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078 비밀 친구 (3)
* * *
*
"아 강민아 교수님."
교관 한 명이 강민아에게 찾아왔다.
"무슨 일이시죠?"
다음 수업을 위한 대기시간, 강민아는 교관을 보고 대답했다.
"김시우 학생 말입니다."
갑자기 김시우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강민아는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지하고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기..김시우 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김시우의 얼굴을 떠올리자 자신의 안쪽에 들어 있는 플러그가 생각났다.
요 며칠사이 이질감으로 고생하다가 겨우 적응을 했는데, 김시우의 얼굴을 떠올리자 갑자기 자극이 강해진 기분이 들었다.
"최태수 님과 싸우는 걸 보니, 매우 저평가되어 있더군요."
"그…. 그렇죠? 최근에 열심히 했으니까요.."
김시우에 대한 칭찬을 들어서 그런지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내…. 내가 왜 이러지?'
살짝 살짝씩 터져 나오는 미소를 참으며 평소처럼 침착한 얼굴을 유지했다.
"거기다 고덕수 교관님이 볼 때는 C급 정도는 노려볼 만하다고 하셨습니다."
"C.. C급이요? 그…. 그렇군요."
김시우가 성장한 건 알고 있지만, 그 정도로 강해졌을지는 몰랐던 강민아가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고덕수 교관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수업 중에 대련이 있었는데 검술 솜씨도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네, 그래서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건가요?"
김시우에 대해서 좋은 말을 듣고 있으니 기분이 좋긴 했지만, 아무 이유 없이 꺼낸 말은 아닐 게 분명했다.
"아시겠지만 곧 있으면 그룹 평가가 있지 않습니까?"
4인 1조로 팀을 이루어 진행되는 평가, 4인조의 성적에 따라서 순위를 나누는 평가였다.
"그렇죠?"
"김시우 학생의 경우 1학기 성적 때문인지 고작 5포인트밖에 되지 않더군요."
"..."
"제 눈으로 봤을 때는 절대로 5포인트짜리 학생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갱신을 한번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김시우처럼 단 기간 내에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생도들이 있었다.
한 번의 평가로는 너무 고평가되거나 저평가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평균 수치로 판단한다.
그 생도가 그 시험에서만 좋은 성적을 보였을 수도 있고, 실수로 성적이 좋지 않을 수도 있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모든 방식에는 장단점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김시우처럼 갑자기 가파르게 성장한 생도의 실력을 나타내기에는 적합한 방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건가요?"
"김시우 학생처럼 실력과 성적의 차이가 심할 때는 지도 교사의 재량으로 재평가할 수 있지 않습니까?"
김시우와 같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특별 테스트가 존재한다.
지도 교수의 요청이 있으면 신체 능력을 재측정한다.
성적 자체에는 영향이 없지만, 테스트 결과를 통해서 랭킹에 반영했다.
대한 아카데미에서는 랭킹을 바탕으로 차별이 있기 때문에 순위가 높을수록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제 생각에는 특별 테스트가 필요해 보여서 말입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 공정성에 관해서 이야기 하는 느낌이 강했다.
실력보다 포인트가 낮으면 아무래도 유리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저는 시험을 통해서 측정하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생도 중에서도 특별 테스트를 원하는 생도들도 분명 있으니까요."
어느 정도 성장이 있으면 특별 테스트를 원하는 생도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가장 최근의 점수를 그대로 반영하다 보니 순위를 올리기에 유리했다.
랭킹에 따라 차별이 있는 만큼, 변동을 주는 테스트에 대해서는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였다.
"죄송합니다. 사실 교수님이 판단해야 할 문제인 건 알고 있지만, 평가 점수가 낮은 게 안쓰러워서 말입니다. 오해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괜찮아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네, 그러면 잠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민아는 교관이 사라지는 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녀도 특별 테스트를 생각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번에 정해진 팀원을 보고 망설이는 중이었다.
4인 1조 평가의 포인트는 랭킹 등수를 바탕으로 책정되어 있다.
여기서 랭킹에 변동이 있으면 김시우의 포인트 점수가 올라가게 된다.
'그러면 팀을 다시 짜야겠지.'
김시우의 포인트가 변동되면, 지금의 팀원을 유지할 수 없다.
아슬아슬하게 60점을 유지하고 있는데, 랭킹에 변동이 생기면 60점은 가뿐히 넘길 가능성이 컸다.
'어떻게 해야 하지?'
*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자주 먹던 사람들끼리 모이기 시작했다.
다은이의 경우는 정수아와 함께 있었는데, 잠깐 눈이 마주치긴 했지만, 그냥 식당 쪽으로 사라졌다.
이미 1학기가 지나면서 거의 고정적으로 함께 먹는 사람들이 있는 게 보통이었다.
나는 그럴 상대가 없지만 말이다.
'1학기 때는 매일 혼자 먹었는데.'
1학기 때는 아싸였으니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긴 했다.
가끔 파트너였던 민지가 신경 써주긴 했지만 친해지기 전부터 어울리던 무리가 있어서, 점심을 같이 먹지는 않았다.
나도 남과 같이 먹는 건 좀 불편했다. 꼴찌라고 무시하는 놈들이 많기도 하고, 식당같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시선이 몰리는 법이다.
'안 좋은 쪽으로 말이지.'
대부분 무시하고 깔보는 시선들이 부담돼서 아카데미 식당은 잘 이용하지 않았다.
식당보다는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지급되는 아카코인이 많은 게 아니라서, 편의점이 더 잘 맞기는 했다.
평소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것도 이제는 추억이다.
가끔 도시 괴담을 보면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다 농담이겠지?'
그걸 보면서 웃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터졌다.
[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
'다른 의미로 식당에서 밥 못 먹을 거 같은데..'
식당에서 밥 먹다가 체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뭐 괜찮겠지.
방학 기간에는 민지랑 서아가 있어서 함께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민지랑은 같이 먹기 힘들겠지.
"민지야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장~"
"어..어.. 그러니까.."
민지는 1학기 때 친하게 지내던 여자애들과 매번 밥을 같이 먹었다.
민지랑은 1학기 때는 지금처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랑 같이 밥을 먹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 친하게 지내는 여자애들하고 같이 먹었는데, 민지는 여자애들한테도 나름 인기가 많았다.
외모도 외모긴 하지만, 민지의 경우는 흔히 걸크러쉬라고 하던가? 좀 터프한 면이 많아서 여자애들한테도 인기가 많다.
"민지야 왜 그래?"
"아니.."
사이가 안 좋아 진 것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따로 먹는 것도 이상하게 보이겠지.
뭐 매일같이 붙어 있는데, 점심 정도는 같이 안 먹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망설이는 표정으로 서 있는 민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도 이제는 나랑 같이 먹고 싶은 모양이네?
귀엽기는,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적당히 눈짓으로 괜찮다고 말했다.
지금은 민지나 나나 시선이 너무 몰려서 조금 조절하는 게 좋았다.
연애가 금지는 아니지만, 민지는 너무 유명인이다 보니, 질투심에 물든 놈들이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까.
'이것도 피곤하네.'
"가자 민지야~"
"아..알았어."
"오늘은 테마가 한식이래!"
"민지는 뭐 먹을 거야?"
친구들에게 거의 강제로 끌려가는 민지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이렇게 되면 또 혼자 먹어야 하나?
서아는 식당에서 먹는걸 한 번도 본적이 없긴 했다.
"?"
고개를 돌려보니 서아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시우야.. 나랑 같이 먹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서아가 내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그럴까?"
"응.."
*
학식의 경우 그날 정해진 테마에 따라 달라지는 메뉴가 있고, 항상 고정적으로 판매되는 음식이 있었다.
원하는 메뉴의 식권을 아카코인으로 구매하면 된다.
가격대에 따라 메뉴의 급이 달라지는데, 고급 음식도 아카코인만 있으면 즐길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많으면 아카데미 주변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 같은 1학년은 점심시간이 짧아서 보통은 학식으로 해결한다.
"이쪽이야?"
"응.."
서아를 따라가자 커다란 대리석 식탁이 놓여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대리석으로 된 바닥과 벽, 20명은 동시에 먹는 게 가능할 정도로 넓은 공간의 방이 나타났다.
비어있는 방 하나를 먼저 대여하면 나갈 때 까지 이용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랭킹 순으로 차별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는데, 식사하는 공간도 따로 있을 줄은 몰랐다.
"보통 여기서 먹는 거야?"
"응.."
'이래서 서아가 밥 먹는걸 본적이 없구나.'
안 그래도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데, 이런 공간이 있으면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식 공간도 따로 있어서, 줄을 설 필요 없이 음식을 받아왔다.
__지잉.
"?"
폰을 확인해 보니 강민아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대충 특별 테스트에 관한 내용이었다.
만약 테스트를 통해 랭킹에 변동이 있으면, 다은이와 팀을 해제해야 할인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보고 결정하라고?'
민아의 호감도가 좀 올랐다고 뒤에서 챙겨주는 모양이다.
크게 문제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부분 날 위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많이 귀여워해 줘야겠네.'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응? 서아야 왜?"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서아가 내 옷깃을 당기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동그란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쳐 보였다.
남들에게는 다 똑같은 표정으로 보이지만, 나에게는 조금 달아 올라있는 것처럼 보였다.
키스하고 싶은지 옴짝달싹하는 입술,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서아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우리 그렇게 여유 없는 거 알지?"
"조금만.. 하면 안 돼?"
이렇게까지 부탁하면 내 입장에서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뭐 밥이야 금방 먹을 수 있으니까, 에피타이저부터 먹을까?
그대로 서아의 입술을 덮쳤다. 부드럽고 말랑말랑 거리는 입술, 목 덜미를 붙잡자 서아가 흠칫 떨며 손을 밀어냈다.
"거…. 거기는 안돼.."
어제 있었던 절정 때문인지 이제는 목덜미에 대한 보안이 좀 더 철저해졌다.
하긴 어제 내 바지까지 다 젖어 버릴 정도였으니 당연한 반응 일지 몰랐다.
"나도 조금만 만지면 안 돼?"
"..."
여유로운 표정으로 서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민하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동자.
"그럼..조금만이야.."
"응."
다시 서아의 입술을 덮쳤다.
특유의 서늘함 때문인지, 서아와의 키스는 언제나 신선한 느낌이다.
[ 윤서아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
결국 점심시간 대부분을 키스하는 데 사용해 버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