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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세이브로 따먹다-118화 (118/235)

〈 118화 〉 118 차원 지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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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달은 평소와는 다르게 유달리 붉었다.

붉은 달이 하늘에 떠 있는 날에는 불길함이 거리에 가득하다. 사방이 붉은빛으로 보이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멀리서부터 온갖 마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난폭한 소리에 소녀 한 명이 몸을 떨고 있었다.

수습기사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소녀는 영지를 수호하겠다는 각오를 했음에도,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괴성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손이 등을 쓸어내렸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손은 굳은살과 흉터가 가득했으나, 그 손길은 부드러웠다.

“허허, 아리아는 이런 일이 처음이겠구나.”

묵직한 저음이 등 뒤로 울려 퍼지고,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마치 곰처럼 보이는 사내가 웃고 있었다.

그는 영지에서 가장 강한 기사였으며, 영지에 있는 모든 기사에게 존경받는 남자였다.

레이널드, 평민으로 태어나 남들은 쉽게 오르지 못한 경지에 오른 남자였다.

윌리엄은 그를 자신의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했으나 그는 매번 거절할 뿐이었다.

“레이널드님..”

이제 막 견습 기사가 된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레이널드가 함께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용기가 솟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성벽 위에서 이곳을 향해 달려드는 마수 무리의 모습이 훤히 들어왔다.

모래사장의 모래알처럼, 빈틈없이 빼곡하게 차 있는 그 모습에 모든 기사가 움츠러들었다.

“이번에는 유달리 많구나.”

레이널드 역시 저 정도 숫자는 힘이 부치는지 그의 표정 역시 어두웠다.

붉은 달이 떠오를 때면 모든 마수가 미쳐버린다.

이성도 본능도 잊은 체 오로지 피만을 갈구하는 상태가 되는데, 적의의 대상은 인간을 향했다.

매번 있었던 일이기에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진 그였으나, 오늘만큼은 평소와 달라 보였다.

레이널드는 말없이 주변에 있는 동료들을 확인했다.

늑대, 곰 같은 동물부터, 기괴한 모습을 한 괴물들까지, 압도적인 숫자에 모든 이들은 입을 열 수 없었다.

압도적인 숫자에 모두의 말문이 막혔다. 여기에 있는 기사들이 저 마수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이 얇은 성벽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저 정도 마수들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아마 버티지 못한 거다. 애초에 저런 숫자의 마물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성벽이 아니었으니, 마물이 성벽을 두들기기 시작하면 모든게 끝나리라.

그럼 성안에 있는 영지민들은 살아남지 못할 게 분명해 보였다.

“말도 안 돼….”

“갑자기 저런 마수들이 어디서 튀어 나온 거지?”

모두가 두려워하는 상황에서도 레이널드는 말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다. 항상 자신이 발 벗고 나서 싸웠으며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그는 도망치지 않고 싸웠다.

그게 목숨이 위험한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너는 뒤에 빠져있거라.”

“선배님! 하지만..”

“너같이 젊은 기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걸. 개죽음이라고 한단다.”

“저도 싸울 수 있습니다!”

“그래, 냉정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너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객기는 부리지 말아라.”

그 말을 끝으로 레이널드는 성벽 아래로 단숨에 뛰어내렸다.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이 모두 당황하여 소리쳤으나, 레이널드는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내 어떻게든 해 보겠네. 뒷일을 부탁하네.”

레이널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홀로 마수의 파도를 향해 걸어갔다.

홀로 걸어가는 그의 등은 거대해 보였으며, 그는 어깨에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우리도 싸워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그 압도적인 공포감에 그 누구 하나 레이널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아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려움과 자신은 안될 거라는 무력감에 그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날 레이널드는 돌아오지 못했다. 홀로 마수의 품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그녀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었다.

그 남자의 자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상황이 오히려 반대되었다.

레이널드 처럼 잭슨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과연 그분의 자식인가.

조금만 더 빨리 만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리아는 당당하게 걸어나가는 잭슨의 앞에 섰다.

*

“그래, 마음은 고맙지만,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뒤에 빠져있어라. 잭슨.”

레이널드가 그랬던 것처럼 아리아가 잭슨에게 말했으나, 잭슨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재미없는 촌극은 끝나셨습니까?”

뒤에 있던 사령 술사가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하품을 크게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면 모를까, 7명 모두 기사의 몸이었다.

오러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기본적인 싸움의 상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날카롭게 빛나는 오러가 강철을 종이 썰듯 찢어버리니, 갑옷이고 방패고 할 것 없이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린다.

일반인들이 아무리 잘 싸운다고 해도, 방어할 수단이 없는데 어떻게 기사와 싸워서 이길 수 있겠는가.

그 괴물 같다는 기사가 7명이나 있었다. 그에 비해 자신의 상대방은 어떠한가.

기사 한 명에 힘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쭉정이 한 명, 그리고 검도 한번 안 잡아 봤을 그것처럼 보이는 여인뿐이다.

압도적인 승리가 예상되었다.

“모두 쳐라!”

그의 명령에 따라 기사들이 삐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부족한가.’

기사들은 모두 죽은 상태였다. 사령 술사의 사령술에 의해 되살아난 데스나이트들이었다.

데스나이트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움직임이 조금 어색해 보였다.

움직임이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약하지는 않았다.

사기만 계속 공급해 준다면 절대로 지치지 않는 체력과 그 어떤 공격에도 굴복하지 않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고통을 느끼면 움츠러들거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의 기사들은 달랐다. 그 어떤 공격을 받아도, 신체 일부가 잘려나가도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그 어떤 통각을 느끼지 않고 그저 목적 수행을 위해 움직이는 불멸의 기사들이다.

특히 저 흑빛으로 빛나는 오러는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자신의 솜씨가 조금만 더 좋았어도 더 아름답게 빛났을 텐데, 그게 아쉬웠다.

고작 두 명이, 지치지도 쓰러지지도 않는 불멸의 기사들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저런 검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는데.”

모든 걸 집어 삼킬 것처럼 어두운 오러를 쭉정이같이 생김놈이 검으로 받아치고 있었다.

분명 오러를 사용하지 않고 있음에도, 사기로 된 오러를 받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저들은 데스나이트가 되기 전부터 합을 맞추던 기사였다. 훈련된 것처럼 7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두 명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아직 움직임이 완벽하지 않아 중간마다 빈틈이 생기긴 했지만, 숫자의 우위를 이용해 빈틈을 보완했다.

이미 훈련이 잘 되어있어서 그런지 한 명이 공격받으려 하면 다른 한 명이 달려가 도와주는 방식으로 둘을 압도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잘 싸우는데…?”

금방 쓰러질 거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두 명이 계속해서 버티고 있었다.

계속 뒷걸음질 치며 밀리고 있기는 하지만, 수적 우위를 생각한다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저 보잘것없어 보이는 남자는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계속해서 맞받아치고 있었다.

과연 대단한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검에 대해선 조예가 없어 얼마나 대단 한지 판단하긴 힘들었지만, 적이라도 인정할 건 인정할만했다.

“하지만 그뿐이지.”

데스나이트는 어떤 상처를 입어도 멈추지 않고, 아무리 움직여도 지치지 않는다.

두 명이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결국 놈들은 인간에 불가했다.

한계가 있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러니 절대로 자신을 이길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두 명이 쓰러지길 기다리고 있던 순간, 남자의 검이 조금 더 매섭게 변했다.

아까보다 더 날카로워졌으며 조금씩 데스나이트들을 밀어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럴 리 없지…. 저런 쓰레기가….”

마나라고는 쥐꼬리만큼 밖에 느껴지지 않는 하찮은 몸이다. 저런 몸으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그렇게 장담한 순간 기사 하나의 목이 날아갔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다시 재생시키면 그만이니까.

잭슨과 아리아는 둘이 한 몸인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잭슨은 기사들의 검을 받아 칠 수는 있었지만, 유효한 공격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방어에만 집중하며 틈을 만들어 냈다.

그럼 그 틈을 노리고 아리아가 검을 휘둘렀다. 예리한 아리아의 칼날이 데스나이트의 빈틈을 노리고 들어갔다.

그들이 본래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그들은 데스나이트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술자였던 사령술사 역시 그들의 본 실력을 뽑아내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진 결과였다.

팔다리가 잘려나가 휘청거리는 기사도 생겨나면서 사령술사 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령술사는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재생시키는 것과 기사들을 움직이는 건 자신의 힘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밀리기 시작하면 저쪽의 체력보다 자신의 힘이 먼저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렇게 질 좋은 기사의 몸은 구하기 힘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폭발해라!!!”

가장 선두에 있던 데스나이트가 폭발을 일으켰다. 사령술사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중 가장 강력한 기술로 뽑히는 시체폭발이었다.

갑작스러운 폭발에 잭슨이 아리아를 밀어냈으나, 그는 폭발의 여파에 무사하지 못했다. 전투 불능상태에 사령술사는 미소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리아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폭발의 여파로 기사 시체 2구가 박살 나긴 했지만, 아직 자신에게는 5개의 시체가 더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승리를 확신한 사령술사가 미소지었고, 잭슨도 함께 웃고 있었다.

웃고 있다?

“나도 있어 이 새끼야….”

사령술사의 발밑에는 이상하게 생긴 둥글 물체가 있었다.

마력 폭탄 B타입, 빙의에 소모되는 비용이 적어 이번에는 보너스로 들고 왔던 물건이었다.

아까 폭발에 날아가면서 사령술사의 발밑으로 굴려놓은 폭탄이었다.

__삐삐삐삐

사령술사는 처음 보는 물건에 당황하며 보호막을 펼쳤으나 이미 늦었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처음 보는 물건이니 반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리아님, 아델라를 부탁드립니다.”

이 정도 해줬으면 교단에 그녀를 무사히 데려갈 수 있을 거다.

보상은 어떤 걸 받으려나, 아쉽긴 하지만 해어질 시간이었다.

“잭슨!! 잭슨!!!”

“기회가 되면 또 봐요.”

아리아의 외침을 들으며 잭슨은 눈을 감았다.

[ 사망하셨습니다. ]

[ 호위 임무가 종료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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