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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세이브로 따먹다-66화 (66/235)

〈 66화 〉 066 2학기 시작 (6)

* * *

*

최태수는 정신을 차린 생도들 앞에 섰다.

이전에 사나운 기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부드럽게 웃고 있는 노인이 한 명 서 있었다.

"그래 싸워본 소감이 어떠냐?"

생도들은 바로 앞에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하..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각자 다른 대답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 두렵다거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었다.

"허허, 그래. 아마 대부분은 내가 접근한 순간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다."

두려움에 질려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버렸던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리고, 두려움에 발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상황 속에서도, 먼저 행동에 나섰던 학생들에게는 칭찬을 보내마."

최태수는 윤서아와 이다은 등, 몇몇 학생들에게 시선을 보내며 손뼉을 쳤다.

"이게 실제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느냐?"

"..."

"그래 모두 손 하나 까닥하지 못하고 죽은 거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구나. 상대가 나였기에 그랬다고, 그래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법이다."

대련에서 보여줬던 모습이 아닌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 우리 때와는 다르겠지. 아무것도 정립되어 있지 않던 내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몬스터의 등급, 습성, 약점, 상대법 등 모든 게 정리되어 있으니."

"멍청이가 아닌 이상, 상대도 할 수 없는 몬스터를 잡아보겠다고 도전하는 일은 없겠지."

최태수는 상대해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다 이전과는 다르게 빌런들의 수도 많이 줄었으니 조심하려 하면 피할 수 있을 거다."

빌런들을 찾아다니며 골통을 부수던 시절을 떠올렸다. 자신의 손녀딸을 건드린 놈들을 뼈째로 갈아버리지 않았던가.

"허나, 세상일이라는 게 모두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지."

"이 중에서 평생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있는 이가 있느냐?"

확실할 수 없는 미래, 당연히 조용한 생도들을 보며 최태수는 껄껄 웃었다.

"나조차도 앞일은 모른다. 여전히 빌런은 존재하고, 게이트에서 어떤 사고가 터질지 장담할 수 없다."

최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과거를 떠올렸다.

"나 역시 너희만 하던 시절 분명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던 게이트에서 게이트 믹싱 현상을 겪었다."

"그 게이트 안에서 나올 리가 없는 괴물이 눈앞에 나타난 거지,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 거 같나?"

최태수의 질문에 한 생도가 대답했다.

"최태수 님이라면 주먹으로 해결하셨을 것 같습니다."

"아니, 너희처럼 아무것도 못 하고 벌벌 떨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동료들 절반이 죽어버렸지."

"..."

"놈이 날 노렸다면, 나도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을 거다. 뒤 늦게 싸워보니 나름 싸울 만 하더구나."

"겁먹지 않고 싸웠다면, 그렇게 까지 많이 죽지는 않았을 거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을 매번 떠올리며, 어떤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를 미리 정해두었다."

"그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이유일지도 모르지."

무겁게 내려앉은 최태수의 목소리.

"압도적으로 강한 적을 만났을 때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고, 두려움에 집어 삼켜질 수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미리 그 상황을 대비하고 연습해라 그러면——"

이다은은 최태수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자신의 약점은 근접전, 그러나 그녀는 근접전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접근할 수 있는 상대는 없었다.

넓게 퍼지며 상대방에게 유도되는 성질을 가진 전격 능력.

거기에 강한 위력이 합쳐지면, 이다은에게 접근하기 전에 모두 쓰러지는 게 보통이었다.

윤서아는 상성에서 밀리기에 논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시우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끝났을 거야..'

아무리 피하려 해도, 넓게 퍼지며 상대방에게 유도되는 성질을 가진 전격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공격이 빗나갈 위험이 거의 없었다.

윤서아의 경우, 얼음벽에 전격 능력이 통하지 않으니 그저 상성에서 밀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 같아..'

실제 레이드에 나가도 전위의 뒤에 숨어 공격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최태수의 말대로 갑자기 뒤를 노리고 기습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빌런들이 습격해 온다면?

'근접전도 훈련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

일단 훈련을 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앞이 막막했다.

1학기에 기초 수업을 듣기는 했지만, 몸을 쓰는 것에 재능이 없어서 그런지 교관의 가르침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안에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이제 막 간섭을 벗어났는데, 다시 간섭을 받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 볼까?'

친구에게 부탁했던 적도 있지만, 대한 아카데미에 오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엘리트.

몸치인 이다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까..'

하위권에서 올라온 2명이 떠올랐다.

'주원이랑.. 시우..'

강주원과 사이가 멀어지긴 했지만, 파트너도 되었고 다시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먼저 강주원에게 부탁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안 된다면 김시우에게 부탁해야겠지.

이다은이 생각을 정리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생도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최태수가 보였다.

"저 A급 헌터들은 연봉이 어떻게 돼요?"

"허허..그거야 다 하기 나름이지 않겠느냐."

*

강민아는 말없이 치료받는 김시우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눈을 감고 잠들어 있으니 뭔가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아랫배 쪽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교관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학생 이름이 김시우였습니까?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싸우는 것만 보면 무슨 베테랑처럼 보이던데요."

강민지는 교관의 말에 동의했다.

김시우의 모습을 계속 지켜본 입장에서는 저번 대련에서도 놀랐지만, 이번 전투에서는 더 놀랐다.

절대로 재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게 아닌, 수많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움직임이었다.

노련하게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면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베테랑 헌터처럼 보였다.

그동안 주변에서 무시당하는 시선을 버티며 혼자서 얼마나 노력했을까.

"실력보다 저평가되어 있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이정도 성장세면 금방 최상위권까지 올라오겠지요."

물론 이 속도를 유지하긴 힘들겠지만, 교관은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강민아 정도 되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니까.

"확실히 아낄만한 제자 같습니다. 하하."

"그.. 네"

강민아는 교관의 말에 조금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최태수 님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이십니다."

교관은 정신을 차린 생도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고 있는 최태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분위기가 풀어져서 그런지 짓궂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최태수는 매우 화내지 않고 받아주었다.

그래도 선을 넘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저는 말로 듣는 것보다는, 실제 경험하는 게 더 체감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교관은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이런 경험을 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필드에 나가서 이런 상황이 될 경우는 대부분.."

"죽는 게 보통이죠.."

강민아가 중얼거렸다. 실제 필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헌터들도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은 적을 것이다.

압도적인 적을 만난 경우는 대부분 죽음으로 이어지니까.

"그래도, 이런 방식은 좋지 않아요."

"뭐.. 그건 사람마다 다른 법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쓸모가 없는 법이지요."

교관은 어린 시절 수업 대신 학교에서 진행하는 인생 강의에 대해 떠올렸다.

누군가는 도움 되는 말을 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자신의 성공을 이야기하며 자랑만 하고 가지 않던가.

*

누워있으니 최태수가 들어왔다.

대충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신의 과거 이야기나 나에게 몇 가지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실수해서 미안하다는 내용과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이야기.

당연히 검술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검술은 이것저것 도전해 보던 시기에 배웠었지, 나는 데스나이트의 검술을 보고——"

나는 스켈레톤 나이트를 보고 배웠는데, 최태수는 데스나이트를 보고 따라 한 모양이다.

둘 다 기사 몬스터인데, 데스나이트가 이름값은 하는지 검술 실력이 더 위인 듯 했다.

가볍게 이야기가 끝나가자 뒤에 있던 보자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약속은 챙기는 건가?'

"내가 데스나이트가 나오는 게이트를 찾아다니다가 얻게 된 물건인데.."

낡은 책 한 권을 들어 올렸다.

알 수 없는 문자가 적혀있는 책 한 권, 아마 던전을 돌아다니며 얻은 보상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게이트 너머가 다른 차원이라는 말 들어 본 적 있는가?"

"예, 들어 본 적 있습니다."

게이트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세계 각지에 동시다발적으로 생겨 난다든지,

숲이 우거진 정글, 눈이 내리는 설원지대, 물이 없는 사막, 벽과 함정들이 넘치는 던전등, 각기 다른 환경,

거기에 게이트마다 다른 괴물들이 존재하니 인공적으로 발생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직 지적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문명을 이룬 생명체가 있었을 거라 보고 있네."

최태수가 그렇게 말하며 책을 건네주었다.

특이한 문자로 되어 있어 해석이 불가능한 책.

일단 건네주길래 페이지를 넘겨 보았다.

문자뿐 아니라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이 느낌.

멸망한 제국의 검술?

"이건?"

[ 엘레넨 제국의 검술서를 획득하셨습니다. ]

[ 멸망한 제국의 검술이 엘레넨 제국 검술로 변경됩니다. ]

'어? 검술서?'

포인트 사용 없이 스킬의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건가?

최태수는 결국 해석에 실패했다며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림만 보아도 도움이 될걸세, 아 그리고 이건 별거 아니네."

최태수는 영롱해 보이는 영약을 건네주었다.

딱 봐도 보통 물건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마력에 비해서 다른 능력들이 부족해 보이더구나, 그걸 마시면 불균형이 해결될 거다."

최태수는 그걸 마지막으로 푹 쉬라며 자리를 피했다.

챙겨준 물건을 보니 최태수의 대한 평가가 긍정적으로 변하는 느낌이다.

가치로 따지면 얼마나 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은 업적 달성으로 얻은 보상부터 확인해 볼까?

[ 인큐버스의 페로몬 : LV1

인큐버스는 이성을 홀리는 악마입니다. 당신의 체향마저도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 아주 미약한 효과가 적용됩니다.

­ 활성화 시 마력이 소모됩니다. ]

1 레벨답게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스킬 효과, 하지만 여기서 레벨을 올린다면?

인큐버스의 눈을 생각하면 꽤 쓸만한 효과가 나올 것 같았다.

레벨을 올릴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사이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어왔다.

"예."

내 대답에 주뼛주뼛 들어오는 이의 정체는 바로 강민아였다.

"할…. 할이야기가 있어요."

그러고 보니 강민아의 호감도가 60을 넘은 건가?

심리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말이겠지?

나는 고민하지 않고 인큐버스의 페로몬에 운명 포인트를 투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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