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015 기말평가
* * *
***
과거로 돌아왔다.
그러니 아무런 부상도 남지 않은 깨끗한 몸이다. 하지만 왠지 모를 고통이 계속 남아있었다.
끔찍한 기억이었다.
이전에 강민지 안에 넣었다가 터진 건 애교로 볼 수 있는 수준의 고통.
얼어붙을 때의 그 감각,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
"아..."
정신이 나가버릴 거 같다. 이걸 보고 환상통이라 하던가, 극도의 통증을 느꼈던 부위나 절단된 부위에서 주로 발생하는 고통.
고통 내성 덕분에 어느 정도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이 정도 까지 후유증이 남은 상처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정상이라고 생각하니까 어느 정도 고통은 줄어들었다.
"좀만.. 쉬자…. 시발"
구석에 있는 약상자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플 때 먹으려고 산 진통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물과 함께 6개를 한 번에 삼켰다.
"S급 히로인이라 그런가.."
히로인, 강민지나 윤서아 같이 운명 등급이 높고 예쁜 여자들을 히로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웠다. 일대일 대련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때의 대련을 다시 복기해본다.
초반에 날아오는 얼음 창의 타이밍과 방향은 이제 정확하게 기억한다.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마력은 사용하지 않는다. 공격하는 타이밍과 방향을 기억하며 회피했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아'
이전 회차에서 처음부터 돌진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윤서아와 나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있다. 윤서아가 경계하는 순간 내게 기회는 없다.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게 만들면..'
윤서아가 마지막으로 날린 공격이 다시 떠오른다.
"괜찮아.. 나는 괜찮다..."
좀 더 자신을 다스린다. 나는 지금 멀쩡하다. 아무렇지 않다.
"후우..."
[ 세이브 로드 : LV2
세이브 포인트를 지정하고 로드할 경우 해당 시점으로 돌아갑니다.
사망할 경우 가장 마지막에 저장한 지점을 로드합니다.
현재 지정 가능한 세이브 포인트 : 0/2개
포인트 갱신은 지정 후 일주일 후 가능합니다. 로드시 쿨타임도 되돌아갑니다.
갱신 가능까지 남은 시간 :167 : 50 : 30
]
이미 운명 포인트를 사용해서 세이브 로드 스킬을 2 LV로 올렸다.
며칠째 반복되는 삶 속에서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계속 도전하면서 윤서아를 한걸음 뒤로 물러나게 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서 경계하게 만드는 건 좋지 않다.
그렇게 하는 순간 윤서아가 더는 방심을 하지 않으면서 그 어떤 틈도 생기지 않았다.
"정석으로는 절대로 못 이긴다."
지금의 신체 능력으로는 답도 없었다.
첫 대련에서 스텟을 좀 올린다고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모든 포인트를 뽑기에 쏟아부었다.
스킬이 나오면 뽑기를 멈출 생각으로 돌렸는데 계속 잡동사니만 나오다가 마지막에 쓸만한 스킬을 얻었다.
그 덕분에 모든 포인트를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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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시우
근력 : 20
체력 : 20
민첩 : 20
정력 : 20
마력 : 22
내구성 : 20
[ 스킬창 ]
남은 포인트 : 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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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에서 해결해야 해."
이제는 변수를 만들어 낼 방법은 없다. 업적이라도 클리어 할 수 있지 않을까 온갖 기행을 벌였지만 얻은 건 없다.
"후우.."
내일부터 시험이 시작된다.
내가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더라?
'마키나 내가 지금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지?'
[ 2번 세이브 파일의 경우 현재 23번 로드하셨습니다. ]
'많이도 했네, 좀 도와줄 수는 없어?'
[ 죄송합니다. 그건 권한 밖의 일입니다. ]
'뭐 기대도 안 했어.'
그래도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은 잘 대답해주니 도움이 되긴 한다.
필기시험 때도 모르는 문제를 물어서 풀기도 했다.
뭐 모든 문제를 알려준 건 아니라서 결국 외우는 수밖에는 없었지만, 이제는 의미 없지.
첫날은 필기 평가.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니 결국 모든 문제의 정답을 외워버렸다.
"공부할 필요도 없었지"
필기시험은 걱정 없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으니 그냥 외운 대로 적기만 하면 끝이다.
문제가 있다면 실기, 특히 실기의 마지막에 있는 일대일 대련이 문제였다.
"윤서아를 어떻게 이기지?"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결국은 승리해야 의미가 있다.
손목에 있는 계약만 아니었다면 윤서아를 물러나게 만든 것만으로도 만족할지도 모른다.
'강민아 교수방으로 가기 전으로 돌아갈까?'
아니 아직은 아니다. 되돌릴 방법이 있으니 지금은 최선을 다할 때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답답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좀 걸을까?"
이럴 때는 기분전환이 필요하다. 계속 이런 기분으로 있다가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일단 밖으로 나갔다.
"상쾌하네"
늦은 새벽의 차갑고 신선한 공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대충 적당한 옷을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강가 쪽에 있는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운동을 위해서 달리는 사람도 있고, 아무 생각 없이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남은 운명 포인트를 뽑기에 쏟아부어 얻은 고유 스킬.
[ 고유능력 : 항마(??) ]
무려 윤서아가 만든 벽을 종잇장처럼 찢어 버릴 수 있는 능력이다.
"마력만 높으면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을 건데."
고유능력을 얻은 건 좋았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2차 각성이라고 할 수 있다.
'효과는 확실하긴 한데.'
항마를 활성화하면 마력 소모가 너무 크다.
지금의 마력으로는 단 한 번의 공격이 한계인 수준이다.
이걸로는 절대로 윤서아를 이길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더 강해지려면 뭘 해야 할까?
지금 당장 강해질 방법은, 아이템의 힘을 빌리는 거다.
지금 들고 있는 별 볼 일 없는 검과 연막탄이 아니라 다른 장비가 있다면 더 강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돈이 없어.."
지금 당장 강해질 방법은 돈의 힘을 빌리는 것 말고는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허덕이는 내가 윤서아를 이길만한 장비를 살 수 있을까?
절대로 불가능하다.
"결국은 또 돈이 문제인가."
아카데미에 들어오기만 하면 모든 게 잘 풀릴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언제나 냉정하다.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복잡한 머리를 부여잡고 가던 중 의자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만났다.
얼굴이 완전히 흙빛인 남자는 안주도 없이 깡 소주를 연달아 마시고 있었다.
그 남자의 옆에 쌓여있는 초록색 병을 보고 있으면 저러다가 죽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내.. 인생은 끝났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남자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차트가 아래쪽으로 뚝 떨어져 있었다.
주식을 했다가 돈을 모두 날려버린 건가?
"잠깐만... 이거라면"
실기 시험은 2일이 지나고 나서 시작된다. 일대일 대련이 시작되기 전에 오를 게 확실한 주식을 산다면?
"돈을 복사 할 수 있지..?"
그러다 보니, 옛날에 만들었던 비트코인 계좌가 생각났다.
"비트코인!"
비트코인을 통해서 돈을 복사한다. 그리고 그걸로 대련에 사용할 장비를 산다면?
거기에 인벤토리에 넣었다가 꺼낸다면, 윤서아에게 급습을 가할 수 있다.
"좋아 풀매수 간다."
***
그때부터 나는 pc방에 와서 모니터를 보며 비트코인 시세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오늘 필기시험이 있는 날이지만, 학교에 가지 않았다.
"회귀할 거니까 상관없어"
완벽하게 계획을 짜고 다음 회귀 때 시험을 칠 생각이었다.
두 자리를 빌려 컴퓨터의 창에 비트코인 거래소를 켰다. 그리고는 5분 간격으로 코인들의 시세를 확인하며 갑자기 빠르게 상승하는 구간들을 기록했다.
"시험 시간이 이쯤이니까.. 이 코인을 20분 전에 샀다가 시험이 끝나면 판다."
지금 당장 투자할 수 있는 돈은 145만 원, 쓸만한 장비를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러니 적어도 억대는 만들어야 쓸만한 장비를 살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145만 원으로 1,000% 수익을 내도 부족하다.
'최소 10,000% 수익을 내야 해.'
100배 이상 불리면 1억 4500만 원 까지 늘릴 수 있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주식은 패스"
주식의 경우 기록이 남아서 위험할 수도 있고, 다른 부분에서도 문제가 생길 염려가 컸다.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면 추적이 힘들겠지... 그리고 언더 시티에서는 코인으로 거래하니까 굳이 출금하지 않아도 되고."
비트코인으로 돈 복사를 넘어서 돈을 창조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에 2배 이상 오르는 코인을 알고 있어도 의미 없어... 며칠 가지고 100배를 불리는 거니까.."
장타를 칠 시간이 없다. 단타, 그러니까 스캘핑으로 단 한 순간도 틀리지 않고 성공해야 한다.
"분 단위로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단타를 친다."
스캘핑, 초단타 거래로 하루를 넘기지 않고 매수, 매도를 통해 수익을 내는 주식 투자법 짧으면 1~3분 안에 매수, 매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회귀가 시작되는 새벽부터 지금까지의 차트를 보면서 정보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요동치는 차트 중에서 오르는 구간이 길게 유지되는 차트들을 뽑아내고 모든 코인별로 수익률을 비교한다.
"이건 0.3% 오르락내리락 하고... 이건 3%?, 좋아 토지 코인을 매수했다가 3% 올려서 바로 팔고..."
차트를 분석하며 매수와 매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아직 비트코인 거래가 익숙지 않아서 초 단위로 거래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5분 정도 유지되는 걸로 하자.."
그렇게 계획을 짜고 있던 중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민지? 아 시험날에 안 와서 전화 한 건가?"
나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질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너, 오늘 시험날인 거 알고 있어?"
"아... 오늘 시험이었어?"
"이번에 시험 안 보면 너 끝인 거 몰라? 너 자퇴라도 할 생각이야?"
화난 목소리로 말하긴 했지만, 걱정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럴 일은 없어."
"아하 진짜 등신아! 지금이라도 빨리 와, 아직 안 늦었으니까.."
"그래"
나는 돈을 복사한다.
무력이 안 되면 과금으로 승부를 본다.
“기다려라. 윤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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