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079 나비 효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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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붉은 계통의 커다란 로브를 쓰고 있는 남성이 커다란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모든 건 정해진 대로 흘러가야 하고, 그건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주위에도 비슷한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커다란 로브 때문에 모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습니다. 그래요, 스타크 은행의 일이 시작이었던 거 같군요."
중앙에 앉아 있는 남자는 손끝과 손끝을 부딪치며 중얼거렸다.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가 느려지는 게 남자의 신경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네가 말하고 싶은 게 뭐야?"
어떤 여인이 조금 건방진 듯한 목소리로 남자에게 중얼거렸다. 그 여인의 맞은편에 있는 남자가 노발대발 거리며 소리쳤다.
"감히 무슨 말버릇이냐!"
"실제로 맞잖아! 지금까지 다 틀렸다고! 그 미친 영감하고 사신이 설치고 다니고 있잖아!!"
스타크 은행에서 테러가 일어난 날, 김시우가 윤서아를 데려오면서부터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윤서아를 따라왔던 이지아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가 알려지면서 각 지역에 있는 지부들이 하루가 멀다고 습격을 당하고 있었다.
사건의 내막을 알아보려 했으나, 사신 길드에서 작정하고 사건에 대한 정보를 은폐하면서 알아낸 게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누가 있었는지,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사신 길드에서 모두 덮어버렸다.
그런 커다란 테러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TV 뉴스로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 미친 영감한테 내 부하가 몇 명이나 죽은 줄 알아!!! 절대로 알려질 일이 없다고 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건데!!!"
"그만해라!! 이 미친년이 여기가 어디라고 소리를 지를 거냐!!!"
"그럼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다는 거야?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고! 진짜로 모든 걸 다 알고 있기는 한 거야? 말해보라고!!!"
"입 닥쳐라!! 이 미친년아!!!"
"그. 만. 해. 라."
커다란 의자의 옆에 서 있던 남성이 중얼거렸다.
그리 큰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들렸다.
차갑고도 묵직한 음성이 울려 퍼지자 화를 내던 여인과 남성이 입을 닫았다.
단순히 살기만으로도 목이 날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을 정도였다. 로브 아래에서 흉흉하게 빛나는 안광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모두 진정하는 게 어떻습니까?"
중앙 의자에 앉아 있던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명은 정해진 대로 흘러가기에 운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달라졌다는 건, 누군가가 개입을 했다는 이야기지요."
남자의 손짓에 허공에 홀로그램이 생겨나더니 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스타크 은행에서 테러를 진행하던 검은 복면을 쓴 남자. 남성의 이름은 루카스.
마기의 축복으로 인해 인간을 벗어날 기회를 가졌던 남자였다.
"아무리 힘을 다루는데 미숙하고 부족하다 해도, 루카스는 여기서 죽을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남자의 계획은 완벽했다.
은행 사건을 통해서 시선을 분산시키고, 헌터 협회에 있는 보물을 가져오는 것이 목적이었다.
루카스에 시선이 몰린 사이 보물을 훔치는 데 성공했고, 루카스도 은행을 터트리고 유유히 빠져나와야 했었다.
"하지만 죽어버렸습니다. 누군가가 운명을 비틀어버린 겁니다!"
남자의 손짓에 최태수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루카스를 죽이고!! 본래 지금은 개입하지 않았을 최태수와 사신을 끌어들이고! 우리를 방해하는.. 운명을 바꾸는 인간이 나타난 겁니다!!!!!"
광기에 가득 찬 목소리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남자는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리며 웃었다.
남자의 감정에 반응하듯 마기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마기에 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마기와는 상관없이 남자의 기괴한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여인만 움츠러들었을 뿐이다.
"재밌지 않습니까? 정말로 운명이 변했습니다. 비록 다른 누군가의 개입이었지만 말입니다."
"..."
"마스터 저희에게는 긍정적인 방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그녀의 말대로 매일 숨겨져 있던 지부가 습격당하고 있습니다. 사신 길드가 움직인 이상 활동이 거의 불가능해진 상태입니다."
"이놈들이 감히..."
좁은 대한민국 안에서 사신 길드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평범하게 위장하고 있던 곳도 어떻게 알고 왔는지 매번 습격당하는 탓에, 날이 갈수록 그 위세가 약해지는 중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혀 긍정적인 일이 아니었다.
"네.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헌터 협회 연합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으나, 남자는 지나치게 여유로워 보였다.
"적어도 가능성은 확인했다는 말이지요."
루카스의 죽음은 그에게 큰 의미였다.
정해진 대로 흘러가야 할 운명이 달라졌다는 걸 의미했다.
운명이 변했다. 그러니까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의미였다.
"누구의 방식이 옳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능성을 본 겁니다! 운명을 바꿀 가능성을 말입니다!!!"
"그런 건 상관없어. 나는 그냥 죽기 싫은 것 뿐이야."
"..."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모든 게 정해져 있다는 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정해진 운명대로, 마치 짜인 각본대로 흘러가는 인생을 살아간다.
그게 과연 의미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죽는 날짜를 알고 살아간다면, 그걸 받아드릴 수 있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정한 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게, 참으로 슬프지 않습니까?"
"..."
"루카스의 죽음으로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빌어먹을 신이라는 새끼가 우리에게 정해준 운명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여기에 있는 인원들은 각자마다 사연이 다 달랐으나, 그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들, 이제는 인간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된 자들이었다.
이미 마기에 물들어 버린 몸으로, 인간들의 틈바구니에 껴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루카스는 결국 죽었어. 더 빨리 죽어버렸다고!"
"..."
그들이 원하는 건 하나였다. 살아남는 것.
그러나 생존을 원하던 루카스는 결국 죽었다. 결국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계획을 수정해야겠지요."
"수정한다고?"
"루카스를 죽인 자. 그러니까 운명을 비튼 인간을 제거해야겠지요."
"하지만 누군지도 모르잖아!"
"그렇습니다. 마스터. 그에 관련된 정보를 알아내려 해도 사신 길드에 의해 통제되는 이상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대한 아카데미."
중앙에 서 있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거기는 갑자기 왜?"
"가장 거대한 운명의 힘이 흐르는 곳이지요. 아마 거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추측 아니야?"
“일종의 실험입니다. 나타나지 않아도 좋고, 나타난다면 확실하게 제거하는 것이지요."
대한 아카데미, 가장 거대한 운명의 힘이 흐르고 있는 곳, 그들이 파괴하고자 하는 장소 중 한 곳이었다.
파괴를 통해 운명을 비트는 것, 그게 그들의 방식이자 목표였다.
"거긴 좀 더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번 게이트 실험 이후 경계가 더 올라간 상황입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후드가 펄럭일 정도로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이미 틀어져 버렸습니다. 그대로 흘러가서는 모든 게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요."
홀로그램 영상이 대한 아카데미의 지도로 변했다.
"실패했을 때의 위험성이 너무 큽니다."
"마스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움직인다."
*
민아의 수업을 듣고 있던 중 이유 모를 오한이 느껴졌다. 뭔가 불쾌한 느낌이 강한 게 들었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아니, 갑자기 소름이 돋아서."
"어디 안 좋은 거 아니야?"
옆에 있던 민지가 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봤다. 그래도 가까워지긴 했네.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걱정해 주는 거야?"
"그..그런거 아니거든, 그냥 파트너니까 몸 관리 똑바로 하라는 거야."
살짝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작은 소리로 떠들긴 했는데 그게 들렸는지 민아가 이쪽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민아를 보며 씩 웃어주자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수업을 진행했다.
안쪽에는 내가 시키는 대로 잘 넣고 있는지 확인해 볼까?
평범한 플러그인 줄 알았는데, 나름 아티펙트로 분류된 물건이었다.
[ 진동 모드 : 1단계를 활성화하시겠습니까? ]
'활성화'
"던전은 조…. 종류에 따라 분류가 되는 건 알고 있죠?"
"자, 특수 던전에 들..으으러가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게 뭔지 알고 있나요?"
처음에는 좀 놀랐는지 목소리가 떨리긴 했지만, 금세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매일 넣고 다니라고 시켰는데,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들은 모양이다.
안 그래도 이쪽으로 눈치를 주는 게 진동기능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
'뭐 나도 몰랐으니까.'
적당히 진동을 조절하며 놀고 있었는데, 뒤쪽에서 미묘하게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날 노려보고 있는 홍류석이 있었다.
'저 새끼는 또 저러네'
막상 눈도 제대로 못 보면서 뒤에서 저렇게 몰래 노려보고 있다.
본인이 덤벼든 거고, 나름 최대한 봐준 건데 저런 태도로 나오면 솔직히 좋게 봐주기 힘들었다.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지.'
이미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렇게 거슬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귀엽게 보일 정도였다.
'아니 불쌍하지.'
얼굴은 솔직히 일본 요괴인 갓파를 닮아서 여자애들이 싫어한다.
나는 꼴찌라서 비웃는 느낌이면, 홍류석은 생물학적으로 싫어하는 느낌이었다.
'힘내라 새끼야'
꼴찌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적응이 힘들 거다. 뭐 이미 직접 체험해본 경험자로서 이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다.
'저 새끼 때문에 소름이 돋은 건가?'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거다. 그냥 앞으로 있을 시나리오 퀘스트를 위해 준비나 똑바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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