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093 인큐버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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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밤이었다. 손에 뭔가 말랑거리는 게 잡혀서 한번 쥐어봤더니 촉감이 나쁘지 않았다.
“으으음..”
“아..”
어둠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니 옆에 누워있는 사람이 누군지 보였다. 어제 좀 심하게 괴롭혔던 민아가 내 품에 안겨서 자고 있었다. 내가 멀어지자 본인도 모르게 품으로 파고드는 게 귀여웠다.
나는 잠들어 있는 민아가 깨지 않도록 몸을 일으켰다. 코끝을 자극하는 음탕한 냄새와 얼룩지고 축축한 침대와 이불, 그냥 확인한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지?”
민아랑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옆에 있던 내가 빠져나와서 그런지 민아가 허공에 헛손질을 몇 번 하더니 눈을 떴다.
방금 일어나서 눈가를 비비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서방님..?”
“어..”
날 발견한 민아도 어둠에 적응했는지 병실의 상황을 파악했는지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민아가 조심스럽게 휴대폰 플래시를 키자 처참한 광경이 더 잘 보였다.
“걸리면 큰일 나겠지?”
“그..제..제가 해결할 테니까 서방님은 가만히 계세요!”
민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휘청거렸다.
“조심해야지”
“가..감사합니다..”
어제 좀 심하게 괴롭혀서 그런지 두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어제 처녀를 잃어서 그런지 걸을 때마다 다리 사이 부분이 쓸리는지 표정이 안 좋았다.
“괜찮아?”
그러고 보면 민아는 처음이었는데, 좀 심하게 했던 거 같다. 붉게 충혈된 아래쪽을 확인한 민아가 당황하며 옷을 입기 시작했다.
“괘..괜찮아요. 이 정도는 별거 아니에요..”
“좀 쉬고 있어. 힘들어 보이는데.”
“가..가만히 있으면 안될 거 같은데요.. 제가 해결할 테니까 서방님은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무리하는 거 아니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A급 헌터에요. 이것보다 더 심한 거도 겪어 봤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서방님은 푹 쉬고 있어요. 몸도 안 좋은데 어제 무리하셨잖아요.”
민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어제 행위로 오히려 몸 상태가 좋아졌는데, 민아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보면서 딱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력의 흐름과 함께 민아의 옷의 구김이 펴지고 얼룩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인챈트 된 옷이야?”
“그러니까 제가 갔다 올게요. 서방님은 그 꼴로 나갈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
민아의 말에 내 옷을 확인해보니, 내 옷에도 얼룩이 가득했다. 병원복 특성상 흰색에 가깝다 보니 얼룩이 더 잘 보였다.
“언제 이렇게 됐지?”
“…모..몰라요. 아무튼 가만히 기다리고 계세요!”
이런 부분에서는 고집을 세우는지 내 말이 통하지 않았다. 다리를 벌리고 이상한 걸음으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자..잠깐만 기다리고 계세요!”
뒷수습할만한 걸 사러 가는 모양이다. 그래도 가만히 있기는 그래서 일단 문을 열어 환기부터 하고, 물티슈로 바닥에 생긴 자국을 닦았다.
어제 정사의 흔적들이 사방에 퍼져있었다. 몸만 정상이었어도 어제보다 더 할 수 있었는데, 뭔가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까, 업적이나 시스템 알림이 안 떠네?’
그때 쓰러진 날부터 마키나 시스템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 죄송합니다. 현재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보수 중이었습니다. ]
“또 문제가 생긴 거야?”
[ …자세히는 알려드릴 수 없지만, 운명이 변하면서 현재 업적과 퀘스트 시스템이 문제가 생긴 상태입니다. ]
“운명이 변했다고?”
[ 그렇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심각한 거야?”
[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우님께서 능력을 사용하는 데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
“알았어.”
하긴, 그 교주는 솔직하게 지금 나타날 수준의 적이 아니긴 했다. 만약 나한테 마력 폭탄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녀석과 싸웠어야 했을 거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니까, 크게 잘못된 건 아닐 거다.마키나도 최대한 날 위해서 노력하는 편이니 믿을 만 할거다.
적당히 쉬고 있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새벽에 병원 쪽 사람이 올 리는 없을 테니 아마 민아일 거 같다., 전력을 다해서 뛰어왔는지 민어가 가방하나를 들고 왔다.
“하아..하아..”
“달려온거야?”
통증에 적응했는지 처음에 어기적어기적 걷던 걸음걸이와는 달라져 있었다. 민아는 신발을 벗더니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서방님..자..잠시만 비켜주세요..”
“응.”
민아의 말에 침대에서 일어나니 시트와 이불을 들고 화장실로 들고 갔다. 1인 특실이라서 그런지 화장실도 꽤 고급스럽게 잘 되어있었다. 욕조까지는 아니어도 샤워할 수 있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민아는 거기에 이불과 시트를 놓고는 물로 적시기 시작했다.
‘설마 빨래라도 할 생각인가?’
아까 챙겨왔던 가방에서 적당해 보이는 섬유 유연제를 꺼내서 이불과 시트에 붓기 시작했다.
빨래할 생각인 거 같은데, 저렇게 두꺼운 이불을 어떻게 말리려고 그러는지 의문이 들었다. 병실에 이불을 말릴 곳도 없기도 하고, 내일 의사나 다른 사람이 상태를 확인하기 전에 마를지도 의문이었다.
“나도 도와줄까?”
“환자는 쉬세요.. 이 정도는 제가 할 수 있어요.”
“같이 하면 빨리 끝나지 않을까?”
“서방님. 제가 쉬고 계시라고 하지 않았나요?”
“알았어.. 민아야.”
둘이 같이 한 일을 민아 혼자 수습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건데, 민아가 저렇게 싫어하니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 클린 마법인가 그런 건 못 쓰는 거야?”
사실 마법에 대해서 잘 모르긴 하지만, 소설 같은 걸 읽어보면 클린 마법만 쓰면 다 깨끗하게 처리하던데 그게 불가능 한 건가?
저번에 산 옷도 그렇고, 민아가 입은 옷도 마력을 흘려주면 깨끗하게 변하는데, 민아 정도의 수준이면 가능하지 않나?
“클린 마법은 만능이 아니에요.”
“그런 거였어? 옷에 인챈트 하는 게 가능하지 않나?”
마법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민아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겠지.
민아는 새하얀 두발로 이불과 시트를 밟으면서 말을 이었다.
“서방님..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클린 마법이라는 게 사실 오물을 제거하는 마법이잖아요?”
“응.”
“필요하지 않은 부분만 골라서 제거한 다는 게,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
직업이 직업이라서 그런지, 이런 부분은 넘어갈 수 없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발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제거한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하려고 한다면 필요한 부분과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분류해야 해요. 이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럼 인챈트 의상은?”
“보통 인챈트가 걸려있는 경우는 완성된 작업물에 마법 진을 새기면서 필요한 부분을 지정한 상태에요, 그 상태가 아니면 오염된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마력을 통해서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밀어내는 거죠.”
“제거가 아니라 밀어내는 거야?”
“태워 버리는 경우도 존재 하긴 해요, 그러면 소멸에 가깝긴 하겠죠. 아무튼 완전한 상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인챈트 방식으로 작동시키는 건 쉽지만, 이런 이불의 경우는 범위를 지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마법이 만능은 아닌 모양이네?”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처음 배우거나 잘 모르는 사람의 경우는 마법을 만능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에요.”
물로 헹구고 밟는 작업을 반복하자 얼룩져 있던 시트와 이불이 깨끗하게 변했다. 그런데 저렇게 두꺼운 이불은 잘 안 마르지 않나?
“이건 어떻게 말리게?”
“제 능력을 잊으셨어요?”
민아의 주변으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이불 위로 은은한 불꽃이 일어났다. 혹시 천이 타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천은 태우지 않고 수분만 증발시키기 시작했다.
“인간 건조기..”
“뭐..뭐라고 했어요?”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렇게 시간이 좀 흐르자, 이불과 시트가 뽀송뽀송하게 변했다.
“이러면 걸릴 일은 없겠다.”
“서방님.. 오..옷도 벗으셔야죠.”
“아, 잠시만.”
나는 민아의 말에 서둘러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옷을 벗고 나니 드러나는 내 근육질 몸매에 민아가 눈을 떼지 못했다.
“모..몸이 좋으시네요?”
“본적 없던가?”
“하..항상 옷을 입고하셨잖아요..”
생각해 보면 바지만 벗었지, 윗옷은 벗어 본적 없었던 거 같다. 나는 민아를 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아?”
“…”
“자..잠깐만 서방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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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리가 들어와서 내가 눈을 뜬 걸 보고는 축하해줬다. 내 몸 상태에 대해서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하고 이제는 많이 좋아져서 퇴원해도 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답답한 병실에서 나가 빨리 스마트 워치랑 폰부터 고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민아가 선글라스를 쓴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
"그쪽이 김시우 생도입니까?"
"네. 누구시죠?"
여름인데도 긴 양복에 선글라스, 거기다 구두까지 남자는 선글라스뒤에서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먼저 회복하신 것에 대해서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카리스마가 있는 게 보통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각성자들 끼리 느낄 수 있는 느낌이 있는데, 남자도 각성자 처럼 보였다.
"저는 국가 보안요원 K라고 합니다. 이름은 알려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민아랑 같이 들어왔으니 보안 요원이라는 건 맞을 거다.
"그런데 저한테는 무슨 일로?"
"잠깐 물어 볼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네.."
뭘 물어보려는지는 몰라도 국가 보안요원이 묻는다고 하니까 나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대한 아카데미 본관에서 발견되셨다고 했습니다. 혹시 쓰러지기 전에 기억이 나십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뭘까 잘못된 건 아닌가 싶어서 일단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민아한테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으니 이상할 건 없었다.
"그렇습니까? 교수님에게 들은 대로 군요. 다른 건 아닙니다. 이번에 국가적 범죄를 일으킨 홍류석 생도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네.. 그런데 친하진 않았어요."
그때 밖으로 밀어버렸던 거 같은데 그때 안 죽은 건가?
"그 생도의 증언을 믿는 건 아닙니다만, 창을 든 기사와 검은색 슈트를 입은 남자가 싸웠다고 증언해서 말입니다."
검은색 슈트면 날 말하는 건데.
"슈트를 입은 남자에 대해서 찾고 있습니다. 혹시 본 게 없습니까?"
그때 CCTV고 뭐고 다 박살 났으니 내가 슈트 남이라는 건 모를 게 분명했다.
"저도 이상한 충격파에 휩쓸린 거라.."
"흠.."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말 없이 내 두 눈을 쳐다보다가 민아가 눈치를 주자 알아서 물러났다.
"혹시라도 기억이 떠오르면 교수님에게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잘못한 건 없지만, 왠지 모르게 조이는 느낌이다.
"이제 퇴원해도 된대."
민아가 퇴원을 축하해 주며 내게 이틀 뒤에 1학년 들을 모아서 놀이동산으로 힐링 여행 비슷한걸 가게 되었다고 말해줬다.
"놀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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