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60)

40화.

바람이… 작은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그녀와 나 사이의 실을 끊어냈다.

순식간에 한 사람에게 이렇게 빠져 버릴 수 있다니.

입술을 내려 그녀의 입술 주변을 정리해 주고, 마지막으로 눈 위에 진득하게 눌렀다.

“이제 돌아가는 행렬을 만나서 같이 가야 합니다. 최대한 그대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하겠으니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있거든 바로 말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까?”

눈을 살짝 내리뜨는 그녀를 확인하고 말의 속도를 높였다.

거짓말.

그녀는 불편해도 싫어도 내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그녀를 본 며칠 동안 완벽하게 그녀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일을 말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무조건 참기만 하는 그녀를 모를 리가 없으니까.

‘언제쯤 그대는 내게 모든 것을 다 말해줄 건가?’

다 듣고 싶은데.

뒤에 따라오는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지려 할수록 말의 속도를 더 높였다.

쯧—

낮게 혀를 찼다.

그녀가 부르지만 없었다면… 그랬다면 아마도 저 목을 날려 버렸을 건데.

한순간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었다.

“레일라, 어쩌면 그 순간을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말이 달리는 소리를 빌어 마음의 소리를 뱉어내 흐트러트렸다. 제대로 듣지 못한 그녀가 다시 한번 말을 듣기 위해 귀를 쫑긋하는 모습에 웃었다.

흐트러지는 웃음을 흘리며 가슴 쪽으로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몸에 깊숙이 닿아 오는 그녀의 부드러운 몸에 익숙한 몸이 빠르게 반응했다.

‘젠장.’

“레일라, 레일라.”

바람에 흩어지는 숨결이 좋아 몇 번을 더 불렀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놀란 듯 커졌다 다시 내려앉는 눈도 마음에 들고.

웃기는 소리지만, 그녀와 함께 이곳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단단히 미쳤다.

“워, 워.”

말을 멈췄다.

뒤에 따라오던 칼라엘도 말을 멈췄다.

“칼라엘, 이쪽 지역을 좀 아나?”

“네, 폐하.”

다행이다 싶어 주머니에 넣어두고 있던 통신석을 꺼내 연락을 취했다.

[폐하! 어딥니까? 폐하.]

받자마자 쏟아지는 말에 눈가를 찡그렸다.

“레이오드, 목소리 좀 낮춰. 설마 내 실력을 믿지 못하는 건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안심하라고 좀 놀려주고 싶었는데.

“출발했나? 돌아가는 행렬에 합류할까 하는데, 어디쯤 오고 있는지 말해주면 그쪽으로 가겠다.”

[이제 수도를 벗어나 동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수도에서 벗어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으니 그리 멀리 떨어진 거리는 아닐 겁니다.]

“그래, 알았다. 그쪽으로 가도록 하지.”

[오실 수 있겠습니까?]

“그냥 믿고 기다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바로 통신석을 끊어 버렸다.

레이오드의 소리치는 목소리가 종료와 함께 아스러졌다.

“칼라엘, 들었겠지. 수도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거리다. 그쪽으로 가기 위해서 그대가 앞장서서 가는 것이 좋겠군.”

“네, 폐하 그렇게 하겠습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앞장서는 칼라엘의 뒤를 따라 레일라를 안은 채 달렸다.

끝까지 레일라를 달라고 했으면 베어 버리는 건데.

“레일라, 이제 제국으로 돌아가는 일행과 만나러 가겠습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금방 갈 겁니다. 그때까지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눈으로 말하는 그녀가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여전히 귀여운 그녀의 감긴 눈에 입술을 내렸다.

“그대 때문에 병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그대가 평생 책임져 줘야겠습니다. 절대 내 곁에서 도망가지 못합니다.

그래, 이제는 절대 도망가지 못한다.

그녀를 찾아 평생이 걸리더라도 찾아다닐 거니까.

레일라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는데.

진득하게 집착이 묻어나는 입술을 다시 한번 감긴 레일라의 눈에 낙인을 찍듯 묻었다.

* * *

자꾸 입술을 눌러 내리는 프레드릭 황제로 인해 심장이 간질거려 눈을 감았다.

그의 입술이 닿는 눈을 손으로 긁고 싶을 정도였다.

그의 모든 행동에서 느껴지는 애정에 기대감이 싹트려 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의 연인은?’

“휴.”

뭐가 뭔지 모르겠다.

“혹시 어디 불편한 곳이 있습니까? 그대를 최대한 편하게 안고 가고 싶지만… 이런 상황이라 미안합니다. 좀 더 편하게 해보겠습니다.”

내 한마디에 바로 반응하는 그가.

한 손을 움직인 그가 자신의 가슴 쪽으로 밀착시켰다. 둘 사이가 틈 없이 맞물릴 정도의 힘이었다.

단단한 감촉이 새겨질 듯 느껴져서 불편했다.

‘이것이 편한 자세인가요?’

묻고 싶은 말을 가슴에 묻었다.

그의 가슴의 근육과 복근에 난 길까지 전부 하나하나 세세하게 느껴질 정도의 밀착이었다.

뭔가…마치 그의 몸 자체를 내 몸에 새기려는 움직임처럼 보였다.

거기에… 엉덩이를 밑으로 들어오는 그의 것도.

그의 눈길이 내 얼굴 위로 떨어져 내리더니 입꼬리가 길게 찢어졌다.

“…음. 그대와 함께 있으면 당연한 반응이니,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왜? 수줍은 듯 웃는데.

그의 이런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 싶기도 하고.

“으윽.”

말의 움직임이 거칠어질수록 엉덩이를 찔러오는 감각이 커지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 그의 중심이 곧 들어와 버릴 거 같아 걱정이었다.

“…레일라. 음…나 자신이 짐승이 되어 버린 거 같군요. 정말 미안하지만,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곧 싸버릴 정도로요.”

“…….”

진심이 담긴 그의 말에 길을 잃은 눈동자가 태풍을 만난 것처럼 흔들렸다.

정말로 그의 고뇌가 절절히 느껴졌기에.

맙소사.

조금 더 달리자 엉덩이 아래가 축축해졌다.

할 말을 잃은 입을 몇 번 열었다 닫았다.

“레일라, 절대 어디로 가지 마십시오. 제 옆에만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바람에 흔들리는 그의 금발이 앞을 보는 눈빛과 엮여 출렁거렸다. 떨어질 리 없는 것이 그의 눈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느낌에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했다.

머리를 더 깊이 그의 가슴에 묻는 것.

자꾸 그에게 기대게 되는 마음도 함께.

그의 말이, 그이 행동이, 그의 몸짓이.

내게 반응하는 그의 모든 것이 그를 믿고 의지하게 만들고 있었다.

‘곤란한데.’

이 세계에서 단, 하나의 내 것이 생기려 하고 있었다.

“폐하, 조금만 더 가면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할 겁니다.”

“그래, 알았다.”

조금 앞서 달리던 오라버니의 시선이 프레드릭 황제에 밀착해 있는 내게 머물다 바로 떨어져 나갔다.

‘칼라엘 오라버니와 나는 어떤 사이일까?’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둘째 오라버니인 칼라엘은 그저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에 대한 생각을 날리려는 듯 프레드릭의 목소리가 파고 들었다.

“레일라,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이렇게 말해주는 프레드릭 황제는.

“워, 워.”

급하게 말을 멈춘 그가 매끄럽지 못한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고 그의 입술이 내 눈꼬리에 내려앉았다.

말을 멈출 만큼 급한 일은 없었는데.

“그대가… 내 앞에서만 울었으면 합니다. 지금처럼. 나만 볼 수 있게.”

눈가에 머문 그의 입술이 눈꼬리 옆에 고정되었다.

떨어진 몇 방울의 눈물이 지나는 길을 그의 입술이 막아섰다.

“레일라, 레일라.”

애절한 음성으로 애타게 내 이름을 뱉던 그가 다시 입술을 움직였다.

“아아. 아아아아. 흑”

그가 손을 바꿔 등을 쓸어 내렸다.

커다란 손이… 세심하고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손길에.

눈가를 핥아주는 그의 부드러운 입술에.

지금까지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뭔가가 툭 하고 터졌다.

“괜찮습니다. 내게 다 토해내면 됩니다. 그대가 할 일은 그대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게 넘겨주면 됩니다. 그게 짐이든 사람이든 마음이든 그런 거 다 상관없으니.”

한참을 그의 품에 안겨 토해냈다.

“그래, 이렇게 쏟아내서 제게 다 주면 됩니다.”

“레일라.”

프레드릭 황제의 목소리가 아닌 둘째 오라버니가 부르는 소리에 눈물을 멈췄다.

“…이제 가요.”

“칼라엘, 먼저 가라. 바로 따라갈 테니.”

말을 움직이면서도 그의 붉은 눈은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자, 이제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그의 품에 온몸을 기댔다.

얼마나 달렸을까.

* * *

“저곳입니다. 폐하.”

칼라엘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이미 말을 달려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레이오드의 모습이 보였다.

“폐하! 여깁니다.”

“레일라,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레이오드가 달려오고 있군요. 잔소리가 시작될지도 모르니 귀를 막고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착한 레이오드의 입이 계속 열렸다.

물론 내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프레드릭 황제의 커다란 손이 나를 덮고 있는 재킷을 끌어당겨 귀부터 시작해 온 얼굴을 덮어 버렸기 때문에.

“제발… 그러니까… 제가… 미치는… 왜.”

중간중간 레이오드의 말속에 끊어진 단어로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레이… 일단… 가…….”

계속 오가는 말속에 궁금함이 밀려왔지만, 그가 듣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끊어진 말 외에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궁금함이 밀려와 눈동자만 굴리고 있자 재킷이 걷어지고 그가 보였다.

“레일라, 레이오드가 잘 오셨다고 합니다. 저와 함께 다시 이동해서 저들과 같이 합류해서 갈 것이니 편하게 있으시면 됩니다. 참, 그대는 말이 불편할 수 있으니 마차를 탈까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네, 폐하.”

괜찮다는 말에도 그는 다시 나를 살폈다.

멈춰있던 말이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본적 없던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응?”

그들을 볼 사이도 없이 그의 재킷이 내 얼굴을 온통 덮어 버렸다.

“그대의 모습을 저들이 자꾸 보려고 하니 불편하더라도 잠시만 참아요.”

조금 더 걷던 말이 멈추고, 그가 나를 안고서 말에서 내렸다.

“칼라엘, 계속 말을 타고 따라와라. 레일라와 짐은 마차를 타도록 하지. 알아들었겠지.”

뒤에 바로 따라붙던 말이 멈추고 오라버니의 말소리가 들렸다.

“…네, 폐하.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프레드릭 황제가 나를 안고 마차에 올랐다.

닫히려던 문이 다시 열렸다.

“레이오드, 너는 말을 타라.”

“…….”

그 어떤 답도 없이 마차 문이 닫혔다.

“레일라, 편하게 있어도 됩니다. 여기는 그대와 나뿐이니까요.”

말을 마친 그가 내 위에 덮여 있는 재킷을 벗겨내고 마차 안에 준비된 통에서 입 가득 물을 머금었다.

그의 입술이 내 입술 위로 숙여졌다.

꿀꺽꿀꺽.

어떻게 알았을까?

약의 기운인지 모르겠지만, 목이 말랐었다.

“더 줄 테니 천천히 드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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