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가 된 공작가의 행복한 영애 1권
1화.
여지없이 찾아오는 어둠으로 물드는 시간.
핏기없는 손이 욕실의 견고하게 짜인 문을 힘들게 열었다.
덜컹거리며 열린 문 사이로 들어가 물을 받자 안개 같은 김이 꽉 막힌 공간에 퍼져나갔다.
뚝뚝 거리며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가 아름다워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하아—
장인이 공들여 만든 상앗빛 아름답고 매끈한 욕조로 떨어지는 맑게 방울진 물방울을 향해 빈 시선을 던졌다.
이미 가득 찬 욕조의 물이 거의 넘치기 직전이 돼서야 손을 들어 올려 잔잔한 수면을 저었다.
손 하나의 무게에도 맑은 물이 욕조 벽을 넘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나가야 하는데.’
살짝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내려오는 물을 막았다.
늦게 나가면 둘째 오라버니가 화낸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나가지 못했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미적거리는 걸음을 옮겨 욕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왜 늦었어? 내가 늦지 말라고 했는데? 같은 말을 몇 번 반복해야 알아들어?”
그의 붉은 핏빛에 가까운 눈이 내 모든 것을 살피듯 집요하게 얼굴로 따라붙었다.
어느새 몸에 걸치고 있던 검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벗어 던진 오라버니가 삐딱하게 서 있었다. 그의 허리에 걸린 수건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달랑거린 모습으로.
몸 하나하나가 조각된 듯 빚어진 몸체.
뻗어오는 손가락마저 공들여 만든 조각 같은 사람.
아래로 떨어지려는 눈을 억지로 오라버니의 목에 잡아 고정해 붙였다.
절대 오라버니의 몸도, 손도 보면 안 되었기 때문에.
뻣뻣해진 몸 위로 위에서 아래로 뻗어오는 긴 손.
흠칫거리는 어깨가 출렁거렸다.
차갑다 못해 시린 손끝이 내 턱을 잡고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 차가움에 저절로 몸의 떨림이 가중되자 의문이 들었다.
‘이 스타멘 공작가 사람들은 사람이 맞기나 한 걸까? 큰 오라버니나 둘째 오라버니나.’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오라버니의 말이 내 생각을 갈라 순식간에 흐트러트렸다.
“왜 그러고 있어? 그러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응… 레일라. 절대 그러지 마!
오라버니의 붉은 눈빛이 조금 더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순간의 생각조차 견디지 못하는 오라버니 모습에 서둘러 의식을 정리하고 파들거리는 입술을 열었다.
“아니에요. 오라버니. 물……물을 좀 더 받으려다 보니.”
핏하고 낮게 떨어지는 조소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들어 그의 얼굴을 마주 보고 말았다.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오라버니의 붉은 시선에 다시 한번 비소가 스며들었다.
“네가 그럴 리가 없지. 나만큼 너를 잘 아는 사람은 없는데. 감히 어디서.”
서늘한 눈빛과 말투와는 다른 턱을 잡은 손은 끈적이게 지분거렸다.
“10년 동안이나 물 조절을 못 할 정도로 어리숙한 아이는 아니지.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 아니겠지? 그런 장난은 통하지 않을 거라고 분명 말했는데.”
언제쯤에나 너는 솔직해질래?
가볍게 따라오는 뒷말을 듣지 못한 척 눈빛을 가리기 위해 파들거리는 속눈썹을 아래로 미끄러트렸다.
“내가 네게 눈을 감으라고 명령했어?”
“아니에요. 오라버니.”
반쯤 가려진 눈을 더 크게 뜨고 순종적으로 내리깔자 만족한 오라버니가 잡은 턱을 놓아 주었다. 뒤를 돈 그가 큰 보폭으로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따라가는 발걸음이 바닥에 끌리고 있었다.
따뜻한 하얀 김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욕실에 들어선 그가 골반을 가린 작은 수건을 욕실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가 온전한 나신의 모습으로 욕조 안으로 큰 몸을 구겨 넣었다.
차르르르륵—
넘치기 직전의 욕조 물이 오라버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어이 넘쳐흘러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출렁거리는 수면의 일렁임에도 미동 없이 유유히 앉는 모습이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핏빛 신관의 모습으로 보였다.
언제 봐도 위압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커다란 키, 근육으로 꽉꽉 짜인 아름다운 몸매,
거기에 사람으로 보이지 않은 표정 없는 아름다운 얼굴까지.
매번 상·하의부터 코트까지 검은 옷을 입고 있을 땐 두려움만 들었는데.
지금처럼 완전한 나신으로 욕조에 앉아 있는 모습은 신이 공들여 빚어놓은 아름다운 조각상이었다.
인간이 근접하기 힘든 아름다움.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저 사람이구나 하는 정도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볼 때마다 심장 한쪽이 잘게 떨리기는 했다.
욕조에 들어가 있는 오라버니의 몸 위로 스펀지를 들어 올려 닦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떨리는 손끝이 저릿했다.
천천히 긴 속눈썹 사이로 사라지는 오라버니의 붉은 눈을 마지막으로 몸을 닦아내는 데 열중했다.
긴 속눈썹 사이로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 사라지자, 떨리는 손끝이 조금 안정을 찾아갔다.
이곳 스타멘 공작가의 사람들은 모두 기척에 예민하고, 사람 같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그의 신경을 건드리면 좋을 것이 없었다.
그리고 여기…두 형제 중 더 예민한 쪽인 둘째 오라버니는 지금 나의 목욕시중을 받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입양된 그의 여동생인 나로부터.
‘오늘따라 둘째 오라버니 칼라엘의 목욕 시중이 왜 힘들지.’
매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내 예쁜 동생아! 나 목욕할 때 허튼 생각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한 번만 더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매 순간 내게 집중해. 그것이 네가 할 일이야. 명심해.”
그의 말이 길어지고 있었다.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흘러가는 작은 생각조차 바로 집어내는 오라버니는 내게 있어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서둘러 허튼 생각을 치워 버리고, 그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출렁거리며 흘러내린 물에 드레스의 밑단이 다 젖도록 몸을 닦아내고 일어섰다. 접은 다리가 펴지는 순간.
“들어와.”
순간 너무 놀라 휘청거리는 다리로 인해 욕조 안으로 빠져 버렸다.
풍덩 소리와 함께 머리부터 빠진 작은 몸이 숨을 쉬기 위해 파들거렸다.
“컥컥.”
젖은 드레스의 무게 때문에 허우적대는 나를 그의 차가운 손이 뻗어와 쉽게 잡아 올렸다.
욕조 밖에 걸친 나머지 몸까지도.
“왜 그렇게 놀라는데? 네가 이렇게 놀랄 일 따위가 아닌데.”
“컥. 컥. 컥. 커억. 헉. 헉.”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욕조의 바닥을 기어 최대한 오라버니로부터 멀어져 욕조 난간에 붙었다.
커다란 욕조라서 다행이었다.
“하아……하아.”
“너도 알다시피 10년간 내 목욕시중은 너 하나뿐이었잖아. 그런데… 이게 너한테 그리 놀랄 일이야?”
아니면 더 익숙해지게 할까?
가볍게 웃은 오라버니가 일렁이는 내 시선과 만나자 조각 같은 그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내가 눈 맞추지 말라고 했을 텐데. 넌 가끔 너무 겁이 없어. 그게 너한테 어떤 일인지나 알고 있는 건지. 넌 가끔 너무 무방비해서 그게 더 꼴리게 한단 말이야. 지금처럼. 너만 몰라.”
오늘 여러 가지로 너무 놀란 나머지 10년 동안 하지 않았던 실수를 모두 다 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오라버니.”
두려움으로 인해 떨림이 더 심해졌다.
“추워? 이 욕조 안에서?”
내게 고정된 붉은 눈은 휘어졌다.
긴 손가락 끝이 물속으로 파고들어 거칠게 휘젓고 들어 올려졌다.
“눈 떠.”
언제 감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눈이 그의 명령에 저절로 떠졌다.
“거기서 움직이지 마. 네가 추워 보이니 오늘은 내가 씻어야겠어. 그러는 동안 넌 눈 감지 마! 내가 씻는 모습을 그대로 네 눈에 새겨. 그게 오늘의 네가 할 일이야.”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 그가 내가 노친 스펀지를 들어 몸을 닦기 시작했다. 그의 턱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 오라버니의 입술이 선명하게 비틀어졌다.
“성질 건드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내가 어딜 보라고 했는지 기억해.”
따뜻한 물 속인데도 시린 한기를 느꼈다.
아래로 향한 시선을 들어 올려 스펀지를 쥐고 있는 오라버니의 손으로 따라 붙였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린 그가 천천히 가슴에 댄 스펀지로 원을 그렸다.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온 손이 잘 짜인 선명한 복근에 그대로 멈췄다.
“옷을 벗어.”
자동으로 입력되던 머리가 삐거덕거렸다. 그동안 없던 명령에 머리가 하얗게 휘발되었다.
“왜? 겁나? 내가 너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그렇게 다 젖은 옷으로 나갔다가는 네가 사용인들에게 또 핍박받아. 그러니 벗어.”
‘늦으면 혼나니 서둘러야 해.’
본능적으로 욕조 안에서 천천히 손을 들어 물에 젖은 드레스를 잡아당겼다.
손에 잡힌 건 드레스 자락이 아닌 물이었다.
첨벙—
먹이를 노리는 한 마리의 검은 짐승 같은 모습으로 순식간에 다가온 오라버니가 상처가 가득한 손을 들어 드레스를 벗겼다.
빠른 속도로 벗겨진 드레스가 떨어져 내리는 속도와 그의 나신의 몸이 제자리로 돌아간 것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담백하게 떨어져 나간 것과 다르게 몸을 핥아 올리는 진득한 시선에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많이 컸네. 진짜 많이 컸어. 네가 이 집에 들어온 지 10년째였지? 레일라. 아름답게 컸어. 오늘 밖에서 너만 한 여자애의 멱을 따버렸어. 가엽게도… 힘이 하나도 없다니. 그저 살려달라고 애처롭게 울면서 매달리는데. 그냥 편히 보내주기로 했어. 힘을 많이 줄 필요도 없어서 쉽게 끝내 버렸지.”
오라버니의 메마른 눈빛에 가냘픈 목이 꺾어지는 형상이 비쳤다.
며칠에 한 번 정도 황제의 명령을 수행하고 오는 둘째 오라버니의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매번 돌아오면 옷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의 검은 옷과 구두… 때로는 손과 얼굴에도 몇 방울 튀어 있는 피가, 그가 오늘 무엇을 하고 왔는지 알려주었다.
그로 인한 공포는 오로지 내 몫이었다.
오라버니의 목욕시중 중 씻겨 나가는 핏방울을 볼 때마다 그날 악몽에 시달렸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내가 널 죽일까 봐 걱정하는 거야?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너를 죽이려 했다면… 이미 10년 전에 네가 내 허리를 안은 순간 죽여 버렸을 거니까.”
온기 없는 붉은 눈동자가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물에 젖은 속옷 위로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몸을 계속해서 훑어 내리고, 또 훑어 내렸다.
그 시선이 지난 자리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졌다.
가릴 수 없는 작은 손을 들어 올렸다.
“생각해보니, 내 예쁜 동생아! 어차피 욕조 안으로 들어왔으니… 이쪽으로 다가와 네가 그동안 닦아주지 않았던 아래까지 깨끗이 닦아. 그건 할 수 있지?”
여기서 더 실수했다가는 오늘 저녁을 넘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물이 가득 찬 욕조 바닥에 손을 짚고 기어갔다.
천천히 스펀지를 들어 그의 아래쪽으로 손을 뻗었다.
발가락을 닦고, 종아리를 지나 허벅지 사이의 골을 지나려던 손이 멈췄다.
킥킥거리는 그의 즐거운 웃음이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왜 멈춰. 나 스스로 닦으라고? 지금! 설마 네가 그럴 리는 없잖아. 그치, 내 아름답고 겁이 없는 동생아.”
“하… 하지만, 오라버니… 거…거긴.”
다시 한번 즐겁게 웃는 그의 웃음이 더운 욕조 안을 뜨겁게 달궜다. 그와 반대로 몸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욕조에서 올라오는 수증기 때문인지, 아니면 식은땀 때문인지 모를 것들이 합쳐져 욕조 수면 위로 똑똑 떨어져 내렸다.
첨벙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연달아 내 몸에서 떨어져 내리는 세 방울의 물방울이 수면에 파문을 일으켰다. 어차피 거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천히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욕조에 몸을 담글 때부터 굵은 힘줄이 툭툭 튀어나와 있는 오돌토돌한 페니스의 옆을 향했다.
다리로 이어지는 골을 떨리는 손끝이 쓸어내렸다.
양쪽의 갈라지는 골을 전부 닦아내고 서서히 뒤로 빠져나오는 손이 마디가 굵은 상처 많은 손에 턱 잡혔다.