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106 그룹 평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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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잠깐만 멈춰 볼래?”
“응..? 갑자기 왜?”
다은이가 지나가려던 자리 위로 비수 하나를 던지자 와이어가 끊어지며 벽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어..”
“야 강주원! 너 똑바로 확인 안 해?”
자칫 잘못했으면 다은이가 다칠 수도 있는 상황에 민지가 앞에 있던 강주원에게 화를 냈다.
“내가 지나갈 때는 없었는데..”
“왜 그래 민지야, 실수 할 수도 있는 거지.”
“하아.. 진짜.”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이긴 하지만, 내 말을 듣고는 멈추는 민지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강주원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아마 질투라도 하고 있겠지, 철벽 여왕이라 불리는 민지가 나에게만 태도가 다르다는 건 바보가 아니면 눈치를 챘을 거다.
‘뭐 저 녀석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
한 명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발동되지 않는 함정이니까.
먼저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심리를 노리고 만들어진 함정인데, 미리 알고 있는 게 아닌 이상 함정이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시우야.. 고마워.”
*아니야. 그러면 계속 가볼까?”
“응!”
그 뒤로는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솔직히 내가 여길 한두 번 지나간 것도 아니고 어디에 뭐가 언제 튀어나올지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였다.
너무 알고 있는 듯 행동하면 의심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고 있었다.
흡혈박쥐도 처리하고 마법 골렘도 쉽게 처리하고, 쭉쭉 앞으로 나갔다.
“여기서는 오른쪽인 거 같아.”
다은이가 말하는 방향대로 걸어가자 드디어 이전에 막혔던 그 공간이 나왔다.
“아..”
막다른 벽을 보고 실망한 표정을 짓는 다은이를 적당히 위로하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된 것처럼 말했다.
“이쪽에 뒤에 공간이 있는 거 같아. 바람이 좀 다르게 흐르는 거 같은데.”
“뒤쪽에 공간이 있다고?”
서둘러서 자리를 피하려던 강주원이 벽 쪽으로 다가왔다. 본인도 미묘한 흐름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데? 뭐 벽이라도 부수려고?”
“어.”
“뭘 어떻게 하려는 건데?”
민지도 있고, 폭탄도 있고, 다은이도 있고 방법은 많지 않나?
내가 폭탄을 꺼내 들자 강주원은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뒤쪽에 어떻게 돼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너무 위험한 선택 같은데.”
여기로 가는 게 제일 빠르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다은이가 말한 흐름이 나도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
“무슨 말을..”
“나도 살짝 다른 느낌을 받기는 했어.”
“…”
민지까지 합세하자 결국 강주원이 뒤로 물러났다.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민지 말은 잘 따르는 모습이었다.
“…”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은이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그건 안 보이는 모양이다.
그냥 부수면 부서질 줄 알았는데 벽 표면만 돌로 되어 있고 마력으로 보이는 힘으로 강화되어 있었다.
민지가 폭발을 이용해서 마력의 흐름을 뒤흔들고, 그 뒤에 바로 폭탄을 터트리기로 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다은이의 베리어 마법을 준비해 두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결과는 대성공, 폭발이 일어나면서 파편이 좀 튀긴 했지만, 다은이의 베리어에 모두 막혔다.
여기만 지나가면 드디어 서아와의 내기에서 승리하는 거다.
“내가 먼저 가볼게.”
내가 앞장서려 했지만, 민지에게 제지당했다. 골렘하고 싸운 뒤로부터는 이렇게 보호하려는 느낌이 강했다.
뭐 별다른 위험이 없는 걸 알고 있기에 민지를 먼저 보냈고, 그다음은 강주원, 그리고 나 마지막으로 다은이가 걸어오던 중이었다.
“어..?”
다은이가 넘어오려는 순간 바닥이 푹 꺼져버렸다.
“꺄아아아악!!!”
“이건 또 뭐야.. 씨..”
상황 파악할 시간도 없이 불길해 보이는 통로로 나도 곧장 뛰어내렸다.
“야! 김시우!!”
고개를 올려다보니 민지도 여기로 달려들려는 걸 강주원이 붙잡고 있었다.
“야 안 놔?!! 놓으라고!! 이 새끼야!!”
“위험하게 왜 그래!”
“
현재 다은이와 나는 떨어지는 중이었다.
'이게 이렇게 되나..'
쉽게 좀 가는 게 싶었더니, 일이 이렇게 꼬일 줄 몰랐다.
던전 싱크홀이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푹 꺼지는 경우를 말한다.
일반적인 환경에서 생겨나는 건 아니고, 흔히 미궁이라 부르는 곳에서 가끔 볼 수 있었다.
각 층으로 분류되어 위로 층이 있는 경우는 탑,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경우는 미궁이라고 부른다.
그냥 일반적인 인공 던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일반적인 던전이면 다목적으로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기는 하다.
미궁이면 출입구와 출구만 변경하면, 각 상황에 맞춰 다목적으로 쓰는데 적합할 거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폭탄이 터지면서 뭘 잘못 건드린 모양이다.
바닥으로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이 속도로 떨어진다면 솔직히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었다.
던전 붕괴 현상부터, 던전 싱크홀까지 살면서 한 번도 경험 못 한 사람도 많은데, 나는 안 좋은 건 다 경험하고 있다.
인공 던전이라 일반적인 싱크홀과는 다른 것 같았다.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떨어지면서 주변 풍경이 계속 변화하는 중이었다.
떨어진다는 느낌보다는 포탈을 타고 어딘가로 빨려가는 느낌이었다.
그 때문인지 마력을 사용하려 해도 알 수 없는 반발력이 일어나며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든 다은이의 위치를 확인했다.
다은이도 간섭력 때문에 마법사용이 안 되는지 패닉상태에 빠진 모습이었다.
일단은 눈이라도 제대로 뜨려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 항마 : 활성화 ]
항마의 힘을 활성화하자 반발력을 밀어내고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직으로 하던가?'
언제 인터넷에서 스카이 다이빙하던 영상을 떠올리고 몸을 수직으로 세웠다.
공기의 저항이 사라지며 더 빠르게 떨어지면서 아슬아슬하게 다은이를 잡을 수 있었다.
떨어지는 건 처음이라 감각을 잡기 힘들어 하마터면 다은이를 놓칠 뻔했다.
패닉 상태에 빠진 다은이가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게 느껴졌는데, 괜히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 같아서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시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다은이를 잡는 건 성공하긴 했는데, 이제 착지가 문제였다.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통로의 끝이, 아까 우리가 있던 동굴의 천장 같은 곳이면 대응할 순간도 없이 바로 땅에 박힐 거다.
이미 속도가 붙은 상황에서 마력을 끌어올린다고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야 이미 죽어본 경험도 많고 고통 내성도 있어서 괜찮지만, 다은이가 문제였다.
나는 죽어도 되지만, 다은이가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여기가 끝?’
빨려 들어가는 느낌의 끝에 드디어 통로 끝에 도착한 모양이다.
미궁 안이라고 하기에는 완전히 다른 풍경, 높은 얼음 산들과 눈과 빙하가 깔린 극지방이 나타났다.
풍경을 감상할 시간도 없이 우리는 상공에서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래도 바다에 처박히기 전까지는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 오버 클럭 : 활성화 ]
극한의 상황을 많이 겪어 봐서 그런지 오히려 더 침착해지는 기분이었다.
오버 클럭을 활성화하자 몸에 일시적으로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심장이 더 빠르게 뛰면서 혈류량이 증가하고, 마력이 회로를 따라 평소의 몇 배는 되는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느낌을 느끼며, 지금 필요한 스킬을 발동시켰다.
‘창조!’
지금 필요한 건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거기에는 낙하산 만한 게 없었다.
[ 창조할 물건을 지정해 주세요 ]
'낙하산!!'
지금 상황에서는 등 뒤로 매는 낙하산을 쓰지 못할 게 분명했다. 낙하 속도만 줄일 수 있는 형태의 낙하산을 떠올렸다.
한쪽 팔에 걸 수 있는 기이한 모양의 낙하산에, 내구성이 튼튼하게 비행형 몬스터의 소재로 된 낙하산을 떠올렸다.
완성과 동시에 인벤토리에 생겨난 낙하산을 꺼내 들었다.
왼팔로 다은이를 고정하고, 오른팔로 잡고 있던 낙하산 줄을 입으로 당겼다.
낙하산이 펼쳐지는 순간 마력으로 오른팔을 강화하고 있음에도 강한 반발력이 느껴졌다.
잠깐의 고통과 함께 인생 하직 직행버스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팔이 좀 아프긴 하지만, 죽는 것 보다는 나았다.
[ 오버 클럭 : 비활성화 ]
탈력감과 함께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 사용한 거라 그런지, 몸이 좀 무거워 진 것 말고는 큰 반동은 없었다.
'시발.. 살았다..'
고작 몇 초의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렇게 높은 곳에서는 떨어지는 대에도 시간이 한참 걸리는 모양이다. 솔직히 다시 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까 다은이가 조용했다. 많이 놀랐을 다은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안부를 물었다.
“다은아 괜찮아?”
내 품에 안겨있는 다은이를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한 번 더 다은이를 불렀다.
“다은아?”
다은이는 정신을 잃었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정신을 잃은 상황에서도 날 놓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하긴 이렇게 갑작스럽게 수천미터 상공에서 떨어지는데 제정신을 유지할 인간이 얼마나 있겠어.”
안심하면서 몸에 긴장이 쭉 빠졌다. 그래도 다은이와 낙하산을 놓으면 안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붙잡고 있었다.
바람에 의해 방향이 달라지긴 했지만, 이대로 떨어진다면 우리가 떨어질 곳은 바다였다.
“…”
많은 게 생략된 낙하산은 떨어지는 속도만 줄여줄 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강제로 냉수마찰을 당한 다은이가 깨어났다.
"어푸푸푸!!? 푸푸우?"
"다은아 진정해!"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차가움에 놀랐는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걸 잡는 다고 고생했다.
창조 스킬로 물에 뜰만 한 물건을 만들어서 같이 붙잡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주위에는 온통 눈과 얼음이 가득한 상황에서 나와 다은이는 물에 푹 젖은 상황이었다.
체온이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하고, 맹렬한 강추위가 우리 둘을 덮쳤다.
“어..어..어떻게..되..된거..야?”
“일단.. 숨을 고..고. 곳부터 찾을까?”
다은이가 칼바람에 덜덜 떨면서 질문을 던졌고, 나도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자..자..시..만…”
덜덜 떨면서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허공에 마법 진이 그려지더니 바람을 막을 만한 얇은 보호막이 바람을 막아주었다.
바람을 막으니 아까보다는 살만하긴 했지만, 추운 건 여전했다.
그도 그럴 게 설원지대에서 물에 푹 젖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쪽에 동굴 같은 게 있다..”
“시..시우..야..빠..빨리 가자..”
우리 둘은 말없이 동굴로 달려갔다.
밖보다는 나아도 여전히 추운 상황, 난로 같은 것도 없고 옷도 젖은 상태라서 그렇겠지.
그걸 깨달은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