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103 그룹 평가 (3)
* * *
*
민지가 아니었다면 크게 다쳤을 거다.
‘역시.. 민지는 다르구나..’
저렇게 커다란 건틀릿을 끼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몸매도 좋고, 여자인 자신이 봐도 멋있어 보였다..
“스톤 골렘이네.”
“마법 골렘 아니야?”
동굴과 비슷한 재질의 사각형 돌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블록과 블록 사이에는 밝은 빛을 내는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골램이 두 팔을 들어 올려 바닥을 내려치는 자세를 취했다.
“조심해!”
골렘이 바닥을 내려친 순간 몸이 휘청거려 넘어 질 뻔했지만 시우의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다.
‘또 도움받았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위에 매달려 있던 종유석들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다은아 보호막!”
“아..알았어!”
‘더 강하고, 튼튼하게!’
보호막 마법에 집중한 순간 천장에 있던 종유석들이 소나기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묵직한 충격이 보호막을 지속해서 때리기 시작했다.
4명을 동시에 보호하려고 하는 게 쉬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차석인 이다은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둘다 아래쪽 조심해.”
“말 안 해도 알고 있다.”
공격이 끝난 뒤에는 바닥에 온통 부서진 돌 조각으로 가득했다.
“후우..어?”
방어에 집중하던 이다은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골렘의 사정거리에 들어와 있었다.
종유석 소나기가 내리는 틈을 노리고 다가온 모양이었다.
공격을 준비하는 스톤 골렘을 보고 굴러서 피하려고 했지만, 바닥 상태를 보고 있으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골램의 공격은 특별할 것 없는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지만, 그 크기와 재질을 생각 할때 공격이 결코 가벼울리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방어하면 된다고 생각한 이다은이 방어 마법을 준비하던 순간,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걸 느꼈다.
“꺄악!?”
“내가 다은이를 뒤로 옮겨 줄 테니까 너희도 방어하지 말고 피해!”
"어..어어?"
“미안 다은아 조금만 실례 좀 할게.”
중저음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시우의 목소리가 이렇게 좋았던가?
꿀처럼 달콤한 시우의 목소리에 기분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시우에게 공주님처럼 안겨있었다.
가까워진 거리 덕분에 느껴지는 단단한 몸과 팔, 팔뚝에는 갈라진 근육이 보였고 굵은 핏줄이 선명하게 보였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가까운 거리에 보이는 김시우의 얼굴.
어느 각도에서도 전혀 굴욕적인 모습이 없는 완벽 그 자체였다.
야성미가 가득한 남자다운 느낌과 웃기만 해도 여심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잘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상반되는 매력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걸까?
한번 김시우를 의식하기 시작하자, 뒤쪽으로 도약하는 시간이 마법에 걸린 것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고작 몇 초의 그 짧은 시간이 몇 배는 길게 느껴진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김시우가 달라 보였다. 이미 예전부터 그런 느낌을 받긴 했지만 인정하려 하지 않았었다.
‘이다은 뭐 하는 거야 전투에 집중해야지.’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이다은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시우는 끝까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이다은을 내려놓았다.
“다은아. 공격 준비해줘!”
“아.. 알았어! 자..잠시만!”
김시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변에 광충이라고도 불리는 투척물을 사방에 뿌렸다.
일시적으로 밝은 빛을 내는 투척물 덕분에 주변이 밝아졌다.
“라이트는 꺼도 돼.”
“고..고마워.”
라이트 마법이 효율이 좋은 마법이긴 하지만, 이런 전투상황에서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시우는 세심하구나..’
잠깐 정신이 팔리긴 했지만, 빠르게 전투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차석의 자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걸 증명하듯 아주 짧은 시간 내에 허공에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번개의 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공격하면 주원이하고 민지가 맞을텐데..’
빠른 시전속도로 공격하는 게 그녀의 장점이었지만, 파티 플레이에서는 그 장점을 살리기 힘들었다.
골렘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는 강주원과 강민지를 보며 공격할 틈을 노리고 있었다.
조금만 실수해도 이전과 같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긴장되는 순간 김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지야! 강주원! 뒤로 물러나!”
특별한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김시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강주원과 있을 때는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 없었는데, 마음을 바로잡은 이다은은 정확하게 머리 부분을 노리고 번개의 창을 날렸다.
폭발음과 함께 스톤 골렘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으나, 돌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전격 공격의 효과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지나자 바닥에 떨어졌던 파편들이 다시 머리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재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김시우! 이거 재생하는 거 같은데!!”
“코어를 부숴야 할 거 같아! 민지야 어디 있는지 알겠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던전형 게이트에 들어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골렘은 코어를 부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았다.
골램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코어를 찾기 위해 이다은은 눈을 감고 마력의 흐름에 집중했다.
“몸통 부분에 있는 것 같아!”
“알았어! 한번 노려볼게!”
강주원이 검을 마력으로 강화해 몸통 부분을 내려치려 했으나 두 팔에 가볍게 막혀버렸다.
돌 파편이 조금 튀었을 뿐 그다지 효과는 없어 보였다.
“야! 비켜!”
“…”
강민지의 외침에 강주원이 능력 사용을 통해 옆으로 비키고, 마력을 끌어올린 펀치를 골램에게 날렸다.
“이것도 막아봐!!”
주먹을 뻗는 순간 강한, 건틀릿의 끝부분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강민지의 고유능력인 폭발을 활용한 공격, 고작 파편이 튀었던 강주원의 공격과는 다르게 확실하게 금이 가 있었다.
재생하기 전에 곧장 공격하려는 순간 위기감을 느낀 골렘이 양팔을 벌리고는 회전하기 시작했다.
“둘 다 뒤로 피해!”
믹서기처럼 무서운 기세로 돌아가는 골렘은 상체를 회전시키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질량과 회전력이 합쳐진 공격은 단 한 번만 맞아도 빈사 상태에 이를 정도로 위험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강주원과 강민지가 뒤로 물러났고,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던 골램이 회전을 멈췄을 때에는 민지의 공격으로 입은 피해에 대한 회복이 끝난 상태였다.
“저걸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아직 초반부에 마력을 소모하는 건 좀 그런데.”
쓰러트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초반부에서 대량의 마력을 소모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마력을 소모하면 전투력은 물론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속도가 중요한 이번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어 보였다.
“역시 그걸…”
어쩔 수 없이 핵 펀치를 사용하려던 강민지를 김시우가 막아섰다.
“내가 빈틈을 만들면 바로 공격해줘.”
그렇게 말하고는 시우가 앞으로 걸어갔다. 시우의 고유 능력인 항마의 불꽃이 검에 타오르더니 이전에는 맹렬한 기세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강주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강해 보였다.
‘시우가 언제 저렇게 강해졌지..?’
그런 의문이 끝나기도 전에 김시우가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야 김시우 위험하게 뭐 하는 거야!!!”
시우가 접근하려던 순간 아까처럼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접근 자체가 힘들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김시우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시우야!! 위험해!!!”
이다은도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하며 소리쳤지만, 여전히 김시우는 멈추지 않았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걱정되는 마음에 이다은은 자신도 앞으로 가려고 했다.
“야!! 너 이 멍청이가!! 진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민지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우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골렘의 두 팔에 김시우가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몸을 아래로 숙였다.
머리카락이 스칠 정도로 미세한 틈을 노리고 골렘의 다리 밑으로 파고 들어간 김시우가 다리의 관절 부분을 공격하고는 빠르게 사정거리 밖으로 나갔다.
부수지는 못했으나 유효한 공격이었는지 골렘이 휘청거리며 회전력이 떨어졌다.
놈이 삐걱거리는 사이에 공격했던 부분을 다시 공격했다.
톱으로 무언가를 갈아내는 소리와 함께 다리 부분이 분리되었다.
주원이 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과감함과 위력이었다.
“죽어!!!”
민지가 쓰러진 골렘을 노리고 다시 한번 주먹을 뻗었다. 다리가 잘려 나가 기동성이 떨어진 골렘의 옆구리를 정확하게 노리는 공격이었다.
퍼엉, 폭발음과 함께 골램의 몸통 부분이 쪄 적 갈라지며 영롱한 빛을 내는 코어가 겉으로 드러났다.
“오케이 나이스!”
민지가 마무리를 하려 주먹을 뻗었지만, 골렘의 두 팔에 공격이 막혔다. 하지만 그 틈을 놓칠 김시우가 아니었다.
__ 크가가가가각
맹렬한 기세로 회전하는 김시우의 검이 틈새로 드러난 코어를 노리고 들어갔다. 뒤늦게 공격을 피하려 몸을 비틀었으나, 그럴수록 시우의 검은 더 빠르고 위험하게 회전했다.
‘아..’
__쿠웅..!
결국 코어가 부서지면서 동력이 꺼진 골렘이 추욱 늘어졌다.
“야! 김시우 이 멍청한 새끼가! 위험하게 뭐 하는 거야!!”
이다은은 그런 김시우를 보며 멋지다는 생각과 동시에 걱정 때문에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김시우가 잘못될 뻔했다고 생각하니 도통 심장이 진정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작 친구 사이인데, 이렇게 걱정될 수가 있을까?
“그렇게 위험한 짓 안 해도 쓰러트릴 수 있었어!! 너 진짜 내가 그런 짓 하지 말라 했지!!”
“미안, 그래도 이겼으니까 된 거 아니야?”
“너 진짜 그게 말이라고..”
“민지야 너 얼굴에 상처 났다. 가만히 있어 봐 예쁜 얼굴에 흉지면 안 되잖아.”
“아니 뭐 하는 거야.. 너도 다쳤으니까 가만히 있어.”
서로 티격태격 되며 상처를 치료해 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만약에 내가 김시우의 파트너였다면 어땠을까?
자신도 저렇게 자상한 표정으로 웃어 줬을까?
이다은은 고개를 돌려 강주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둘의 모습을 보고 질투하는 듯한 모습, 옛날에는 이렇게 얼굴만 보고 있어도 좋았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놀이동산에서도, 단둘이 있는 시간에도 예전처럼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나.. 시우를 좋아하는 걸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