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121 소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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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되고 서아와 단둘이 밖으로 나왔다.
소원이라고 해서 뭔가 거창한 일인 줄 알았는데 평범한 데이트 느낌이다.
방 탈출이라고 하던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여기에 뭘 하러 온 지도 모르겠다.
이런 부탁은 굳이 소원을 이용하지 않아도 다 들어줄 수 있는데, 뭐 오늘 종일 같이 있겠다고 했으니.
나중에는 다른 부탁을 할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동의서에 서명해 주시겠어요?”
“여기다가 하면 되나요?”
“네.. 잠시만 대기해 주세요.”
태블릿에는 간단한 신상과 함께 여기서 진행한 내용을 말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계약서였다.
“선택하신 테마는 호러 정신 병동 테마에요. 무서운 게 나올 수도 있으니 조심하셔야 해요.”
대충 놀라서 생기는 문제나, 폐쇄 공포로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변상은 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뭐 놀란다고 큰 문제가 생기겠는가. 넘어져도 장치들이 부서질 걸 걱정해야 할 거다.
“시우는.. 해봤어..?”
“나 이런 거 처음 해봐.”
“정말..?”
우리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대기 장소에서 대기 중이었다.
전자 기기는 들고 갈 수 없다는 말에 스마트 워치를 빼뒀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1시간 정도라고 했으니까 괜찮겠지?’
저번에 샀던 시밀러 룩을 입은 서아도 나를 따라서 동의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서아의 표정 변화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 무표정한 얼굴 나름대로 달라지는 게 있었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서 그런지 즐거워 보였다.
서아나 나나 이런 평범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 나도 조금은 흥미가 있긴 했다.
“혹시 저희 매장 이용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뇨 이번이 처음이에요.”
“안쪽에 있는 장치들은 크게 힘을 주지 않아도 열리게 되어있으니 억지로 하시면 안 돼요. 이 방에 사용되는 자물쇠는..”
처음 보는 자물쇠들이 많이 보였다. 영문자가 적혀 있는 자물쇠는 간단한 방식이었고, 그나마 특이한 건 방향키 자물쇠였는데 그렇게 사용법이 어렵지는 않았다.
“한번 해보실래요?”
아까 설명하는 걸 보니까 그냥 보여주고 넘어가던데, 나는 방향 자물쇠를 받아서 대충 조작해 봤다.
“네, 그렇게 하시면 돼요~”
실수인 척 슬쩍 내 손을 잡긴 했지만, 적당히 넘어갔다.
“…”
옆에 있는 서아의 심기가 불편해 보이긴 하지만, 뭐 크게 따질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그러면 두 분 다 눈 감으시고… 네 뒤에 분은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려주시고.. 어깨가 힘들면 허리에 손 올리실래요?”
내가 앞쪽에, 서아가 뒤쪽이었는데 키 차이가 나다 보니, 서아의 자세가 불편해 보였다.
“네..”
서아는 알바생의 말을 듣고 내 허리를 붙잡았다.
“그러면 방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눈을 감은 체, 알바생의 안내에 따라 방안으로 이동했다.
“그러면 잠시 뒤에 음악이 나오면 시작됩니다. 힌트는 무제한이지만 4번까지만 탈출로 인정해 드리고 있어요~”
알바생은 그렇게 말하며 문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러면 눈뜨시고 시작하면 됩니다! 꼭 탈출하세요!”
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름 긴박해 보이는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아와 함께 눈을 뜨고 확인해 보니, 아까 건네줬던 태블릿에는 1시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좋아 그러면..”
눈을 뜬 순간, 사방에 널려있는 자물쇠와 병원에서나 볼 법한 장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
나는 말 없이 주변을 살펴봤다. 이런 경험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지 뭐부터 진행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뭐부터 해야 해?”
“모르겠어..”
아무런 설명이 없어서 그런지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서아도 나와 똑같은지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히..”
서아도 그 상황이 웃기는지 피식거리며 웃었다. 나도 그 모습이 귀여워서 자연스럽게 입가가 올라갔다.
“주변을 한번 찾아볼까?”
“응..”
쓸모없는 부분에 시선이 끌리면서 시간을 조금 허비하긴 했지만, 이상한 서류로 보이는 걸 발견했다.
거기에는 방 탈출에 몰입을 할 수 있도록 지금의 상황과 다음으로 진행해야 할 것들에 대한 힌트가 있었다.
“여기는 정신 병원이고 이상한 의사가 우리를 가뒀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는 중얼거리면서 서류에 적혀 있는 내용을 읽었다. 대충 다음 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저쪽에 널브러져 있는 수술 도구들을 배열하면 되는 모양이다.
안전을 위해서인지, 메스나 가위 같은 건 날이 뭉뚝해서 다칠 일은 없어 보였다.
“흠..”
“…”
둘 다 이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시작부터 힌트를 사용했다.
“뭐야 이게..”
정답은 너무 황당할 정도로 간단했다. 수술 도구 중 메스를 정해진 위치에 끼우니 철컥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그 뒤로도 진행하면서 힌트를 2번 정도 더 사용했다. 거의 초반부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해 버렸다.
“그래도, 이제 감이 좀 오는 거 같은데?”
“응.. 별로 어려운 건 없어..”
처음이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몰라 헤맸을 뿐, 문제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거는.. 이렇게 하면 될 거 같아..”
초반부에 헤매던 서아는 문제를 빠르게 풀기 시작했다.
내가 단서에 관한 걸 찾아주면 금방 해답을 찾아냈다.
접근 방식에 대해서 의견을 이야기하고, 단서도 찾아보면서 다음 방으로 계속 진행했다.
나름 호러테마라고 들었는데, 서아가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서아가 문제를 푸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대부분 서아가 해결하긴 했지만, 가끔 헤매는 문제는 내가 풀 수 있었다.
“저거.. 꺼내줘..”
“알았어 잠시만..”
__끼아아아앆!!!
“아우, 시끄러워”
중간중간에 우리를 놀라게 하기 위해 장치가 튀어나오긴 했는데 시끄럽기만 하지 무서운 건 모르겠다.
“히히..”
서 아는 그 모습이 재밌는지 웃고 있었다.
방을 진행하다 보니 좁은 공간이 나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 상황이라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진행하면서 현 상황에 나름 몰입할 수 있었다.
“아..괜찮아..?”
“응 빨리 찾아보자.”
좁은 공간에서 두 명이 수색을 하다 보니 몸이 닿을 수밖에 없었다.
‘좁긴 해도.. 이렇게 닿을 정도는 아닌데?’
서아가 의도적으로 몸을 비비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면 그게 착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귀가 살짝 붉어져 있는 게, 알면서도 일부러 하는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곳에서 이런 애정표현을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미묘해졌다.
뭐 남들이 본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거 없는 가벼운 행동이긴 하지만, 색다른 경험이라서 그런지 느낌이 달랐다.
서아도 나를 의식하고 있는지 주변을 수색하는 것보다는,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느낌이었다.
“서아야, 그쪽에는 뭐 없어?”
“으..응? 아.. 잠시만 기다려줘..”
내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서아가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또 다른 서류를 발견했다.
“뭔가.. 찾았어..”
주인공의 독백으로 보이는 내용과 함께 다음 문제를 풀기위한 단서가 적힌 서류였다.
계속 진행하면서 봐왔던 터라, 이제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익숙했다.
“아..”
“응?”
“아니..아무것도 아니야..”
서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서아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특유의 차가운 느낌과 함께 말랑거리는 촉감이 느껴졌다.
완전히 맞닿은 상태라서 그럴까, 서아의 목덜미에서 달큰한 향이 느껴졌다.
서아도 내 체향을 맡았는지 몸을 흠칫 떨었다.
완전히 밀착한 상태라 그런지 서아의 심장 박동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저걸로 푸는 거 같은데?”
“아.. 응..”
살짝 느린 반응과 함께 탈출에 성공 할 수 있었다.
초반에는 둘 다 좀 헤매긴 했지만, 힌트를 보면서 푸는 방식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금방 탈출 할 수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갔다.
아직 오늘 하루는 기니까.
*
불빛이라고는 작은 led 표시등 하나.
사방에 어둠으로 가득한 곳, 환기가 잘 안 되는지 습한 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코끝을 찌르는 비린내와 짠 내, 그 주변에는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어두운 연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
팔다리가 포박된 검은 물체는 계속해서 욕지거리를 뱉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게 억울했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계속해서 실험이라는 이유로 속해지는 고문에, 정신이 반쯤 나가버렸다.
정신이 나가면서 공허하게 비어 있던 남자의 눈동자는 어느새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주 진득거리는 무언가 만이 남아 빛을 내고 있었다.
“시발 새끼.. 죽여버릴 거야.. 시발.. 시발..”
홍류석은 팔다리가 속박된 상황에서 온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걸 증오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교단 놈들도, 자신을 이렇게 되도록 묵인한 헌터 연합도, 자신을 고문하는 그 미친 여자도, 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허나, 여기서 벗어날 힘이 그에게는 없었다.
홍류석의 감정에 반응하듯, 진득하고 기분 나쁜 마기의 색이 더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차라리 죽여주길 바랐으나, 지금은 달랐다.
그냥 죽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만든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다.
오직 악밖에 남지 않는 홍류석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
그때 아주 익숙한 기운과 함께 허공에 검은 포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공간을 찢는 것처럼 흉측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은밀하고 조용했다.
그 너머에서 자신에게 처음에 접근했던 놈들과 비슷한 옷을 입은 인물이 나타났다.
“우왝.. 진짜 토할 거 같네.”
여인의 목소리에 홍류석은 말없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
홍류석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인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발버둥 치거나, 소리도 지르지 않고 조용히 쳐다볼 뿐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으나, 속은 그렇지 않은지 주위에 있던 마기들이 계속해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홍류석의 어두운 감정을 먹고 자란 마기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따끔거렸다.
“뭐야.. 그래도 꽤 쓸만해 졌네?”
“…”
원망으로 인해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으나, 홍류석은 참을성을 나타내었다.
“무슨 일이냐..?”
“복수하고 싶지 않아?”
여인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으나, 목이 따끔 거릴 정도로 살기를 뿜어내는 홍류석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다듬으면 쓸만한 인간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힘을 회수하기 위해 왔으나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또 날 이용할 생각이겠지…. 개새끼들아.”
“흐음?”
“그래도 상관없어.”
“아직은 아니야. 조금만 더 기다릴 수 있어?”
“복수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려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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