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100 놀이 동산 (6)
* * *
*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 낡은 철창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낡아 보이는 전단지.
아르바이트생의 안내에 따라 소지품을 모두 챙겨 넣고 마력 억제 장치까지 착용한 상태에서 입구에 대기 중이었다.
옆에서 자꾸 김시우가 말을 거는데, 뭐라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 떨고 있는 거야?'
김시우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분명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게 잘되지 않았다.
공포 영화도 잘 보지 못하는 강민지로서는 여기는 절대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세아가 가고 싶다고 했는데….'
세아의 부탁으로 오게 된 곳인데, 여기서 혼자만 빠졌다가는 김시우가 또 어떤 말을 할지 몰랐다.
능글맞은 얼굴로 이런 것도 무섭냐고 놀릴 게 분명했다.
옛날에는 자신의 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자신보다 더 강해져 버린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추월당한 기분이 들어서 따라잡으려고 노력해도, 아주 잠깐 시간이 흘러가면 더 거리가 벌어져 버린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오히려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앞장서는 김시우를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떨렸다.
마치 베테랑 헌터들 처럼 노련한 움직임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자신보다 각성을 늦게 한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솔직히…. 멋지긴…. 아니 김시우가 뭐가 멋지다는 거야!'
항상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놀리기만 하는데, 그런 김시우가 뭐가 멋있겠는가.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렇게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드디어 우리가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자 그러면 안으로 들어갈게요~"
정말로 못하겠다 싶으면 손을 위로 들어서 x자로 만들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김시우가 매번 놀릴 게 분명했다.
'하나도 안 무서워.'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 최면을 걸어 보이지만 바로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공간이 나타나니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는 기분이 들었다.
손전등이라고 챙겨준 건 붉은 빛 때문에 오히려 더 무섭게 보일 뿐,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아까 고소공포증에 떨던 모습을 보여주던 서아는 공포에는 강한지 평상시처럼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서아의 동생이라 했던 세아의 경우는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신나 보였는데, 이런 걸 좋아하니 아마 같이 오자고 부탁한 게 분명했다.
음산한 소리 때문인지 더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앞으로 나가는 게 힘들 때, 옆에서 누군가가 내 손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
코끝을 자극하는 달콤한 체향과 함께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안심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두려운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걸어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 자신을 놀리듯 그 능글맞은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김시우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렸다.
이제 막 어둠에 적응해서 그런지 어렴풋이 김시우의 얼굴이 보였다. 형체를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지만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보였다.
놀리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그거로 생각했는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민지야. 무리 안 해도 돼. 괜찮아?"
자신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귓속말, 평소의 김시우 목소리와는 다른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두근, 김시우에게 품에 안기는 게 그리 새로운 일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심장이 떨리고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괘…. 괜찮거든 멍청아. 빠…. 빨리 서아랑 세아를 따라가자."
"언니~ 빨리 오세요. 이쪽으로 가는 거 같아요~"
"가…. 갈게!"
나무로 된 벽을 지나 앞으로 이동한다. 조금 앞으로 가자 갑자기 옆에서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꺄악!"
시선을 돌려보니 소름 끼치는 귀신의 얼굴이 거울에 떠 있었다.
"꽤 꼼꼼하게 생겼네요? 언니 이거 진짜 같지 않아요?"
"그냥 징그러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귀신의 생김새를 평가하는 두 명과는 다르게 강민지의 심장은 이미 바닥까지 한번 떨어졌다가 올라왔다.
그때 자신의 손을 누군가 꽉 쥐는 느낌이 들었다.
'김시우..'
김시우가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금방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앞으로 걸어가자 첫 번째 문이 나타나고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문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들려오는 음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은은한 빚을 내는 전등 주변에는 거미줄이 잔뜩 붙어 있었다.
__미야오옹!!!!!!
고양이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휙 하고 지나갔다.
"꺄아아악!!"
"오.."
"언니 괜찮아요?"
"민지야.. 괜찮아?"
"괘…. 괜찮다니까.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아!"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생각보다 중도 포기하는 사람 많아요~"
솔직히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자신 혼자만 놀라고 있는 것 같았다.
김시우도 놀라긴 했지만, 작은 감탄사만 할 뿐 자신만큼 놀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민지야. 무리 안해도 돼."
마음을 안심시키는 김시우의 목소리,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할..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면 오빠가 좀 잘 챙겨줘요~?"
"걱정하지 마."
"..."
앞에 있던 서아가 잠시 불만스러워 보이는 표정을 짓는 것 같았지만, 어두워서 확인이 힘들었다.
앞으로 걸어갈수록 음산한 분위기와 함께 소름 끼치는 장식물들이 나타났다.
"이거는 실험을 표현한 걸까요?"
"그런 거 같아.."
정신병자가 실험을 한 것처럼 보이는 공간에는 실험 도구로 보이는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김시우의 손을 잡고 거의 끌려가듯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_구해줘!!!!!!!!!!
"까아아악!!!!!!!!"
"어.."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을 뻔한 걸 김시우가 잡아줬다.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튼튼한 팔힘에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단단했었나?'
"서아 언니~ 방금 놀랐어요?"
서아도 놀랄 정도로 갑자기 튀어나온 귀신이었다. 서아도 놀랐다고 생각하니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안심되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놀랐어.."
"음~ 귀여워요! 언니 제 품에 안길래요?"
"싫어.."
서아와 세아가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금세 마음이 안정되었다. 사실 김시우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더 큰 것 같지만 그건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야 김시우.. 너 원래 이런 거 아무렇지 않아?"
"아니 그냥, 언제 뭐가 나올지 예상이 가는 거 같은데."
김시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숙여 얼굴을 가까이 대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네. 민지야 너무 힘들면 여기서 그만할래?"
원래 이렇게 듬직했었나. 무서운 분위기 때문인지 김시우 때문인지 모를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괜찮거든 멍청아!"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하니 얼굴에 무언가가 스치기 시작했다.
"꺄악!"
"위에 머리카락 같은 게 있네요? 이런 건 좀 소름 끼치네요~"
"불쾌해.."
자꾸 신경 쓰이는 무언가를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어렸을 적 과학 시간에 맡아 봤던 포르말린 냄새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흔히 과학실에서 쓰는 생물 표본 병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흐음~ 이거는 실제 동물인가? 좀 징그럽다. 그렇죠?"
세아가 구석에 있는 장식물을 신기하다며 보고 있었지만, 솔직히 보고 싶지 않았다.
철창으로 된 공간에 양옆에 팔과 다리가 튀어나와 있는 건 심장 건강에 좋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이상한 소리와 장치들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악!!!!!!!"
갑자기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강한 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이번에도 주저앉으려는 걸 김시우가 잡아줬다.
"하아.. 하아.."
목이 다 쉬어 버릴 정도로 계속 질러서 그런지 목이 칼칼한 느낌이었다. 울고 싶은 기분이 드는데 그럴 때마다 김시우의 두꺼운 손이 자신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김시우가 쓸어내릴 때마다 자꾸만 괜찮아졌다.
'오…. 오늘은 왜 이러는 거야.. 이 멍청이가..'
이런 반응에 계속 자신을 놀릴 줄 알았는데, 이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다.
실험실로 보이는 공간에는 시체로 보이는 무언가가 누워 있었고, 반복적으로 울리는 심전도 기계의 소리는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워어!"
"꺄아아아악!!"
"흐흐, 언니 반응 완전 재밌다!"
"야! 윤세아! 하지마!!"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목덜미가 뻐근하고 뭉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 끝나는 거야.."
진행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보며 한참은 걸어 온 거 같은데, 왜 끝나질 않는 건지 짜증이 올라올 때쯤 갑자기 등 뒤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의사 가운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고, 얼굴이고 손에는 불탄 화상 자국에, 소름 끼치는 분장이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음산한 소리와 어두운 환경 때문에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그어어어!!"
"꺄아아아아악!!!!!!!!"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에 김시우의 손을 잡고 앞으로 달려갔다.
"야! 민지야!"
시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앞으로 달려가고 나니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공간이 나타났다.
"하아.. 하아.. 진짜 개 짜증나.."
달려와서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김시우의 손이 아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까 김시우가 이렇게 느렸었나?
달려올 때는 몰랐는데 거의 끌려오다시피 따라왔던 거 같은데?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봤던 그 의사가 서 있었다.
"어.."
"그어어어!!!"
"꺄아아악!!!"
나도 모르게 주먹이 올라가는 순간 뒤에서 달려온 누군가가 내 팔을 붙잡았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뻔했네. 민지야?"
김시우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긴장이 다 풀려 버렸다. 눈물이 눈가에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이..이 나쁜 새끼야! 엉어엉엉"
"민지야 울어?"
"몰라아아! 힝 으어어엉"
그렇게 김시우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크고 단단한 가슴에 안겨 있으니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그걸 느꼈다. 나는 정말로 김시우를 좋아하는구나.
'뭐.. 뭐라는 거야..'
그렇게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리니 서아와 세아가 뻔히 쳐다보고 있었다.
'씨.. 개 쪽팔려….'
얼굴이 화끈거려서 귀신이고 뭐고 이제는 놀라지도 않고 귀신의 집을 나왔다.
*
대한 아카데미가 정상화 되고 며칠 뒤 드디어 그룹평가 날이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