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 127 던전 탐험 (2)
* * *
*
적당히 넘어가려고 인벤토리에서 꺼냈던 물건이었는데, 사실은 쓸모 있는 물건이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퀘스트 클리어 보상이었나?’
옛날에 클리어 보상으로 받은 물건인데,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는 상태로 방치된 물건이었다.
중간에 사건 사고들이 잦기도 했고, 뽑기에서 잡탬들이 워낙 많이 나오다 보니 구석에 밀려있던 물건이었다.
언제 한번 확인해 보겠다고 다짐하긴 했었는데, 히로인들을 공략하다 보니 완전히 기억 속에서 잊혀진 물건이었다.
“열쇠는 꽝인 줄 알았는데….”
꽝인 줄 알았던 열쇠에서 비슷한 기운이 느껴진다 한 걸 보면, 보물상자가 실존할지도 모르겠다.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가리키는 지도라고는 하지만, 정확하게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었다.
민감한 정보이다 보니 감정을 받았다가, 괜히 타인이 끼어드는 것도 골치 아팠다.
반에서 다른 애들이 조금 관심을 가지고 보긴 했지만 가치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 그냥 그렇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가치를 알아보면 또 모르지.’
서아와 다은이가 무언가 느껴진다고 하긴 했지만, 나나 민지는 사실 느껴지는 게 없었다.
둘이 마력에 대해서 민감한 건 알고 있었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영역까지 감지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수석과 차석은 확실히 다른 모양이다. 엄청난 재능에 다른 사람이 질투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뭐 둘 다 내 여자니까.’
둘 다 내 여자니까 재능을 질투할 필요는 없었다. 둘의 재능은 나에게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손해가 될 게 하나도 없었다.
둘다 무언가를 느끼기는 했었는지만 알아낸 건 없었다.
아마 전문가에게 부탁해야겠지, 괜히 부탁했다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감정이 있었다.
그쪽에서 모른척하고 보물을 챙겨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쪽으로는 문외한이다 보니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또 믿을 수 있을지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확신하기는 힘들지만, 이런 일을 부탁하기에 가장 알맞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들어오세요.”
문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닫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지적으로 보였던 민아의 표정이 한순간에 풀어졌다.
단둘이 있을 때는 저렇게 애정이 어린 표정으로 날 대해주고는 했다.
“무슨 일이신가요? 서방님.”
생글생글하는 민아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또 괴롭히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인 일단 자제하기로 했다.
“부탁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무슨 부탁인가요? 서방님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줄 수 있어요!”
그렇게 거창한 부탁은 아닌데, 나는 인벤토리를 조작해 지도부터 꺼내 들었다.
“양피지…?”
다음은 비슷한 기운이 느껴진다 했던 녹슨 열쇠를 찾아 인벤토리를 뒤적였다.
열쇠를 누르려다 옆에 있는 성인용 젤을 꺼내버렸다.
“저…. 서방님 지. 지금 시간에는 그러니까….”
성인용 젤을 본 민아의 얼굴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지금은 쉬는 시간에 잠깐 들린 거라 민아를 안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자..잠시만…! 서방님 안 돼요.”
“항상 들고 다니는 거야?”
“서…. 서방님이 주신 거니까….”
잠깐 놀리려고 플러그를 조작하자 민아가 몸을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하기에는 둘 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냥 좀 놀려줄 생각이었는데 민아의 반응이 좋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괜히 괴롭히고 싶은 매력이 있다고 해야 하나, 민아는 그런 여자였다.
그래도 본래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농담이야. 이 열쇠랑 같이해서 뭔가 아이템 같은데 나는 전혀 알 수 없어서.”
나는 민아에게 양피지와 녹슨 열쇠를 건네주었다. 민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양피지와 열쇠를 받아들었다.
“저.. 서방님..”
“응?”
“그..그러면 진동 좀 꺼주세요….”
“아 깜빡했네.”
플러그에 진동을 끄자 민아가 겨우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잔뜩 풀어져 있는 게 자극적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평범한 물건은 아닌 것 같아서. 좀 살펴봐 줄 수 있어? 부탁할 사람이 민아밖에 없네.”
“흠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민아는 안경을 꺼내 들고는 지도를 뚫어져라 보기 시작했다.
대량의 마력이 움직이더니 정교한 모양의 마법진으로 변했다. 안경 주변에 생겨난 마법진으로 말없이 집중해서 지도를 살펴보고 있었다.
내가 안아줄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보니 뭔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교수긴 교수지?’
박사 과정을 통해 정식으로 교수가 된 건 아니고, 현역으로 활동했던 경력에 마법 논문들을 인정받아 교수가 된 거로 들었었다.
마법이라는 게 사실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엄청나게 복잡한 영역이라 사용하는 게 싶지 않다.
민아가 한 마법 연구들도 대부분이 인정하는 분야니까, 민아도 보통은 아닐 거다.
내 밑에 깔려있을 때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뭐 좀 알겠어?”
“평범한 물건은 아니네요. 마력 회로가 삼중 배열로 새겨져 있는데 정교한 걸 보면 보통 수준으로는 흉내도 못 낼 정도예요.”
“그렇게 대단한 거야?”
“일반적인 헌터들은 2중 마법 진도 사용하기 힘들어해요. 거기다가 이렇게 작은 공간 안에 삼중 배열로 정교하게 새겼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에요.”
“너한테도 힘들어?”
“네…? 저요? 3중 마법진은 사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회로를 세기는 건 분야가 달라요. 마법이라고 하면 흔히들 뭐든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데…”
마법을 만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쌓인 게 많았는지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투덜투덜 거리는 게 이건 이거대로 귀여워 보였다.
“그래서 뭐 좀 알아낸 게 있어?”
“지금 당장으로는 힘들 것 같아요. 단순히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서방님 이런걸 어디서 얻으셨어요?”
“그냥.. 던전에서?”
“던전이요? 해석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서방님.”
*
사신 길드 내부에 있는 접객실, 드넓은 공간에 한 명의 여인이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공간에는 오직 단 여인 한 명밖에는 없었다.
소수의 인원이 대기하는 장소치고는 꽤 넓어 보였으나, VIP 고객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인 만큼 일부로 차별을 둔 곳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여인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우아하고 여유로운 움직임이었으나, 터질 것 같은 가슴과 허벅지, 농후한 몸매와 분위기 때문인지 묘하게 색기가 느껴졌다.
본래의 나이에 절반도 되어 보이지 않는 외모를 한 최윤아가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넓은 통유리 너머로 도시의 풍경과 세파란 하늘이 보였다.
코를 자극하는 커피의 향은 딱 봐도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윤아 네가 여기는 무슨 일이야?”
“승아 너는 하나도 안 변했네?”
쌓여있던 업무를 처리하던 윤승아는 최윤아의 방문 소식에 버선발로 내려왔다.
오랜만에 만남에 반가워진 윤승아가 최윤아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커다란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역시.. 이 촉감! 윤아야!”
“간지러워, 잠깐만 그렇게 주무르지 마! 하앙!!”
“…?”
손가락이 파묻히는 거대한 가슴을 평소처럼 쥐었을 뿐인데 야릇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가..갑자기 주무르면 어떻게 해….”
평소처럼 했을 뿐인데 최윤아의 반응이 유독 민감했다. 어색한 분위기에 윤승아가 최윤아의 가슴에서 손을 뗐다.
부드러움과 살짝살짝 느껴지는 근육의 단단함, 그 특유의 촉감을 더 즐기고 싶었는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도 하는 건데….”
“그.. 몸이 안 좋아서 그래….”
최근에 강민지의 집을 방문한 이후부터 잊고 있었던 성욕이 피어나는 중이었다.
그 탓인지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윤승아의 행위에 과민하게 반응해 버린 그녀였다.
“그래,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거야? 뭐 필요한 거 있어?”
최윤아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는 윤승아는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아니. 그냥 너 얼굴 보러 온 거야.”
“정말?”
윤승아는 말괄량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최윤아의 품에 안겼다. 윤승아의 행동에 한숨을 쉬면서도 받아주는 게 보통 사이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최윤아의 몸은 역시 최고였다. 거대한 가슴과 말랑거리는 허벅지, 아주 그리운 촉감이었다.
딸인 서아는 사춘기가 지나서 그런지 가슴을 만지지 못하게 하고, 이지아는 반응이 없지 않던가.
“자..잠깐만 하지 말라니까…. 하..하읏..!”
그에 비해 최윤아는 아주 반응이 좋았다. 하지 말라고 발버둥 쳤으나 윤승아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윤승아..!”
결국, 최윤아가 소리를 치고 나서야 윤승아의 행위가 끝을 내렸다.
둘은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 길드에서 활동할 때 이야기.
서로의 딸들에 관한 이야기 등, 한번 말문이 열리자 계속해서 대화 주제가 쏟아져 나왔다.
“우리 민아도 슬슬 결혼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야.”
“민아보다는 너부터 먼저 해야지.”
“나는 괜찮아. 그 사람보다 더 괜찮은 사람도 없고, 이미 나이가 이렇게 들었는데 누굴 다시 만나겠어.”
“그 외모면 좋다고 달려들 사람이 많을걸?”
“그런 사람은 싫어. 그냥 만족해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진 않아. 민지나 민아 크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만족스럽고….”
“그런 애가 이런 걸 들고 다녀?”
윤승아는 염동력을 이용해 최윤아 가방에 들어있던 길고 굵은 봉을 꺼내 들었다.
바이브레이터, 흔히 여성용 자위기구라 부르는 기구였다. 윤승아가 조작하자 진동하며 떨기 시작했다.
__윙… 윙…
“야! 윤승아 너 죽여버린다!! 빨리 안내려나?!!”
__윙!!! 윙!!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면서~”
“빨리 꺼!! 너 진짜!!”
요리조리 도망치는 윤승아를 잡기 위해 최윤아가 계속 달려들었으나, 둘의 능력 차이 때문에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화난 최윤아가 능력을 상용했다.
“… 디버프!!”
“윤아야..?”
붙잡힌 윤승아의 볼기짝을 한 대 때려준 최윤아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생기발랄했던 그녀는 그 짧은 순간에 몇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어린애도 아니고…. 하아. 너랑 있으면 십 년은 늙는 기분이야….”
“미안해. 화난 건 아니지?”
윤승아가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건 최윤아가 유일했다. 그녀의 이름값이 너무 무거워진 탓이었다.
사신 길드의 마스터 이자, 대한민국의 S급 헌터인 그녀를 평범하게 대해 줄 사람은 정말로 손에 꼽았다.
그러다 보니 최윤아가 겉에 있으면 괜히 장난을 치고 싶어지는 윤승아였다.
“그나저나. 이런 건 왜 들고 다니는 거야?”
“시..시끄러! 너도 남편이랑 할 거 아니야!”
“나는 해본 적 없는데…?”
“아.. 일반인이라고 했지..”
“이런 게 뭐가 좋은 거야?”
윤승아는 자신의 남편과 손을 잡는 것 이상의 접촉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안쪽으로 딸 아이를 가지기 위해 들어왔던 건 정자를 담은 주사기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그게 뭐가 좋다고 이런 물건을 들고 다니는 건지 궁금증이 생기긴 했지만, 최윤아가 더 언급하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에 주제를 변경했다.
“그러고 보니까 곧 있으면 던전 실습할 거 같던데 알고 있어?”
“서바이벌이 아니고 던전 실습이었어…?”
“모르고 있었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