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60)

39화.

검을 들고 쥐어짜듯이 검기를 둘렀다.

발을 박차고 그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검은 검기를 두른 검과 황금색 검기가 두른 검이 맞붙어 터져 나가자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휩싸여 스러졌다.

“생각보다 실력이 좋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야.”

그의 말처럼 최선을 다해도 부족할 것이라는 건 몇 번의 검을 맞붙는 동안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강하다.’

온몸에 있는 기를 개방해 또다시 달려들었다.

몇 번의 검을 마주치는 과정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프레드릭 황제를 어떻게든 베어 버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검을 부딪치고 또 부딪혔다.

쨍, 쨍강—

“헉. 헉. 헉.”

거친 숨이 목구멍을 타고 쏟아져 나왔다. 역시 무리였다.

“공격을 다 했으면, 이제 내 차례인가.”

방어만 하던 그가 순식간에 달라진 기로 달려들자 온 힘을 다해 피했다.

흠칫—

만약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대로 몸이 두 동강 났을 자리에서 반보 떨어진 자리.

숨이 막힐 정도로 온몸의 힘을 끌어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몸의 모든 기능이 정지했다.

* * *

칼라엘의 몸이 둔해진 것을 바로 느꼈지만, 조금 더 두고 봤다.

온 힘을 끌어모아 쇄도해 들어오는 검이 느려지는가 싶더니 둔탁하게 부딪쳤다.

‘역시, 스타멘 공작가가 강하긴 하군.’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었다면, 쉽게 이기지 못할 실력이었다. 만약, 레이오드를 보냈다면 그의 목숨 또한 보장하지 못할 정도의 실력이었다.

직접 오길 다행인가.

“이제 끝낼 때인가?”

몸의 힘을 개방해 검을 들었다.

단숨에 목을 베 벌릴 생각으로 순식간에 움직여 달려가 칼을 사선으로 높이 들어 올려 내려쳤따.

“폐… 폐하… 프레드릭. 제발…….”

칼라엘의 목에 실금이 가고 피가 송송 솟구쳐 올랐다. 조금만 더 들어갔다면 바로 목이 잘릴 자리에 멈춘 검이 날카롭게 빛났다.

멈춘 검을 거두고, 레일라에게 빠르게 움직였다.

“레일라…….”

눈이 다 뜨이지 않은 상태로 몸도 움직이지 못한 채, 입만 겨우 열고 있는 레일라가 이름을 불렀다.

‘프레드릭’이라는 발음이 다 이뤄지지 않는 말로 나를 불렀다.

“여기 있습니다. 레일라.”

처음 입을 연 레일라가 불러주는 이름에 순식간에 살기를 거뒀다.

온순해지는 몸의 반응이 이제는 익숙할 지경이었다.

‘그대가 없는 삶은 이제 생각할 수 없겠군.’

“폐…하. 오라버니를 제…발.”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 * *

프레드릭의 눈이 말했다.

‘그대가 하는 말은 다 들어주겠노라고.’

두 오라버니에게 벗어나고자 했지, 그들이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잘 움직이지 않는 눈꺼풀을 내려 다시 들어 올렸다.

다행이었다.

지금 눈을 뜨다니. 만약, 조금만 더 늦었다면.

“살려.”

몸도 손도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얼굴에 있는 일부분만 움직이며 최선을 다해 그에게 전달했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시야를 자꾸 차단했다.

“…그대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승낙의 말을 뱉어냈다.

웃음으로 감사를 전하고 시선을 돌렸다. 둘째 오라버니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입가에 맺힌 피와 목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이 그의 창백한 피부에 들러붙어 점점히 떨어져 내렸다.

시선은 그에게 둔 채 프레드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를 구하…….”

말을 다 뱉어내지 못한 입술이 마디가 굵은 큰 손에 의해 막혔다.

“울지 마십시오. 그대가 우는 모습을 보니.”

그가 말을 멈추고 울 듯이 눈을 일그러트렸다.

우는 줄도 몰랐다.

그저 그가 구하러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했을 뿐.

울음 따위 상관없이 그의 옷깃을 잡고 사정해야 했다.

“폐하, 저를 데려가 주… 주면… 제발.”

그의 황금빛 눈이 눈에 뜨일 정도로 심하게 일렁거렸다.

“그대는…. 레일라,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데려가기 위해 온 겁니다. 지금 같이 갈 겁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계십시오.”

조심스러운 손길이 내려와 나를 안아 들었다.

그가 바닥에 깔린 자신의 재킷으로 보물처럼 꼼꼼히 감쌌다.

다정함이 가득 묻어나는 손길로.

가볍게 나를 안아 든 프레드릭 황제가 걸음을 옮겨 나무에 메여 있는 말 앞에 섰다. 그가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려한 움직임으로 말의 고삐를 풀었다.

“폐하…….”

남자의 절절 끓어오르는 음성이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하기 전까지는.

“저를 데려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어떤 곳이라도 좋으니… 레일라가 있는 곳에 저도.”

둘째 오라버니의 목을 긁어 나오는 애원이 행동을 멈추게 했다.

“제발…….”

멈칫한 손이 다시 움직여 말을 이끌었다.

쿵—

바닥에 부딪히는 큰 소리가 들리고서야 그가 완전히 행동을 멈췄다. 놀라서 커다랗게 뜨인 내 눈 위로 그의 시선이 박혀 들었다.

한쪽 눈썹을 찡그린 그가 내 얼굴을 살피더니 소리가 들린 쪽으로 허리를 틀었다.

“무슨 일이에…….”

오라버니의 머리가 바닥에 고정되어 있고, 그 머리 주변으로 피가 흥건했다.

“그대가…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가볍지 않은 시선으로 그가 내게 결정권을 넘겼다.

허탈한 미소를 지은 채.

망설이듯 열린 입에 그가 얼굴을 가까이하고 내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 * *

“칼라엘. 뒤에 조용히 따라와. 만약 허튼짓하면 그대로 네… 흠흠. 맹세해라. 무조건 레일라의 말에 따르겠다고. 맹세할 수 있나?”

“…그러겠습니다. 폐하.”

“그럼 먼저 할 일이 있다. 이곳을 지켜보고 있는 그대 형의 개들을 다 처리해. 레일라에게 그런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군.”

레일라의 아름다운 보석 같은 눈이 동그랗게 떠지는 모습을 보고 다시 입술을 내려 길게 입술에 묻었다.

“그대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조금만 눈을 감고 있으면 좋겠군요.”

안심하듯 서서히 사라져 가는 레일라의 눈을 보고 말에 올랐다.

뒤에서 들리는 검을 다잡는 소리에 말의 머리를 돌려 몇 걸음 떨어졌다.

“그대의 실력이면 충분할 것이니.”

포위망이 좁혀오고 있어, 더는 움직이지 않고 방관하듯 서 있었다.

“레일라…….”

속눈썹을 들어 올리는 그녀가 예뻐 다시 입술을 내렸다.

닿고 있어도 여전히 그녀가 고팠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습니까?”

“네.”

“여기서 저들을 처리한 후 제국으로 돌아가는 행렬과 같이 만나서 갈 겁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눈이 위로 들렸다 내려오는 뜻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페아 제국으로 돌아가면 그대를 황궁으로 모셔갈 겁니다. 이제부터 저와 함께 있어요. 그대와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프레드릭 황제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의 꽉 조이지 않는 팔이… 그의 입술이 아프지 않게 닿았다 떨어지는 모든 모습이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는 듯해서.

심장이 욱신거렸다.

그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눈을 가렸다.

“이제 그들이 다 도착했군요.”

눈을 가린 그가 부드러운 손길로 몸을 다잡아 그의 가슴에 기대게 했다. 몸이 좀 더 편해졌다.

쿵쿵쿵—

가슴과 맞닿은 귀를 통해 그의 심장과 내 심장이 연결되었다. 일정한 속도로 같이 뛰어대는 심장의 소리가 안정감을 주었다.

챙—쨍강.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어지러운 발소리도 들렸다.

“으악, 컥.”

사람이 쓰러져 가는 비명도 함께.

‘도대체 얼마나 많이 보낸 걸까?’

처음에는 한두 명이라 생각했는데, 들리는 비명은 그 수를 가뿐히 넘겼다.

“이제 다 정리되었군요.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 곧 출발할 거니.”

그의 말에 무겁게 내려와 있는 속눈썹을 들어 올렸다. 눈을 뜨는 모습을 확인한 그가 말을 움직였다.

“오라버니는요?”

입가의 근육이 많이 풀어졌는지 조금 전보다 더 뚜렷한 발음을 만들어 냈다.

앞을 향하던 그의 황금빛 눈이 내 눈에 내려와 표정을 살피다 다시 위로 들렸다.

“그대 오라버니 실력을 믿으시면 됩니다. 쉽게 다칠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래, 맞다.

그를 다칠 수 있게 만들 사람은 오로지 이 프레드릭 황제와 큰 오라버니 정도일 것이니.

“칼라엘, 정리되었으니 이제 출발해서 제국으로 돌아가는 행렬과 만나야 한다. 그대는…….”

말을 멈춘 프레드릭 황제가 눈을 내려 내 얼굴을 살피다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가는 뒤를 따라와야 하니 말을 구하는 것이 좋겠군. 마을에 가서 말을 타고 뒤를 따라와라.”

“네, 폐하.”

“다시 한번 말하지만, 허튼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레일라 옆에라도 있으려면.”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작게 떨어지는 마지막 말이 내게 스며들었다.

* * *

가만히 품에 안겨 눈으로 열심히 말을 걸고 있는 레일라가 귀여워 칼라엘에게 더 엄하게 말해야 함에도 말을 잇지 못했다.

내 눈을 보며 눈알을 굴리는 그녀의 모습 때문에.

입꼬리가 자꾸 떨려서 웃음이 나오는 걸 가까스로 감췄다.

“하아. 정말…그대를 만나고, 늘 그대에게 휘말리고 맙니다.”

무슨 말이냐고 눈을 똥그랗게 뜨는 모습에 그만 참지 못하고 입술을 내려 그녀의 입술을 길게 빨아 삼켰다.

“내가 얼마나… 얼마나 그대를 생각하는지 알아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걱정했는지도.”

“…….”

여기서 더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아 눌렀다. 그녀를 위한 자리에서 말하고 싶었기에.

“…레일라. 조금만 덜 귀여우면 안 됩니까? 제가 정말 참기가 많이 힘듭니다.”

다시 눈을 똥그랗게 뜨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대로 말을 멈추고 입술을 내렸다.

입술만 무는 것으로는 양이 차지 않아, 분홍빛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고 부드러운 점막을 갈랐다.

안으로 좀 더 혀를 밀어 넣어 그녀의 혀를 엮자 방황하듯 흔들리는 보라색 눈동자가 춤을 추었다.

“너무 귀여워서 한 번만 더 입술을 먹고 가겠습니다.”

맞물린 입술 사이로 숨과 함께 말을 밀어 넣었다.

입안의 여린 살들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가지런한 치아를 정성스럽게 핥고… 입천장을 쓸었다.

“으응. 폐하. 여… 여긴.”

“그대가 문제입니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대가 문제이니 저의 입으로 혀를 한 번만 주시면 가볍게 빨고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망설이는 핑크빛 혀가 내 혀에 붙은 채 입으로 건너오자 아프지 않게 빨아들였다. 이렇게라도 그녀를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를.

“하아. 역시 그대는…….”

입술이 떨어지자 그녀와 나 사이를 연결한 은사가 기꺼웠다. 그 줄이 끊어질 때까지 말을 멈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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