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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세이브로 따먹다-41화 (41/235)

〈 41화 〉 041 운명의 저울 (3)

* * *

*

은행을 점거하고 있던 녀석들은 모두 초록색 점프슈트에 괴상망측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마력 폭탄?'

놈들이 들고 있는 건 대량의 마력 폭탄 이었다. 위협용으로 설치하는 것 치고는 많은 양이었다.

"쏴..! 죽여버려!!"

들고 있던 폭탄을 내려놓고 총을 쏘기 시작했다. 하지만 총은 모두 이전에 서 있던 장소를 맞힐 뿐이었다.

이렇게 제한된 공간에서 2~3M를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헌터를 조준하는 건, 평범한 인간으로는 불가능이다.

[ 멸망한 제국 검술에 의해 움직임이 보정됩니다. ]

항마의 마력에 쌓여 있는 검은 아주 가볍게 한 명을 쓰러트렸다.

1명.

'각성자가 아닌가?'

"시…. 시발!! 죽어! 죽어!!"

동료가 쓰러지는 걸 본 빌런이 미친 듯이 총을 갈겼지만, 집중해도 맞추기 힘든 걸 흥분한 상태에서 맞출 수 있을까?

[ 멸망한 제국 검술에 의해 움직임이 보정됩니다. ]

서걱, 무언가를 베는 느낌이 불쾌하긴 했지만, 죄책감은 없었다.

3명.

"무슨 소란이야!"

주변에 있던 빌런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왔다. 나는 검을 쓰러진 녀석에 옷에 대충 닦고 다음 녀석을 향해 돌진했다.

빌런 중에는 각성자들이 몇 명 있었지만, 그다지 특별한 능력이 없는 근접계열의 각성자로 보였다.

놈들이 서둘러서 검을 꺼내 들었지만, 순식간에 동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나보다 마력 등급이 낮은 거 같은데?'

검을 들고 노려보는 빌런들, 놈들의 마력은 나보다 형편없어 보였다.

헌터들이 검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는 편의성이 주된 이유다. 마력만 흘려 넣으면 평범한 검이라 해도 위협적인 무기로 변한다.

마법처럼 계산할 필요도 없고, 마법 총이나 활처럼, 마력을 부여할 필요도 없이 그저 휘두르기만 하면 끝이다.

하지만 검이라는 무기는 사용자의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위력을 가진다.

'죽어!!!'

그렇기에 빌런의 공격은 너무나 약해 보였다. 분명 전력을 다한 공격임에도 너무나 하찮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날이 오다니, 나는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파고들었다.

"막아!!!"

"죽여버리라고!!"

"놈은 한 명이다!!"

[ 멸망한 제국 검술에 의해 움직임이 보정됩니다. ]

검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 기묘한 감각이 이끄는 대로 검을 움직이자 전력을 다한 놈의 검이 옆으로 비켜 나갔다.

단순히 힘만으로 싸우는 것이 아닌 기술로 싸우는 것. 거기에 내 신체 능력은 놈보다 더 좋았다.

힘과 기술이 차이 난다면 결과는 뻔했다.

"쿨럭..."

무방비한 빌런의 몸에 검을 찔렀고 놈은 반항조차 못 하고 쓰러졌다.

그 뒤로도 너무나 쉬웠다. 윤서아와 계속해서 대련했던 탓인지 사각지대에서 어떤 방식으로 공격할지 훤히 보였다.

거기에 내가 놈들 사이를 파고들자 동료들이 맞을까 봐 총도 쏘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때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 건가 했더니.."

고개를 돌리자 온통 검은색 옷차림에 끝이 다 갈라진 가죽 코트, 그리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또 아카데미 생도인가?"

낮고 음침한 목소리, 거기에 얼굴을 가린 복면 사이로 보이는 두 눈은 살기가 가득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시에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 앞에 쓰러트렸던 잔챙이 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각성자.

피부로 느껴지는 마력은 나보다 훨씬 더 강해 보였다.

'이놈이다. 이 새끼가 범인이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강민지를 죽인 새끼는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저 남자라는 것을.

"너... 너가 우리 민지 죽었냐?"

"민지..? 아, 아까 큰 폭발을 일으키던 여자애 말하는 건가?"

"이.. 이 새끼가!!!"

나는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고, 남자에게 다가가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회귀를 반복하며 쌓았던 경험이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남자의 사정거리에 들어가는 순간 공격을 포기하고 그대로 방어자세로 돌아갔다.

[ 멸망한 제국 검술에 의해 움직임이 보정됩니다. ]

그냥 감으로 검을 휘둘렀다.

"커억!"

그때 무슨 망치로 손목을 때리는 고통을 느꼈을 때, 나는 날아가고 있었다.

등을 때리는 강한 충격과 함께 폐의 산소가 모두 빠져나갔다. 유리 파편들이 등을 찔렀지만 괜찮았다.

[ 고통 내성에 의해 통각이 감소합니다. ]

나는 그대로 다음 공격에 대비했지만, 검은 복면의 남자는 멀리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흠.. 그걸 막은 건가?"

놈은 보통이 아니었다. 분명하다. 저 새끼가 강민지를 죽인 범인이다.

"그래도 다음은 없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강렬한 마력, 지금의 나로서는 이길 수 없는 놈이 분명했다.

그때 한 가지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의문이 들었다.

'마키나'

[ 네.. 김시우님 ]

'저 새끼 운명등급이 어떻게 돼?'

[ .. A등급입니다. ]

"A 등급..?"

"이제 죽어라"

이번에는 가만히 서 있던 놈이 달려들었다.

***

눈을 떴을 때는 세이브를 했던 그 시각이었다. 심장이 검에 꿰뚫리는 불쾌한 감각.

무심한 듯 내려다보는 놈의 눈이 거슬렸다.

"검술은 비등비등했는데"

내 검술 실력은 놈과 비슷했다. 마력의 차이가 나긴 했지만 그렇게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 혼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놈은 아니었다.

비슷한 실력으로는 스텟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다.

"흠.."

내 목적은 강민지를 살리는 것이지 은행 테러를 막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강민지를 은행으로 가지 못하게 하면, 강민지가 죽을 일도 없다.

"아직 안 자겠지?"

나는 옷을 챙겨 입고 강민지가 있을 집으로 향했다. 강민지의 집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달이 뜨고 어둠이 내려앉은 밖은 상쾌할 줄 알았는데 여름이라 그런지 습한 느낌이 강했다.

"오늘 열대야라고 했던가?"

낮에는 트레이닝 룸에만 있었고, 밤에는 호텔 뷔페에서 식사, 그리고 집에 오는 길도 윤서아가 데려다줘서 오늘 이렇게 더운 줄 몰랐다.

그동안 에어컨을 없이 살아온 만큼,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대한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에는 에어컨은 꿈도 못 꾸는 가전제품이었다.

"흠..."

나는 강민지한테 전화를 걸었다.

***

벨을 누르자 돌핀 팬츠에 조금 커다란 티셔츠를 입은 강민지가 문을 열고 나왔다.

화장을 지운 상태였지만 강민지의 외모는 완벽했다.

"민지야 안녕"

"너 뛰어왔어?"

숨이 거친 걸 보고 금방 눈치챈 모양이다.

"응, 밖이 더워서"

"그렇게 달리니까 땀이 나지. 찐따야"

"혹시 냄새 나냐?"

"... 나니까 빨리 씻어"

왜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래도 냄새가 심한 건 아닌지 불쾌한 표정은 아니었다.

이전에 왔던 것처럼 검은색 대리석 선반과 흰 타일로 깔끔하게 인테리어 된 화장실이 반겨주었다.

여기에는 분홍색 포인트가 없었는데, 역시 강민지는 검은색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씻으려고 옷을 벗고 있었는데, 문밖에서 강민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어컨 고장 났다고 했지?"

"응 역시! 우리 민지밖에 없다."

"조…. 조용히 하고 씻기나 해!"

세이브 로드 능력이 없었다면 다시는 보지 못할 민지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동굴에서 있던 일에 비하면 더 쉬운 일이야'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매번 꼴찌라고 놀림만 받았던 내가, 강민지랑 윤서아와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직 윤서아는 그리 깊은 관계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아카데미 내부에서 나랑 강민지보다 가까운 사람은 없을 거다.

세면대 선반 위에는 민지의 칫솔과 세안 도구들이 보였다. 여자라서 그런지 종류가 많았다.

"나는 비누하고 샴푸만 쓰는데"

화장도 그리 진하게 하지 않는 편이라 그리 신경 쓰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클렌징폼에, 샴푸, 린스, 컨디셔너, 바디워시 같은 다양한 종류의 세안 도구가 보였다.

샤워실은 투명한 유리로 막힌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물이 튀지 않게 되어 있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씻을 수 있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우리 집 화장실에 2배는 되겠네"

어차피 2학기가 시작되면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니, 이 집에 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머리 위로 적당한 온도의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이라 조금 차가운 온도의 물.

물을 맞고 있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고 보니까 잊은 게 생각났다.

"아.. 갈아입을 옷 안 들고 왔다."

화장실 수납장을 뒤져보니 프리사이즈 목욕가운이 있었다.

땀에 젖은 옷을 다시 입기는 조금 찝찝하고, 어차피 볼 거 안 볼 거 다 본 사이인데 상관없겠지.

나는 목욕가운을 걸치고 화장실에서 나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너 설마 옷 안 들고 왔어?"

"응"

"하아.. 진짜 멍청이도 아니고.."

그러면서 목욕가운으로 비치는 내 몸을 힐끗힐끗 보고 있었다.

"요새 운동 열심히 해?"

스텟을 올리면서 근육량이 늘긴 했다.

'그러고 보니까 스텟이 오르고 섹스한 적이 없었네'

민지를 보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아래쪽에 피가 몰렸다.

"..."

"..."

내 정력의 한계가 얼만지 민지한테 시험했다.

"야! 내일 대련하러 가야 한다고 옷!! ♡"

“지금 가면 돼지”

“말..장난 하읏.. 하아앙♡”

***

"삐비비비 삐비비비"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눈을 비비며 일어나 그대로 알람을 꺼버렸다. 손에 부드러운 게 잡혀서 보니 강민지가 알몸으로 자고 있었다.

"어제 잔뜩 했지.."

"흐으응.."

적당히 민지 가슴을 만지다가 나도 다시 잠들었다.

그렇게 의식이 끊기고,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김시우!"

"으..응?"

"너 알람 네가 껐어?"

잔뜩 화난 강민지가 날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몇 시야?"

"아씨!! 오늘 아침에 은행 갔다가 아카데미에 가려고 했는데 너 때문에 늦었잖아!"

"은행.. 은행? 은행!!"

나는 강민지의 말에 눈이 번쩍 떠지는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화를 내는 민지를 무시하고 거실로 가서 TV를 켰다.

"찐따새끼야! 너 때문에 약속 시각도 넘었잖아!"

채널을 돌리다가 긴급속보가 뜬 채널을 발견했다.

"늦었는데 뭐 하는 거야! 너 옷도..."

뉴스 채널에는 오늘 일어난 스타드 은행 테러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어제 현장에서 확인했던 대로 군인들과 경찰들이 은행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인질 역시 그대로 있었고, 강민지는 살아 있었다.

'이렇게 쉽게 되는 문제였나?'

강민지를 살리는데 성공했다. 너무 싱겁게 끝나서 실감이 나질 않았다.

운명을 바꾸는 게 너무 쉬운 거 아닌가?

그렇게 기뻐하고 있었는데 강민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테러.. 스타드 은행에... 테러?"

"왜 그래 민지야? 돈이라도 맡겼어?"

강민지는 아무 대답 없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시나무 떨리듯 떨고 있는 강민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왜 그래 민지야?"

"아... 가야 해.. 은행에 가야 해..."

기껏 살려놨더니 다시 사지로 들어가려는 강민지를 막아 세웠다.

"아니 왜 저 위험한 곳에 간다는 거야!"

"놔! 저기에 우리 엄마가 일한단 말이야!!!"

"뭐? 장모님이 저기 있다고?"

"농담할 기분 아니야!!"

놈들이 설치하던 마력 폭탄이 떠올랐다.

'장모님은 안 되지 시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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