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046 운명의 저울 (8)
* * *
***
"어이 도넛 거기 숨어 있지 말고 나와!"
상황이 어느 정도 종료되었는지, 2명 정도 되는 인원이 폭탄을 챙기기 위해서 이곳으로 온 모양이다.
"야! 이 새끼 또 혼자 뭐 먹고 있는 거 아니야?"
"마스터한테 죽고 싶냐!!"
놈들이 화를 내며 문을 열었지만, 놈들을 맞이한 건 쓰러져 있는 도넛이었다. 상황 파악을 위해 고개를 돌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지원!"
"지.."
놈들은 지원을 요청할 생각인 듯 서둘러서 이어폰을 조작하려 했지만, 놈들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기 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윤서아의 화살이 놈들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타격 소리와 함께 즉시 얼어붙기 시작하더니, 입이 얼어붙어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놈들은 비명을 지르려 노력할 뿐이었다.
'입이 다 얼었는데, 지를 수가 없지.'
놈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비명을 지르려 했다. 손으로 얼음을 부수려 했지만 마음대로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읍!! 읍!!"
"읍!"
‘내가 당하면 트라우마 오겠는데?’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총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전에 놈들의 머리 위로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떨어졌다.
얼음이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이 그대로 쓰러졌다. 윤서아는 빌런을 상대할 때는 자비가 없는 모양이다.
'서아 무섭네..'
나한테 그러는 건 아니니 크게 상관할 필요는 없었다. 총기에 각성자까지 동원된 상황이면 놈들을 죽여도 법적으로 문제 되지는 않는다.
각성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그만큼 피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반 범죄자와는 규모가 다를 정도의 피해가 발생하기에, 각성자에 한에서는 자비가 없는 편이었다.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빌런에게 자비를 보이지 말라고 가르치고, 히어로들도 항복하지 않은 악당에 대해서는 즉결처분을 하는 편이니 말 다 했다.
망설임 없이 공격하기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서아가 조금 떨고 있었다.
"사람들을 지키려면 다 처리해야 하는 놈들이야."
"응.."
내 대답을 들을 윤서아는 떨림이 멈췄다.
인질들은 안전하다. 놈들이 알아서 안전한 장소에 인질들을 모아 두었으니, 전투에 휘말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히어로들이 개입하는 걸 막을 목적이었지만, 덕분에 날뛰기 좋은 상황이었다.
"다 쓸어버리자"
"응.. 쓸어버릴 거야.."
서아도 빌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 매우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윤서아가 앞장서서 놈들을 박살내 버렸기에 나는 마력을 아낄 수 있었다.
"뭐!.."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얼음 창에 맞고 그대로 벽에 박제되는 놈도 있었다.
허공에 생성된 화살과 얼음 창은 놈들을 발견할 때마다 정확하게 날아가 놈들을 격추 시켰다.
'이 정도면 놈과 싸울 힘을 아낄 수 있겠네.'
서아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힘조절은 하고 있는 것인지, 각성자가 아닌 경우에는 좀더 약한 위력으로 공격했다.
"저…. 저년을 쏴!!"
"죽어라!!"
간혹 멀리서부터 총을 쏘는 놈들이 있었는데, 총알은 얼음벽을 뚫지 못했다.
놈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철저한 응징 뿐이었다.
"으악!!!"
"살려줘!!"
민지가 당하기 전에 놈을 유인하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놈을 유인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장소는 지하에 있는 게이트였다.
아래로 내려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야 무거우니까 빨리빨리 도와!”
“아 무전은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아까 얘들 튀어 나가던데 무슨 일인지 알아?”
“저도 시끄러워서 꺼뒀어요, 뭐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대놓고 인기척을 내서 그런지 우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저놈들은 내가 처리할게."
"응… 알았어."
나는 서아의 대답을 듣고 검을 들어 올렸다.
"뭐야 학생으로 보이는 놈들이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자…. 잠깐만 저거 생도 복이잖아!"
놈들에게는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다. 놈을 상대하기 전 가볍게 몸을 풀 생각으로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뭐…. 뭐해 빨리 쏴!!"
"주…. 죽어라!!!"
뒤늦게 반응하긴 했지만 내 속도를 따라 올 수 없었다.
놈들의 유언은 그게 끝이었다.
"앞으로는 까불지 마라, 허접 새끼들아."
그때 멀리서부터 놈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놈에게는 첫 만남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이제는 저 사나워 보이는 얼굴도 친근감이 들 정도였다.그렇다고 살려줄 생각은 없었다.
서아도 놈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미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특유의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폭탄을 가져간 게 너희냐?, 어디에.."
서아는 남자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곧장 얼음 폭격을 날렸다.
나는 그래도 말은 끝까지 들어 줬던 것 같은데, 서아는 다르구나.
얼음창과 화살들이 놈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퇴로를 차단하기위해 얼음벽이 솟아났고 당황한 남자는 공격을 몇번 허용했다.
뒤늦게 벽을 부수며 거리를 벌리긴 했지만, 서아의 냉기가 남자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귀찮은 년이구나."
이 앞에 계속해서 확인했던 것 처럼 남자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표정변화가 없었다.
무표정한 윤서아와 표정이 없는 남자가 서로를 노려보았다.
"용서하지 않아..!"
경비병의 모습을 확인한 서아가 화난듯 남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 거친 공격에 남자가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건방진 년이!"
뒤늦게 방어하려 했지만, 작은 결정이 섞인 냉기 공격은 검으로 막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딱히 기술명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불렀다.
'칼날 폭풍'
당연하게도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장 놈의 심장을 노리고 공격했다.
[ 항마 : 활성화 ]
[ 멸망한 제국 검술에 의해 움직임이 보정됩니다. ]
이미 회귀를 반복하며 놈의 검술에는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놈이 빠르게 반응했지만 그건 속임수였다.
이미 냉기의 영향을 받아 느려진 상황에서 곧장 이어지는 공격에 반응하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심장을 관통하는 감각.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해치웠어..?"
"서아야 따라와!"
나는 윤서아의 손을 잡고 곧장 뛰었다. 뒤에는 심장에서 피를 쏟아내며 꿈틀거리는 남자가 있었다.
등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하고 불쾌한 감각에 곧장 지상으로 올라갔다.
좁은 지하는 놈을 상대하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어이가, 없군"
분노에 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마기의 기운.
윤서아도 그 기운을 느낀건지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마기?"
인간은 마기를 사용할 수 없다. 그게 상식이지만, 남자는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그게 아니면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지는 않을 거다.
'온다'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쳐봐라"
검은 연기로 변한 남자가 단숨에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물리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지 철장을 관통하며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서아가 놀란듯 중얼거렸다.
"뒤.. 뒤에.."
"그냥 뛰어!"
지하에서는 건물이 내려앉을 가능성이 크니 서둘러서 1층으로 이동하는게 좋았다.
여기서 시간을 끌면 강민지도 이쪽으로 합류할 예정이었다. 마침 건물을 울리는 폭발음이 들리는 건 보면 강민지가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서아의 얼음벽도 관통해 버리고는 그대로 쫓아 왔다.
얼음 화살과 얼음창도 관통할지는 몰랐는데, 물리력에 면역인건가?
"꺄악!!"
그 모습을 본 서아가 패닉에 빠졌는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도 않는 검은색의 불길한 연기가 빠르게 쫓아오는데, 놀라지 않는게 이상했다.
'무적은 아니지.'
마력이 회로를 타고 흘러가는 감각과 함께 검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전 회차에서 도망칠 때 저 모습으로 쫓아오던 때가 있었다.
놈의 힘의 원천은 마기, 일반적인 공격은 몰라도 항마의 마력은 통했다. 그러니까 공격하기 좋은 모습이였다.
나는 윤서아의 앞을 가로 막고 그대로 검을 움직였다.
[ 멸망한 제국 검술에 의해 움직임이 보정됩니다. ]
연기의 형태였던 놈이 인간 형태로 변하더니 커다란 상처를 입고 날아갔다.
눈동자의 흰자와 검은자가 반전된 상태로 피까지 흘리고 있어서 그런지 무섭게 보이긴 했다.
나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뒤다.
"서아야 내가 지켜줄 테니까 진정해."
"아.. 응."
[ 윤서아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
"빌어먹을 년놈들.."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남자가 중얼거렸다.
"너.. 성가신 힘을 가지고 있구나.."
남자의 몰골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는 모르지만서아의 떨림이 멈추는 게 느껴졌다.
여기까지는 서아가 없어도 괜찮았다. 이제 강민지가 등장할 차례였다.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와 함께 계단위에 민지의 얼굴이 보였다.
"뭐야.. 김시우랑 윤서아? 그리고.. 저 새끼는 뭐야?"
민지에게는 오늘 대련은 실전처럼 할 생각이니 장비를 챙겨오라고 미리 말해두었다.
내 말을 들은 강민지는 전투 글러브와 배틀 슈트까지입은 완전 무장 상태였다.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서아가 있는 상황에서도 폭발하려나?'
놈은 고개를 기괴하게 꺾은체로 우릴 보고 있었다.
"야.. 김시우. 저 소름 끼치는 놈은 또 뭐야..?"
흰자와 검은자가 반전된 눈동자, 넝마가 된 몸은 피투성이었고, 거기다가 검은 연기까지 뿜어져 나오고 있으니 확실히 소름끼치는 모습이었다.
"저 새끼가 빌런들 대장인거 같아."
"대장?"
위에서 빌런들 몇명을 이미 쓰러트리고 온건지 민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또 나타난 건가?또 나타난 건가?또 나타난 건가?"
슬슬 맛이가는게 눈에 들어왔다. 몸이 꿈뜰 꿈뜰 거리며 점점 검은 연기의 양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표정한 모습은 사라지고, 분노로 일그러진 놈의 얼굴.
"상태가 이상한거 같은데?"
"응 그러니까 둘다 조심해."
놈에게서 피부가 찌릿찌릿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될 차례였다.
"저거.. 이길 수 있는거야?"
"강해.."
기세에 짓눌렸는지 둘다 몸을 떨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이겨, 내가 그렇게 만들꺼니까."
"뭐라는 거야."
운명이라는게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는 모르겠다.
이미 운명에 의해 모든게 정해져 있는 거라면, 나는 그걸 바꿀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