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60)

44화.

두 명은 달려들고, 두 명은 도망가는 척 마차로 쇄도했다.

빠른 속도로 마차로 향하는 두 놈을 마저 가볍게 베어냈다.

이 정도쯤이야.

그동안 마수 속에서 살았던 몸이기에 이런 몇 놈이야 금방 처리할 수 있었다.

나머지 놈들을 마저 베어내고 주변을 살피자 칼라엘 또한 두 명을 처리하고 그들의 시체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뭐, 나온 거 있나?”

“별다른 건 없습니다. 약병 몇 개가 다입니다.”

“약병?”

칼라엘이 손에 들고 있는 약병을 높이 들고 살폈다.

“이건…….”

“몸을 마비시키는 약과 숨을 멈추게 하는 약입니다.”

레일라를 마비시켜 데리고 가려고 했다는 거였다.

그 생각을 하자,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열기가 서서히 분노로 바뀌었다.

며칠 전, 스타멘 공작저에서처럼 레일라가 사라진다면.

“폐하! 폐하!”

다급하게 부르는 레이오드의 소리에 분노에 잠식된 눈을 들어 올렸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서둘러 기운을 갈무리하고 마차로 걸음을 옮겼다.

레일라가 보고 싶었다.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레일라를.

“레이오드, 시체를 정리하고 출발해라. 바로 제국으로 돌아간다.”

예를 갖추고 사라지는 그를 보던 눈길을 거두고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녀의 마주 보는 시선과 내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걱정으로 점칠 된 눈동자가 머리에서부터 아래까지 살폈다. 그 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레일라.”

목이 잠겼다.

눈앞에 있는 그녀를 확인했다.

다시 한번 더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진다면… 그때는 정말 견딜 수 없을지도.

“…기다렸습니까! 나를?”

그녀의 눈꼬리가 긍정의 뜻으로 아래로 휘어졌다.

“네, 기다렸어요. 다치진 않았나요?”

긍정의 말도 함께.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순식간에 마차에 올라 의자에 누워있는 그녀를 안아 무릎에 앉히고 꽉 끌어안았다.

이런 감정이… 이렇게 쉽게.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과 코를 누르고 크게 숨을 쉬었다.

그제야 쉬어지는 숨이.

가느다란 목을 타고 밀려 들어오는 체향이 심장 깊숙이 파고들었다.

“레일라, 영원히 내 곁에 있어 주십시오. 이제 그 어디도 가지 못합니다.”

코와 입이 묻힌 사이로 뭉개진 말이 흘러나왔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르고, 그녀의 머리를 가슴에 편하게 기대게 하자 마차 밖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폐하, 정리 다 했습니다. 이제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알았다. 출발해.”

덜거덕거리며 출발하는 마차의 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이마에 길게 입술을 내렸다. 속눈썹이 내려앉는 얼굴에 오후의 햇살이 같이 내려앉았다.

방금 사람을 베어낸 오후답지 않은 평화로움이었다.

“빠르게 갈 겁니다. 더 자도록 해요.”

그녀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아준 뒤 눈 위에 손을 내렸다.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속눈썹이 떨리는 느낌이 기꺼워 이마에 다시 입술을 내렸다.

손바닥에 닿는 부드러운 느낌에 시선을 내렸다.

“네? 레일라.”

고개를 좀 더 깊이 숙였다.

상체를 접어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길 바라며 입술을 더 가까이 붙였다. 그녀의 분홍빛 혀가 작은 입을 빠져나와 입술을 핥았다.

“위로입니까? 왜?”

내 표정이 좋지 않았나 싶어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 시선을 내가 볼 수 없기도 하고 그녀가 하는 행동이 좋아 그대로 있었다.

마차가 멈출 때까지.

“폐하, 이제 국경을 넘어갈 겁니다.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래, 궁까지 서둘러라.”

“바로 궁으로 가기에는 날이 어두워질 겁니다. 중간에 숙박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밤이 지나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곳 국경만 지나면 위험은 없을 것이니 무리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스타멘 공작이 국경을 넘어서까지 대규모의 추격단을 보내기는 힘들 것이기에.

“레일라, 이제 국경을 넘어 나페아 제국으로 갈 겁니다. 이곳만 지나면 괜찮으실 겁니다.”

“네, 프레드릭.”

그녀가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심장이 뛰어댔다.

매번 갱신하듯 새롭게 뛰어대는 심장이 신기할 뿐이었다.

‘제국에 가면.’

그녀의 몸을 좀 더 몸쪽으로 밀착하고 있으니 마차가 다시 출발했다.

“드디어 국경을 넘었나 봅니다. 혹시 그대의 마음이…….”

이곳을 떠나는 그녀가 걱정되었다.

혹시라도 마음이 아프면 어쩌나 싶어 시선을 내리자 그녀의 보랏빛 눈이 조용히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 * *

프레드릭 황제가 묻는 말에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가지고 있던 것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 것을 만들지 않아서이기도 하리라.

다만, 한가지.

에렌.

유일하게 이 세계에 와서 마음을 주고 같이 했던 내 하나밖에 없는 하녀.

그녀가 과연 무사할까 싶은 걱정이 들었다.

“여긴… 이곳은 제게 아무것도 없어요. 아니,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던 거 같아요.”

가져갈 수 없는 것을 만들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10년의 세월이었으니까.

“다만, 제 하녀인 에렌이 걱정돼요. 이곳에 따라올 때 그녀도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유일하게 이 세계에서 만든 그녀를 두고 와버렸다.

“레일라, 그대가 원하면 사람을 보내 그녀를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위험할 수 있어요. 쉽게 보내줄 사람이 아니니까요.”

큰 오라버니인 케이드란이 쉽게 에렌을 보내주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을 거고.

“위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떻게든 나중에라도 필요할 테니까요. 쉽게 목숨을 취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냉정한 사람이니만큼 순간의 노여움보다는 훗날을 위해 뭔가를 만들 테니까.

그랬으면 좋겠다.

“프레드릭,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어요. 유일하게 내 사람이니까요.”

아무것도 만들지 않은 삶 속에서 유일하게 나의 사람 하나인 에렌을 꼭 데려오고 싶었다.

그녀만이 오로지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었으니까.

어쩌면 이것조차도 내 욕심일 수 있지만… 그러고 싶었다.

* * *

레일라가 말하는 유일한 사람이 부러워졌다.

그녀는… 그녀는 아마도 나와 함께 나페아 제국으로 가서도 그녀의 것을 만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심장이 불규칙하게 떨어댔다.

‘내가 그녀를 잡을 수 있을까?’

그녀는 지금, 내 앞에서만 솔직해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붙잡을 수 있을까.’

그녀를 들어 올려 머리를 어깨에 올려주었다.

내 불안하게 뛰는 심장에 그녀의 심장이 맞닿자 빠르게 요동치던 심장이 제 속도를 찾았다.

“레일라, 나를 봐줘요. 나를.”

대답 없이 잠긴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한참 동안 잠든 그녀를 눈에 담았다.

그녀의 유일한 사람이 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잠긴 눈 위에 입술을 내렸다. 진득한 집착이 묻어나는 입술이 오랜 시간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똑똑—

“폐하,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해야 할 거 같습니다. 여기서 더 가기에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눈을 들어 창문을 보자 밖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여기서 더 가면 마수가 나올 수 있는 지역이니 적당한 곳이기도 했다.

“알았다. 준비하고 식사는 이곳에서 하겠다.”

말을 마친 레이오드의 발걸음이 멀어지는 소리에 온몸을 내 몸에 기대고 있는 레일라를 내려 보았다.

그녀의 축 늘어진 몸이 내 몸에서 떼어지지 않을 정도로 밀착해 있었다. 매일 내게 그렇게 의지하고 기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증이구나. 진짜.”

“으음.”

작은 소리를 내뱉는 오물거리는 입술을 주시했다. 이 작은 입술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기에 볼 때마다 물고 빨고 싶었다.

큰 손을 들어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누군가를 이렇게 달래 준 적은 없지만, 하는 내가 더 기분이 좋았다.

“레일라, 그대가 지금 이렇게 내게 매일 기대 주면 됩니다. 나는 그거 하나만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대가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잠이든 그녀가 대답할 리 없지만, 몇 번을 그녀의 눈에 입술을 내리며 기대 달라 청했다. 그 청에 그녀는 끝까지 답이 없었다.

그게 더 애를 닳게 했다.

“폐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들여라.”

마차 문이 열리고 레이오드의 몸이 보이더니 조심스럽게 식사를 의자에 놓아두고 물러갔다.

어릴 적부터 눈치 하나는 좋은 놈이긴 했으니.

깨우기 위해 입술을 내려 레일라의 귀에 대고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레일라, 이만 일어나서 식사해요.”

조금씩 떠지는 눈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 그녀의 아름다운 보석 같은 눈이 드러났다.

“식사요?”

“네, 간단하게 식사하고 오늘은 이곳에서 보내고 가야 할 듯합니다. 자, 아… 하시면 됩니다.”

몸을 움찔거리며 입을 조금 벌리는 그녀의 입에 스튜를 떠서 먹여주었다.

좋은 음식을 대접할 수 없지만, 그녀가 많이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먹여줬다.

“프레드릭, 많이 드세요. 저로 인해…….”

“레일라, 나도 많이 먹고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레일라 본인만 생각하면 됩니다.”

진심을 계속 전하다 보면 그녀도 언젠가는 내게 기대고 다 받아주겠지 싶었다.

식사를 치우고 간단하게 씻겨주었다.

오늘 이곳에서 자는 그녀를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마차 의자에 먼저 눕고 그녀를 들어 올려 내 몸 위에 올렸다.

“레일라, 그대의 몸이 아직 불편하니 이렇게 자야겠습니다. 불편하지 않게 온몸에 힘을 빼고 내게 그대로 기대면 됩니다.”

완전히 믿듯이 늘어져 밀착한 몸.

그녀가 지금처럼 영원히 나를 믿고 의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다독여 더 편하게 잡아주었다. 큰 손을 들어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녀의 따스한 몸이 느껴지지 않은 공간이 없을 정도였다. 완전히 밀착한 몸에서 나는 열기에 밖의 서늘한 기운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레일라, 잡니까?”

그녀가 내 옆에서 영원히 이렇게 기대 주기를.

“…….”

대답 없는 그녀의 몸을 조금 더 편하게 해주자고 움직였는데… 자극받은 몸이 반응해 버렸다.

아니, 이미 그 전부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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