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135 던전 탐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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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조된 목소리지만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터질 것 같은 분노의 표출하는 남자는 심호흡과 함께 자신을 억눌렀다.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있긴 하나, 겉으로 드러나는 살기에 자신의 목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자신은 이곳에 와 다른 인간을 본 적이 없으니, 자신의 옆에 있는 여인에게 원한을 품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왜 자꾸 날 보고 있는 것 같지.’
떳떳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 와서 아직은 그 어떤 일을 한 적 없었다.
“아시는 분입니까?”
“몰라 저런 녀석….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렇지요.”
혹시 자신의 옆에 있는 신의 사자에게 원한을 가진 인간인지 알았는데, 반응을 보니 모르는 눈치였다.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으니, 누군지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의 검은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며 검은색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루이는 저 기운과 비슷한 기운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 프레이야 교단의 사제들, 흔히 신성력이라 부르는 힘에게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이었다.
정화를 뜻하는 새하얀 빛과는 상반되게 검은색으로 타오르는 불꽃이었지만, 꺼림칙 하다는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누구신지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꺼져. 이미 할 말 없으니까.”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상대방의 태도에 조금 당황하긴 했으나, 어차피 죽여야 할 상대라는 건 똑같았다.
이 게이트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을 죽이는 게 조건이었으니, 상대방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에 사는 인간들은 마수들을 사냥해 전리품을 얻는다고 했던가, 이곳은 상품 가치가 없는 시체들을 묻는 장소였다.
사방에는 죽음의 기운이 깔렸었다. 전쟁터에서나 느낄 수 있는 진득한 기운은 사령 술사를 강하게 만든다.
남자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안쪽에는 온갖 몬스터 들의 시체들이 묻혀 있었다. 조금만 가까이 온다면 시체 폭발을 통해 남자를 죽일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 시체를 터트리는 일도 가능하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명령을 내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터트리는 게 더 빠르게 터트릴 수 있기에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남자가 이쪽으로 접근하는 걸 기다리는 게 좋아 보였다.
상대방이 어떤 수단으로 공격할지 모르고 있는 건 엄청난 이점을 가져온다.
그러니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한 발짝 만 더 가까이 오는 게 좋았다. 저쪽에는 시체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상하군요.’
남자와 자신과의 사이의 거리는 절묘하기 그지없었다. 시체가 빼곡하게 쌓여있는 주변과는 다르게 듬성듬성하게 시체가 묻혀 있는 곳에 정확하게 서 있었다.
마치 바닥에 시체가 있고, 자신이 시체를 폭발시킬 수 있다는 걸 아는 게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거리.
‘착각이겠죠.’
남자는 주변에 있던 시체들을 사령술을 통해 일으켜 세웠다. 이미 이 주변에 있는 시체들은 남자의 지배 아래 있었다.
가장 최근에 죽어 사기가 가득한 고블린들이 흙더미에서 손을 뻗어 위로 올라갔다.
처음 보는 풍경일 게 분명할 건데, 너무나 침착해 보이는 대응이 걸렸으나, 고작 혼자서 수백이 넘어가는 죽음의 군단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죽음의 벽을 넘어온 고블린 수십 마리가 남자를 쓰러트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시선이 끌리면 안 되니까. 조용히 처리해!”
“알겠습니다.”
숫자의 차이는 대부분 절대적인 결과를 만든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팔과 다리는 제한되어 있으니 한 번에 한 가지의 동작밖에는 취할 수 없다.
고블린 수십 마리가 동시에 공격하는 걸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그렇게 생각했으나,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뒤에서 들어오는 공격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가볍게 몸을 움직여 피하고는 불길해 보이는 검은 불꽃으로 고블린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제국 검술..?”
기사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제국 검술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0.1초의 멈춤도 없이 깔끔하게 이어지는 연격에 고블린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자르거나 심장을 터트려도 고블린을 멈출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처럼 팔과 다리를 제거해 고블린들을 무력화 시키고 있었다.
특히 위험해 보이는 건 저 검은 불꽃이었다. 잠깐 닿는 것만으로 뜨겁게 달구어진 불판에 닿은 것처럼 고블린들이 치명상을 입고 있었다.
어떤 힘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사령술사에게 치명적인 기운인 건 틀림 없었다.
제국의 검술을 쓰는 인간이 갑자기 여기에 왜 나타난 건지 의문이 가득했으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의 주변에는 팔다리가 잘려나간 고블린이 쌓여있었다. 시체 폭발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겠지.
루이가 고블린을 폭발시키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남자의 주변에서 작은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막탄이 터지면서 루이의 시야를 가려버렸다. 뒤늦게 고블린들이 폭발하기 시작했으나 모든 폭발이 실패로 돌아갔다.
“앞.앞! 앞에!”
“..?”
순간 발밑으로 동그랗게 생긴 물체가 굴러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루이가 보호막을 사용해 공격에 대응했다.
폭탄에 시선이 팔린 사이에 가면을 쓴 남자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시선을 빼앗은 건 대단하긴 하지만, 거기에는..”
남자의 움직임을 보고 시체를 폭발하려는 순간 사방으로 연막탄이 폭발했다.
__펑! 펑!!
남자의 위치를 짐작해 뒤늦게 시체들을 폭발시켰으나, 남자는 이미 빠르게 움직인 뒤였다.
황급하게 주변에 있는 시체들을 반복적으로 폭파했다. 그런데도 남자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폭발을 피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주변에 계속해서 연막탄을 던져서 연기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려진 시야 속에서 점점 달려오는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인간이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가?
사방에 지뢰가 깔린 걸 알면서 저렇게 달릴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마치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미리 알고 있는 게 아니면 불가능한 움직임이었다.
분명 해골이 되면서 땀 같은 걸 흘릴 수 없는 몸이지만,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 잠깐의 사이에 점점 좁혀지는 거리, 루이는 결단을 내렸다.
한 마리를 폭파해서 안 된다면, 여러 마리를 동시에 폭발시키면 된다.
아무리 움직임이 재빠르고 대단하다고 해도, 광역 범위로 터지는 폭발을 피할 수는 없을 거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자신도 모르게 공포심이 생겨났다.
__펑!! 퍼엉!!!! 펑!!!
폭발음 때문에 거리를 예측하기 힘들었으나, 폭발로 연기가 날아가면서 살짝살짝 보였던 속도를 예측해 범위를 지정했다.
남자가 도착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시체를 한 번에 폭파 시켰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땅이 뒤집히고, 사방으로 살덩이들과 뼛조각 그리고 몬스터 들의 내장 파편이 튀었다.
터지는 시체들의 숫자가 어찌나 많은지 사령술사의 앞으로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날 정도였다.
그 폭발의 여파로 온갖 파편들이 날아오는 걸 베리어를 통해 막아냈다.
“뭐하는 거야! 조용히 처리하라니까!!”
흙먼지가 가라앉고, 처참하게 박살 난 주변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상대였습니다. 놈의 움직임을 보지 못한…”
여전히 목이 따끔거리는 기분에 고개를 돌려보니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있던 가면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시체가 없겠네?”
“이런!! 설마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움직였단 말입니까?!”
가면을 쓴 남자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루이는 서둘러서 다크 에로우와 다크 파이어 볼을 남자에게 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마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험한 흑마법이 남자를 향해 날아갔으나, 맞추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다.
아까와 같은 기묘한 움직임으로 삽시간에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간혹 하나씩 남자에게 닿았으나, 남자의 검기에 의해 무참히 잘려나갔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남자의 검기는 딱 봐도 위험해 보였다. 분명 죽음을 초월한 몸이 되었음에도 공포심이 일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야! 빨리 어떻게 해봐!!”
“저라고 안 그러고 싶으신지 아십니까! 마치 미래를 보는 것처럼 움직인다고!!!”
자신이 언제 공격할지, 어디를 공격할지 모두 안다는 것처럼 움직이는 상대를 어떻게 상대하란 말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거리가 이미 좁혀져 있었다.
뒤늦게 베리어를 발동했으나, 전기톱 같은 소리를 내는 가면남의 검이 베리어를 단숨에 찢어버렸다.
항마 능력은 사령술과 상극이었다. 마치 정화라도 하는 것처럼 사기를 검은 불꽃이 태우기 시작했다.
‘이러면 믿을 건 그분 밖에!!!’
루이는 자신의 뒤에 떠 있는 검은 구체에 시선을 돌렸다. 순리를 거스르는 힘.
가면남은 현재 교주의 영역에 들어왔다. 교주의 지배권에 들어가 있는 공간에서는 그 잘난 헌터들도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뒤에 있는 구체가 빛나며 가면남의 힘을 억제했다.
“하! 이건 몰랐겠지!!!!”
무방비한 남자에게 마법으로 공격하면 끝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라고 해도 결국은 인간이지 않은가.
마법으로 공격하려는 루이의 시선이 이상하게 변해있었다.
“모르는 건 너희지.”
남자의 검이 루이의 몸을 반으로 잘랐다. 당황한 그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검은 불꽃이 교주의 힘에 저항하는 모습이었다.
“이 쓸모없는 놈이 진짜!!”
루이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여인이 이미 포탈을 열어 도망치려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 저 구체가 있는 이상 나는….’
“잘 가라 새끼야.”
그의 희망은 얼마 가지 못했다. 자신의 힘의 원천이 저 구라는 걸 알고 있던 걸까.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는 검이 구체를 반으로 가르고 있었으니까.
“아아…”
모든 게 끝이었다. 루이는 그대로 의식이 끊겼다.
“하아.. 하아.. 짜증나는 놈”
그 모습을 암살자 복장을 한 여인이 나무 뒤에 숨어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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