면서 위로했을 건데, 세아 때문에 옆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빠. 서아 언니랑은 무슨 사이에요?”
“응..?”
분명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느낌은 뭘까.
마치 맹수 앞에 서 있는 초식 동물이 된 것처럼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사이 서아가 결심한 듯 중얼거렸다.
“나 시우랑.. 진지하게 만나고 있어..”
“응..? 뭐라고 했어요?”
“시우랑.. 결혼 할 거야..”
서아의 대답에 주변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뭔가 오싹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니 세아가 살벌하게 눈을 뜨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세아야..?”
평범하진 않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건 민아에게서 느낀 것 이상이었다.
[ 위협이 감지 되었습니다. ]
[ 위협이 감지 되었습니다. ]
짓눌리는 느낌과 함께 갑자기 몸이 굳는 기분이 들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기 힘들 정도로 강한 힘.
무언가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직접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건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우 오빠…? 우리 순진한 서아한테 뭘 한 건 아니죠?”
“그게….”
이미 내가 서아의 첫 경험을 가져갔다고 할 수는 없었다.
“왜…. 말을 못 해요?”
[위협이 감지 되었습니다. ]
아까보다 더 강렬한 힘이 날 짓누르기 시작한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서아가 화를 내며 세아를 말리려 하고 있었다.
날 위해 주는 건 고맙지만, 그게 세아를 더 자극하고 있는 모양이다.
‘무슨 힘이….’
이대로 가다간 뭔가 잘못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 하시겠습니까? ]
‘빨리..’
…
“그런데 오빠. 서아 언니랑은 무슨 사이에요?”
“완전 친한 친구지! 아마 아카데미에서 우리 둘이 제일 친할걸?”
“…”
“오늘도 너무 훈련만 하는 것 같아서 잠깐 바람 좀 쐬러 온 거야! 포탈이 있어서 참 편한 것 같아. 그렇지 서아야?”
서아가 살짝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나는 급하게 서아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마음이 따뜻하다 던 지.
뒤에서 남들 모르게 노력하는 모습이 멋있다던가, 계속되는 칭찬에 서아가 얼굴을 붉혔다.
“뭐.. 저희 언니가 그렇긴 하죠.”
나름 세아도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걸 보고 혼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식으로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한 건 오랜만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힘이…. 나보다 더 샌 거 아니야?’
오늘 세아와 함께 하는 동안은 계속 살얼음판을 걷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주변의 게이트를 연 여성은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보였다.
“왜 그렇게 정신 사납게 하는 거야?”
“조용히 해! 네가 그 새끼를 못 봐서 그래.”
얼마 전 검은 가면을 쓴 남자가 갑자기 달려들지 않았던가.
교주 같은 느낌은 아니었으나 마치 미래를 알고 있는 듯이 움직이는 탓에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했던 교주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모습은 솔직히 그녀에게는 공포로 남았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당한 탓에 더 그러한듯했다.
“나는 그 녀석 위치만 알려주고 갈 거야.”
“그럼 돌아가는 건 어쩌고?”
“그. 그때는 연락하면 되잖아.”
여인의 앞에 있던 남성은 답답한 듯 쓰고 있던 로브를 벗어 던졌다.
일본 요괴인 갓파를 닮은 외모에, 흉측해 보이는 뿔이 돋아나 있었다. 남자의 정체는 홍류석.
김시우에게 복수 하겠다는 일념하에서 모진 고문을 버티며 얼굴은 이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생길 수가 있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이마의 혈관이 돋아나면서 모습이 더 흉측해지자 여인은 질색하며 뒤로 물러났다.
“몰라.. 아무튼, 네가 말했던 생도 위치야. 난 간다!”
검은색 가면이 또 나타날까 두려워진 여인은 서둘러서 자리를 피하는 모습이었다.
교주도 처음 보는 존재의 등장으로 머리를 썩히고 있었으니 지금은 조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그것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홍류석은 혀를 차며 여인을 노려보았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맘에 드는 새끼가 없어.”
벽면에 매달려 있는 거울 속에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생명체가 서 있었다.
이제는 인간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외모가 되었으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김시우..”
그 이름을 되새기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
힘을 어찌나 강하게 줬던지 손바닥에 손톱이 박혀 검은색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고통스러워 보이는 상처였으나 홍류석의 얼굴은 변화 없이 평온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라져 가는 손바닥의 상처.
너는 알고 있을까. 내가 어떤 시간을 살아왔을지.
어떤 각오로 여기까지 왔는지.
“죽여주마…”
홍류석의 감정을 따라 피부의 표면에 있는 혈관들이 뱀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다려라.. 김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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