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122 소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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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럽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깔린 음악을 들으며 가게의 인테리어를 확인해 보았다.
가게 관리를 매일 하는지 깔끔해 보이는 느낌과 가게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마스코트 캐릭터 그림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느낌이 나는 이곳은 최근에 유행하기 시작한 치킨집이었다.
서아가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조금 전에 들어왔다. 이미 주문은 끝난 상태였다.
치킨이 나오기 전에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과자를 하나 집어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가 유명하긴 한가 봐.”
“응…. 사람이 많아….”
저번에 갔던 노벨 떡볶이집처럼, 여기도 들어오기 전에 대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서아에게 있어서 이렇게 유행하는 장소에 와보는 게 소원이라면 소원이겠지.
평범한 집안이 아니라서 그런지, 이런 경험 자체가 서아에게는 새로운 모양이다.
‘뭐 나도 다른 의미로는 처음이니까.’
별로 대단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 매번 터지는 사건 사고, 그리고 시험과 평가 때문인지 이런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눈을 돌려보니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몸을 살짝살짝 흔드는 서아가 눈에 들어왔다.
자꾸 시선이 끌리는 탓에 아까 선글라스를 샀는데, 썩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왜..? 나 이상해..?”
평소에는 보기 힘든 들뜬 모습이라서 그런지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그런 시선에 부담을 느꼈는지 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냥 잘 어울려서.”
사람에 따라서는 선글라스가 안 어울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서아는 뭐든지 잘 어울렸다.
“시우도.. 잘 어울려…. 히히.”
사실 아까 같은 디자인의 선글라스를 2개 샀었다.
선글라스를 낀다고 외모가 다 가려지는 게 아니라 시선이 아직도 끌리긴 하지만, 민얼굴로 다니는 것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덜한 상황이다.
같은 디자인의 선글라스니까 커플 선글라스라고 할 수 있으려나.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보기에도 바삭거려 보이는 치킨과 함께 감자튀김, 그리고 닭 껍질 튀김이 나왔다.
서아는 조막만 한 손으로 집게를 잡고는 닭 껍질 튀김을 하나 먹기 시작했다.
“바삭거려….”
작은 입을 우물우물 거릴 때 바다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궁금해져서 한 조각을 입에 넣으니 적당한 짠맛과 고소함, 그리고 과자 같은 바삭거림이 느껴졌다.
“확실히 맛있다.”
“응.. 시우 많이 먹어….”
그렇게 값비싼 음식은 아니었지만, 정말로 맛있었다.
‘어쩌면 서아랑 같이 먹어서 그런가?’
다들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민아, 민지, 서아, 다은, 한명 한명이 전부 소중하고 나에게는 과분한 여자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도 전부 우리 애들 덕이 컸을 거다.
그때 동굴에서 민지가 없었다면 아마 진작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무슨 생각해…?”
“응? 그냥 여기 맛있는 거 같아서. 또 가보고 싶은 곳 있어?”
“응..!”
우리 서아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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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를 따라 코인 노래방으로 들어왔다. 작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그런지 옆방에서 노래 부르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뭔가.. 시끄럽다….”
“그렇긴 해.”
__내 거친 생각과아아아!!!”
노래 실력은 영 별로인지 썩 잘 부르지는 않았다. 뭐 꼭 잘 불러야 올 수 있는 건 아니긴 하다.
어차피 누가 무슨 노래를 부르든 주위에서 신경쓰지 않으니 이럴 때 부르는 게 맞는 거겠지.
서아는 옆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작게 웃었다.
시끄러운 장소를 안 좋아하긴 하지만, 이 정도는 버틸 만했다.
사실 그것보다는 다른 부분이 문제였다.
‘노래 못 부르는데 어떻게 하지?’
사실 노래를 제대로 불러 본 적이 없었다.
학창 시절에도 노래방을 갈만한 기회가 없었기도 하고, 그나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매장에 나오는 노래들을 흥얼거린 게 다였다.
최근에 나온 노래는 하나도 모르고, 매장에서 반복적으로 들었던 옛날 노래 정도밖에는 기억에 남지 않았다.
남 앞에서 불러본 적이 없어서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못 부르면 서아의 호감도가 떨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다.
“혹시 별로야…? 나갈까…?”
내 표정을 읽었는지 서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당연히 고개를 저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서아가 오자고 했는데 나갈 수는 없지.
아무리 못 불러도 인큐버스의 목소리가 있으면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는가.
“그냥 긴장돼서 그랬어.”
“응.. 히히.”
지폐를 넣어달라는 문구가 나왔다. 방법은 잘 모르지만, 역시 돈을 지급해야겠지.
“여기에 돈 넣으면 되는 건가?”
“내가.. 넣을게..”
서아는 자기가 넣겠다고 지갑을 꺼내 들었는데, 거기에는 수표 다발이 들어있었다.
한번도 본적 없는 액수들에 조금 신기하게 보긴 했지만, 여기서 사용하는 단위가 천원 단위인 이상, 수표를 넣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내가 지폐 교환기에서 천 원짜리 들을 챙겨왔다.
“내가.. 낼 거였는데….”
“나도 좀 사게 해줘 서아야..”
포션 값으로 받는 게 얼마인데, 이런 사소한 그것까지 다 해주려 하는 모습에 양심이 좀 찔렸다.
효과가 좋아지기도 했고, 맛도 거의 완벽해져서 그런지 받는 금액이 상당히 올라갔다.
실제 명품 포션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효과가 좋아져서 사기를 친 건 아니다.
그냥 양심이 좀 찔릴 뿐이지. 그래도 서아한테는 최대한 싸게 넘기고 있다.
‘그래서 더 챙겨주려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
돈을 집어넣고 자리에 앉아 서아가 당연하다는 듯 내 무릎 위에 앉았다.
“왜..?”
문제 될 거 있냐는 얼굴에 나는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졌다.
나도 아무 일 없다는 표정으로 서아를 뒤에서 꽉 안았다.
특유의 서늘한 느낌과 함께 말랑거리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더운 여름에는 서아를 껴안고 있는 게 최고지.’
서아는 더운 여름에도 고유 능력 때문에 땀 하나 흘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살짝 땀을 흘렸다.
냄새가 나긴 하겠지만, 페로몬 스킬 덕분에 불쾌한 느낌은 아닐 거다.
오히려 향기롭지 않을까?
[ 윤서아가 인큐버스의 페로몬에 중독되었습니다. ]
민감도가 올라간 상황이지만, 이것도 이미 많이 경험해 봐서 그런지 크게 당황한 모습은 아니었다.
모르는 척 서아의 엉덩이에 비벼줘,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귀가 살짝 붉어져 있는 것만 빼면 평소의 서아였다.
조금 더 짓궂게 괴롭힐까 생각도 하긴 했는데, 서아의 노래 실력이 궁금해져서 일단은 가만히 기다렸다.
“어떻게…. 해야해?”
“응? 잠시만…. 인터넷에 검색해 볼까?”
둘 다 사용방법을 몰라서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다. 역시 뭐든 검색하면 다 나온다.
서아는 리모컨을 조작해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던 유명한 가수의 노래를 선택했다.
“예약했는데…?”
“시작 버튼 한번 눌러 볼까?”
시작 버튼을 누르자 반주 소리와 함께 주변이 어둡게 변했다.
“때 이른 봄 몇 송이..”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평소에 듣는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톤, 깨끗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어떤 잡음 없이 선명하게 귓가에 들려왔다.
“별 띄운 여름 한 컵 따라다..”
말끝을 흐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쭉쭉 뻗는 목소리에 서아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가수라고 해도 믿을 만큼 대단한 실력에, 나는 다음 차례가 점점 부담되기 시작했다.
섬세하게 목소리를 조절하는 걸 듣고 있으니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비교되지는 않겠지?’
*
“괜찮았어…?
윤서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김시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완전히 밀착된 상태로 몸이 닿아 있으니, 표정을 확인하기 힘들었다.
노래를 부를 때는 몰랐는데, 다 부르고 나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누구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경험도 없는데, 그게 김시우라니. 아까 실수했던 부분이 떠오르면서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역시 남에게 들려주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런 윤서아의 걱정과는 다르게 진심으로 감탄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서아야 진짜 대단하다….”
“정말..?”
“응.. 가수 해도 될 거 같은데?”
“히히..”
김시우와 같이 있던 시간이 길어서 그럴까, 이제는 어느 정도 감정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끔 예의상 해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진심을 담아서 이야기해주었다.
지금 하는 말은 단순한 빈말이 아니라 정말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래서…. 더 좋아….’
처음에는 단순한 관심이었다. S랭커 김태환의 고유능력을 가진 생도가 있다기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마치 자기 생각을 모두 읽고 행동하는 듯한 모습에 관심이 생겼다.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자신을 수석 윤서아가 아닌, 평범한 생도 윤서아로 대하는 태도는 남들과 달랐다.
정말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에, 김시우라면 친구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렇게 같이 있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하는 감정이 생겨났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천재는 자신이 아니라 김시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같이 있다 보니 그 모습이 단순히 재능에 의해 만들어 진 게 아니라는 게 아니라, 지독한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칼날처럼 예리한 전투 감각도, 단호하고 결단력 있는 태도는 경험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나는 노래 잘 못 부르는데.”
“괜찮아..”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을 뿐이니까.
윤서아는 속으로 그 말을 삼켰다.
4대 보컬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남성 가수의 노래였다.
꽤 어려운 곡이라 의외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반주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하얗게 피어난 얼음꽃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 아슬아슬한 박자감, 김시우는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은 아니었다.
“좋았던 기억만~ 그리운 마음만~”
하지만 귓가를 때리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장이 떨려왔다.
‘좋아..’
처음 떨리는 모습과는 다르게 점점 안정되어 가는 목소리, 호흡을 섬세하게 조절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귀가 녹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미로운 목소리에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처음과는 다른 실력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내 손끝에 남은 너의 향기 흩어져 날아가아아~~~”
깔끔하게 울려 퍼지는 고음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노래가 끝나있었다. 더 듣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
“역시.. 스킬이 사기긴 하네….”
“시우.. 못 부른 척 한거야..?”
“아니, 그냥 우연히..”
그냥 너무 좋았다.
‘시우는.. 내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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