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097 놀이동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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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곳에서 서 있으니 준비를 끝낸 민지와 서아가 등장했다.
민지는 평소와는 다른 스타일로 옷을 입고 나타났다. 여름에 맞게 얇아 보이는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프릴이 많이 달려서 그런지 평소보다는 가슴 쪽으로 시선이 덜 가는 편이었고, 치마도 A라인 치마로 골반라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본래 몸매가 워낙 좋은 편이라 숨길 수 없기는 했지만, 평소에 자주 입는 몸매가 두드러지는 의상이 아니라 오늘은 청순한 느낌이 강조되는 느낌이었다.
'저런 옷도 잘 어울리네.. 서아는..'
서아도 나풀거리는 소재의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소재에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크림색 셔츠였다.
셔츠가 조금 타이트하게 되어 있어 가슴 부분이 살짝 부각되어 보였고 그 밑으로는 검은색 서큘러스커트와, 치마보다 더 연한 검은색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저번에 백화점에 가서 샀던 의상을 그대로 입고 왔었다.
"..."
민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서아와 나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그때 비싸게 주고 산 옷이라 아무 생각 없이 입고 왔는데, 누가 봐도 서아와 내 옷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크림색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 옷을 입고 있었는데, 흔히들 커플이 많이 입는 시밀러 룩이었다.
서아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는데, 민지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민지의 표정이 더 구겨지기 전에 먼저 달려가서 말을 걸었다.
"미..민지야! 그옷도 잘 어울리네, 평소랑 스타일이 달라 보인다?"
"이번에 새로 샀어.. 그런데 둘.."
"민지는 본판이 돼서 그런가, 뭘 입어도 예쁜 거 같다. 나는 이런 스타일도 좋은 거 같아."
"뭐..뭐라는 거야.. 그냥 입은 거 거든.."
적당히 민지를 칭찬해 주니 넘어가는 분위기처럼 보였는데, 이번에는 서아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서아도 잘 어울리네, 거의 제복만 입잖아."
"응.. 시우도 잘 어울려.."
"서아야. 둘이 옷 비슷한 거 같다?"
"응.. 저번에 시우랑.."
"서아한테 옷 추천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샀었어. 잘 어울리지?"
"자..잘 어울리기는 하는데.. 언제 산 건데?"
"방학 때.. 시우랑.."
"응 서로 좋아하는 색이 비슷하더라고, 사고 보니까 이렇네?"
"둘이 같이 가서 산 거야?"
"응…. 같이가서.."
" 민지야 서아야 배 안 고파?"
다시 표정이 날카로워지는 민지의 손과 서아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갔다.
"나 배고파! 밥 먹으러 가자!"
"야 잠깐 내 말.."
"..."
그렇게 막무가내로 걸어가다 보니 민지가 내 팔을 끌어당겼다.
"그쪽에 식당 없거든 멍청아."
"아.. 미안 내가 놀이동산은 처음 와봐서."
"시우.. 한 번도 와본 적 없어..?"
"응. 이번이 처음 온 거야."
보통 학교에 다니면 수학여행으로 꼭 가는 곳이 놀이동산이긴 하지만, 그 돈도 부담이라서 잘 가지 못했다.
그나마 괜찮은 선생님의 경우는 자신이 돈을 내줄 테니 가보는 게 어떻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너무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서 거절했었다.
부담스러워서 그날은 무단으로 결석했었다. 그 날 이후 애들한테 놀림도 받았었지.
잠시 과거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는데, 민지와 서아의 표정이 안쓰럽게 변했다.
"시우야.. 내가 다 사줄게.."
"하아 진짜.. 멍청이가.. 서아도 많이 와 본 적 없지?"
서아의 경우는 다른 이유에서 많이 못 오지 않았을까?
"응.. 별로 안 와봤어.. 어머니가 바쁘셨거든.."
"오늘 제대로 놀고 가자."
민지가 그렇게 말하면서 서아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야, 빨리 따라와 멍청아! 밥 먹으러 갈 거니까."
두 명을 따라 걸으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스코트로 보이는 인형 탈을 쓴 알바들이 이쪽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내 기억에는 좀 더 무섭게 생겼던 거 같은데, 마스코트도 시간이 지나면 계속 변화하는 모양이다.
평일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가족끼리 온 사람들도 있었고,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전부 대한 아카데미 생도로 가득 차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크기도 크기라서 그런지 헌터로 보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꽤 있기는 하네.'
서아의 머리카락 색이 하얀색이다 보니, 멀리서도 시선이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지 몇 몇 일반인들이 신기하게 보는 경우도 있었는데, 서아는 익숙해서 그런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뭐 남들의 시선을 받는 게 익숙하다 보니, 이제는 크게 생각이 없어진 거 같기는 하다.
놀이동산 답게 뭔가 귀여워 보이는 장신구들과 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여름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살짝 더운 게 아쉬웠다.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민지와 서아가 날 보고 있었다.
"괜찮은 거 같아..?"
"왜 여기 오니까 좋아?"
"아니, 그냥 신기해서.."
그러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두 명이 내 양옆으로 이동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둘 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식당이 한쪽에 몰려있는 게 아니고, 여러 군데에 분포된 모양이다. 그래서 식당마다 전문적으로 하는 게 달라서 메뉴 정도는 정하고 가야 하는 모양이다.
민지는 가장 가까워 보이는지도 앞으로 우리를 데려왔다.
"여기도 많이 변했네.."
민지도 최근에 온 건 아니라서 그런지, 새로 생긴 가게들을 확인했다.
지도에는 각 음식점에서 뭘 파는지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둘은 뭐 먹고 싶어?"
"아무거나.. 괜찮은데.."
점심 메뉴 정하기,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고민거리 중 하나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각자의 입맛이 다르다 보니, 선택하기 까다로웠다.
"노벨 떡볶이도 있네?"
지도 한쪽에는 터질듯한 볼을 가진 보라색 머리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방학 때 서아랑 같이 갔던 곳인데 여기서 보니까 뭔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노벨 떡볶이가 있다고?"
민지도 관심을 가지고 지도를 확인했다. 반응이 저렇게 나오면 점심 메뉴는 정해진 모양이다.
"그러면 저기로 갈까?"
"응..나는 좋아.. 내가 다 사줄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서아의 말을 듣자 민지가 머리를 긁적였다.
평소에는 말을 못 하긴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3명이 모이면 항상 돈을 쓰는 건 서아의 몫이었다.
맨날 얻어먹기만 하기에는 양심이 좀 찔리긴 했다.
"아니야, 이번에는 내가 살게."
"내가 살 테니까 너는 밥이나 챙겨 먹어 멍청아."
나도 이제 먹고살 만해 졌는데, 민지나 서아한테는 그렇게 안 보이는 모양이다. 한참 계산하는 거로 민지와 다투고 있을 때 서아가 뒤에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 때문에.. 불편해..?"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 서아야. 전혀 그런거 없어 그냥.."
"그러면 내가 살래.. 나 용돈 많이 받았어.."
"..."
결국, 이번 점심도 서아에게 얻어먹었다.
*
이번에도 서아가 잔뜩 시켜버려서 좀 남은 것만 빼면 만족스러운 식사 시간이었다.
점바점이라고, 지점마다 맛이 다른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놀이동산에 있는 지점도 맛은 괜찮았다.
"어디부터 갈까?"
"뭐 가고 싶은 곳 있어? 나는 다 해봤으니까 서아랑 네가 정해."
"흠.. 그렇게 말해도 뭐가 있는지 잘 모르는데. 서아는 어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서아가 하늘 쪽을 가리켰다.
"저거.. 타봐도 돼?"
스카이 웨이, 스키장 리프트처럼 생긴 탈것이었다. 이동의 수단보다는 구경의 느낌이 강한지 걷는 것보다 느려 보였지만, 그래도 위에서 보는 건 또 느낌이 다른 법이었다.
"그럼 저거부터 타자."
"고마워.."
우리 3명이 걸어가서 스카이 웨이를 탑승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팔각형으로 된 지붕이 멀리서 보이는 곳에 많은 사람이 스카이 웨이를 타기 위해 와있었다.
2명밖에 못 타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좌석이 넓어서 3명 모두 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여름이라 햇빛을 걱정했는데, 빛을 가릴 수 있는 가림막까지 달려 있었다.
"가림막이 있는 건 처음 봐."
민지도 가림막은 처음 보는 듯했다. 우리는 리프트가 회전하는 장소에 대기하고 있다가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리프트에 탑승했다
자연스럽게 가운데에 탑승하니 민지와 서아가 양쪽에 앉았다. 적당히 안전바를 내리고 리프트가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바로 아래쪽에는 안전망이 있어서 바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옆으로는 놀이동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 부터, 대관람차, 그리고 놀이동산의 꽃 롤러코스터까지 없는 게 없어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 터지게 싸웠는데, 분위기 때문인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민지야 저건 타봤어?"
__꺄아아악~~
내려가는 것과 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롤러코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어서 저게 무서운 건지 모르겠다.
"3번 연속도 타본 적 있어, 아직 한 번도 타본 적 없지?"
"응, 저거 많이 무서워?"
"사람마다 다르니까 모르겠네, 왜 무서워 보여?"
민지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안전바를 살짝 흔들었다. 뭐 솔직히 타본 적이 없어서 무서운지 잘 모르겠다.
타 봐야 어떤지 알지, 그나저나 이건 안전바가 고정이 안 되는 건가?
'그런데 서아는 왜 이렇게 조용하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서아가 내 팔을 꽈악 잡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서아의 안색이 어두워 보였다.
"서아야 괜찮아?"
"왜, 혹시 서아 높은 곳 무서워 하는 거야?"
"모…. 모르겠어.."
항상 무표정했던 서아에게는 보기 힘든 표정이었다.
확실히 이 리프트가 다른 곳보다는 높기는 했지만 그래도 안전망도 잘 설치되어 있고 그렇게 무서운 곳은 아닌데.
중간에 내릴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었다.
"미..미안해.."
서아 본인도 이럴 줄 몰랐는지 사과하는 모습이었다. 고개를 앞으로 내민 민지가 서아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야, 김시우 네가 좀 어떻게 해봐 멍청아!"
"괜히 나 때문에.. 미안해.."
고개를 돌려 서아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거니 조금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아냐 서아야 신경 안 써도 돼. 그럴 수도 있지."
"미안해..."
서아의 팔힘이 느슨해진 틈을 타, 팔을 뒤쪽으로 빼서 손이 서아의 머리 쪽으로 가게 했다. 그리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쓸어내렸다.
"..."
점점 서아의 표정이 평상시처럼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응.."
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까 마음이 안정된 모양이다.
아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내 체향을 맡는 모습이었다. 페로몬 효과 중에 상대방에게 안정감을 주는 효과도 있으니까 더 빠르게 괜찮아졌다.
"이제.. 괜찮아.."
문제는 옆에 민지가 있다는 점이었지만, 이미 민지의 고개는 반대쪽으로 돌아가 있어서 이걸 못 본 모양이다.
여기에 신경 쓰지 못하도록 아까부터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중간마다 내 손을 잡으며 저지하긴 했지만 내가 좀 강하게 나오자 아예 고개를 옆으로 돌려 버렸다.
"다음에는 뭐 타러 갈까?"
"모..몰라 멍청아.. 서아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되잖아.."
"서아야 또 가고 싶은 곳 있어?"
"모르겠어.."
이렇게 되면 내가 정해야 하는 건가. 그러고 보면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던 거 같다.
"사파리 버스? 그거 타러 갈까?"
"그…. 그러던지.."
"나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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