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062 2학기 시작 (2)
* * *
*
민지와 서아까지 도착하면서 이다은과 정수아와 대화를 나눴다.
정수아와 서아의 사이가 조금 안 좋아 보이긴 했지만, 둘의 능력을 생각하면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정수아의 능력은 치유계 헌터로, 회복과 버프가 가능하다고 들었다.
동료의 능력이 떨어지면 사실 효율이 많이 떨어지는 능력이다.
정수아의 전투력은 0.5 버프를 통해서 1의 능력을 1.3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둘의 합은 1.8
전투력 1인 생도 두 명의 합은 2로, 정수아와 파티를 하는 것보다 강할 수 있다.
'단순히 수치로 판단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뭐 어중간한 놈이 파트너면 효율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
이번에 선택된 파트너는 1학년 중 최강이라 불리는 수석 윤서아.
정수아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서아에게도 나쁘지 않은 파트너다.
원거리 계열의 경우 든든한 전위가 있으면 좋긴 하지만 윤서아는 달랐다.
굳이 전위가 없어도 혼자 싸울 수 있으니, 실력이 떨어지는 동료는 오히려 공격에 방해될 수 있다.
어중간한 전위보다는 서아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정수아와의 궁합이 더 잘 맞을 거다.
물론 둘이 합이 잘 맞을 때 이야기다.
"뭐야.. 나 얘 싫어!"
"수아야 그렇게 말하면 못써!"
"나도.. 싫어…."
둘의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실전에서는 다르겠지.
"둘이 사이가 안 좋아 보이네."
"그러게."
본래라면 자신이 친한 무리에 있는 강민지지만, 이다은과 정수아가 등장해서 그런지 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둘이 떠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앞자리에 있던 강주원이 쓰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김시우 오랜만이다."
"그러게 잘 지냈냐?"
솔직히 좋은 감정은 없었지만, 굳이 싸울 필요는 없었다.
강주원 쪽에서 먼저 사과를 했는데 감정적으로 나오는 건 소인배 같은 모습이지.
거기에 강주원이 이쪽으로 걸어오자 이다은의 시선으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그때는 네가 누군지 몰랐었어."
"그때 다 끝난 이야긴데 굳이 사과 안 해도 돼. 같은 반 친구잖아."
내 말을 들은 강주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크게 웃었다.
"하하. 성격 시원하네. 앞으로 잘 부탁해."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나는 강주원과 예의상 악수했다.
어차피 이다은과 정수아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강주원과 가까운 사이가 될 필요성이 있었다.
강주원의 입장도 비슷하겠지.
"저기 주원아…. 잠시만 도와줄 수 있어?"
"어? 응. 무슨 일이야?"
본래부터 반 애들과 친했던 강주원에게 말을 걸자 당연하게 달려갔다.
그걸 본 이다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소꿉친구 관리 잘해야지 주원아.’
"자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
오랜만에 들려보는 목소리, A반의 지도교수 강민아가 등장했다.
"그동안 방학은 잘 보내셨나요?"
"네 교수님~!"
모두에게 묻는 안부 인사였지만 시선은 이쪽을 떠나지를 못했다.
잠깐이지만 눈을 마주치자 강민아의 표정이 흔들렸다가 금방 되돌아 왔다.
"간단하게 전달사항이 있습니다. 다들 4인 1조로 이루어지는 그룹평가에 대해서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시나리오 퀘스트로 확인한 내용이라 그리 놀라울 건 없었다.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올 게 왔다는 반응이었다.
그건 그렇고, 계속 힐끔거리면서 쳐다보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내 미소를 확인한 순간 강민아의 움직임이 잠시 멈칫했다.
'성욕도 거의 한계까지 올랐네?'
내 얼굴을 확인한 순간부터 성욕의 변동이 심해졌다. 확신은 없지만 이제 한계가 아닐까?
"시험 내용은 비밀이지만 여러분들은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다른 2인조와 4인 그룹을 만들어야 합니다."
강민아는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표를 스크린에 띄웠다.
스크린 속에 있는 표에는 학생 이름마다 포인트가 표기되어 있었다.
"아카데미에서는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분들의 실기 점수를 바탕으로 점수를 부여했습니다."
중간과 기말의 실기 점수를 바탕으로 배정한 모양이다.
"한 그룹은 60포인트를 넘을 수 없습니다. 이번 주까지 그룹을 만들어서 제출해주세요."
그럼 방학 동안 급성장을 이룬 나의 경우 최고의 가성비 인원 중 한 명이라는 의미였다.
당연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최상단에 있는 윤서아와 이다은의 이름이었다.
최고 점수가 30포인트인지 윤서아 30포인트, 이다은도 30포인트였다.
4인조의 포인트가 60점을 넘을 수 없으니, 이다은과 윤서아는 절대로 같은 조가 될 수 없었다.
우리 조의 경우, 내 포인트는 5점, 민지는 13점으로 우리의 합계는 18점이었다.
'서아랑은 같은 조를 못하겠는데?'
정수아의 포인트가 12점을 넘어가면서 서아에게 버스를 탈 기회는 물 건너 가버렸다.
강주원의 포인트는 11점으로 이다은과는 같은 조가 될 수 있었다.
다들 점수표를 확인하면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는 모양이다.
"서아랑은 못하겠다…."
민지가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이다은과 같은 조가 될 수 있어서 속으로 좋아하고 있던 나는 양심이 조금 찔리는 기분이었다.
서아랑 같은 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다은도 나쁘지는 않았다.
__저기 서아야, 혹시 같은 조 할 수 있을까?
__저…. 주원아 우리랑 같은 조 할래?
뒤에 조금 깐깐해 보이는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질문 있나요?"
"교수님 이건 불공평하지 않나요? 60포인트에 가까운 조와 그렇지 못한 조는 시작부터 차이가 나지 않나요?"
당연한 이야기다. 윤서아나 이다은처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원과 같은 조가 되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그렇지 못해 낮은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경우, 높은 성적을 위해서 기피될 수 있었다.
선택되지 못한 인원으로 만들어진 조와 누구나 함께하고 싶어서 하는 조원이 모인 팀이 경쟁하면 결과는 뻔할 게 분명했다.
"포인트 합계가 낮은 조에 대해서는 가산점이 있을 겁니다."
"그걸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
당장 윤서아의 경우만 생각해도 팀원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대부분의 일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서아와 같은 팀이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고득점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겠지.
"대한 아카데미는 공정하지 않습니다. 성적순으로 이용 가능한 시설이나, 아카 코인의 수 등 이미 여러분들은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현실은 공평하지 않아요. 레이드를 위해서는 개인의 능력이 가장 중요시될 수밖에는 없어요."
헌터에게 있어서 개인의 능력은 생명과 관련이 있다.
고작 D등급 헌터가 A등급 몬스터 앞에서 도움되는 게 있을까?
레이드에 도움은커녕 짐만 될 게 분명했다. 강민아는 평소와는 다르게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
"능력이 떨어지는 헌터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길드는 바보가 아닙니다."
"결국, 개인의 능력을 키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이의를 제기하던 학생이 조용히 손을 내렸다.
"그래도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이번 평가는 팀 임무지만, 팀 점수와는 별도로 개인 점수가 존재합니다."
"본인 스스로가 재 역할을 하지 못하면 당연히 개인 점수도 낮아지겠죠?"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로 변했다.
윤서아와 팀원이 되면 본인이 활약할 기회가 있을까?
활약하지 못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즉 팀 점수를 받기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개인 점수는 낮아진다는 이야기다.
"좋은 팀원을 구하는 것도 여러분의 능력입니다. 그럼 일주일 뒤에 팀원을 정해서 알려주세요."
"팀을 정하지 못한 경우에는 무작위로 지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이다은과 같은 조가 될 생각이었는데,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민지와 나는 방학 동안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현재 민지와 나는 저평가된 상태니, 중간 정도인 애들과 팀을 하면 우리가 활약할 가능성이 컸다.
"자 조를 짜는 건 나중에 하고 그럼 수업을 진행할까요? 그럼? 잠시…."
수업을 진행하려는 강민아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전화를 끊었겠지만 뭔가 중요한 인물인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네.. 네? 아.. 네.."
구석에 있어서 전화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강민아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인 건 분명했다.
"하아…. 알겠습니다."
강민아는 한숨을 깊게 쉬더니 스크린의 전원을 껐다.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수업일정은 모두 취소입니다."
"갑자기?"
"민지야 뭐 짐작 가는 거 있어?"
"응? 나도 모르겠어."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나이가 지긋한지 머리는 허연색으로 바래 있었고, 옷은 개량형 한복에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노인처럼 보였지만 평범한 노인이 아니었다. 인자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누구 하나 입을 열 수 없었다.
강민아는 노인의 정체를 아는지 한숨을 깊게 내쉬었고, 노인은 그 표정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반갑구나."
낮게 깔리는 저음에 모두가 압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압도적인 강자를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이 감각은, 노인의 정체가 범상치 않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최태수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헌터들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알려진 인물.
헌터라면 모를 수가 없는 살아있는 전설이 눈앞에 나타났다.
과연 이게 S급의 위엄일까 봐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기세였다.
"기운 좀 푸세요…. 애들이 힘들어해요."
"허허, 이거 습관이 무섭구먼그래."
최태수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자 그제야 짓누르던 기운이 사라졌다.
__뭐야…. 이게 S급이야?
__숨 막혀서 죽는 줄 알았어….
__저게 골통 분쇄자 최태수 님이구나….
다들 엄청난 기세에 놀랐는지 참았던 숨을 몰아서 쉬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았던 시절, 간이 크게도 최태수의 손녀딸을 건드렸던 빌런조직들이 있었다.
용의 역린을 건드린 그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맨주먹으로 무자비하게 빌런들의 머리통을 터트리는 영상이 퍼지면서 생긴 호칭.
지금은 영상들이 모두 내려가 찾아보기 힘들지만, 한 번이라도 영상을 본 적이 있다면 그 강렬한 모습을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다.
골통 분쇄자 최태수.
"그 호칭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조심해주게."
"죄…. 죄송합니다!!"
본인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호칭인듯했다. 분명 입은 웃고 있었지만, 얼굴은 웃고 있지 않았다.
"허허, 그렇게까지 사과할 건 없네."
최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반에 있는 학생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와도 잠깐 눈이 마주쳤다.
"만나고 싶었던 학생들이 모두 모여있는 것 같구먼."
최태수가 온 목적은 간단했다.
아카데미의 새싹들에 도움을 주고 싶다.
'서아나, 이다은을 확인하러 왔나?'
이번 기수에서 고평가받는 서아와 이다은의 실력을 확인하려는 게 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쉽게도 말재주가 없네. 그래서 대련을 할까 하는데."
강민아는 별로 환영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과반수가 거부하면 본래대로 수업을 진행할 거에요"
생도들이 헌터들 중 최강자라 불리는 S급 헌터와 싸워볼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허허! 그럼 모두가 동의한 거로 하겠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