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039 운명의 저울 (1)
* * *
***
하나씩 사용할지, 여러 개를 한 번에 사용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한 번에 사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다 쓸 생각이었기에 하나씩 열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오랜만에 보는 효과음과 함께 상자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뜬 건 예상했던 대로 였다.
[ 누군가가 사용한 빨대 ]
[ 찌그러진 고철 캔 ]
[ 누군가 사용한 콘돔 ]
...
"처음부터 좋은 게 뜨기는 힘들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도 쓰레기 아이템만 올라왔다.
SKIP 버튼이 없었기에 결과물을 하나씩 확인해야 했다. 그래도 열리는 속도가 느리지는 않아서 괜찮았다.
계속해서 인벤토리 창을 채우는 쓰레기들,
"떴냐?"
[ 스킬 : 인큐버스의 눈을 획득하셨습니다. ]
[ 인큐버스 눈 LV. 1 > 인큐버스 눈 LV. 2 으로 변경됩니다]
동일한 스킬을 얻으면 기존에 있던 스킬의 레벨이 올라가는 시스템인 듯 했다. 이러면 레벨을 올리고 가챠를 돌리는 게 유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스킬부터 올리는 건데"
다시 또 쓰레기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인큐버스의 눈'을 얻었을 때처럼 특별한 이펙트가 떠올랐다.
"또 스킬?"
[ 스킬 : 특별한 정액을 획득하셨습니다. ]
[ 특별한 정액 : LV5 > 특별한 정액 : LV6로 변경됩니다]
당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앞에 LV. 5 까지 올려둔 상황이라 '인큐버스 눈'과 비교하면 양반이었다.
거기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킬 중 하나로 범용성과 쓰임새가 많은 효자 스킬이었다.
포인트만 남아돈다면 가장 마스터시키고 싶은 스킬 중 하나였다.
기대를 하며 나머지 결과를 확인했다.
[ 부러진 나뭇가지 ]
[ 누군가의 속옷 세트 ]
...
벌써 25번째 가챠. 분명 오늘의 운세가 좋았는데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오늘 분명 운이 좋았는데?"
[ 누군가 먹다가 버린 사탕 ]
[ 찌그러진 고철 캔 ]
[ 녹이 슨 열쇠 ]
...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결과물,
역시 미신은 미신인 모양이다.
[ 아날 섹스용 젤 x5 ]
[ 미약한 미약 x3]
"나쁘지는 않긴 한데"
언젠가는 꼭 쓸 것 같은 아이템이지만,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뭔가 한 방에 쓸어버릴 수 있는 필살기 같은 스킬을 원했는데 결과는 이 모양 이 꼴이었다.
빠르게 줄어드는 가챠권은 벌써 2개밖에 남지 않았다.
다 체념하고 포기한 순간, 앞에서와는 다르게 보라색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진짜 떴나?"
기대감을 잔뜩 가지고 결과를 확인했다.
[ 스킬 : 멸망한 제국의 검술을 획득하셨습니다. ]
[ 멸망한 제국의 검술 : LV2 > 멸망한 제국의 검술 : LV3로 변경됩니다]
이 앞에 결과물과 비교하면 당첨, 이거라도 얻었으니 손해는 아니었다.
그렇게 만족한 순간, 마지막 상자에서도 빛을 내기 시작했다.
"또?"
아까보다 더 밝은 빛, 자연스럽게 기대감이 커졌다.
[ 스킬 : 세이브 로드를 획득하셨습니다. ]
[ 세이브 로드 : LV2 > 세이브 로드 : LV3로 변경됩니다]
"후우.."
올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스킬이긴 하다. 하지만 전투력에는 도움이 안 되는 스킬이라 아쉬움이 남았다.
가챠의 결과물로 얻은 것 중 그나마 당첨이라 할만한 건 '특별한 정액' , '멸망한 제국의 검술', 그리고 '세이브 로드' 스킬.
"그런데 중복된 스킬만 나온것 같은데?"
수많은 아이템 중에서 중복된 스킬만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되는 걸까?
확률상 이게 가능한 일인가?
"다른 스킬은 없는 거야? 아니면 주작이라도 한 거야?"
[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
확률표를 볼 수 없으니,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는 알려줄 수 있어?"
[ ...그렇습니다. ]
찝찝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나중에 알려준다니 넘어가기로 했다.
'뭐 포인트를 생각하면 이득이니까'
이번에 나온 쓰레기들을 버리기 위해서 인벤토리를 살펴보았다. 그나마 건진 물건은.
"미약이랑, 아날용 젤, 그리고 녹슨 열쇠?"
녹이 슬어 열쇠의 역할을 못할 것처럼 생겼지만, 겉모습이 생각보다 고급스러워 보였다.
'금 열쇠같이, 녹만 제거하면 값이 나가려나'
그래도 가치가 있어 보여서 인벤토리에 남겨두고 얻은 쓰레기들을 모두 버려버렸다.
"대충 결과를 정리하면.."
특별한 정액스킬이 오르면서 맛 구현율이 60%로 상승했고, 추가로 임신 on/off 기능이 생겨났다.
'질내 사정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가?'
새로운 능력이 생기지 않은 건 아쉽지만, 그래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머지는 변화가 없고..'
세이브 로드 스킬은 세이브 포인트가 3개로 늘어났다.
[ 세이브 로드 : LV3 ]
나는 세 번째 슬롯을 누르고 세이브 기능을 사용했다.
[ 현재 시점이 슬롯 3번에 저장되었습니다. ]
솔직히 지금까지 모든 게 잘 풀린 상황, 이다은과 번호도 교환했고, 윤서아나 강민아도 순조롭게 관계가 지속하고 있었다.
대단한 걸 얻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
윤서아와 강민지를 만나러 학교로 향했다.
방학 기간이지만 학교를 이용하려면 생도복을 입어야 한다.
'생각보다 많네'
주변을 둘러보니 생도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았다. 다들 목표로 하는 바가 분명하니 방학 때도 쉬지 않고 훈련하는 모양이다.
__ 쟤 누구야? 잘생겼다..
__와.. 일학년에 저런애가 있었어?
가끔 여자애들이 쳐다보긴 했는데,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차차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윤서아는 하루도 안 쉬는 건가?"
한때는 윤서아를 재능충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재능만큼 노력도 많이 한다는 걸 느꼈다.
실제로 어제, 식사가 끝나고 나서 훈련을 마저 해야 한다고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학기 중에도 매일 밤 12시까지 훈련을 했다고 하니, 그동안 피곤한 모습이 이해가 갔다.
"강민아는 오늘 학회에 출장 간다고 했었고.."
오늘은 봉사를 받을 수 없었다. 중요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계약 기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조바심은 생기지 않았다.
어제 그렇게 강렬한 기억을 새겨줬는데, 며칠 안 본다고 해서 잊을 수 있을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절정인데?'
아마 강민아는 내가 없어도 계속 어제 일을 생각할 거다. 그리고 봉사를 대신에 해서 강민아에게는 숙제를 던져줬다.
어떤 식으로 숙제를 할지 큰 기대가 되었다.
"그럼 서아랑 민지나 보러 갈까?"
다이아 트레이닝 룸으로 가기 위해서는 권한을 가진 사람과 동행해야 한다.
즉 윤서아와 같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자 윤서아가 내려왔다.
"하이"
"안녕.."
약속 시각이 되었는데, 보여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민지는?"
"잠깐 일이 있다고 했어.."
"그래서 오늘은 안 온 데?"
"나중에 연락한다 했어.."
그럼 또 올라가서 윤서아한테 계속 두들겨 맞아야 하는 건가.
계속 대련을 반복하면서 내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했는지, 이제는 힘도 점점 줄이는 중이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패배하고 있어서 자존심에 금이 가긴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달려들 때마다 오르는 호감도를 보면서 그냥 체념했다.
'뭐 나한테는 이득밖에는 없으니까'
굳이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할 필요 없었다. 그냥 끈기 있는 모습만 보여줘도 호감도가 올랐고, 점점 전투 경험이 쌓이고 있었다.
달라진 신체에는 거의 적응을 끝냈고, 이전보다 더 정밀한 마력 제어가 가능해졌다.
방학이 끝날 때쯤이면, 더는 꼴지라고 무시할 수 있는 놈은 없을 거다.
"바로 시작하게?"
윤서아의 뒤를 따라서 다이아 트레이닝룸에 들어오자마자, 대련 모드로 변경해 버렸다.
"응.."
"일단은 이거부터 받아"
나는 오늘 아침 갓 짜낸 우유를 윤서아에게 건네주었다. 윤서아의 취향에 따라서 민트 초콜릿 음료로 만든 포션이었다.
"이건 스트레스에 좋은 포션이래"
강민아에게 봉사를 안 받았으니 정력도 남아돌았다. 이제 3~4병을 만드는 건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스트레스?"
내가 포션을 건내주자 아무런 의심도 없이 포션을 들이켰다.
윤서아가 좋아하는 민트 초콜릿 음료에 정액을 섞었으니 맛이 나쁘지 않을 거다.
'정액이라고 해봐야 고작 몇 mL쯤 이지'
거기에 내 정액은 맛도 괜찮으니까.
"포션인데…. 맛있어!"
윤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중얼거렸다.
사실 포션은 살기 위해서 먹는 거지,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맛에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값싼 냉동 버거를 먹었는데 거기서 수제 버거 집과 똑같은 맛이 난다면?
'엄청 맛있게 느껴지겠지'
아마 똑같은 심리라 생각되었다.
"이것도.. 앞으로 챙겨줘 얼마야?.."
"저번에 받은 것도 있으니까 이번 꺼도 선물로 줄게"
A급 엘릭서를 받아먹었는데 고작 특제 포션 몇 병으로 때우기에는 양심에 찔렸다.
"그러면.. 안돼.."
"?"
"엄마가.. 받기만 하면 안 된다고 했어.."
윤서아가 나름 위협적인 표정을 지으며 날 노려보고 있었다.
"어제 나한테 엘릭서 준거는 괜찮고?"
"응..? 엘릭서 아닌데..."
윤서아는 무표정하게 대답했지만, 계속해서 눈을 피했다.
'얘도 거짓말 잘 못 하네'
"나도 서아한테 받은 게 있으니까 괜찮아"
"안 되는데.."
"그러면.."
윤서아는 선물을 받는 게 계속 불편해 보였다. 아무래도 적당한 걸 요구해야 넘어갈 생각인가 보다.
"나중에 나랑 같이 놀러 가자"
"놀러..?"
"안돼?"
"..알았어"
날짜는 정하지 않았지만 윤서아와 약속했다. 윤서아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일종의 데이트 약속이었다.
'단둘이 있을 기회는 잘 없으니까'
민지와 같이 만나서 대련하는 게 아니면 단둘이 있을 기회를 잡기 힘들었다.
'어차피 쉬지도 않고 대련만 할 생각이니까..'
훈련장에서 단둘이 같이 있어 봐야 대련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이 생길 가능성이 없었다.
지금만 해도 대련 생각에 들떠 있는 게 보였다.
'또 엄청나게 시달리겠네..'
그렇게 대련이 시작되고, 나는 계속해서 패배했다.
날아가고.
쓰러지고.
엎어지고.
계속해서 윤서아에게 패배했다.
"내가 이겼어.. 히히"
좋아하는 표정을 보면 화도 못 내겠다.
'강민지는 왜 안 오지?'
이 앞에는 강민지와 한번, 그다음에는 나와 진행하는 방식으로 쉴 시간이 있었는데, 오늘은 강민지가 없어서 그런지 죽을 것 같았다.
"너는 안 힘들어?"
"이거 마시면.. 계속 싸울 수 있어.."
윤서아는 내게 받은 신체 강화 포션을 들어 올렸다.
"야 도핑은 반칙이지!"
그나마 체력이 부족한 게 윤서아의 약점인데, 신체 강화 포션까지 먹으면 도저히 답이 없는 수준이었다.
"너도.. 마실래?"
"아니 괜찮아, 안 줘도 돼, 사양할게"
"맛있는데.."
나는 칼같이 거절했다. 아무리 효과가 뛰어나도 도저히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민지가 이렇게 늦을 리가 없는데?"
"모르겠어.."
"조금만 쉬자"
"... 알았어"
그때 이상한 알림이 떠올랐다.
“하아 시발..”
[ 히로인 '강민지'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
[ 현재 위치 : 스타드 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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