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029 아카데미 여름 방학(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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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이 괜찮아야 할 텐데..”
이다은은 품에 C급 엘릭서를 들고 양호실로 가는 중이었다. 이다은의 입장에서는 A급 엘릭서도 아깝지 않았지만, 매번 부담스러워하며 거부할게 분명했기에 그녀 나름대로 타협한 결과물이었다.
비록 C급이라도 몇 천만원이 넘어가지만, 그녀에게는 큰돈이 아니었다.
그녀도 VIP 관람실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의 두 눈으로 대련 장면을 확인했다.
관람실이 쾌적한 환경은 맞지만, 현장감이 떨어지고 마력의 흐름을 느끼기 힘들었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주원이가 이겼을 텐데..”
이다은은 둘의 대련을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강주원의 검이 닿는 순간 폭발하는 주먹, 강주원이 조금만 더 빨랐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__와 저기 다은 마망이다
__야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면 어떻게!
그녀도 나름 유명인인 만큼 아카데미 내부를 걷다 보면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저게 무슨 뜻일까?’
가끔 들려오는 ‘마망’이라는 말이 신경 쓰였지만, 그리 나쁜 의도는 없어 보여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
시선이 부담스러워 지자 빠른 속도로 양호실로 향했다.
양호실 입구에 도착하고 나니 패배한 강주원이 떠올랐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내부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
엿들으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조심스럽게 안쪽에서 들리는 대화에 집중했다.
그녀가 집중하는 순간 들려오는 자신의 소꿉친구의 목소리.
"그 다른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
이다은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
강주원의 사업이 망하면서 둘의 사이가 멀어져 버렸다.
도움을 주고 싶어도 부담스러워 하며 점점 더 거리를 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그러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카데미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기뻤다.
다시 옛날처럼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밀어내고 저 불여시는 왜?’
이다은에게는 강민지가 불여우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소중한 소꿉친구를 홀린 몹시 나쁜 불여우.
“나는 싫어”
강민지에게서 들려온 단호한 거부 의사. 안도감과 함께 드는 생각
‘우리 주원이가 어디가 어때서?’
그래도 안도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도 몰라주는 강주원
“나쁜 의도가 있는 건 아니야, 오늘 대련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 그래서 앞으로 서로의 발전을 위해서 좀 더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싶다는 말이야.”
강주원의 말을 들을 때 마다 자신의 심장이 아픈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의미는 없을 거로 생각했다.
서로 아슬아슬하게 승부가 날 정도로 실력이 비슷하니, 분명 발전을 위해서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게 분명했다.
강주원이 아카데미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본 이다은은 자신이 그동안 본 강주원을 믿었다.
그렇게 많은 여자가 고백을 해도 모두 거절하던 그였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분명했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양호실 입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저 사람은…’
이다은은 김시우를 바라봤다. 윤서아의 대련을 직관했기 때문에 그녀는 김시우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외모가 갑작스럽게 변한 탓에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게 김시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단지 강주원의 대련 상대였던 강민지를 업고 가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강민지의 친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당사자의 손에는 검은 봉투가 들려 있었는데, 먹을게 들고 있는 걸 봐서는 목적지가 뻔했다.
자신이 앞을 막고 있는 양호실.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남이 보면 강민지에게 찝쩍 대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나중에 이상한 소문이 돌지 않을까?
‘지..지금 들어가게 하면 안 돼!’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자신 앞에 있는 남자의 외모는 뛰어난 편이었다.
강주원이 흔히 꽃미남이라 부르는 부드러운 인상의 미남이라면, 자신 눈앞에 있는 생도는 날카로운 느낌이 강한 미남이었다.
강주원의 얼굴에 익숙해진 그녀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를 때는 인사부터 하는 게 옳았다. 그는 침착하게 인사를 하려 했지만 다가오는 김시우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아.. 아..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다은이 먼저 말을 걸지 몰랐다는 듯 반응하는 김시우, 이다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일단은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먼저일까?
“저..저는 이다은이라고 해요!”
“아.. 예 알고 있어요, 아카데미 차석 이다은 맞죠?”
김시우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시 허공을 응시하더니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비켜주실 수 있으세요? 민지 보려고 왔거든요”
“그..그 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김시우입니다.”
“김시우..?”
그녀가 알고 있는 김시우는 단 한 명이었다. 윤서아를 대련에서 첫 패배를 하게 한 주인공, 거기에 전교 꼴찌였다는 소식을 듣고 몇 번이고 곱씹었던 이름이었다.
“그.. 윤서아를 이긴 김시우?”
“네.. 그게 전대요”
김시우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외모가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을까, 2차 각성을 하면서 외모가 변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변하는 일은 드물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만약 눈앞에 있는 게 김시우라면, 대련에서 두 눈동자가 청아한 푸른빛으로 타오르는 모습은 그녀의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혹시! 2차 각성하신 건가요?”
“으…. 응? 하긴 했는데요”
“보….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때 자신이 본 게 맞는다면, 그 남자의 능력과 같았다.
2년 전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 김태환, 모든 헌터들의 우상이라 할 수 있는 헌터와 같은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
김시우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차석님이 부탁하는데 못 보여줄 건 없죠”
김시우가 항마 능력을 활성화하자 김시우의 눈동자가 파랗게 물들었다. 대련에서 확인했던 청아하고 깨끗한 푸른 빛, 김시우의 손끝에서 푸른 마력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아…. 아..”
파랗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는 김시우의 외모를 부각시켰다. 그도 모르는 사이 이다은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다은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능력을 확인한 이상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윤서아를 이긴 김시우가 맞았다.
“그 대련 정말 잘 봤어요! 서아를 그렇게 당황하게 한 건 처음 봤거든요!”
아카데미 차석인 그녀는 윤서아와 대련을 해본 적이 있었다. 모든 대련의 결과는 그녀의 참패.
불순물이 섞이지 않는 얼음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윤서아가 만들어 내는 얼음은 티 하나 없이 순수한 얼음이었고, 그녀의 전격 능력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그때 얼음 창을 피하는 모습 정말로 멋있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전격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싸운다 해도, 압도적인 마력의 차이와 공격과 방어가 완벽한 얼음 요새를 뚫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남들은 김시우가 비겁하게 이겼다고 할지 모르나 이다은의 입장은 달랐다.
직접 싸운 그녀의 입장에서는 윤서아가 얼마나 높고 단단한 벽인지 알고 있었기에,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도 승리를 거둔 김시우를 보고 있으면, 마치 그녀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속 주인공을 보는 것 같았다.
‘서아가 악당은 아니지만… 히히’
윤서아가 동화 속의 악당은 아니지만, 매번 그녀에게 패배한 이다은의 입장에서는 조금 악당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김시우의 손을 잡고 있었다.
“저..”
그녀가 입을 열려는 순간 양호실 안에서 강민지의 고함이 들려왔다.
“진짜 싫으니까 그만하라고!!!!”
“아..!”
깜짝 놀란 이다은이 손을 놓아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끝날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다르게 강민지가 폭발해 버렸다.
“그…. 그러니까”
“우리 철벽 여왕님이 화나셨네”
김시우는 익숙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이다은에게 양해를 구하고 양호실로 들어갔다. 이다은도 곧장 김시우를 따라 들어갔다.
“워워.. 진정 좀 하시고”
양호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 강주원과 누가 봐도 화가 난 표정으로 강주원을 노려보고 있는 강민지가 눈앞에 들어왔다.
화가 났던 강민지는 김시우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민지야 왜 그렇게 화를 내"
"아니! 싫다는데 자꾸.."
김시우는 강민지를 대변하듯 강민지의 앞에 섰다.
"그래그래.. 민지가 화를 내서 미안하데"
강민지는 씩씩거리면서 김시우를 노려보았고, 강주원은 놀란 표정에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는 또 뭐야?"
강주원이 화난 표정으로 김시우를 노려보았지만, 김시우는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이다은은 김시우가 화를 내지 않고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 어른처럼 느껴졌다.
"같은 반인데 몰라보니까 섭섭하네"
"같은 반이라고?"
"나 김시우야"
"뭐?"
강주원은 진심으로 놀란 표정으로 김시우를 바라봤다. 자신이 알던 김시우와는 180도 다른 사람의 모습이었다.
김시우는 강민지의 파트너, 강민지가 대화하는 남자는 김시우 밖에는 없었다.
"내가 민지 파트너라서 아는데, 진심으로 화난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야 진짜로 화났거든?"
"민지가 미안하데"
"야 김시우!"
둘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살얼음판 위 같던 분위기가 금방 풀렸다. 강주원과 이다은은 그 둘의 모습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도.. 옛날에는 저런 모습이었는데..'
이다은은 과거의 그리움을 느꼈고, 강주원은 아주 잠깐 질투의 눈빛으로 김시우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먼저 사과했다.
"그.. 미안해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화나게 만들었다면 사과하고 싶어.."
먼저 사과를 하는 강주원을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강민지였지만 김시우가 툭툭 건드리자 사과를 받아줬다.
"나.. 갈 거야"
강민지는 양호실에 그대로 있기 불편한 앉아 있던 침대에서 일어났다.
"조심해야지"
휘청거리는 강민지를 김시우가 붙잡아 줬다.
강민지는 치유사 덕분에 상처는 없었지만, 마력탈진 상태로 휴식이 필요한 상태였다.
"뭐라고 하는 거야. 찐따 주제에..."
"업혀"
"... 혼자 갈 수 있어."
"업혀"
강민지는 못 이기는 듯 김시우의 등에 업혔고, 이다은은 그 모습을 부럽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 방학 잘 보내라~"
그렇게 강민지와 김시우가 나가고 양호실에는 강주원과 이다은만 남았다. 이다은은 그 모습을 쓸쓸하게 바라보며 자신이 챙겨왔던 엘릭서를 꺼내 들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후 아카데미에는 방학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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