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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세이브로 따먹다-63화 (63/235)

〈 63화 〉 063 2학기 시작 (3)

* * *

*

서울 중심부, 빌딩 숲이라 불리는 곳에 있는 건물의 내부.

길드 중 가장 급이 높다고 알려진 사신길드의 상층부에 위치한 사장실에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금발 머리카락에 귀엽게 묶은 포니테일, 장난기가 많아 보이는 동안 얼굴을 가진 이의 정체는 윤승아였다.

헌터길드의 마스터인 그녀는 양옆이 탁 트인 원피스를 입고 다리를 꼰 채 유기농 민트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에 고층 빌딩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난감처럼 작은 사람들과 자동차가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들어와"

노크 소리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하자 검은 슈트를 입은 여성이 사장실 내부로 들어왔다.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이지아는 윤승아에게 고개를 정중히 숙이고 보고를 시작했다.

누가 봐도 이지아보다 윤승아가 어려 보였지만, 윤승아의 나이가 거의 배는 많았다.

"뭐야 영감쟁이가 대한 아카데미에 갔다고?"

"내 오늘 방문하신 걸로 보고되었습니다."

"거기다가 1학년 A반으로 갔고?"

"그렇습니다."

"그 영감만 재밌는 걸 하고 나도 갈 거야!"

최태수의 방문 사실을 들은 윤승아가 책상을 내리치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지아는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길드가 1학년 아카데미 생도에게 접촉하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아직 정보가 부족한 학생들이 길드에 휘둘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으로, 사신 길드의 마스터인 윤승아도 이 규칙에 영향을 받았다.

"최태수 님은 혼자 활동하시니.."

최태수은 길드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 활동하는 헌터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게 어딨어! 그 영감쟁이 자식이 대형길드 마스터인데!"

"최태수 님은 길드 일에는 간섭을.."

"됐어, 우리 지아는 다 좋은데 재미가 없다니까."

"그래서 또 신인들 만나러 간 거야?"

이 앞에서 최태수가 아카데미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기에 그리 새로울 건 없었다.

가끔 마음에 드는 루키들이 있으면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며 아카데미를 방문하는 건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우리 서아때문에 갔으려나? 아니면.."

윤승아도 좋은 인재들을 구하기 위해서 눈에 들어오던 이들의 성적은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었다.

상위권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정보는 미리 파악해두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학생의 정보를 확인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직접 확인하는 게 가장 확실하지."

성적이 낮다가 갑자기 급성장하는 경우도 있고, 좋은 성적을 유지하다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김시우였나? 우리 서아를 이겼던 녀석이?"

"네 그렇습니다."

"랭킹이 어떻게 되더라?"

"932등입니다."

"흠... 볼 가치도 없는 쓰레기긴 한데."

TOP 100위 안에서도 그녀의 눈에 맞는 사람들을 찾기 힘든데, 500등도 아니고 900등 밖에 있는 생도는 말할 가치도 없었다.

"싸우는 걸 보면 또 전투 센스는 있는 거 같고.. 거기다가 김태환이 가지고 있던 능력이란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거기다가 전에 봤을 때 마력이 C 등급? 그 정도는 된다고 했었나?"

"제 느낌으로는 그렇습니다."

"최근에는 우리 서아랑 친하게 지내는 거 같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딸에게 생긴 첫 남자 사람 친구. 거슬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더 조사해 볼까요?"

"그러면 서아한테 혼날 거 같은데.."

자신의 딸에게 득이 될만한 놈인지, 해가 될만한 놈인지 확실하게 확인해 두고 싶었지만, 뒤를 캐다 윤서아에게 걸렸을 때의 반응이 떠올랐다.

"그렇게 화난 건 처음이었으니까.."

항상 불평불만 없이 자신이 하자는 대로 해왔던 서아가 처음으로 화를 낸 일이었다. 앞으로 그러면 얼굴도 안 본다는데 그게 걱정이 돼서 망설여졌다.

"최태수 영감한테 전화 좀 걸어봐."

"최태수 님에게 말입니까?"

"영감의 눈이면 정확하겠지 뭐, 이참에 우리 서아도 압도적인 게 뭔지 경험도 해보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

최태수와 대련 실습을 진행하기 전 30분 정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대련 준비를 위한 시간으로 생도들에게는 전투복으로 갈아입거나 전투 장비의 손질,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고.

아카데미 입장에서는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서 의료진들과 교관들이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민지는 본격적으로 준비할 생각인지 풀 파츠 착용을 위해서 친구들과 먼저 가버렸고, 나는 현재 적당한 창고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서아야, 전투 준비 안 해도 돼?"

"응.."

무표정한 표정의 눈동자에는 내 모습이 비쳐 보였다. 이제는 당연한 듯이 내 품안으로 들어오는 서아.

민지보다 작아서 그런지 품 안에 쏙하고 들어 오는 게 나쁘지 않았다.

"키스.. 하고 싶어."

서아의 당돌한 요구를 받자 자연스레 입가가 움직였다. 키스가 제법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아카데미 내부에서는 가벼운 스킨십도 거부하는 민지와는 딴판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어떻게 하려고?"

서아를 중심으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내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기운은 주변에 누군가 있는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어."

서아의 대답을 듣고 나는 서아를 끌어당겼다. 마치 자석이라 되는 것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다가오는 서아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흔히 버드키스라 불리는 짧은 입맞춤.

본격적으로 키스할 생각이었는지 이미 열려있던 서아의 입과 꼭 감은 두 눈.

민지처럼 사랑스럽고 귀엽다.

"...?"

시간이 지나자 감겨있던 두 눈이 열렸다. 그리고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는 서아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꾸 놀리고 싶은 기분이 든다.

버드 키스도 키스는 키스지.

"키스했잖아."

"이건 어른의 방식이 아니야.."

서아에게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럼 제대로 할까?"

"응.."

살짝 상기되는 서아의 얼굴,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서아의 뒷목에 손을 올렸다. 서늘하고 부드러운 목덜미의 촉감을 느끼며 손을 움직였다.

목덜미를 매만질 때 마다 흠칫흠칫 놀라는 서아.

'혹시 성감대인가?'

궁금증에 인큐버스의 눈으로 서아의 몸을 스캔했다. 조금 연한 분홍빛을 띠는 목덜미.

다른 부위에는 분홍색으로 표시되는 곳이 없었다.

'성감대가 없는 건가?'

꼭 성감대가 아니어도 민감한 부위는 연한 분홍빛으로 보였다.

그럼 서아에게는 왜 그런 표시가 목 뒷덜미 밖에 없을까?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리자 아랫배 쪽에 아주 희미한 분홍빛 말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표시되지 않는다는 말은 성감대가 없다는 의미인가?

'그럼.. 설마 불감증?'

"빨리.."

내 손이 멈추자 서아가 재촉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서아에게 집중해야지.

목덜미를 잡고 아까보다 더 과감하게 품으로 끌어당겼다.

품 안에 쏙 들어온 서아를 감싸고 진득한 키스를 시작했다.

촉촉하고 서늘한 촉감, 이제는 당연한 듯이 열려있는 서아의 입을 지나자 혓바닥이 인사를 건네왔다.

__추웁.. 춥..

서로의 타액이 섞이는 진득한 키스, 이제는 숨 쉬는 것도 잊지 않았는지 서아의 숨결이 인중을 간지럽혔다.

__쪼옥.. 쪼옥.. 추웁..

여름이라 습하고 뜨거운 공기 속에서 차가운 서아의 체온을 더 느끼기 위해 반사적으로 끌어안았다.

더운 여름이라는 사실도 잊은 체 서아의 입안을 탐한다.

서늘했던 서아의 입안이 점점 내 열기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서로의 입이 떨어지자 진득한 실선이 생겨났다.

"하아.. 하아.."

"이제 갈까?"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기는 했지만, 너무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워도 좋지 않겠지.

몸을 일으키려 하는 순간 서아의 조그마한 손이 내 옷깃을 잡았다.

"조금만 더.."

"그래."

[ 윤서아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

우리의 키스는 민지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이어졌다.

*

"모두 준비가 끝난 것 같구나."

최태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생도들을 확인했다.

'저 아이가 승아의 딸인가?'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다른 생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윤서아였다.

윤서아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 들어본 적이 있었다.

당장 현역 헌터로 활동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뛰어난 자질이 있으며, 윤승아가 그렇게 자랑하던 딸이었으니까.

최태수는 준비 시간에 윤승아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의 내용은 자신의 딸에게 봐주지 말고 혼 좀 내주라는 말.

'승아가 이런 면으로는 냉정하지.'

예비 S급 헌터로 평가되는 게 단순히 생긴 말은 아니었는지, 확실히 다른 생도들과는 질적으로 다르긴 했다.

그럴수록 패배에 대한 경험이 중요한 법이다.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승승장구하던 사람일수록 패배에 대한 내성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어이없게 패배했다고 듣기는 들었지만, 경기의 내용을 볼 때 패배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윤승아 역시 우물에 갇힌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얼마나 세상이 넓은지 경험을 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리 말하도록 하마."

최근에는 생도들의 안전을 위해 보호막을 이용해서 대련을 진행한다고 들었다.

실수로 일어나는 사건을 예방할 수도 있고, 부상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니 더 적극적으로 싸울 수 있을지 모른다.

"이번 대련은 보호막이 없이 진행될 거다."

그러나 보호막 뒤에서는 실전 경험을 키울 수 없다.

최태수의 시절만 해도 대련 중에 다치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다.

대련 중에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은 그를 성장 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요즘엔 그런 게 없지.'

보호막이 있어서 더 적극적으로 싸우는 탓에 구경하는 재미는 있지만, 압박감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기에는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헌터인 이상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미리 경험하지 못한 헌터들은 그런 상황이 찾아오면 100이면 100 무너져 내린다.

"그러니까 팔다리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최태수의 말에 다들 긴장했는지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들 중에서 몇 명은 여전히 투기를 불태우고 있었다.

'저 아이가 승아가 말했던 김시우인가? 저 아이는 강민지고..'

최태수는 그 모습을 보며 낄낄대고 웃었다. 자신 앞에서도 겁먹지 않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말은 그렇게 하긴 했지만, 그냥 가볍게 의식을 잃을 정도로만 손봐줄 생각이었다.

"그래도 부상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나와 교관들이 책임지고 치료해 줄 테니."

최태수는 품에 있던 엘릭서를 꺼내 들었다.

자신과의 대련 때문에 학기에 불이익이 생기는 일은 없도록 할 생각이었다.

"오늘은 몰라도 내일을 확실히 멀쩡히 움직일 수 있게 해주마."

최태수의 목소리가 무겁게 변했다.

"그러니 원하지 않는 생도들은 지금 말하도록."

많은 인원이 빠질 줄 알았지만 한 명도 빠지는 인원이 없었다.

"그럼 동의한 걸로 알겠네. 그럼 전원이 한 번에 덤비도록."

최태수는 아무런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맨몸으로 서 있었고, 학생들은 검과 방패부터 배틀 슈트까지 풀 무장 상태였다.

"저…. 전원이요? 그래도.."

최태수는 그 말을 듣고 껄껄거리며 크게 웃었다.

"자네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자네 같은 애송이들이 100명이 있든 1,000명이 있든 뭐가 달라질 거라 생각하나?"

감히 누가 누굴 걱정한다는 말인가?

최태수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닥치고 덤비거라, 아해들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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