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148 비전 검술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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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놈이 칼을 들고 냅다 달려들었다.
급소를 노리는 날카로운 공격을 검의 옆면으로 흘려 버리자 놈의 몸이 무방비하게 드러났다.
그대로 한 방에 쓰러트리려는 순간 뒤에 창은 든 녀석의 공격이 날 견제하기 위해 들어왔다.
'타이밍이 생각보다….'
여기서 더 들어갔다가는 내가 오히려 역으로 공격당할 상황, 나는 당황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우리가 무조건 유리하다! 달려들어!!"
처음 공격을 흘렸던 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달려드는 모습이다.
"민지 님을 수호하라!!"
"민지 님을 위하여!!"
나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표정이 굳어졌다.
자기들이 뭔데 민지를 수호하고 말고 한다는 말인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것에 비해 놈들은 생각보다 합이 잘 맞았다.
일대일로만 따진다면 상대도 안 되는 녀석들이었지만, 서로 함께 하는 놈들을 보고 있으니 생각이 달라졌다.
놈들은 사냥 실력은 꽤 상급자라 할 수 있었다.
대형몬스터와 일대일로 이길 수 있는 헌터가 얼마나 있을까?
최상위권 헌터가 아니라면 대부분 혼자서 대형 몬스터를 쓰러트리기는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머리를 쓸 줄 아는 동물이다. 대형 몬스터의 약점과 공격 범위,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패턴 분석을 토대로 놈을 사냥한다.
개개인만 놓고 보았을 때는 약해 보이는 헌터라도, 합이 잘 맞는 다수는 개인으로는 사냥할 수 없는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
적절한 어그로를 통해 대형 몬스터의 시선을 분산 시키고, 약한 데미지라 해도 계속 축적되다보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헌팅에 있어서는 합이 잘 맞는 낮은 등급의 헌터가, 합이 안 맞는 높은 등급의 헌터들 보다 더 역량을 발휘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놈들은 합이 잘 맞는 편이었다.
"공격 후 바로 빈틈을 노려!"
"후방을 공격해!"
마치 몬스터를 헌팅하는 것처럼, 완벽한 대형을 구축하고 있었다.
앞에 있는 녀석들이 메인으로 공격하고, 창같이 사정거리가 긴 무기를 들고 있는 놈들이 빈틈을 노리거나, 내가 공격하려는 순간을 방해하는 등.
상대하기 매우 까다로운 녀석들이었다. 좀처럼 공격할 기회가 나오지 않았다.
"나 어깨를 맞았어!!"
"A12가 바로 커버해 둘 다 동시에 찌르기 공격!"
내 팔은 두 개밖에 없는 탓에 거의 동시나 마찬가지에 들어오는 공격에는 반응하기 힘들었다.
그동안 다수와 싸운 경험이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합이 잘 맞는 녀석들하고 싸운 건 처음이다.
앞서 싸웠던 녀석들은 함께 공격한다고 해도 공격과 공격 사이에 빈틈이 있었지만, 놈들은 빈틈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검술에서 차이가 나는 탓에, 유검을 이용해 검을 흘려 버리고 카운터를 치면서 한 번씩 공격에 성공하고 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공격에 성공하긴 힘들었다.
'이 짓거리를 한 두 번 한 게 아닌가….'
짧은 시간 안에 만들 수 있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겉모습에 비해서는 만만한 놈들이 아니었다.
"좋아! 계속 뒷걸음질 친다!!"
"달려들어!! 민지 님을 수호하라!!"
그나마 다행인 건, 놈들 모두가 한 번에 같이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이동속도가 떨어진다는 점일까.
제대로 된 전투는 아니지만, 놈들에게 밀리고 있다는 게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구리를 위해서 전문적인 훈련이라도 받았는지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파이어 볼!!"
"썬더 볼!!"
너무 뒤로 물러난다 싶으면 뒤에 있던 마법사로 보이는 놈들이 마법을 날려댔다.
뒤구르기로 몸을 날리자 내가 있던 자리에 놈들이 날렸던 마법이 떨어졌다.
솔직히 대충해도 이길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꽤 실력이 있는 놈들이었다.
"저 새끼 왜 이렇게 잘 피해…?"
"슬슬 불안해지는데…."
"갈! 민지 님에 대한 마음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냐!"
"흠…. 제대로 싸울 생각은 없었는데, 어쩔 수 없나."
적당히 상대해줄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해서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냥 빠르게 쓰러트리는 게 좋아 보였다.
[ 항마 : 활성화 ]
[ 소드 오러 : 활성화 ]
연습용 검에 청아한 푸른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저게 그 항마 능력인가.."
"하 별거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협동 능력이 좋다는 건 인정하겠다. 협동 능력이 좋으면 등급이 낮은 헌터들이라도 더 강한 적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도 맞다.
하지만 놈들과 나에게는 꽤 커다란 벽이 있었다.
마력을 다리에 담고 도약하는 순간, 놈들과의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어..어어..!"
생도 중에서 내 스텟은 거의 최상위 권에 속한다. 앞에 있었던 평가 때문에 저평가 된 거지 생도 중에서 B+랭크 수준의 헌터가 얼마나 있을까.
맨 뒤에 여유롭게 서 있는 놈들을 빼고는 솔직히 어중이떠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나름 중위권 정도의 자리는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내 상대는 되지 못한다.
서로서로 움직임을 보완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합이 잘 맞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공격을 버틸 수 없으면 그것도 의미가 없는 법이다.
처음에 검을 휘두른 녀석이 뒤늦게 검을 들어 올렸으나, 밝게 빛나는 오러에 검이 닿는 순간.
놈의 검이 잘려나갔다.
"사…. 살려!"
뭐 빌런도 아니고 생도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나는 검 손잡이 뒷 부분으로 놈의 턱을 올려쳤다.
한 명은 이렇게 끝.
옆에 있는 녀석들과 뒤에 있던 녀석이 창으로 황급히 공격했으나, 아까와는 상황이 달랐다.
나는 옆에 있는 녀석들의 검을 오러로 잘라 버리고 뒤에 있는 놈이 찌른 창은 다른 손으로 잡고 잡아당겼다.
"시..시발!!"
창을 꽤 세게 붙잡고 있었는지 뒤에 있는 녀석이 그대로 끌려왔다. 그대로 턱을 쳐서 기절시키고, 검이 잘려나가 당황하는 놈들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크억!!"
"푸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 놈들이 벽에 처박혔다.
"파이어 볼!!"
"아이스 볼트!!"
뒤늦게 마법사들이 마법을 날렸으나 오러에 닿는 순간 작은 충격과 함께 허공에서 그대로 소멸했다.
"저…. 저 정도라고는 안 했잖아!"
"부정행위로 랭크를 올렸다면서!!"
"잠 좀 자고 있어라."
소리를 지르는 놈들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주자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그대로 기절했다.
"미..민지 님을 수호하라!!"
"민지 님을 위하여!!"
민지에 대한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패배가 확정된 상황에서도 겁먹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건 칭찬할 만하지만, 왜 민지가 싫어하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원샷 원킬, 그냥 주먹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한 명씩 쓰러졌다.
그동안 강해진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오러는 너무 과했나….'
하긴 고작 1학년 생도 중에서 최상위 권도 아니고, 어중간한 녀석들이 현역 헌터나 다름없는 내 능력을 버틸 수는 없겠지.
공격 한방에 한 명씩 쓰러져 버리니 놈들이 자랑하는 대형이고 뭐고 다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죽지 않을 정도로 공격한 탓에 주변에서는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으으윽…."
"끄르륵..."
민지를 귀찮게 못 하게 손봐주는 건 저놈을 쓰러트린 뒤에 해야겠다.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나…."
"소문?"
"네놈이 부정한 짓으로 랭크를 올렸다는 소문이 있었지…. 뭐 상관없다."
그나마 강해 보이던 녀석은 몸을 풀면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검사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하니까."
놈은 제복을 벗어 던지며 중얼거렸다. 놈이 셔츠를 걷어 올리자 울룩불룩한 근육이 드러났다.
손을 시작으로 온몸이 점점 금속 재질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고유 능력자인가?'
금속 인간처럼 보이는 놈은 겉으로 보기에도 단단해 보였다.
"선은 넘지 말았어야지…. 김시우."
"내가 선을 넘었다고?"
"감히 민지님은…. 그런 식으로 대해? 너 같은 놈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란 말이다!!"
놈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서 나도 모르게 검을 휘둘렀다.
'실수했다..!'
크게 다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놈의 두 팔에 오러가 가볍게 막혀 버렸다. 예상을 뛰어넘은 단단함.
"크하하하!! 간지럽지도 않구나!!"
검을 밀어내고는 무식하게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오러도 막아내는 무식할 정도의 단단함.
"...?"
놈의 주먹을 피하는 순간 뒤에 있었던 벽이 과자처럼 부서졌다. 생각보다 위력이 나쁘지 않았다.
"다시는 민지 님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손봐주마…!"
한 번쯤 은 들어 본 것 같은 능력이었다. 고유능력 금속화[?化] 마력을 통해 자신의 몸은 금속으로 바꾸는 능력.
일반적인 철이나 금 같은 금속이 아니라, 상위 금속으로 변환할 경우 어떤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놈이라고 들었었다.
'아마 이놈 이름이…. 1학년 랭킹 150등 김동필인가?'
웬만한 공격은 다 몸으로 받아낼 수 있는 녀석으로, 검기도 맨몸으로 받아치는 놈이라 이름을 기억해둔 녀석이었다.
워낙 단단한 탓에 검기가 통하지 않아서 검사들의 카운터로 불리는 능력이었다.
언제 한번 놈을 보면서 얼마나 단단할지 궁금해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길 줄 몰랐다.
"혹시 김동필이냐?"
"그…. 그분이 누군지 나는 모른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그분이라고 부르기는.
"너 아니야? 금속화 능력자."
"나…. 나는 모른다! 도망만 치지 말고 덤벼라. 김시우!!"
반응을 보니 김동필이 확실해졌다. 교관들도 김동필의 단단함에 대해서 인정했다고 들었다.
놈의 주먹을 피해 검을 몇 번 휘둘렸으나 튕겨 나온 건 내 검이었다. 지금의 오러도 버티는 놈의 몸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나왔다.
'단단한 거로 유명한 놈이니 내 검기도 버티려나?'
[ 초과한 마력으로 인해 소드 오러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130% ]
[ 초과한 마력으로 인해 소드 오러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140% ]
[ 초과한 마력으로 인해 소드 오러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150% ]
...
무식할 정도의 마력을 검에 때려 넣기 시작하자 검이 주변이 마력이 무서운 기세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도망만 칠 거냐!! 김시우!!"
"얼마나 단단한지 확인해 볼까?"
놈은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는 내 검기를 보고도 평안한 목소리였다. 자신에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나는 인정사정없이 놈에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공격에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자 놈이 반응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공격에 당하기만 했으나.
'미친…. 뭐가 이렇게 단단해….‘
접촉과 동시에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격렬한 충돌 이후 오히려 밀려나는 건 내 오라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검사는 날 이길 수 없다고!!!"
위협적인 공격이긴 하지만, 나보다 민첩이 떨어져서 그런지 공격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의 오러로는 절대로 뚫을 수 없는 방어력. 내 오러의 절삭력을 시험해 볼 최적의 상대.
'이거…. 최고의 샌드백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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