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116 차원 지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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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신가요?”
눈을 떠보니 이전에 봤던 새하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바로 잭슨의 몸으로 움직여야 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처음 왔던 곳인가?”
“좀 더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진짜 죽음은 아니라고 해도, 죽은 건 죽은 거니까요.”
“괜찮은데.”
처음 능력을 각성했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죽다 보니, 이 정도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지 프레이야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어요. 조금 더 누워서 쉬는 게..”
이미 3자리는 넘게 죽어본 입장에서는 그냥 일상과도 비슷한 일이었다.
그래도 걱정스러운 표정의 프레이아를 보고 있으니 나쁘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마키나는 포기하겠냐고 묻기만 했었지, 버리는 카드라고는 해도 너무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마키나 하고는 다르네, 저게 정상적인 반응인가?’
[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
‘그저?’
[ 죄송합니다.. ]
“바로 시작해야 하나?”
“시간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어요! 이기실 수 있었는데.. 정말 아쉬워요.”
“구해야 하는 사람을 이겨서 뭐 하겠어. 빈말이라도 고맙네.”
시간이 있다고 했으니 나는 눈을 감고 아까 아리아의 움직임을 다시 떠올렸다.
같은 동작에서 마나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다시 곱씹어 보았다.
“시우님..?”
“쉿.”
검을 휘두를 때도 단순히 휘두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 신체의 모든 부위가 동시에 움직인다.
머리, 어깨, 팔, 손목, 허리, 다리, 무릎의 각도, 발목의 위치에 따라 가벼운 동작에도 엄청난 위력이 나왔다.
그걸 신경 쓰고 내 자세를 확인해 보니, 한 부분씩 부족한 게 보였다.
팔꿈치의 각도가 살짝 틀어지던지, 허리가 더 돌아가야 할 때 돌아가지 않는 다던지, 아쉬운 부분들이 계속 보였다.
“다시..”
쉐도우 복싱처럼 가상의 적을 만들어 몸을 움직인다. 놈의 공격을 피하며 부족한 부분들에 집중하며 움직인다.
가벼운 동작에도 몸이 완전히 일치하도록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에 집중하자 몸이 삐걱거리고, 멀쩡하게 되던 기본자세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미 쌓여있는 습관들을 고치기에는 쉽지 않았다.
기초부터 쌓아 올린다는 생각으로 가벼운 동작들부터 다시 시작해 어긋나 있던 부분들을 바로 잡아갔다.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시도가 늘어날수록 움직임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 엘레넨 제국 검술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익히자 동작과 동작 사이의 전환이 아주 미세한 차이로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온몸에 힘을 줘 강하게 내려치려는 움직임에서, 검 끝에 모든 걸 실어 내려친다.
점점 자연스러워지는 움직임을 느끼며 몸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 엘레넨 제국 검술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고, 몸이 점점 지치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조금만 더 하면 무언가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몸을 움직였다.
잡힐 듯 말듯 멀어지는 감각에 붙잡기 위해 내 몸의 움직임에 모든 신경을 쏟아 넣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몸에 움직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순간 알림음이 울렸다.
[ ‘엘레넨 제국 검술’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아직은 여기까지인가.”
*
“아쉽구나, 혹시 다시 생각해보지 않겠나?”
“대장 그냥 그만두라고 해요. 저 녀석 같은 약골은 우리 경비대에는 필요 없습니다!”
“조용히 하게.”
아리아 앞에서는 소리만 지르고 아무것도 못 한 놈이 무게를 잡고 있는걸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올뻔했지만 참았다.
경비대장에게 경비대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니, 뻔뻔한 얼굴 얼굴로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경비대장을 보며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내 발로 나갔으면 했으면서 아닌 척 하기는, 나는 창과 장비를 반납하고 경비대에서 나왔다.
아직은 아리아와 아델라가 도착하기 전, 나는 풍요의 요람으로 향했다.
“어서오십시오~”
내가 들어가자 주인장이 영업용 미소를 띠며 날 반겨줬다. 나는 적당히 여관 주인에게 대답하고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켰다.
“여기는 뭐가 맛있나요?”
“풍요의 정식이 잘 나가긴 합니다.”
전투가 시작되자 어느새 사라졌던 여관주인은 메뉴판으로 보이는 걸 보여주며 중얼거렸다.
“그럼 그걸로 주세요.”
“선불입니다.”
나는 잭슨이 살던 집에서 챙겨온 동전을 건네주고는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벌써 점심시간,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질 때가 되긴 했다.
경비대에 있었으면 입구에서 검문 일을 하고 있었겠지만, 이제는 경비병이 아닌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전에는 주먹밥인지 뭔지 모를 덩어리를 주긴 했는데, 완전 소금 덩어리에 양도 적어서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최악이었다. 차라리 크림 수프가 먹고 싶어질 정도였다.
계속 먹다 보면 물리긴 하지만, 그것 밖에 먹을 게 없으면 잘 들어갔었다.
‘요즘에는 모르겠네.’
아까 먹었던 주먹밥보다야 괜찮긴 하겠지만, 여관의 음식이 벌써 걱정되는 기분이었다.
최근에는 서아나 민지가 옆에 있다. 보니 너무 잘 챙겨 먹고 있다 보니 입맛이 조금 변했다.
요즘에는 맛없는 음식은 그냥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다.
‘음식을 버리다니.. 옛날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인데.’
현대에 있는 다양한 음식들과 비교하면, 여기의 음식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래도 살려면 먹어야 하는 법, 앞으로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건데, 배는 든든하게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맛없는 음식이라도 살려면 다 들어가는 법이다.
“좀 있으면 오겠지?”
여기서 적당히 음식을 먹고 있다가 보면, 아델라와 아리아가 여관으로 들어올 거다.
경비병 일을 하다가 마주쳐서 그런지 경계심을 산 탓에 망하긴 했지만, 이제는 경비대가 아니니 괜찮을 거다.
잭슨의 아버지가 아리아의 선배라고 했으니, 그걸 어필하면 날이 서 있는 아리아의 경계심을 허물어 놓을 수 있을 거다.
“풍요의 정식 나왔습니다!”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 식탁에 음식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먹어보니 역시 약간 싱거운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처음 먹었던 주먹밥과 비교하면 양반이라 생각하고 있을 때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리아와 아델라, 아델라는 겉으로 보기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숙박을 하려고 한다. 괜찮은 음식이 있다면 그것도 준비해주게.”
아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여관주인에게 돈을 건네주었다.
“잔돈은 필요 없네.”
“아이구~ 감사합니다!”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 아델라와 아리아가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브 안쪽으로 보이는 얼굴은 꽤 미인이었다. 우리 애들보다는 조금 못하긴 하지만, 저 정도면 꽤 수준급 외모라 할 수 있었다.
“…?”
두 명을 살펴보다가 아리아와 눈을 마주쳤다. 이거 이러다가 또 싸워야 하는 건 아니겠지?
‘마키나, 잭슨 아버지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잭슨에게 아리아 이야기 한 적 있어?”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시우님.. 네 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아리아가 경계하기 전에 먼저 일어나 말을 걸었다.
“혹시.. 기사님이신가요?”
“그건 왜 물어보는 거지?”
“아리아.. 너무 그러지 말아요.”
“아닙니다. 조심해서 나쁜 건 없지요.”
내가 다가가는 순간 아리아가 눈을 좁게 뜨고 노려보기 시작했다.
허리춤에 있는 검까지 확인하는 게 여차하면 곧장 싸울 기세였다. 나는 최대한 존경을 담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그 죄…. 죄송합니다. 기사님처럼 보여서요.. 저도 기사가 되고 싶어서..”
최대한 불쌍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아리아의 반응이 많이 누그러진 게 보였다.
아직은 경계심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날이 선 반응은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속은 다른 법이지. 꼬마야 그 검은 진검인가?”
“아.. 아버지의 유품이에요.”
“그런가..? 잠깐 그 문양은 왠지 낯이 익은데..”
이전 회차와 마찬가지로 검을 알아보는 듯했다.
“혹시 아버님의 성함이 어떻게 되지?”
“레이널드 인데요..”
“정말로 레이널드가 맞나?”
나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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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선배님이 날 많이 도와주셨지. 정말로 좋은 분이셨는데.”
“아버지가 정말 그러셨나요?”
아리아가 어렸던 시절에 레이널드는 발리에르 영지에서 기사로 활동했다고 했었다.
실력도 출중하고 인품도 좋아 존경하는 기사였지만, 붉은 달이 뜨는 밤에 대규모의 몬스터가 영지를 습격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 그분은 정말 좋은 기사였지!”
“정말 아쉬워요.. 레이널드님도 함께할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주먹부터 뻗으시더니, 레이널드 이야기가 나오자 태도가 돌변한 아리아였다. 다행히 아델라도 레이널드를 알고 있는지 적당히 친근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부모 없이 혼자서 자란 내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 자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챙겨주고 있었다.
싸울 때는 짜증 나긴 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또 괜찮은 여자 같았다.
“기사가 되고 싶다고 했었나?”
“네?..네.”
“잠깐 확인 좀 해 봐도 되겠나?”
“네..?”
아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근력 상태를 확인하는 것뿐이지만 저 외모로 저러고 있으니 꽤 파급력이 있었다.
평범한 남자였다면 정신을 못 차렸겠지만, 나는 우리 애들로 단련되어 있어서 괜찮았다.
“수련은 하는 모양이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해..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마나를 사용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가벼운 훈련 방법부터, 기사가 가져야 할 정신,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가르침을 주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이가 너무 늦긴 했지만 마나 호흡법도 알려줄 수 있으면 알려주마.”
“마나 호흡법이요?”
“그래, 마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기초 중에 기초지.”
마나 호흡법을 사용하면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건가? 솔직히 흥미가 생기긴 했다.
‘하지만 본분을 잊으면 안 되지.’
자기편이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잘해주는 성격인 듯 했다.
아델라가 말이 더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리아 쪽이 더 말이 많았다.
아델라의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아무튼 확실히 아리아는 첫인상과는 다른 인간이었다.
“누나, 그 조심하세요.”
“응? 무슨 말이냐 잭슨?”
“경비대에서 들었는데, 영지에 아주 나쁜 범죄자가 들어왔대요.”
“…”
경비대가 덮치기 전에, 둘에게 경고해줄 생각이었다.
사실 경비대보다는 영생교가 문제였지, 이번에는 저번 회차와 같은 상황은 만들지 않을 거다.
‘네크로멘서 새끼들 이번에는 안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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