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112 차원 지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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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지원, 저번에 해금된 뒤로 목록에 아무것도 뜬 게 없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기능이었다.
‘그래서 차원 지원이 정확하게 뭘 하는 거야?’
[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른 차원에 도움을 주고 보상을 받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
‘다른 차원?’
[ 그렇습니다. 521번 차원에서 지원 요청이 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
‘자세히는 못 알려 주는 건가?’
[ 지금 당장은 어렵습니다. ]
‘뭐 위험한 건 아니지?’
[ 그렇습니다. ]
보상을 받을 수 있으면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지원 요청에 수락 버튼을 눌렀다.
순간 어지럼증과 함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방으로 이동되었다. 눈이 부셔서 밝기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한참을 깜박거리자 뒤쪽에서 어떤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갑습니다. 용사님.”
분명 평범하게 말하는데도 울려서 들리는 기분, 고개를 돌려 보니 흔히 여신이라 부를법한 여자가 서 있었다. 분홍색 머리에 새하얀 피부, 꽤 아름다워 보였다.
“용사?”
“저희 세계를 도와주세요.”
애절한 표정과 간절한 목소리, 갑자기 소설의 장르가 바뀐 느낌이다. 용사가 되어 파티 원들에게 배신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 사용자 김시우 님은 이번이 첫 지원이니 제대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프레이야 님. ]
“아 그러신 건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 세계의 신입니다. 마키나 님과 비슷한 존재라고 할까요? 정확하게 따지면 다르긴 하지만, 그편이 이해하기 편하실 거에요.”
아까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분명 웃고 있기는 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묻어나 있었다.
“마키나랑 비슷한 존재?”
[ 비슷하지는 않습니다만…. 시우 님이 이해하시기에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편이 좋을 듯싶습니다. ]
“그런 걸 알려줘도 괜찮은 거야?”
[ 여기서는 괜찮습니다. ]
“저도 그렇게 자유로운 존재는 아니에요…. 아무튼 시우 님이 살던 세계의 하위 차원으로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무튼, 여기가 하위 차원이라는 건가?
“시우님이 살고 계시는 세계처럼 이곳도 비슷한 입장이에요.”
여신의 설명을 들어보니 내가 사는 차원처럼 이곳도 이미 멸망이 정해진 세계라고 했다. 마키나처럼 멸망을 막기 위해서 세계를 계속해서 초기화시키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지금 내가 사는 세계도 초기화시킨 거야?’
[ 그렇습니다….]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거야?’
[ 그건 말씀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하위 차원이라고 해도,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닙니다. ]
내가 첫 번째로 선택된 존재는 아닐 거다. 마키나도 처음에는 내가 포기할지를 물어봤으니, 내가 포기했으면 또 새로운 사용자를 찾아 떠났을 거다.
‘설마 계속하다가 안돼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날 선택한 건 아니지?’
[ 그게.. 아닙니다! 시우님은 지금 까지 훌륭하게 일을.. ]
아마 강주원 같은 녀석도 선택을 받았겠지, 하지만 내가 선택받았다는 건 결국 그 새끼는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저번에도 정보를 전달해 주다가 문제 생기지 않았어?’
[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시우님은 특별하기 때문에.. ]
‘내 운명등급이 낮아서 그렇다는 거지?’
운명등급이 낮아서 나에게 개입하는 것 자체는, 다른 인간들 보다 소모되는 비용이 적은 모양이다.
아무리 등급이 낮다고는 해도, 전에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정도였으니까. 너무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보였다.
[ …시우님은 제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잘해주고 계십니다. ]
뭐 불만족스러운 점은 없었다. 마키나 시스템이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없었을 거다.
과거의 내 모습과 비교한다면 나도 놀랄 정도였다. 나 혼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지.
‘너도 고생이 많네.’
[ 아닙니다. 시우님.. ]
“저 두 분 이야기가 끝나셨나요?”
“어어.. 그런 것 같아.”
“현재 상태를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가 멸망될 때마다 리셋을 시키며 반복을 하고 있지만 모두 실패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본인의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외부의 존재에게 도움을 요청한 상태고, 내가 그 도움에 수락했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뭐야? 세계를 구해달라던지 그런 거창한 건 못할 것 같은데.”
“그렇게 어려운 부탁은 드리지 않아요!”
“흠…. 막 용사가 돼서 세계를 구해달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
뭐 선택받은 용사가 돼서, 이 세계에 있는 마왕을 없애기 위해 모험을 떠나달라고 부탁한다면 거절할 생각이었다. 지금 현실 세계에서 살기도 바쁜 상황이다.
세계가 멸망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애들을 챙기는 게 먼저였다.
그러고 보니 민지 옆에서 지원을 수락했던 게 떠올랐다. 그럼 본래 있던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지?
[ 시간이 멈춘 상태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며, 현재 시우님은 흔히 영혼이라 불리는 의식만 이 세계로 내려온 상태입니다. ]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는 건 아니라는 말이지?”
[ 그렇습니다. ]
“저…. 말해도 될까요?”
여신과 비슷한 존재라 해서, 거만하거나 오만한 태도일 줄 알았는데, 평범한 인간일 뿐인 내게도 예의를 차리는 모습이었다.
상위차원의 존재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세계를 리셋시킬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 보통의 존재는 아닐 거다.
‘세계의 신 같은 존재가 나 같은 인간한테 예의를 차릴 필요가 있나?’
[ 편견이 심하십니다. 시우님. 혹시 저도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저기요? 마키나님, 시우님?”
“아, 미안 그냥 모든 게 처음이라서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아델라를 무사히 호위하는 일이에요.”
“호위?”
“네…. 그녀는 뛰어난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는 여인이에요. 그녀가 성장한다면 분명 저희 세계에 도움이 될 인재지만, 재스크 성에 죽을 운명입니다.”
“용사 같은 존재에게 임무를 내리면 안 되는 거야? 그녀를 살리라고.”
“그것도 복잡해요…. 용사는 용사가 해야 할 일이 있기도 하고, 저도 조건에 묶인 존재일 뿐이에요.”
“내가 하는 건 괜찮은 거야?”
“음.. 시우님에게 있어 저희 세계는 소설 속 세계 같은 수준이에요. 작가가 소설의 내용을 바꾼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건 없죠.”
“소설 속 세계 정도라..”
“시우님에게는 그럴지 몰라도 제게 있어서 여기는 현실이고, 제가 살아가는 차원입니다.”
“무시하는 생각 안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델라인지 뭔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아…. 감사드립니다!”
*
“야 잭슨, 이 한심한 새끼.”
“실력도 없으면서 경비병에는 어떻게 들어왔냐?”
“경비 대장 빽으로 들어왔으면 우리 명령이라도 잘 들어야 할 거 아니야!!!”
“미.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구석에 후미진 곳, 잭슨이라 불리는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둘러싸여 맞고 있었다.
잭슨은 마을을 지키는 경비병 중 하나였다. 그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혼자서 살아가는 고아였다.
비록 부모를 잃은 고아였으나, 잭슨의 부모와 친했던 전 경비 대장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잭슨을 챙겨주던 전 경비 대장이 사고로 죽어 버리고, 잭슨의 입장이 완전히 달라졌다.
비록 낙하산으로 들어온 존재지만 경비대에 해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잭슨이었으나,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경비 대장이 죽고 사라진 이후로, 잭슨은 경비대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다. 잭슨은 마음이 유약해서 작은 토끼 하나도 죽이지 못하는 남자였으니 좋게 봐줄 사람이 없었다.
지금의 경비 대장도 잭슨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수준 미달인 잭슨이 제 발로 걸어나가길 바라며 모른 척 하는 중이었다.
가진 것도 없고, 일자리도 구하기 힘든 잭슨은 어떻게든 경비대에서 버티기 위해 참고 있으나, 가만히 있는 잭슨에게 행해지는 행위들은 점점 심해지는 상황이었다.
“자..잠깐만 하지 마….”
“이 찐따 새끼!!”
“캑…. 캑!!”
남자 두 명이 달려들어 잭슨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숨이 셔지지 않은 잭슨은 어떻게든 발버둥 치려 했으나 건장한 남성 두 명의 힘을 이겨내기에는 무리였다.
산소가 부족해 지면서 잭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으나, 그 모습이 즐겁다는 듯 두 명은 낄낄거리기 바빴다.
“야야, 그러다 죽겠다 새끼들아!”
“아니 이새끼 반응이 웃겨서….”
“야 이 녀석 숨을 안 쉬는 거 같은데?”
“기절한 거겠지…. 이새끼 또 헛수작 부리네.”
남자 두 명은 누워있는 잭슨의 뺨을 몇 대 때리다가 침을 뱉고는 사라졌다.
“야 진짜 죽은 거면 어떻게 해야 하냐?”
“몰라 새끼야. 우리만 입 다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하긴 고아 새끼를 챙겨주는 인간이 누가 있다고. 그 인간은 왜 저런 새끼를 챙겨주었는지 모르겠네.”
그렇게 경비대가 사라지고 난 뒤, 죽은 줄 알았던 잭슨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콜록! 콜록!”
몸을 일으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기침을 하던 잭슨은 자신의 몸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목이 왜 이렇게 아파? 몸은 또 더럽게 약한 거 같고….”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있어서 그런지 허리도 쑤시고, 몸이 정상적인 곳이 없었다. 잭슨은 아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움직일 때마다 우두둑 소리를 내며 뻐근했던 몸이 조금 풀린 기분이 들었다.
“전투 직이 스트레칭도 제대로 안 한 건가? 뭐 그래도 불쌍한 놈이니까. 봐줘야지.”
잭슨의 정체는 김시우, 아델라를 구하기 위해 잭슨의 몸에 빙의한 상태였다.
“스킬이고 뭐고.. 되는 게 없네?”
그나마 체형은 비슷해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평균 이하의 체력과 근력, 거기에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는 외톨이.
시작도 하기 전부 터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두리번거리고 있었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 괜찮으십니까 시우님? ]
“몸이 무겁긴 한데, 적응해야지. 뭐 정보 같은 건 없어?”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잠시 시야가 번쩍거리더니, 눈앞에 익숙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이제는 보이지 않으면 어색한 마키나 시스템 창이었다.
[ 여기에서는 제한된 능력밖에는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
“그렇게 보이네…. 스킬도 인벤토리도 사용 불가고…. 세이브 로드는 1번?”
[ 네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최대한 조심하셔야 합니다. ]
2번 죽으면 끝이라는 말이었다. 뭐 본 몸은 따로 있으니 실제로 죽는 건 아니지만, 기회는 2번 까지라는 말이었다.
이 차원에서는 세이브 로드 능력을 마음대로 사용하기는 힘들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소중한 기회를 날리지 않기 위해서는 몸에 익숙해 지는 게 먼저였다.
적당히 바닥에 널브러진 검을 들어 휘두르고 있을 때 한 여인의 사진이 눈앞에 보였다.
녹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미녀, 옷은 현대에서는 보기 힘든 중세시대 의상이었다.
“이 사람이 아델라야?”
[ 네 그렇습니다. 시우님. ]
“좋아.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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