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082 나비 효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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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제복 차림밖에 볼 수 없었던 다은이가 배틀 슈트를 입은 채로 들어왔다.
민지의 취향이 반영되었는지 전체적으로 검은색 계통이었는데, 성능이 확실해서 그런지 가슴 쪽의 크기가 좀 줄어들어 있었다.
민지도 슈트나 속옷을 입으면 가슴이 줄어드니까, 이다은도 비슷한 모양이다.
‘근데, 체형이 저랬던가?’
가슴 크기 때문인지, 다은이는 평소에 좀 큰 옷들 위주로 입었다.
평소에는 좀 둔해 보이는 느낌이 있었는데, 슈트는 좀 달라붙는 재질이라 그런지 꽤 날렵해 보였다.
민지처럼 타이트한 느낌은 아니지만, 평소에 보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가슴 쪽으로만 살이 다 몰려있고, 다른 부위는 다 마른 체형이었다. 너무 마른것도 아니고 딱 보기 좋은 정도였다.
저러기 쉽지 않은데 다은이는 축복받은 유전자인 듯 하다.
“응, 잘 어울린다.”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어. 헤헤”
다은이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엄청나게 빨리 사 왔네?”
나는 오늘 안 돌아 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몰랐다.
늦게 왔으면 서아랑 이것저것 해볼 생각이었는데, 좀 아쉬웠다.
“맞춤형 슈트가 아니면 금방 살 수 있거든, 둘이 훈련하고 있었어?”
“응 방금까지 하다가 쉬고 있었어.’
헌터를 육성하는 아카데미답게, 주변에는 장비를 판매하는 곳이 많이 있었다. 슈트의 경우는 맞춤형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옷처럼 판매되는 슈트도 있는 모양이다.
민지의 경우는 맞춤형으로 체형에 딱 맞춰진 느낌이었는데, 다은이는 살짝 어색해 보이긴 했다.
‘그래도 보기는 좋네’
민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노려봤다. 뭐 이상한 점이라도 있는 건가?
“왜 민지야?”
“서아만 훈련하고 있던 거야? 너는 멀쩡해 보이는데 서아는 엄청 힘들어 보이네.”
“…어..응”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과는 다르게 몸이 달아올라서 그런지 많이 움직인 것처럼 보이긴 했다.
민지의 지적에 서아가 당황하지 않고 잘 대답했다.
“멍충아.. 너 강주원 이겼다고 훈련 대충 하는 건 아니지?”
“민지야 내가 그러겠어? 그냥 서아 자세 잡아주고 있었어. 어제 못 도와줬으니까.”
“응.. 시우가 도와줬어..”
우리 둘의 반응에 크게 의심하지 않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이럴 때는 대화 주제를 빨리 바꾸는 게 좋다.
“네가 알려줘서 그런가? 서아 자세 엄청나게 좋아졌던데? 이러다가는 근처에도 못 가는 건 아닌가 걱정되네.”
“아.. 서아? 응 조금만 알려줘도 금세 실력이 좋아지더라. 나중에는 알려줄 게 없을 거 같아서 고민이야.”
“민지가 잘 알려줘서 그런 건 아니고?”
“응.. 많이 도와줬어..”
“아.. 아니야 내가 뭐 크게 도와준 것도 없는데..”
“민지야..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응 어떤 거? 야 김시우! 너 다은이 제대로 도와줘야 해!”
서아가 민지가 집중하지 못하도록 구석으로 데려가는 게 보였다. 나는 서야 하고 몰래 눈짓을 주고받았다.
“다들 친해 보이네..”
스쳐 가듯 중얼거렸지만 내 귓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민지도 같은 공간에 있어서 그런지 태도가 좀 누그러든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이제 다시 해볼까 다은아?”
뭐 리더로써 도와주기로 했으면 확실히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면 다시 해볼래? 다은아?”
“아.. 그럴까?”
민지의 추천으로 슈트를 입은 다은이가 떨리는 표정으로 훈련 영역에 들어갔다.
[ 1단계 회피 모드를 시작합니다. ]
카운트 다운과 함께 다은이를 향해서 공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앞의 공을 주시하며 다은이가 몸을 움직였다. 확실히 슈트의 효과가 있는지 이전처럼 가슴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확실히 움직임이 좋아지긴 했네.’
이전에는 관성에 의해 가슴이 흔들리다 보니, 큰 동작 후에 바로바로 움직이지 못했는데, 슈트가 가슴을 잘 잡아줘서 그런지 동작과 동작 사이의 텀이 줄어들었다.
확실히 슈트를 입기 전보다 결과가 훨씬 좋아졌다. 거의 피하지 못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좀 더 잘 피하는 느낌이었다.
하나 문제가 있다면, 흔들리는 가슴을 염두하고 있어서 그런지 동작 사이 사이가 어색한 게 보였다.
가슴이 흔들릴 때마다 고정하기 위해서 했던 동작들이 무의식적으로 하면서 움직이는데 방해됐다.
‘반사 신경이 떨어지는 건 아니네.’
반사 신경이 떨어지는 거면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다은이의 반사신경은 좋은 편이었다.
자세 때문에 잘 피하지 못한 거지, 공이 날아올 때마다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교정만 좀 해주면 금방 실력이 늘겠네’
“나.. 몇 개나 피한 거야?”
“15개 정도 피한 거 같은데?”
“정말? 나 이렇게 많이 피한 건 처음이야!!”
아직 1단계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다은이가 웃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즐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1단계는 가뿐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뭔가 들떠 보이는 다은이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을 하든 성장하는 걸 체감할 수 있을 때가 가장 즐거운 법이다.
‘자세만 교정해 주면 잘하겠네.’
검술도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결국은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공통적인 움직임은 나도 꽤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엘레넨 제국의 검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주원이 힘도 못 쓰고 당한 걸 보면 나쁘지 않은 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아까 옆으로 구르는 동작 다시 해볼래?”
“구르는 동작?”
내 말을 듣고는 제자리에서 한번 굴렀다. 구르는 중간이나 마지막 마무리까지, 자세가 좀 어색해 보였다.
“잠깐만 그대로 멈춰볼래?”
“응? 이렇게?”
“다은이 너는 무게 중심이 살짝 앞쪽에 있어서 허리를 좀 더 뒤쪽으로.. 어 그렇게.”
“이렇게?”
“흠…”
역시 말로는 설명이 잘 안 되는지 몇 번을 알려줘도 자세를 잘 잡지 못했다. 이다은 본인도 그걸 느꼈는지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서아랑 민지는 대련에 집중하고 있는 거 같고…’
나는 좌절하려는 다은이에게 다가가 몸을 숙였다.
“자세 잡는 거 도와줘도 괜찮을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만지면서 자세를 잡아주는 게 더 빨리 될 것 같았다.
“응? 아… 응 괜찮아..”
뭐 특별히 이상한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자세를 교정해 주는 건데 다은이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아마 호감도가 오르면서 더 의식하는 모양이다.
“그럼 괜찮은 거지?”
다은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감도가 높아서 그런지 딱히 거부하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가볍게 팔이나 다리 부위부터 시작해서 자세를 교정했다.
“움직일 때 무릎을 살짝 아래로 내리고, 응 허리는 약간 편 상태로 유지해볼래? 응 그렇게…”
“흐읏.. 이렇게?”
[ 인큐버스의 페로몬 : 이다은이 미약한 중독에 걸렸습니다. ]
허벅지나 옆구리, 허리 같은 조금 더 민감한 부위를 만져도 딱히 거부하지 않았다.
자세를 교정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만져야 하는 부위였다.
확실히 직접 만지면서 자세를 잡아줘서 그런지 처음보다 훨씬 자세가 좋아졌다.
“하읏.. 아 미안 내가 왜 그러지..”
“미안 내가 좀 세게 만졌나 봐..”
“아.. 아니야 그냥 내가 실수한 거야..”
뭐 나는 순수한 의도로 그런 건데, 페로몬 효과 때문에 다은이가 좀 민감해진 모양이다.
자세는 이 정도면 될 거 같다.
“그럼 다시 해볼래?”
“응.. 해볼게..”
[ 회피 훈련 1단계를 시작합니다. ]
“아까 말한 부분 의식하면서 해봐.”
“응.. 허리는 내리고.. 무릎은 이렇게..”
혼자 중얼중얼하며 자세를 교정했다.
한 번밖에 안 알려 준거 같은데 폼이 나쁘지 않았다. 금방 따라 하는 걸 보면 몸치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카운트 다운이 끝나고 공이 날아오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몇 번 실수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자 한 번도 맞지 않고 피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 부분에 공을 맞은 것만 뺀다면 1단계는 이제 가뿐히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본인도 그걸 느꼈는지 표정이 엄청나게 밝아 보였다.
“시우야…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
[ 이다은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
“시우야!! 고마워!”
완전히 들뜬 표정으로 내 품에 안겼다. 약간 자몽 향이 나는 게 나쁘지 않았다.
“다은이가 열심히 해서 그렇지.”
기뻐서 내가 남자라는 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뭐 그게 아니면 남자라도 상관없거나, 둘 중 하나겠지.
강주원만 치워 버리면 다은이도 쉽게 넘어올 거 같다.
“둘이.. 뭐해..?”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서아하고 민지가 노려보고 있었다.
다은이도 정신을 차리고 팔을 풀고는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 그게 1단계 통과했거든.. 그게 기뻐서.. 그.. 그러니까..”
“벌써? 아까 반은 못 피하지 않았어?”
“응! 시우가 알려준 대로 하니까 피할 수 있었어!!”
“김시우가?”
“응 시우는 대단한 거 같아! 완전 전문가 같이 알려줬는데, 막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였어~!”
다은이가 순수하게 기뻐해서 그런지 민지나 서아도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내 칭찬을 좀 과하게 해서 그런지 둘 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앞으로 조심해야겠네..’
다 같이 있으니까 이럴 때마다 수명이 팍팍 줄어드는 기분이다.
그날 이다은은 2단계 에서 절반 이상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가 뭔가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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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야~ 어제 고마웠어~”
김시우에게 말을 건네는 이다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남들이 보면 평범하게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랫동안 이다은을 지켜보던 홍류석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묘하게 들떠 보였고 어딘지 모르게 애정이 느껴지는 목소리처럼 들렸다.
‘시발… 결국은 잘생긴 새끼가 좋았던 거야?’
“시우야.. 이옷 이상하지 않아?”
홍류석이 오랫동안 지켜본 봐, 이다은은 절대로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지 않았다.
커다란 가슴이 부각되지 않도록 일부로 한 치수 큰 옷을 입었다.
그래서 이다은이 통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연히 운동복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었던 홍류석은 이다은이 마른 체형에 가슴만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직 자신만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몸매를 드러내고 김시우 앞에서 아앙부리는 태도는 뭐란 말인가.
‘김시우랑 무슨 짓을 한 건데! 시발! 걸레 같은 년!!!’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자 김시우와 뒹굴고 있는 이다은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악한 김시우에게 커다란 가슴을 마구 희롱당하는 이다은.
‘시발.. 시발.. 시발!!!’
홍류석은 자신의 품에 있는 불길하게 생긴 원석을 강하게 쥐었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
홍류석은 빠르게 교실로 빠져나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하겠습니다…연락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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