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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세이브로 따먹다-126화 (126/235)

〈 126화 〉 126 던전 탐험 (1)

* * *

*

“이거 아무리 봐도 민지 취향은 아닌데…?”

최윤아는 강민지의 집 주위에 흩어져 있는 낯선 물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강민지의 취향을 벗어난 물건들이 집안에 많이 있었던 탓이었다.

아카데미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자주 만나기 힘들었으니, 그동안 취향이 변해도 이상한 건 없었으나.

그녀의 촉이 이건 남자 물건이라고 알려 주는 것 같았다.

“자..자꾸 거기는 왜 들어가는 거야!”

오랜만에 민지의 집에 와 물건 좀 구경하려 했으나, 매번 강민지가 와서 자신을 막아댔다.

그녀의 나이를 생각할 때 이제는 본인 프라이버시를 챙길 나이가 되기는 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치울 수 없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반응하지 않았으니까.

‘전에는 이렇게 신경 안 썼는데?’

의심의 눈초리를 확인했는지 급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엄마는 다음 평가가 뭔지 알아요?”

“저번에 던전 타임어택 했다고 했었지? 아마 서바이벌이었나….”

그녀도 대한 아카데미 출신이었으나, 너무 오래전 일이라 확신 있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이번 평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구석에 쌓여 있던 반찬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냉장고에 안 넣었어?”

“자꾸 신경 쓰이게 하니까 그렇지…. 무슨 반찬을 이렇게 많이 챙겨왔어?”

“다 우리 딸 챙겨주려고 그러지~ 민지는 내가 해주는 반찬이 제일 맛있다면서~”

“그렇긴 한데….”

“엄마가 냉장고 정리하는 거 도와줄까?”

“혼자 할 수 있거든, 그냥 저기에 앉아 있어.”

“같이하면 금방 끝나겠지~”

금방 끝내고 수다나 떨 생각에 냉장고 문을 다시 열었다.

혼자 살다 보니, 자신이 챙겨준 반찬을 다 못 먹을 때가 많았다.

기왕 만들어 준 걸 다 먹지 않은 모습을 보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항상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남은 반찬들은 새로운 반찬을 만들면 그냥 말없이 챙겨가곤 하는 그녀였다.

‘생각보다 많이 먹었네?’

평소에는 많이 남았던 반찬들도 이번에는 이상하게 많이 비어 있었다.

갑자기 식성이 좋아져서 다 먹었을 수도 있지만, 싫어하는 반찬들도 이번에는 꽤 많이 비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최근에는 더 이뻐진 것 같은데…?’

반찬을 집어넣던 최윤아는 고개를 돌려 강민지의 얼굴을 확인했다.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외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는 그녀였다.

당연히 그녀의 유전자를 받은 자신의 딸들도 어디를 가든 남자들이 쳐다볼 정도로 외모가 뛰어났다.

근접계열 헌터답게 탄탄한 몸매와, 커다란 가슴 거기에 차가운 미녀의 얼굴을 하는 자신의 딸은 이전에도 예쁜 편이었지만, 지금은 더 예뻐 보였다.

‘피부도 더 좋아진 거 같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수상했던 퍼즐 조각들이 한둘씩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집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어 따로 챙겨줄 부분이 없어 보였다.

옛날에는 이렇게까지 깨끗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확실한 걸 보기 전까지는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최윤아는 의심을 잠시 접어두고 집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리 민지 쓰레기는 잘 버리고 있지?”

“주말마다 버리거든, 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 건 신경 안 써도 돼.”

“분리수거는 그때그때 해야지!”

“별로 쌓여 있지도 않다니까….”

한숨을 쉬는 민지를 뒤로 한 체 베란다로 나가 분리수거 상태를 확인해 보는 그녀였다.

이전과는 다르게 분리수거도 깔끔하게 되어있었다.

“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거실로 돌아가려는 순간, 코끝을 찌르는 냄새가 있었다.

구석에 묶여있는 종량제 봉투가 의심스러웠다.

헌터 였던 그녀는 일반인보다 더 민감한 후각을 가지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미약한 향이었으나, 그녀의 후각에는 정확하게 인지된 상태였다.

종량제 봉투에서 야릇한 향이 풍겨오고 있었다.

‘민지한테 남자가 생겼나?’

그녀의 남성 혐오 증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기에 남자가 생겼다는 건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그동안 만날 때마다 남자 소식은 없냐는 말에 매번 화를 내던 딸아이가 아니었던가.

남자 친구가 생긴 것 같아 다행이긴 했으나, 벌써 집에 들이고 있는 건가 싶어 걱정과 함께 알 수 없는 감각이 일어났다.

홀로 딸아이들을 키우는 탓에, 둘 다 철이 빠르게 들어, 남들이 하는 투정 같은 것도 하지 않고 스스로 다 하려는 모습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가.

딸아이들이 원하는 일이라면 그게 무슨 일이든 들어줄 생각이 있었지만, 이런 것까지 허용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치만 이상한데…?’

기분 나쁜 꾸릿한 향 속에서, 아주 진한 향기가 올라왔다.

매일 맡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향을 맡는 순간 그녀의 몸이 살짝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과 사별한 지 벌써 십수 년이 지나면서 이미 잊었다고 생각한 감각이었다.

왠지 모르게 아래쪽이 자꾸 간질거렸다. 남편과 사별하고 정조를 지켜오고 있는 상태기에 가끔 이런 감각을 느끼긴 했으나.

이번에는 무언가 달랐다.

“후우.. 내가 왜 이러지….”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어! 어…. 그냥 우리 딸이 분리수거 잘했는지 확인했지…?”

“그걸 왜 확인해…. 오랜만에 본 거니까 밥이나 먹으러 가요.”

“으..응 우리 민지 뭐 먹고 싶어?”

*

“김시우 이번 주말에 어디 갔다가 왔어? 연락도 잘 안 되고…. 그 내가 걱정했다는 게 아니고 파트너로서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잖아.”

수업을 시작하기 전 쉬는 시간, 민지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시우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 모습을 구경하던 다은이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 주말에 시우가 어디에 갔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아마 그걸 물어보는 모양이었다.

‘민지도 보기 하고는 다르구나?’

날카로운 눈매에 여자애들이 흔히 걸크러쉬라 부르는 스타일처럼 보이는 민지였는데, 주말 동안 연락이 안 되는 시우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둘이 사귀는 사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지 그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다은도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가 변하게는 게 아닌 이상, 김시우의 행동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으니까.

사실 그거와는 별개로 궁금하기는 했다. 조용히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응..?”

민지의 질문에 김시우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궁금증이 커지는 순간 민지의 뒤쪽에 있는 서아가 살짝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도 서아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표정을 볼 줄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던전에 좀 다녀왔어. 그냥 실전 경험 좀 쌓으려고….”

김시우가 대답하는 순간 서아가 재밌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아가 웃는 타이밍이 묘하게 절묘했다. 갑자기 웃었을 리는 없고, 시우가 말을 할 때마다 저런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자신처럼 사랑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뭔가 수상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서아도..?’

생각해 보면 서아가 자신보다 더 오랫동안 시우와 함께 있지 않았던가.

시우 정도 되는 남자라면 서아가 좋아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윤서아는 정말 남자라고는 모르고 살 것처럼 보였는데, 정말로 의외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뒤에서 민지 몰래 시우와 신호를 주고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아의 저런 모습은 처음이라서 그런지 낯설긴 했지만,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였다.

‘서아도 챙겨줘야겠다.’

한 남자를 같이 따르는 여자들끼리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내려면 중재자가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이건용 할아버지의 셋째 부인인 엘리자베스 할머니에게 배우지 않았던가.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30대 초반의 젊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아무튼, 셋째 할머니도 자신을 항상 챙겨주시는 분이 아니던가.

시우의 표정이 곤란해 보여서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던전에 갔다가 온 거 맞아?”

“그럼, 그래서 연락이 안된 거야…. 진짜 갔다가 왔어.”

“…”

“아니야, 이것 봐봐.. 던전에서 지도도 얻었어.”

“지도..?”

종일 연락이 안 될만한 일은 던전에 들어가는 것밖에는 없지 않은가.

던전에 들어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인지, 아이템으로 보이는 지도를 팔찌에서 꺼내 들었다.

낡은 지도에는 범상치 않은 힘이 느껴지는 게 정말로 아이템처럼 보였다.

‘내가 착각했나..?’

주말 동안 서아와 함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저 지도를 보니까 정말로 던전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보였다.

“감정받을 곳을 못 찾아서….”

“너 나한테 말도 안 하고 혼자 던전에 들어갔어?”

“아니 그게..”

저번에 4인조 평가에서 시우와 내가 사건에 휘말린 뒤로부터는 시우에 대해서 더 신경 쓰는 게 눈에 들어왔다.

혼자서 위험한 던전에 들어갔다고 하니, 민지가 그 부분에 대해서 화난 것처럼 보였다.

‘내가 도와줘야지!’

둘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책상 위에는 가죽 재질로 된 지도가 있었다.

오래되면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고급스러워 보였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마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시우야 이건 뭐야?”

“아, 던전에서 얻은 건데….”

“김시우 내가 혼자….”

“평범해 보이는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서아야 너도 혹시 느껴지는 게 있어?”

“응.. 평범한 지도는 아닌 것 같아..”

다행히 대화 주제를 변경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근데 정말로 평범한 물건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평범한 지도가 아니라고..?”

오히려 시우가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그럼 이것도 뭔가 달라 보여?”

팔찌에서 낡고 녹슨 열쇠를 꺼내는 시우였다. 열쇠에서도 미약하지만, 마력이 느껴졌다.

“둘 다.. 비슷한 느낌이야..”

마력에 민감한 서아가 중얼거렸다. 한 명만 느꼈다면 모를까 둘 다 느꼈다면 분명 보통 아이템은 아닐 게 분명했다.

막상 그렇게 생각하고 지도를 살펴보니 특정한 장소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암호문인가….’

그렇게 지도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는데 시우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게 쓰레기가 아니었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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