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044 운명의 저울 (6)
* * *
“저 새끼 다리 안 움직이는 거 같은데 총이나 쏴볼까?”
“그거 괜찮겠네!”
“폭탄 어디에 숨겼어!!”
몸이 박살 나긴 했지만, 한쪽 팔은 뼈에 이상이 간 것 같지만 움직일 수 있고, 다른 한쪽은 멀쩡하다.
[ 고통 내성에 의해 통각이 감소합니다. ]
[ 고통 내성에 의해 통각이 감소합니다. ]
“얼굴도 재수 없게 생겼네, 씹 새끼”
놈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었다.
“왜 그 꼴로 검이라도 휘두르게?”
“저 상태로 어떻게 움직이겠어.”
조심스럽게 한쪽 팔을 뒤로 옮겼다. 작은 동작에도 심각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참았다.
항마의 마력도 비활성화 한 체로 걸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 고통 내성에 의해 통각이 감소합니다. ]
“야.. 저 새끼 이상한데..?”
“설마, 걷지도 못하는 새끼가 뭘 어쩌겠어.”
마력을 끌어올려 튀어 오를 준비를 끝 맞췄다.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는 공격의 기회가 별로 없다. 단 한 번만 실수하면 다음 공격은 없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으로 내 몸을 움직이는 걸 상상한다. 비록 하반신에 감각이 없고 한 쪽 팔은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일어나지만, 나는 아직 움직일 수 있다.
“나는 이런 새끼들만 보면 괜히 화나더라”
“그래도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킥킥”
남들이 보면 우스운 모습일지 몰라도, 내 공격을 놈들이 버틸 수 있을까, 짧은 시간 안에 최적의 공격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또 그렸다.
“쿨럭.. 이렇게 할 거다 이 새끼들아!!!”
나는 부러진 팔을 이용해 반발력으로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의도했던 대로 놈들에게 돌진하며 회전력을 얻었다. 방금 그 행위로 강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내게는 고통 내성이 있다.
[ 고통 내성에 의해 통각이 감소합니다. ]
[ 고통 내성에 의해 기절에 저항합니다! ]
“뭐야!!”
“이런 미친!!..”
놈들의 말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들려왔다. 비록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인이 보기에는 빠른 속도, 나는 떠오른 상태에서 멀쩡한 팔을 움직였다.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했던 동작을 그대로 행했다. 3명을 동시에 베는 동작을 상상했기에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아니, 기회가 없었기에 실패해서는 안 되었다.
날아가며 검을 휘두른다. 너무 늦어도 안 되며, 빨라도 안되는 상황에서 첫 번째 남자에게 검이 닿았다. 마력이 휘감고 있는 검은 속도나 힘을 잃지 않고 그대로 움직인다. 두 번째 남자도, 세 번째 남자도 똑같았다.
사방으로 혈액이 비산 하며 놈들이 쓰러졌다. 나 역시 비참하게 나 뒹굴었으나 공격에 성공했다.
“시…. 발.. 아파 뒤지겠다..”
[ 놀라운 솜씨로 공중 곡예에 성공했습니다. 제국 검술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
레벨은 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스템에 인정받았다.
나는 한쪽 팔로 몸을 끌고 놈들이 물건을 옮기던 장소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조금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게이트가 있었다.
“지하에.. 게이트?”
게이트는 어디에나 열릴 수 있다. 하지만, 멀쩡한 은행에서 게이트가 열린 걸 방치해둘 확률이 얼마나 될까.
게이트에서는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마기?..’
게이트에서는 불쾌한 마기가 느껴졌다. 그때 게이트 너머에서 누군가 넘어왔다. 내가 쓰러트렸던 놈들과 똑같은 복장을 한 남자였다.
“게이트 시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빨리 물건 안 가져...?”
그렇게 된 거였나?
저 게이트를 통해 물건을 챙겨 도망치고, 폭탄을 통해 증거를 인멸할 생각이었던 거다.
“뭐…. 뭐야 시발! 이 새끼는 또 뭐냐!!”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건, 저 게이트는 시간이 지나면 닫히도록 설계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폭탄으로 모든 걸 날려버리면, 그 어떤 증거도 남지 않는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복면을 쓴 남자는 나보다 강했다. 시간적 여유도 있는데 나는 멍청이처럼 혼자 싸울 생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자..’
복면을 쓴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벌써 기대가 되었다.
*
"김시우.. 괜찮아?.."
"다 끝났으니까.. 쉬고 있어"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도가 있었던가.
민지가 다치긴 했지만 그래도 살아있다.
상태가 안 좋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게 어디인가.
[ 고통 내성에 의해 통각이 감소합니다. ]
[ 고통 내성에 의해 통각이 감소합니다. ]
몸 상태가 좀 안 좋긴 하지만, 재수 없는 놈이 반쯤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만족스러웠다.
"찢..죽..인..다..어.."
반쯤 고장 난 복면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보스 몬스터도 아니고, 2페이지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능력의 부작용인지, 지능이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면 이길 가능성이 없었을 거다.
"그럼. 여기서 끝내자."
폭탄도 미리 치워버렸고 강민지와 장모님도 살렸으니, 완벽한 승리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앵무새처럼 중얼거리는 놈에게 걸어갔다.
"이제 좀 죽어라. 새끼야."
놈의 심장을 찌르려는 순간, 이질적인 감각이 일어났다.
"?"
돌연 놈의 상태가 이상하게 변하더니 엄청난 기세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 어? 시발?"
그대로 놈이 폭발했다.
[ 세이브 포인트를 로드했습니다. ]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었다.
폭발을 막는다고 폭탄을 치웠더니 본인이 폭발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마치 강민지의 죽음이 운명인 것 처럼 말이다.
마키나가 운명을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했던가?
정말로 강민지의 죽음은 정해진 운명일까?
"여기에, 더 강한 운명을 개입시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등급이 낮으니 가치가 없다고 치고, 더 높은 운명등급을 가진 인물이 같이 있어도 폭발이 일어날까?
그렇게 생각하니, 딱 한 명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운명등급 S. 윤서아."
윤서아가 은행에 같이 있어도, 폭발이 일어날까?
*
호텔 뷔페에서 식사를 끝낸 윤서아는 곧장 아카데미로 돌아와 다이아 트레이닝 룸으로 들어와 운동장을 달리는 중이었다.
“하아..”
윤서아는 일대일 대련에서 패배한 후부터, 체력훈련을 시작했다.
본인 스스로 패배의 원인은 근접 전투의 경험과 체력 부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매번 같은 부분을 지적당했기에, 이번을 기회 삼아 역점을 보완할 생각으로 시작한 달리기 훈련.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달려서 그런지 슬슬 힘이 부치는 느낌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위해 스포츠 브라톱과 스판 소재로 된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짧은 옷 밑으로 새하얀 팔다리가 훤히 드러났고슬랜더 몸매에 대비되는 꽉 찬 D컵 가슴이 부각되어 보였다.
복부의 경우는 근육이 없어서 그런지 말랑말랑해 보였다.
‘바지가 불편해...’
사이즈가 조금 작아서 그런지 달라붙는 게 심했는데, 특히 가랑이 사이에는 선명하게 도끼 자국이 생겨 있었다.
__지잉 지잉
“하아..누구지..?”
자신의 연락처를 아는 건 그리 많지 않다. 보통 이 시간에 연락을 하는 건 어머니 아니면 어머니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 이었다.
“김시우?..”
상대를 확인한 윤서아는 운동장 한복판에 주저앉아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하아..”
[ 나 지금 밑에 있는데 혹시 만날 수 있어? ]
“지금?”
[ 응 ]
“…”
윤서아는 자신의 옷차림을 확인했다. 브라톱과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유달리 노출이 많은 상황.
‘엄마가 남자를 만날 때는 옷차림에 주의하라고 했는데…’
이미 땀에 흠뻑 젖은 상황이라 옷을 갈아입기도 애매했고, 씻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 시우는 괜찮지 않을까?’
엄마가 한 말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김시우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려갈게..”
체력 훈련을 위해 제한했던 마력을 해제하자 서늘한 느낌과 함께 달아올랐던 몸이 금방 식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자 김시우가 있었다.
“우…. 운동하고 있었어?”
김시우는 윤서아의 옷차림을 보고 당황했다.
“응.. 혹시 냄새나?”
“아니.. 하나도 안 나, 근데 체력 단련은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응.. 그래도 앞으로는 안 지려고..”
“그래 너 잘났다.”
“히히..”
윤서아의 옷차림이 신경쓰이는 김시우는 주변에는 서둘러서 서아를 대리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평소에는 생도복만 입은 모습만 봐서 그런지 나름 신선하게 다가왔다. 노출이 많고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재질
“혹시.. 이상해?”
윤서아는 김시우의 반응을 보며 자신의 옷차림을 확인했다.
맨살이 많이 들어나긴 했지만, 운동하는 사람들이 자주 입는 복장이라고 들었기에 잘못된 옷차림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유달리 선명한 도끼자국.
윤서아는 파고들어 간 부분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 빠지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다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 내 앞에서 그래도 괜찮아?”
“많이.. 이상해 보여?”
윤서아는 김시우의 반응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움직이기 불편했는데, 남들의 눈에도 그게 보이는 모양이다.
“아니... 나는 그런 거 좋아하는데 네가 괜찮은가 싶어서..”
“괜찮아 보여?”
“어? 응.. 나는 그런 거 좋아하지”
서로의 대화 주제가 어딘가 어긋나 있었지만, 윤서아는 김시우가 괜찮다고 말하니 기분이 편해졌다.
“다행이다.. 히”
그렇게 둘은 다이아 트레이닝 룸으로 들어왔다.
“서아야”
“응?”
김시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윤서아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나는 그런 모습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런 모습 보여주면 안 돼, 특히 다른 남자 새끼들한테는 보여주지 마”
윤서아는 김시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김시우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한테 이런 모습은 실례구나…’
“알았어.. 고마워”
다른 사람에게는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시우가 한 번씩 아래쪽을 쳐다보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아 씨.. 지금 이럴 게 아니지, 일단 이것부터 받아..”
김시우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는데, 그건 윤서아에게 아주 익숙한 물건이었다.
‘도핑 포션..’
보통 신체 능력을 일시적으로 강화시키는 포션의 경우, 사용 후유증이 따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강화 효과가 끝난 후 강한 피로감과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다른 포션과는 다르게, 김시우의 포션은 효과가 끝나도 아무런 후유증이 없었다.
거기다가 디버프에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 포션은 들어 본 적도 없었는데, 그 효과는 아카데미의 교관도 모르고 넘어갈 정도로 완벽했다.
‘300만원 은 너무 적은 거 아닐까..’
대단한 포션이긴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효과가 조금 부족했다. 여기서 효과가 더 좋아지면 그 가치는 배 이상 뛸 게 분명했다.
만약 디버프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좋은 성적을 받으려는 학생들을 상대로는 부르는 게 값이라 할 정도로 가치가 올라갈 수 있는 포션이었다.
‘맛도 괜찮으니까..’
맛도 다른 포션 보다 뛰어났는데 포션의 특유의 비릿한 맛이 없어서 좋았다.
“이건 스트레스에 좋데”
“스트레스?”
윤서아는 김시우가 준 포션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마셨다.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긋하고 시원한 느낌과 함께 넘어가는 달콤한 음료
‘민트초코!’
거기다가 포션을 먹은 순간,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걱정거리들이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맛이 나는 포션은 처음이었다.
“포션인데…맛있어!”
윤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중얼거렸다. 앞으로도 꼭 마시고 싶어지는 포션이었다.
“이것도.. 앞으로..”
“서아야, 나 부탁하나만 할 수 있을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