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3/60)

53화.

물론 음식보다 다른 것이 더 먹고 싶긴 했지만.

지금의 이 행복을 깨고 싶지 않아 그녀의 아름다운 손짓에 따라 입을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 하기 싫은 이야기지만, 지금 꺼내야 함을 느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레일라,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 * *

프레드릭이 묻고 싶다는 말에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시선을 마주쳤다.

“네, 무슨 말이든 다 괜찮아요.”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칼라엘 말입니다.”

멈칫.

찻잔을 들던 손이 그대로 멈췄다.

칼라엘이란 단어가 저절로 멈추게 만든 손 위로 낮에 보았던 둘째 오라버니의 모습이 비쳤다.

굳은살이 박인 따뜻한 손이 찻잔을 잡은 내 손 위를 감쌌다.

“이 제국까지 따라와 있으니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되어서 말입니다.”

그의 살피는 시선이 내 얼굴에 길게 머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레일라! 그대는 어떻게 하고 싶습니까?”

묻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차마 내 입으로 물을 수 없었다.

그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지만, 그는 다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전 상관없어요.”

그가 내 손을 끌고 그의 얼굴로 가져가 날카로운 턱선이 도드라진 뺨에 묻었다.

“그대가 내게 모든 걸 주기로 했듯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대를 감추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그의 뜨거운 입김이 손을 간지럽혔다.

“그럼,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럼 그렇게 해요. 그대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그 뒤로 그와 어떻게 차를 다 마셨는지도… 그의 손을 잡고 욕실로 들어가 그와 함께 욕조에 몸을 어떻게 담갔는지도 몰랐다. 한곳에 빠진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 위에서 그의 품에 안겼을 때였다.

“레일라, 그대의 맘에 무거운 것이 있거든 그것조차도 나에게 줘요.”

“…네.”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자 커다란 손이 끌어당겨 자신의 몸에 딱 붙였다.

그의 몸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숨을 골랐다.

“…이건 그대 탓입니다.”

조용히 귓가에 들리는 그의 음성에 얼굴을 가슴 쪽에 푹 묻었다.

그의 침의를 벗기고 가슴을 애무했다.

더 밑으로 내려가 그의 페니스를 정확히 마주했다.

“으… 레일라, 제발.”

그의 얼굴이 쾌락인지 고통인지 모를 것들로 얼룩져 일그러져 가는 모습을 눈에 담다가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처음으로 입술을 벌리고 페니스의 부드러운 부분을 혀로 할짝거렸다.

그의 몸이 떨리더니 허리가 튕겨 올랐다.

“하지 마십시오. 레일라.”

“가만히 있어요.”

처음이었다.

매번 밀고 들어올 때마다 버겁긴 했지만. 직접 마주한 크기는 손에 쥐어지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더 큰 크기에 한번 놀라고 입 안에 넣어도 다 들어가지 않는 것에 놀랐다. 그의 페니스로 입 안에 넣고 쪽쪽 거리며 빨다가 순간적으로 몸이 뒤집혔다.

“으악.”

그의 열기 오른 진해진 황금빛 눈이 열감으로 붉어져 있었다.

그보다 더 붉어진 입술이 내려왔다. 입술을 물어내리고 혀와 함께 질척하게 타액을 섞었다.

입안의 타액을 샅샅이 빨아들인 그가 목을 타고 입술을 내려 가슴의 정점을 타액으로 질척하게 엮었다.

배 위로 잘잘한 키스 끝에 내려간 입술이 마침내 갈라진 틈 사리에 멈췄다.

“프… 프레드릭,”

당황한 손길이 허공을 휘저어 그의 머리 쪽으로 내려가다 그의 손에 잡혔다.

그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웃었다.

불길한 웃음이 다 가시기도 전에 그의 뜨거운 입술과 함께 두툼하고 오돌토돌한 혀가 갈라진 틈 사이로 들어와 내벽을 찔렀다.

저릿한 감각에 저절로 허벅지 사이에 힘이 들어갔다.

“으으, 아아아.”

그의 혀가 다시 안에서 밖으로 나와 음핵을 빨아대자 저절로 엄지발가락에 곱아들었다.

“레일라, 이거 보십시오. 그대의 것입니다.”

맛이 없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그대의 것.

다시 움직인 그의 혀가 하얀 액을 삼켜대는 모습을 보다가 열기로 범벅된 눈을 감아내렸다.

부드러운 손길이 허벅지를 쓸어내려 양쪽으로 벌리는 순간 귀두 끝이 맞춰졌다.

“레일라, 사랑합니다.”

그의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검붉은 페니스가 안으로 파고들어 자궁에까지 들이찼다.

매번 버겁기만 한 그의 크기에 허리가 위로 튕겨 오르자 그가 엉덩이를 잡아 눌러 내렸다.

강한 힘으로 버겁게 파고들었다.

뜨거운 숨을 얼마나 많이 뱉어냈는지 기억하기도 전에 그의 모든 것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가득 채우기를 몇 번,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잠이든 귓가로 그의 숨결이 섞인 ‘사랑합니다.’가 밤의 자장가로 계속 울려 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용히 사각거리면서 움직이는 작은 소리에 눈이 떠졌다.

“공녀님, 일어나셨습니까? 폐하께서는 먼저 집무실로 가셨습니다.”

시간을 알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시녀가 대신 말해주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새벽에야 겨우 멈춘 그의 허릿짓에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그동안의 그는 참은 거였음을.

다시는 그를 먼저 자극하여 도발하지 말자고 결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녀님, 밖에 손님이 와 계십니다.”

욕조 앞에 세워진 차단막 앞에 있는 시녀가 말해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누가?”

아는 사람이 없는 이곳에?

“메리아 님이십니다.”

아… 그제야 이해된 머리가 정리되자 드레스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유일하게 이 방에 드나들 수 있는 존재가 된 메리아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메리아, 왔어요?”

“네, 레일라! 오늘 꼭 레일라와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 왔어요.”

“저하고요?”

“얼른 준비하고 나와요. 이곳에 아는 사람이 없어 심심했죠? 이제부터는 저와 함께 다녀요.”

메리아의 친절한 마음이 느껴져 발걸음까지 가벼워졌다.

“나가는 거 그냥 나가도 되나요? 허락 없이요?”

메리아의 한쪽 눈이 찡긋 내려왔다.

“여기서 레일라가 가장 결정권자인데… 당연하죠!”

결정권자라는 메리아의 말에 웃음이 나왔지만, 낯선 곳에서 그녀가 내게 내밀어준 따뜻한 손을 거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요.”

잠긴 목소리가 허락을 뱉었다.

준비를 마치고 메리아를 따라 커다란 황제의 침실을 벗어났다. 복도를 걷는 걸음 뒤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았다.

자연스럽게 옆으로 와서 내 보폭에 맞춰서 걸어주는 그녀의 발걸음에 잠시 눈길을 두다가 향기가 흘러나오는 옆으로 시선을 틀었다.

“아름답네요.”

“네, 아마 이 황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일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정원은 본 적이 없거든요.”

정원의 꽃들이 햇볕을 받아 더욱더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옆의 길을 따라 한참을 더 걸었다.

“말은 타기 힘드니 마차를 준비했어요.”

그제야 들어오는 메리아의 복장에 눈길이 갔다.

훤칠한 키에 긴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 내 옆을 지키는 기사의 모습처럼 보였다.

“이곳은 옆 제국보다 좀 자유로운 편이죠. 그래서 여성들도 실력만 있으면 기사가 될 수 있어요. 어때요? 한번 배워보실래요?”

“제가요?”

장난스럽고 가볍게 말하는 메리아를 보고 난 결심했다.

‘나도 배울 거야.’

있는지도 몰랐던 배우고 싶은 욕구가 튀어 나왔다.

살고자 하는 마음에서 배우고자 하는 욕구로 옮겨간 것처럼.

메리아가 준비한 마차를 타고 황궁의 성문을 지났다. 자유로운 그녀의 출입만큼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다.

덜커덩거리며 빠르게 달리는 마차가 기분 좋은 소음을 만들어 냈다.

거침없이 달려가는 길이 마치 내가 헤치고 가는 길처럼 보였다.

두려움을 걷어내고 걸어가야 할 길.

한참을 달리던 마차가 드디어 멈춰 섰다.

“이곳이에요. 오늘 꽃 축제가 있어요. 그래서 레일라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그녀와 함께 마차에서 내리자 마차 안까지 들어오지 못했던 좋은 향기가 났다.

“하아, 정말 좋네요.”

나 자신이 이렇게 꽃을 좋아하는지도 오늘 처음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씩 생기고 있었다.

프레드릭과 꽃.

두 가지를 심장에 새기고 메리아를 따라 꽃들 사이를 걸었다.

아름다운 꽃들이 작은 잎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해 주고 있었다. 환하게 웃다가 눈을 가리는 천의 느낌에 의아하게 시선을 위로 들어 올렸다.

“안 되겠어요. 이걸 걸치고 있어요. 사람들이 레일라만 봐서 큰일이에요.”

한숨처럼 뱉어내는 그녀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설마요? 그럴 리가요.”

“정말이에요. 설마… 레일라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흔드는 내 위로 메리아의 손길이 뻗어와 모자를 더 깊숙이 내렸다. 그녀는 결국 하얀 턱까지 가려 버리고는 로브 속으로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전부 집어넣어 숨겼다.

제대로 된 구경조차 힘들어졌다. 할 수 없이 메리아의 손을 잡고 가며 시선 아래에 보이는 꽃만 구경했다.

“메리아 조금만 천천히 가요. 너무 빨라요.”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메리아가 이끄는 손을 뒤로 당겼다. 하지만 그녀의 발이 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보다 더 빨라져 따라가기 힘들었다.

“메리아! 조금 천천히…….”

“레일라, 절대 모자 벗지 말고 내 뒤만 따라와요. 좀 빨리 걸어야 할 거 같아요.”

“무슨 일인데요?”

내 물음에 답하지 않은 메리아가 뛰듯이 걷는 걸음에 맞춰 끌려갔다.

“빨리, 레일라! 조금만 더 빨리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덜컥 겁이 났다.

더욱더 걸음을 빨리하고 싶었지만, 드레스 자락이 자꾸 발에 엉켜 빨리 갈 수가 없었다.

“레일라, 이쪽이에요.”

떡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겨우 내뱉고 메리아와 함께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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