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비켜난 눈과 다르게 그의 입술은 입안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와 여린 점막을 건드리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묵직한 살기가 담긴 걸음이 가까워졌다.
그가 주는 쾌락보다 두려움에 완전히 굳어버린 몸이 뻣뻣해졌다.
폭력의 시발점이 될 손이 뻗어올 것이다.
‘제발 싸우지 마! 무서워.’
공포에 젖은 몸이 그대로 정지했다.
“악. 빌어먹을.”
갈라진 틈 사이에 끼어 있는 그가 급하게 페니스를 빼냈다.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고 욕실이 더욱더 얼어붙어 갔다.
“난 내 것을 나눠 먹는 취미는 없어. 칼라엘. 분명히 말했을 텐데. 나와! 당장.”
큰 오라버니가 가볍게 내리친 욕실 문이 꽝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버렸다.
그 소리에 맞춰 굳은 입술 사이로 울음이 터져 나왔다.
* * *
“흑. 흐윽.”
“레일라! 나와.”
당장 나가야 했다.
명령이 입력된 몸이 일어나려 했지만 굳어버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둘째 오라버니의 목을 좀 더 끌어안은 일이었다.
어쩔 줄 모르는 아기처럼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고함이 욕실 안에 울려 퍼졌다.
“레일라! 떨어져.”
알아, 아는데. 큰 오라버니 제발.
“네… 네. 그러니 제발. 오라버니 소리 좀…….”
하필 빙의하기 전의 꿈으로 인해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휘발된 듯 제대로 된 사고가 되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이 둘 사이에 내가 먼저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만이 들어찰 뿐이었다.
“제가.”
나를 안고 있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물 밖으로 완전히 내밀어진 두 나신의 몸 위로 케이드란의 시선이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뜨거운 눈길이 스쳐 지나간 자리가 불에 타듯 아파 왔다.
뿌드드득—
그의 이가 부러지듯 갈렸다.
“다음은 없다. 칼라엘. 절대 없어.”
무슨 결심을 한 건지 모르지만, 그의 얼굴에서 서서히 결심이 차올랐다.
다시 한번 서늘하고 뜨거운 시선이 두 나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여운이 다 가시기 전에 중심을 그대로 둔 채 지금도 벌벌 떨고 있는 레일라의 목덜미를 빨아들였다.
다시 한번 서늘하고 뜨거운 시선이 두 나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이 순간에도 떨리는 목덜미에 자국을 새기기 위해 길게 빨아들였다.
* * *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괜찮아?”
괜찮아, 라고 물어보는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언제 이런 걸 물어보는 인간이었다고.
나 또한 마음대로 안고 있는 주제에.
네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상관없이 말이다.
레일라의 떨리는 몸과 함께 떨어대는 아래를 느낀 페니스가 다시 솟아올랐다. 그래, 난 이런 인간이다. 네가 지금 어떤 상태이든지 상관없이 욕정 하는 그런 인간.
금방 나가겠다는 형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
그럼 과연 무슨 일이 생길까? 다시 침대에 묶어 둘까?
“큭큭큭.”
레일라의 떨고 있는 입술을 크게 물었다.
잘게 떨리는 입술이 평소의 분홍빛을 잃어버리고 파랗게 죽어 있는 입술을 물고, 빨아 당기며 떨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하아. 하아. 하아.”
몇 번의 숨을 내뱉은 레일라를 안고, 그녀의 타액을 마시면서 허리 짓을 이어갔다.
너도 이렇게 하면 쾌감에 모든 것을 잊어버릴까 싶어서.
“흐응. 오라버니, 이제 나가요. 큰 오라버니가… . 응? 이제 나가요.”
레일라의 말끝에 울음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래, 나가자.”
그러면서도 붙잡고 멈추지 않은 허릿짓을 더 하고서야 문이 떨어진 욕실을 나왔다.
* * *
칼라엘의 방을 나선 후 복도에 그대로 섰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복도에는 서늘한 기운만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도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열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 복도를 열기로 채워갔다.
제기랄.
이 빌어먹을 집안의 내력인 보통 평범한 능력을 벗어난 자들답게 멀리서도 바로 옆인 것처럼 들리고 있었다.
어제는 답지 않게 레일라를 안고 싶은 마음을 눌러 내렸었다.
시작인 만큼 조심스럽게 하루쯤 봐준 건데.
저 빌어먹을 놈이 와서 레일라를 냅다 안아 버릴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내 침실에 데려다 놓는 건데.
“레일라… 넌 항상 달아나고 싶겠지만, 결코 네 뜻대로는 되지 않을 거야. 이 오라버니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네가 가만히 있으면 나도 관용을 베풀어 주겠지만, 그렇지 안다면, 나도 내가 어찌할지 모른다.”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해서는 저 칼라엘부터 치워 버려야 했다.
나는 결코 내 것을 나눠 먹는 사람이 아니다.
장애물이 있으면 치워 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해서 이 공작저의 주인이 된 것이니.
한참을 복도에서 주먹을 말아쥐고 펴기를 반복하고서야 집무실로 올라갔다.
“각하,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칼라엘과 레일라는?”
“식당에 먼저 도착해 계십니다.”
집사의 말에 의자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어쩌면 집사에게 지시한 것이 다행이었다. 다시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본다면.
집사가 열어주는 식당 문 안으로 거칠게 들어섰다.
자리에 앉아 있는 둘이 일어서려는 것을 손을 들어 제지하고 가장 상석에 앉아 손짓했다. 나오는 음식을 보다가 식기를 들었다.
“초대장이 왔다. 칼라엘, 너는 알고 있었겠지?”
“네, 형님.”
집사에게 시켜 황궁에서 도착한 초대장을 가져와 레일라에게 건네주었다.
“레일라, 네가 꼭 참석하라는 초대장이다.”
다시 말하기 전에 칼라엘에게 시선을 주다 옆의 레일라를 향했다.
“폐하께서 네게 꼭 참석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칼라엘이 설명해 줄 것이다.”
* * *
옆에 앉은 둘째 오라버니의 입술을 바라보다 시선을 내렸다.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황궁에서 열리는 이번 연회는 옆에 위치한 나페아 제국과 3개의 왕국이 매년 전쟁을 막기 위한 연회를 개최합니다. 이번이 유레안 제국 차례라는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참석은.”
포크를 들고 샐러드를 찍어 먹다가 다음 말이 나오지 않는 둘째 오라버니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제국의 황제가 직접 참석할 것이며, 3개의 왕국에서 왕 또는 왕자가 참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국의 모든 영애가 참석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오는 황제와 왕을 위해 왜 제국의 모든 영애가 참석해야 하는 거지?
멈춘 머리로 이해하기 위해 오라버니의 말을 되씹고 있었다.
“특히 나페아 제국의 황제에게 이 제국의 영애를 준 후 황후로 만들어 폐하의 말을 듣게 하길 바라십니다.”
그렇구나.
다시 포크로 샐러드를 열심히 찍어 입에 넣었다.
요즘 며칠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몸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제대로 체력을 키워 다음을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왜? 두 쌍의 붉은 눈이 내 얼굴에 박혀 있는 걸까?
“…드레스를 맞출게요.”
이게 아닌가? 왜 그러지?
아무리 두 오라버니의 눈치를 봐도 이번은 모르겠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폐하께서 특별히 네게 참석하라 명하셨어. 그 명은…….”
둘째 오라버니가 말을 멈추고, 들고 있는 포크를 그대로 접시에 내리쳤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난 접시를 치우기 위해 집사와 하인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러니까? 무슨 이유인 건지.
큰 오라버니가 집사에게 손짓하자 식당에 있던 모든 하인이 물러났다.
“우리 유레안 제국과 나페아 제국 사이는 극악의 상태이다. 칼라엘의 말을 들어보면 결국 황제가 원하는 것은 한가지인가?! 레일라로 인해 나페아 제국의 황제를 유혹하라는 것 말이다. 그것이냐? 칼라엘.”
“…네. 형님.”
“그렇다면 황제가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루어지겠구나. 황제의 애정… 보기 싫은 나페아 제국의 황제를 레일라에게 빠지게 해 나페아 제국 황제를 무시하는 것! 정식 공녀가 아닌, 입양된 영애에게 빠진다… 황제를 깎아내리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이 대륙에 존재하는 거대한 두 개의 제국은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옆에 끼어 있는 조그마한 왕국 세 개야 눌러 버리려면 얼마든지 누를 수 있는 곳이라 신경도 쓰지 않지만, 유일하게 이 제국과 맞먹는 옆 나페아 제국은 늘 황제의 경계 대상이었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조차 무덤덤하다.
‘잠깐, 나페아 제국이라고!’
이 소설의 진남주가 황제로 있는 제국이었다. 그렇다면 이 제국의 황제는 정신 차려야 했다.
어떤 역경이 있어도 절대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이었으며, 원작 여주 메리아가 있으니 내게 넘어올 일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차라리… 넘어오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나도 모르게 한숨을 튀어나왔다.
“레일라, 황제의 명이라 네가 가지 않을 수는 없을 거야.”
가기 싫어서라 여긴 걸까? 가서도 소용없는 걸 아니까 한숨이 나온 거 뿐인데.
“이 제국에서 공작가의 양녀는 너뿐이니. 그래도 걱정하지 마. 후작가와 백작가에도 양녀는 있으니.”
“네, 걱정 안 해요.”
차라리 걱정을 했으면 좋겠다.
내가 입양하는 시기에 변덕을 부린 황제가 공작가를 본받아 입양하라 명을 내렸다.
그 후 몇 개의 후, 백작가에서 나처럼 입양했다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좋다 말았다. 차라리 걱정하게 했으면 좋으련만.
“드레스는 전담 디자이너를 불러 줄게. 다른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말하고.”
“없어요. 오라버니. 드레스만 있으면 돼요.”
그의 눈이 내 상태를 살피더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은 내가 준비해 주도록 할게. 너의 성년식에도 그랬던 것처럼.”
“아니요. 제가 있는 것으로…….”
“레일라, 내가 다시 말해야 하는 거야? 여기에서 네 뜻은 없다. 이 큰 오라버니가 해주고 싶으면 하는 거야.”
그러게. 늘 뜻대로 하면서 묻는 척이라도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제가 합니다. 형님! 이번에는 제 차례이니.”
둘째 오라버니까지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칼라엘! 형님이 하겠다 한 일을 네가 건방지게 나설 필요는 없다. 아니면…각자 해주고 선택은 레일라가 알아서 하는 거로 하는 것이 좋겠네. 재밌겠는데.”
빌어먹을.
둘째 오라버니보다 큰 오라버니가 더 감당이 안 된다.
상대하기 벅찬 상대였다.
더 말해봤자 큰 오라버니를 건드리는 일이 될 터이니, 어떻게 결정 나던지 조용히 있어야 했다.
“그렇게 알고. 참! 내일 정원에서 차를 마셔야겠다.”
“네? 무슨 일로요?”
“아, 별건 아니다. 내일 청혼서를 들고 오는 영애와 차를 마시기로 했거든.”
그게 왜 별일이 아닌 걸까?
청혼하기 위해 온 영애를 만나는 자리에 나는 왜 필요하고?
이제는 습관처럼 직접 묻지 못하고 속으로 하는 물음을 익숙하게 눌러 내렸다.
내가 그 어떤 말을 하든지 소용없을 테니까.
“…네.”
“그러니, 오늘 저녁에는 내가 네 방으로 가마.”
꽝.
둘째 오라버니 앞에 있는 탁자에 구멍이 뚫렸다.
모든 것이 무시한 큰 오라버니가 먼저 식당을 나서고, 그 뒤를 이어서 내가 일어나 식당을 나섰다.
식당 문을 열고 나오면서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오늘 하루가 지금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피곤해지고 머리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