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136 말할 수 없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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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는 말없이 김시우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역으로 뛰고 있는 헌터들도 1대 1로 상대하는 건 버거워 보이는 고블린을 상대로 검을 받아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른 교관들과 헌터들이 그런 모습을 감탄하며 지켜보고 있었으나, 이지아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화장실을 가겠다던 김시우가 갑자기 검은색 슈트를 입고는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에 본능적으로 미행을 했던 그녀였다.
거기서 시체를 일으키는 남자와 추적하고 있던 역천교인을 상대하는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중간에 자신도 끼어들까 했으나, 허공에 떠 있던 불길한 구체 주변에서는 자신의 능력이 발동되지 않았다.
'그건 뭐지?'
뒤를 노릴 생각이었으나, 검은 구체를 중심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A급 헌터와 B급 추적꾼을 나누는 기준은 전투력, 흔히 말하는 신체적인 능력과 마력의 수치로 분류하긴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고유 영역이다.
흔히 헌터가 마력을 사용할 때는 그 시작점은 본인의 마력 심장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A급 헌터들은 달랐다.
A급 헌터들은 자신의 고유 영역을 통해, 공간이 마치 마력 심장인 것처럼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그녀가 별다른 접촉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던 것도 고유 영역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함부로 따라갔다가는 위험했겠어….'
마치 고유 영역이 집어 삼켜진 것처럼, 그 주변에서는 그 어떤 마력을 움직일 수 없었다.
마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아무리 대단한 헌터들이라고 해도 힘을 못 쓸 것이다.
마법사가 저 공간에 영향을 받는다면, 그냥 일반인보다 몸이 조금 튼튼한 수준이라 그대로 끔 살 당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김시우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항마의 고유성인가..?'
자신을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으나, 김시우는 달랐다.
김시우의 고유능력인 항마가 그 공간과 반발을 일으키며 능력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마기가 아닌 다른 불길한 힘을 사용하는 놈들에게 항마의 힘이 더 효과가 좋아 보였다.
"이봐, 김시우 생도라고 했었나?"
"네."
"혹시 사신 길드에 들어올 생각 없나? 만약 우리 팀으로 들어올 생각이 있다면 내가 최고의 조건을…."
챔피언 고블린을 쓰러트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정호가 김시우에게 말을 걸고 있었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강민아가 한마디 말을 꺼냈다.
"저기 생도를 스카웃 하는 건 불법인 건 알고 계시는가요?"
"큼…."
김시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자 주변의 있던 생도들이 김시우에게 말을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윤승아에게 보고해야 할 사항이나,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아가씨….'
남들에게는 다 똑같아 보이는 표정일지 몰라도, 어린 시절부터 윤서아와 함께했던 이지아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껏 윤서아와 함께 지내오면서 저런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일반적인 감정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애틋한 모습에 김시우에 대해서 보고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직은 숨겨져 있는 정보들이 많아 보이지만, 지금까지 본 모습으로 판단하기에 김시우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언제부터 놈들과 싸워 온 건지, 어떻게 알고 상대하러 간 건지 걸리는 게 많긴 했으나.
'일단은 지켜볼까….'
윤서아의 상태를 보며 지금 당장은 보고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한 이지아였다.
김시우에 대해서는 그렇게 넘어가기로 했지만, 여전히 걸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놈들은 이곳에 생도들이 미리 올지 알고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아카데미 관계자들도 정확하게 어떤 장소로 올지 모르는 상황.
이 게이트에 들어올 걸 알고 있는 건 사신 길드 내부 관계자밖에는 없었다.
'배신자가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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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말을 걸어오는 애들에게 적당히 대응해 주면서 던전 탐험을 끝냈다.
놈들을 상대하면서 소드 오러 스킬 레벨도 올라갔고, 전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관심이 확 쏠린 느낌이 들긴 하는데, 지금 수준이라면 솔직히 상위 1% 안에는 들어갈 것 같다.
길고 긴 전투가 끝나고 민지네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민지 팬클럽이라 불리는 놈들 때문에 아카데미 내부에서는 그냥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긴 한데,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다은이야 다 괜찮다고 해서 다행이지만, 민아나 서아는 어쩔지 모르지 않는가.
솔직하게 민아가 나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만큼 민지를 챙기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기 때문에 우리의 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일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그건 그때 고민하기로 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할 때 절대 안심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알았다.
저번 일 이후로 어느 정도 마음이 풀렸던 것도 사실이지만, 놈들은 절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다른 차원에 있는 존재를 소환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 이 세계가 멸망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 하는 일이 닥쳤을 때, 인간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나야 경험이 있으니 놈들을 상대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당황하다가 다 당하지 않았던가.
사령술사의 능력이 까다롭긴 했지만, 거기 있던 전력으로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건 아니었다.
단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탓에 상황이 악화한 영향이 컸다.
시체가 다시 살아난다거나, 폭발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으면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그 자식은 그딴 능력을 갖추고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뭐 솔직히 대답이 돌아올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뭐가 아쉬워서 굳이 이런 일을 벌이고 다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놈들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정체를 숨기고 살 수 있을 건데.
[ "이유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마무리를 잘하셔서 다행입니다." ]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마키나의 말에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저런 말도 해주고, 처음하고는 많이 달라진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기계처럼 딱딱한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목소리에서 감정이 느껴졌다.
오늘 일로 깨달은 게 있었다. 우리 애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올지 모르니까. 대응하려면 힘을 기르는 수밖에는 없겠지.'
기상천외한 방법을 사용하는 놈들이니, 언제 어디서 사건이 터질지 몰랐다.
그럴 때마다 받아치기 위해서는 역시 수련 또 수련이었다.
'소드 오러스킬 레벨만 좀 더 올리면 비전 검술을 배울 수 있었던가.'
비전 검술도 익히고, 서아의 특성인 천상의 투시자에도 더 적응해야 겠다.
연막 속에서 투시자를 사용하면 모든 마력의 흐름이 보이는 탓에, 투시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으니, 시야가 겹쳐 보인다는 단점도 무마시킬 수 있었고.
문제는 연기가 없는 평상시에는 아직 사용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겠는가.
나는 적당히 주변을 확인하고 민지가 사는 빌라로 들어갔다.
벨을 누르자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민지가 문을 열었다.
집에서는 편한 옷차림을 좋아하는 탓에, 하얀색 탱크톱 상의에 분홍색 돌핀 팬츠를 입고 있었다.
돌핀 팬츠 밑으로 터질 것 같은 새하얀 허벅지가 밑으로 쭉 뻗어 있었다. 거기에 큰 가슴 때문에 양옆으로 늘어난 탱크탑의 로고도 매력적이었다.
"민지야 안녕."
"아..아까 헤어졌는데 무슨 안녕이야.. 멍청아."
코를 자극하는 민지의 살내음에 음심이 자극되었다. 솔직히 놈들을 상대한다고 그렇게 고생했는데,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거기에 강해지기 위해서는 히로인들과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던전에서 나온 뒤에, 사신 길드에서 관리하는 사워 시설에서 씻고 왔으니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민지를 품에 안으려 했는데 민지가 갑자기 팔을 밀어냈다.
"김시우, 너 다친 곳 있지?"
"응? 내가 다친 곳이 어딨어."
"너 뒤쪽에 다친 곳 있잖아! 내가 몸 막 쓰지 말라고 했지!"
민지가 구급상자를 가지고 와서는 내 상의를 벗기기 시작했다.
"고블린이랑 싸우다가 다쳤으면 교관들한테 말을 해야지! 멍청아!"
고블린이랑 싸우다가 난 상처는 아니었다. 앞에 있었던 사령술사와의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다.
조금 쓰리긴 한데, 그렇게 치명상은 아니었다. 대련에서 다친 적이 없는데 치료를 받으면 혹시 내가 슈트를 입고 싸운 게 걸릴까 봐 일부로 치료받지 않았다.
늦게 온 것도 이상하게 보이는데, 거기에 부상까지 입었으면 정체를 숨긴 게 의미 없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일부러 괜찮은 척하고 있었는데, 민지 눈에는 그게 보이는 모양이다.
"어떻게 알았어?"
"버스에서 그러고 있으면…. 누가 몰라.."
졸면서 티가 난 건가, 머리를 긁적이고 있자 민지가 한숨을 깊게 쉬면서 내 등 쪽에 약을 뿌리기 시작했다.
살짝 따끔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동안 당했던 상처들과 비교하면 별거 아닌 통증이었다.
"안 아파..?"
"이 정도는 익숙한데…."
그 말을 들은 민지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옛날에는 항상 혼자였는데, 이렇게까지 날 신경 써주는 사람이 생겼구나. 갑자기 벅찬 기분이 떠올랐다.
나는 약을 발라주고 있는 민지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너…. 가만히 있어! 어제도 그..그렇게 해놓고는…."
민지에게는 하루밖에 안 지났겠지만, 나는 아니다.
"하읏.. 야! 가만히 있으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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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갑자기 쉬는 날이 될 줄 몰랐네~"
최윤아는 기분 좋은 콧노래를 내며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은행장의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휴일을 선물 받았다.
"그러고 보니까 민지한테 장비가 맞았는지 모르겠네?"
오늘이 던전 탐험을 하는 날이라고 했으니, 안에 들어가서 자신이 선물했던 장비를 사용해 봤을 텐데, 만족했을지 모르겠다.
갑작스럽게 받은 휴일이라서 그런지 더 기분이 좋아졌다.
"음... 내일 쉬는 날이니까 놀라게 해 줄까?"
그러고 보면 최근에는 거의 술을 못 마시지 않았던가. 당장 같이 마실 사람을 떠올렸으나 떠오르는 이들이 없었다.
당장 떠오르는 이들은 자신의 딸들, 교수인 민아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민지는 내일 출석해야겠지…?"
혼자 마시기는 쓸쓸하지 않겠는가.
"민지가 꼭 마실 필요는 없으니까.. 반주로 살짝..?"
최윤아는 적당히 강민지를 놀려줄 생각으로 마트로 향했다. 오랜만에 딸과 수다를 떨 생각을 하니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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