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세이브로 따먹다-43화 (43/235)

〈 43화 〉 043 운명의 저울 (5)

* * *

***

상대는 바보가 아니다.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면, 자신의 통신 상대가 말이 없으니 누군가 개입했다는 걸 아는 게 보통이다.

‘놈을 도발했을 때 반응을 살펴볼까?’

흥분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린다. 상대방의 성격을 알 수 있다면 앞으로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너희들은 실패할 거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놈이 내게 물었다.

그래 아주 익숙한 목소리, 이전 회차에서 날 죽였던 검은 복면을 쓴 남자의 목소리 였다.

"..."

"왜냐하면.."

"...말장난을 하자는 건가?"

감정의 동요도 없이 평탄한 음색, 어쭙잖은 도발로 놈의 감정을 변화를 주긴 힘들어 보였다.

‘이전에도 별로 반응이 없긴 했지’

내가 대답이 없자 오히려 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쪽에 천막이 보이나?”

천막이라면 폭탄을 숨겨둔 곳을 말하는 건가?

‘이번에는 반말로 대답해 볼까?’

“응 보이는데?”

“... 거기에는 대량의 폭탄이 있다. 확인해 봐라”

“포…. 폭탄?”

“놀랐나?”

'새끼 좋아하기는'

“아니, 내가 다 먹었는데”

진작에 발견해서 인벤토리 안에 넣어두었다. 뭐 혹시 원격 폭탄이라고 인벤토리 안에 있는 폭탄을 터트릴 수도 있는 건가?

‘마키나 인벤토리 안에서 폭탄이 터질 수도 있어?’

[ 인벤토리는 완전히 독립된 공간입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

‘오케이 폭탄은 터질 일은 없고’

“두려워서 정신이 나가버렸나?, 바보가 아니라면 그게 터질 때 어떤 결과가초래할지는알고 있나?”

멀리서 이 폭탄이 터지는 모습을 보긴 했다.

“그래 이 건물이 통째로 사라지는 거다, 네 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만약 이 폭탄이 내 앞에서 터졌다면 나는 100% 확률로 죽었을 거다. 하지만 매번 반복하면서 지워지지 않는 의문점

“너희는 괜찮고?”

이 정도 규모의 폭발이면 놈들도 폭발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멀리서 진을 치고 있던 군인들도 피해를 볼 정도로 강한 폭발인데, 안에 있는 사람들 중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뭐 지하실에 미리 도망칠 생각이었어?”

“글쎄”

이 건물 내부 구조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지하에 숨는다면 위력을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애송아 그걸 알려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확실히 목소리를 통해서는 감정을 읽기 힘들었다. 놈을 만나도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표정을 볼 수도 없고, 성가신 놈이었다.

‘이 놈 말고 다른 헌터들이 있나?’

검은 복면을 쓴 놈 말고는 딱히 실력자로 보이는 놈은 없었다. 만약 있다면 지하 통로에서 결계를 펼치고 있지 않을까?

흔히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지하에 통로를 만들어 뒀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실에서도 땅굴로 은행을 털고 가는 일이 있지 않은가.

‘악질이네’

만약 그렇다면 아래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동료들이 결계를 통해서 지하를 일종의 벙커로 만드는 거다. 그럼 폭발로 당황한 틈을 타 지하 통로로 도망칠 시간을 버는 거다.

“어떻게 생긴 놈인지 궁금하구나, 마음껏 발버둥 쳐봐라..”

어차피 확인하지 않은 이상 추측일 뿐이었다. 나는 스마트 워치로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휴대전화 차단용 재머라도 작동시킨 건지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에 켜져 있던 전등도 꺼졌다. 전기고 뭐고 다 끊어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총소리, 놈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인가?’

시간을 확인하니, 놈들이 이 앞보다 더 빠르게 활동을 시작했다. 아마 나의 등장 때문이겠지, 밖에는 비명과 총소리로 가득 찼다.

통신이 마비된 상황에서도 하나 멀쩡하게 작동하는 게 있었다.

“왜, 두려워졌나?”

놈들이 사용하는 무선이어폰은, 재머가 차단하지 않는 특정 주파수를 사용하도록 설계된 모양이다.

“좆까 병신아”

“기다리고 있어라.”

그걸 끝으로 무선 이어폰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 놈들이 사용하는 주파수를 변경한 모양이다. 나는 인벤토리에 검을 꺼내 들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한 번에 해결한다고 생각하면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 폭탄을 찾아낸 것만으로 충분히 성과를 올렸다.

“지하로 간다.”

문을 부수고 나왔을 때는 멀리서 비명과 고함치는 소리, 그리고 총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대응되는 사격이 없는 걸 보면, 아마 경비들은 모두 제압당했던 것 같다.

“여기 숨어 있는 애새끼가 있다!”

날 발견한 강도단 중 한 명이 하늘에 대고 총을 쏘며 날 위협했다.

“저 새끼 검 들고 있는데?”

“하, 새끼가 헌터 놀이라도 하고 싶나 보지”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웃었다. 나는 그 틈을 노려서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어 자.. 잠깐만!!”

“시발 헌터다!!”

놈들이 서둘러서 총을 들어 올리고 조준하려 했지만, 대응이 너무 늦어 버렸다.

[ 멸망한 제국 검술에 의해 움직임이 보정됩니다. ]

“커 헉..”

“지…. 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놈들을 무시하고 지하로 이동했다. 계단으로 내려가자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는 놈들이 보였다.

“뭐.. 뭐야!”

“헌터!! 헌터다!!”

“방해된다 비켜!!”

나는 앞길을 막는 잔챙이를 썰어버리며 지하로 내려갔다. 인간이 아니라 쓰레기들이라고 생각하니 움직이는데 망설일 게 없었다.

“지원!! 지원을 요청한다!!”

[ 멸망한 제국 검술에 의해 움직임이 보정됩니다. ]

“시발.. C급 헌터가 왜 여깄어!!!”

[ 멸망한 제국 검술에 의해 움직임이 보정됩니다. ]

“살려줘!!!”

검은 복면을 쓴 남자를 제외하면 위협적인 인간은 없었다. 각성도 하지 못한 일반인들이 많았고, 그나마 각성자들도 E~F급으로 수준이 떨어졌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마력과 항마의 마력, 거기에 회귀와 대련을 통해 쌓인 전투 경험. 나는 이미 이런 놈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놈들을 쓰러트리며 지하로 들어가자 박살 나 있는 잠금장치와 입구를 지키던 경비들이 죽어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경비들에게 명복을 빌어주고 거대한 출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출입구 안에는 광고에서 말했던 것처럼 다양한 금고들이 있었다. 아마 귀중품을 보관하는 곳처럼 보였는데,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결계가 없는데?”

분명 각 금고마다 결계를 설치해 두었다고 했는데, 마력의 흐름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모든 결계를 무력화시킨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고?”

너무 이상했다. 이번에 일어난 이 은행 강도 사건은 하나부터 열까지 의문투성이 었다. 혹시라도 있을 적들을 염두에 두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집중하는 순간, 유달리 이질적인 흐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거기에 다가가자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렸다.

“야 무거우니까 빨리빨리 도와!”

“아 무전은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아까 얘들 튀어 나가던데 무슨 일인지 알아?”

“저도 시끄러워서 꺼뒀어요, 뭐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거기에는 3명의 테러리스트가 잡담을 나누며 서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내가 근처에 온지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고 있었다. 방금까지도 물건을 옮기고 있었는지 바닥에는 귀중품으로 보이는 게 널브러져 있었다.

‘어디로 옮기는 거지?’

인기척을 숨기고 놈들을 추격하기 위해 몸을 숙였다.

구조상 이곳 지하는 별다른 통로가 존재하지 않아야 정상이다. 오랜 시간 준비해서 통로를 만든 걸까.

하지만 이 이질적인 기운은 뭐지?

‘이질적인 기운?’

“여기 있었구나, 쥐새끼”

“시발!”

놀라서 고개를 돌렸을 때는 복면을 쓴 남자가 검으로 내려치는 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놈들에게 너무 정신이 팔려서 이렇게 다가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황급히 놈의 공격을 방어했지만, 너무 늦어 버렸다. 자세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방어에 성공하긴 했지만, 그 충격이 그대로 어깨로 전해졌다.

놈의 신체 능력이 더 좋은 만큼, 검술로 흘려낸다는 느낌으로 싸웠는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신체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 고통 내성에 의해 통각이 감소합니다. ]

어깨 한쪽이 삐걱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시발 공격만 흘렸어도’

“애송아, 드디어 만났구나..”

“히익!”

“마.. 마스터!”

“너흰 무전을 무시했나?”

“마스터…. 그게!”

물건을 옮기던 남자들이 움츠러들었다.

“이새끼야 무시하지 마!!”

[ 멸망한 제국 검술에 의해 움직임이 보정됩니다. ]

[ 멸망한 제국 검술에 의해 움직임이 보정됩니다. ]

놈은 강했다. 어깨가 온전한 상황에서도 패배했는데, 이렇게 기습을 당한 상태에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고, 나는 구석으로 처박혔다.

“커헉..”

[ 고통 내성에 의해 통각이 감소합니다. ]

갈비뼈 몇 개가 부러져서 허파 같은 장기를 찌르고, 팔 한쪽은 뼈가 부러졌는지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일어났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하반신 쪽은 아예 감각이 없었다.

고통 내성이 없었으면 이렇게 버티지도 못했다.

“이런.. 힘 조절에 실수했나”

남자는 이겼다는 기쁨도 없이 그저 평탄한 목소리로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그래.. 폭탄은 어디 있지?”

“왜.. 쿨럭.. 당황했어?”

나는 놈을 보면서 밝게 웃었다. 놈이 터트리려는 폭탄은 인벤토리에 모두 보관되어 있다.

“...”

남자의 얼굴은 눈만 드러난 체 해골 그림이 그려진 복면으로 가려져 있어 표정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시간 낭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놈은 고문이라도 할 생각인지 칼을 들어 올려 내 다리를 찌르려 했다. 그때 위에서 무언가가 건물을 흔들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무전 소리

“...한명이 더 있었나.”

강민지가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남자는 민지에 대해서 보고 받았는지 고민에 빠진 듯 했다.

“어이, 거기 네놈들”

“예…. 예 마스터!”

“이놈에게 폭탄의 위치를 알아내도록 해라”

“저.. 저희가 말입니까?”

“어차피 움직이지도 못할 거다. 그러니 돌아오기 전에 끝내라.”

놈은 그렇게 말하고 뒤를 돌아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남자가 사라지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놈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새끼야! 빨리 위치를 불어!!”

“그래, 뒤지기 싫으면 빨리 말해라!”

이번 회차는 여기 까지다. 하지만 아직 한가지 확인하지 못한 게 있었다.

‘불길한 마나 흐름.. 저건 확인해야지'

내 몸이 박살 나긴 했지만, 부러진 팔은 통증이 있어도 움직일 수 있고, 한쪽 팔은 멀쩡한 상태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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